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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김정 묘역 문인석(강원 문화재자료 125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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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선생 묘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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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인 김정(金鼎) 선생의 묘역에 있는 1쌍의 문인석이다. 김정은 고려 공민왕 때 양광, 전라도 찰방사, 대호군을 역임하였으며 고려 후기 신돈의 개혁정치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공민왕 20년(1371) 신돈이 축출되자 유배되었고 그 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며, 다만『신증동국여지승람』과『광주목지』에 중대광 광성군에 봉하여졌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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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은 사방이 철책으로 둘려져 있습니다만, 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묘역으로 오르는 철문이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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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인석 2기는 동일한 수법으로 조각하였는데, 다른 문인석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 머리에는 장식이 없는 낮은 관모를 쓰고, 눈·코·입은 얇은 선으로 표현하였으며 두 손에는 신하들이 임금을 뵐 때 손에 쥐던 홀(笏)을 들고 있다. 묘역에는 문인석 이외에도 망주석 1쌍과 선생의 묘비가 마련되어 있는데, 문인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최근에 세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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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선생 묘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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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군(光城君) 김정(金鼎)은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을 보면 고려말 신돈의 개혁정치에 참여했던 인물로 양광(楊廣)·전라도 찰방사(察訪使)와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공민왕 20년(1371) 권문세족의 반대로 신돈이 축출되자 유배되었으며, 이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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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선생 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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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서거정이 찬(撰)한 김정(金鼎)의 4세손 김국광의 신도비명에 의하면 광산군에 봉(封)해졌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는 중대광 광성군으로, ≪광산김씨파보≫에는 추성보리공신 중대광 대호군 광성군(推誠輔理功臣 重大匡 大護軍 光城君)으로 나타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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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분 앞 좌우로 조성된 문인석이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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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조성된 묘비와 봉분 앞에서 바라 본 묘역내 석물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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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묘역 문인석은 춘천시 칠전지구(漆田地區) 택지개발 사업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에는 봉분 앞의 상석을 중심으로 그 앞쪽에 문인석과 망주석을 각각 1쌍씩 두고, 봉분의 좌측에 묘비(1974년 건립)를 배치하였다. 문인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근에 세워진 것이다. 이 문인석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는데, 두 구(軀)가 모두 동일한 수법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다른 문인석들에 비해 작은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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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선생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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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는 낮고 간결한 관모(冠帽)를 쓰고 있는데 이마 부분에서 일조선(一條線)을 그어 관모와 얼굴을 구분하였으며 두 손에는 홀(笏)을 들고 있고, 두구 모두 봉분쪽을 향한 귀가 20㎝정도 훼손되어 있으며, 봉분을 중심으로 오른쪽 문인석은 관모의 뒷부분이 약간 깎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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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앞쪽은 길게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잔디밭 끝 부분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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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석의 귀가 훼손된 내력에 대해서는 영조 45년(1769)에 김화택(金和澤)이 쓴 《광성군묘소개봉축시종중통문(光城君墓所改封築時宗中通文)≫에 기록되어 있다. 문인석의 크기는 봉분을 중심으로 왼쪽의 문인석이 총 높이 121㎝, 오른쪽의 문인석은 123.5㎝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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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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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부분의 공원 입구에서 빨간선 우측의 출입구로 김정선생 묘역을 들어갑니다.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칠전동 산4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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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하단의 A 지점에 김정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춘천IC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