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고분 [12] 고령 지산동 고분군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11.09.20|조회수1,039 목록 댓글 0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79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광나루가 조선조 왕릉/신라 왕릉/대부분 가야 고분을 섭렵했지만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입이 쩍 벌어져...

고령은 대가야의 옛 지역으로서 현재 무덤이 수백 기에 이르고 있다. 그 중 지산동 무덤들은 겉모습이 확실하고 봉분이 비교적 큰 무덤에 한하여 번호를 매겨 지금은 72호 무덤까지 정해져 있다.

▲ 축제 기간 중이어서 가야대학에 차를 주차하고 바라 본 고분 원경과 셔틀버스를 타고 지산동고분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 대가야왕릉 전시관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고분군으로 오릅니다.

이들 무덤의 겉모양들은 모두 원형의 봉토를 하고 있고, 봉토의 규모에 따라서 대형·중형·소형무덤으로 구분한다. 봉토는 흙을 높이 쌓아서 무덤의 형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 대가야왕릉 전시관 우측에 위치한 고분 모습

▲ 전시관 방향으로 오르면서 바라 본 도로 건너편 고분군 전경

▲ 고분군으로 오르면 좌우로 크고 작은 고분들이 즐비하고...

▲ 저 멀리 고분군들이 즐비한 모습을 바라 보면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주로 대형무덤은 산등성이의 위쪽에 많이 있으며 중형무덤은 산등성이의 중간 정도에 모여 있고, 작은무덤들은 대형무덤과 중형무덤 주위나 그 밑에서 발견이 된다.

▲ 또 한 언덕을 오르면 저 멀리 수 많은 고분군들의 모습이 다시 보입니다.

▲ 능선을 지그재그로 오릅니다. 고분군으로 오르는 길은 산책하기 편하게 정비된 모습입니다.

▲ 고분군들을 올려 보기도 하고, 내려 보기도 합니다.

내부구조는 돌널무덤(석상묘) 돌덧널무덤(석곽묘), 돌방무덤(석실묘) 등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데, 돌널무덤의 경우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 봉분 안에 여러 무덤이 나타나는 것은 가족무덤의 성격이라기 보다 딸려묻기(순장)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 멀리 있는 아래 고분군들을 카메라 줌으로 당겨 보았습니다.

▲ 고분군을 오르면서 계속해서 내려다 보고 올려다 봅니다.

▲ 정상 가까운 곳의 벤치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대형무덤에서 많은 양의 토기와 함께 금동관·갑옷 및 투구·칼 및 꾸미개 종류가 출토되고 있으며, 4∼6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 쉼터 바로 옆에 상당히 큰 고분이 한 기 있습니다. 고분 옆의 사람을 기준으로 크기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봉분이 큰 고분은 지산동 44호 고분으로 봉분 지름 27m, 높이 8m라고 합니다.

▲ 정상에 있는 고분군들의 모습입니다.

▲ 고분군 정상 부근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곡선의 풍요가 숨쉬는 ‘대가야 왕릉길’
 

최슬기 기자 skchoi@kyunghyang.com

입력 : 2011-03-31 22:12:58수정 : 2011-03-31 22:12:59


ㆍ경북 고령 200여기 고분, 능선따라 4㎞ 산책코스

ㆍ주말이면 1000여명씩 몰려… 7일부터 체험축제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200여기의 고분. 경북 고령의 ‘대가야 고분관광로’는 이 고분들 사이로 난 ‘왕릉길’이다. 이 ‘대가야 왕릉길’이 산책로로,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의 고분들 사이를 걸으며 1500년 전 대가야의 숨결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다.

날이 풀리면서 따사로운 볕 아래 대가야의 봄날을 거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왕릉길 아래 대가야박물관 일원에서는 7~10일 대가야체험축제가 펼쳐진다.

지난 26일 탐방객들이 대가야 고분관광로를 걷고 있다. | 최슬기 기자

 

◇ 1500년 전 대가야의 숨결 밴 능선길 = 고령읍내에 들어서면 시가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주산·해발 310.3m) 위에 봉긋하게 솟은 고분군이 눈에 들어온다. 고분들은 산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사적 제79호인 지산동 고분군이다. 고분들은 산 아래 읍내를 굽어보고 있다. 읍내에서 보면 고분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신라와 달리 대가야의 고분들은 산 위에 있다. 이승의 삶이 내세에도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으로 보인다. 대가야 고분관광로는 고령향교 쪽에서 고아동 벽화고분까지 4㎞ 구간에 나 있다. 고령군이 2005~2006년 잡초 무성하던 오솔길을 넓히고 정비했다. 곳곳에 관광 안내판을 세워 탐방객들이 대가야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고 중간중간 벤치도 설치했다.

‘왕릉길 걷기’는 보통 대가야박물관 쪽에서 시작한다. 박물관 옆 언덕을 오르면 44호 고분을 재현해놓은 왕릉전시관이 나타난다. 44호 고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대형 순장묘다. 왕릉전시관 옆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바로 대가야 고분관광로다. 26번 국도(대구~전북 군산)로 양분된 고분군을 잇는 교량인 ‘대가야 통문’이 나오는데 왕릉길 중간 지점쯤 된다.

오른쪽으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면 고분이 연이어 나타난다. 겹치듯 붙어 있는 고분들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자연석으로 다듬은 계단길도 나오고 부드러운 흙길도 있다. 정상 쪽으로 갈수록 고분의 규모가 커진다. 서기 42년부터 562년까지 520년 동안 존속했던 대가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능선 오른쪽으로는 고령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길은 고분 밀집지역이 끝나는 지점에서 고령향교 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다. 고분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 주산 정상으로 난 등산로는 미숭산(해발 733.5m)으로 이어진다. 대가야 통문 건너편 길은 대가야 테마관광지와 고아동 벽화고분으로 이어진다. 오솔길을 따라 ‘흙더미’가 연이어 나타난다. 대부분 고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져 있다. 몰락한 고대왕국을 처연하게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지난해 대가야체험축제 때 인기를 모았던 역사재현극 장면. | 고령군 제공


◇ 대가야의 봄날 거닐며 = 대가야 고분관광로 전 구간을 걷는 데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최근 주말이면 하루 평균 850~1000여명이 왕릉길을 걷고 있다. 체험학습 나온 어린이에서부터 연인·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등산객까지 다양하다. 일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신영미씨(51·대구)는 “호젓하게 왕릉길을 걷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대가야의 신비감까지도 느껴져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7~10일에는 산 아래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대가야역사테마파크 일원에서 ‘대가야체험축제’도 열린다. 1500년 전 고대왕국 대가야 사람들의 생활상을 체험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대가야인들이 살았던 움집 만들기를 비롯해 노젓기·투망·옷감짜기·수레 타기 등의 다양한 생활·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대가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재현극(애기 금동관의 미스터리)도 무대에 오른다. 전국 우륵가야금 경연대회와 가얏고음악제 등도 함께 열린다. 고령의 특산물인 딸기밭을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행된다. 1인당 5000원을 내면 현장에서 딸기를 원하는 만큼 따서 먹고 500g 정도를 가져갈 수 있다. 지난해에는 38만명이 축제장을 찾았다. 올해는 40만명에 이를 것으로 고령군은 기대하고 있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최근 걷기 열풍이 일면서 ‘왕릉길’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며 “대가야 통문 건너편 허물어진 고분들도 연차적으로 복원·정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의 (054)950-6060

지산동고분군 봉분만 704기..고분 1만기 추정
 
한반도 최대 삼국시대 공동묘지로 드러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금까지 정확한 조사 없이 막연히 200~600기 정도의 고분이 있을 것으로 추산돼온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일대에서 봉분(封墳)이 육안으로 보이는 고분만 무려 704기가 확인됐다.

   대가야 시대 고분이 밀집한 지산동 고분군은 지금까지 발굴성과를 감안할 때 하나의 봉분에 여러 명을 매장하는 방식을 쓴 데다 이미 봉분이 완전히 망실된 고분이 훨씬 더 많아 전체를 발굴하면 1만기를 상회하는 고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지산동 73호분 발굴현장

이같은 사실은 고령군이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재단법인 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에 의뢰해 실시한 결과물로, 최근에 완성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한 정밀지표조사 결과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연구원은 지난해 5월 이래 올해 4월말까지 실시한 지표조사 결과 지산동 고분군 일대에 육안으로 봉토가 남아있는 삼국시대 고분만 704기 확인했으며 봉분 지름 25m에 이르는 대형분을 비롯해 작은 봉토분 다수를 이번에 새로이 추가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들 고분은 봉분 지름 기준으로 40m 이상 1기를 필두로 30m 이상~40m 미만 5기, 25m 이상~30m 이하 6기, 20m 이상~25m 미만 7기, 15m 이상 20m 미만 18기, 10m 이상 15m 이하 85기 등으로 드러났다.

조사단은 "이번 정밀지표조사는 대상지역을 원칙적으로 사적 지정 범위 안 봉토분을 대상으로 했으며, 고분임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봉토는 이미 없어지고 매장주체부만 남은 경우는 제외했기 때문에 이런 고분까지 포함한다면 지산동 고분군의 고분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1만기 이상을 헤아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산동 고분군

지산동 고분군에 대해서는 1910년대 일본인 연구자들인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등이 처음으로 조사해 분포 고분 숫자가 "100기 이상"이라는 보고가 이뤄졌고 1930년대 같은 일본인 고고학자인 사이토 다타시(濟藤忠)는 '600여 기'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42년 조선총독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서는 '200여 기'로 보고되더니, 해방 이후 1963년 사적 제79호로 이 고분을 지정할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큰 봉토분 70기만을 대상으로 삼았으며 1994년 국립대구박물관 조사에서는 '158기'로 보고됐다.

고령 대가야박물관 신정환 관장은 13일 "이번 조사를 통해 막연하기만 하던 지산동 고분군의 실체가 어느 정도 과학적 데이터를 확보하게 됐다"면서 "이로써 지산동 고분군은 한반도 최대의 삼국시대 공동묘지임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위치도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지도 하단에서부터 능선을 따라서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소재지 : 경북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 산8

 지도 좌측 상단에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령군청과 고령IC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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