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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온공주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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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조의 장녀인 명온공주 묘역 전경. 망우리의 무연고 묘도 이렇지는 않던데... 공주 묘역이 최소한의 관리 조차 되어있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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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온공주 묘가 망우리 공원 묘지에 있다는 것은 최근에 알게되어 나홀로 능원묘 44차 답사시에 둘러 보았으며, 사전에 방정환선생 묘역 좌측 상단에 있다는 정보는 알고 찾았습니다. 묘역을 찾고보니 이건 일반 무연고 묘도 이 정도까지 관리가 안되지는 않는데...
답사시가 추석 직후의 상황입니다. 후손을 탓해야 할지... 명색이 조선시대 옹주도 아닌 공주의 묘인데, 최소한 관리소에서라도 일년에 한 번 추석 전에는 벌초라도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답사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네요... 함께하신 어르신께서는 울분을 토하시며 '광나루 이거 한 번 공론화시켜야 하지 않겠어!'하셨습니다만, 광나루는 현 상황만 전달할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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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정환선생 묘역에서 좌측 산길로 접어들면 바로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신도비 하나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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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온공주(明溫公主, 1810.10.13~1832. 6.13 ) / 김현근(金賢根, 1810.12.12~1868. 8.25)
명온공주는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의 제1공주로 부마(駙馬) 간택을 위하여 1823년(순조 23) 5월 2일에 12세에서 15세의 동자에게 금혼령을 내리고 단자를 들일 것을 순조가 명하면서 시작되었다.
명온공주방가례등록에 의하면, “부마로는 예조의 택일에 따라 5월 22일 初揀擇(8명), 25일 再揀擇(3명), 6월 2일 三揀擇을 하여 進士 김한순(金漢淳)의 아들 賢根(초간택, 재간택 명단에는 이름이 承賢으로 나온다)을 정하고 동녕위(東寧尉)에 봉작하였다.
이후 納采(6월 17일), 納幣(6월 25일), 命服內出(7월 7일), 각종 習儀(7월 8일-11일)를 거쳐 7월 17일에 친영(親迎)과 동뢰연(同牢宴)을 행하고, 7월 17일에 견구고례(見舅姑禮)를 실시하였다.”라고 하여 김현근을 부마로 삼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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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비에서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면 명온공주입니다만, 광나루가 이런 묘는 처음 봅니다. 무연고 묘 보다도 못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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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온공주는 김현근과 결혼 후, 즉 지금의 태화빌딩 앞 길 건너의 관훈빌딩 자리 일대(종로구 관훈동 198번지 18호) 죽도궁(竹刀宮)에 거주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마 김현근이 심한 정신질환으로 발작을 하게 되면 집안은 물론 동네를 온통 소란하게 만들어 부마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으며, 당시 세도가 안동김씨 문중의 체면과 명예에도 크게 손상이 되었다.
왕가에서는 물론 김씨 문중에서도 부마 김현근의 정신질환을 치료하기위해 노력했으나 백약 무효 하여 마지막으로 무속적인 치료 방법으로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며 경악법(驚愕法)으로 치료코자 했다. 경악법이란 환자를 크게 놀라게 하여 환자의 몸속에 있는 악귀를 쫓아내게 하는 치료법이다. 쉬운 예로 딸꾹질을 할 때, 딸꾹질을 멈추게 하는 것도 일정의 경악법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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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이 바로 지난 싯점인데도 불구하고 벌초 초차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후손이 못하면 최소한 관리소에서라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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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김현근을 마당 한가운데 앉혀놓고 대나무로 큰칼을 만들어 양손에 든 무당이 요란한 가락에 따라 난무하면서 환자의 둘레를 빙빙 돌다가 환자가 잠깐 졸거나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틈을 타서 가지고 있던 죽도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여 환자로 하여금 크게 놀라게 하여 그 몸에 붙은 악귀를 쫓아내려 했다.
그래서 이 집에서는 매일 죽도를 들고 춤을 추는 소리와 죽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담 밖까지 들려나와 그 후로부터 동네 사람들이 이 집을 '죽도를 들고 춤을 추는 궁' 이라고 하여 '죽도궁(竹刀宮)이라 하였고 때로는 '죽동궁(竹洞宮)'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향토사학자 김용봉 선생의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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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색이 공주 묘인데... 묘역은 한 발만 앞으로 가면 낭떠러지로... 장명등은 깨지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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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명온공주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연유였는지는 모르나 여동생 복온공주(福溫公主)에 이어 결혼한 지 8년 만인 1832년(순조32) 22세의 나이로 졸서(卒逝)하였다.
명온공주방상장례등록(明溫公主房喪葬禮謄錄, 순조 33년 간행)에 “7월 14일에 동부(東部) 숭신방(崇信坊) 종암리(鍾巖里)을 장지로 최종 확정하였다.”는 기록에도 있듯이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이 합장된 묘는 종암동과 돈암동의 경계 지점으로 현 서라벌중고등학교 뒷산 부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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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비와 장명등이 없었으면 묘역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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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는 1936년 총독부 고시에 따른 토지 구획정리에 의해 망우리 공동묘지 조성과 함께 옮겨진 듯하다. “이장 전에는 오석(烏石)으로 된 묘비와 장명등 1기, 문인석과 석수(石獸)가 각 1쌍씩 있었다.”라는 서울정도600년사(문화사적 사육신묘와 사묘)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 묘역에는 묘비와 장명등 만이 있다.
장명등은 태종의 후궁인 숙선옹주 안씨 묘(중랑구 묵동 소재)에 있는 장명등과 비교할 때, 숙선옹주 안씨 장명등은 조선 전기의 형태를 명온공주 장명등은 조선 후기의 형태적 특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중랑구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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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대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 [1790 ~ 1834]
정비 순원숙황후 김씨(純元肅皇后 金氏) [1789 ~ 1857] 적1남 왕세자(王世子) [1809 ~ 1830] (효명세자) (익종대왕) (문조익황제)
서1녀 영온옹주(永溫翁主) [1817 ~ 1829] (숙의 박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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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공원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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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중랑구 망우동
지하철 7호선 상봉역 2번 출구로 나와서 구리 방향 버스를 타고 망우리 고개 조금 지난 정류장에서 내리게 됩니다.
지나온 고개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있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서 쭉 올라가면 망우리 공원 묘지가 나옵니다.
◀ 좌측 안내도의 10번 방정환선생 묘역 좌측 상단에 명온공주 묘역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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