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여행[충남 천안] 한명회선생 묘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11.03.21|조회수438 목록 댓글 0

한명회선생 신도비(충남 문화재자료 332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한명회선생 묘역 입구 전경

한명회(韓明會, 1415∼1487)는 두 딸이 각각 예종비 장순왕후, 성종비 공혜왕후가 되었다. 문종 2년(1452) 경덕궁직을 시작으로 관직에 올랐으며, 단종 1년(1453)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수양대군의 심복이 되어 큰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었다.

▲ 한명회선생 묘역 입구 안내 지석

▲ 한명회선생 사당(충모사) 입구 외삼문(상당문) 전경

▲ 사당 입구에 세워진 한명회선생 신도비 한글 역문(譯文)

▲ 비각 아래 세운 충모사 건립기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한명회 선생의 공적을 적고 있다.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돌 윗면에는 연꽃을 새겨 장식하였고,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헤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서로 다투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조선 성종 19년(1488)에 세운 것으로, 선생이 서거한 그 이듬해의 일이다.

▲ 한명회선생 신도비가 보호되어 있는 비각과 신도비 이수 모습

▲ 묘역으로 오르면서 바라 본 비각과 사당 모습

▲ 한명회선생 묘역 전경. 곡장 역할을 하는 듯한 묘역 사방을 두른 큰 돌들이 특이합니다.

세조 2년(1456)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도승지, 이조판서에 이어 병조판서에까지 올랐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내었으며, 성종 2년(1471)에는 영춘추관사로서『세조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 장명등 앞에서 바라 본 묘역 전경

▲ 장명등 앞에서 바라 본 묘역 내 석물 전경

▲ 이 곳에는 문인석이 없으며, 오히려 두 쌍의 무인석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 후면과 측면에서 바라 본 무인석

세조이래 성종대까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나랏일에 관여하였으며, 네 차례에 걸쳐서 1등 공신이 되어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아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살았다. 죽은 후에는 세조의 묘정에 그를 기리는 신주가 모셔졌고, ‘충성’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한명회선생 묘역은 상하 봉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앞에는 한명회선생 봉분이, 뒤에는 황려부부인 민씨 봉분이 있습니다.

▲ 한명회선생 묘

▲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 묘

▲ 전방 측면에서 바라 본 묘역

▲ 후방 측면에서 바라 본 묘역

▲ 한명회선생 묘역 뒷편에서 바라 본 모습

한명회선생 묘역 위치도

 소재지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 산11-1                 화살표  위에 보이는 봉분이 한명회선생 묘역입니다. 

지도 우측 중앙의 화살표 위치에 한명회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수신면사무소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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