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여행[충남 공주] 공주 수촌리 고분군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12.02.16|조회수577 목록 댓글 0

공주 수촌리 고분군(사적 460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공주 수촌리 고분군 전경

공주 수촌리 고분군(公州 水村里 古墳群)은 공주시에서 계획한 의당농공단지 조성 예정부지에 대한 지표조사 후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어 해당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각종유물이 발견되었다.

▲ 6기의 봉분 주변은 근래에 발굴을 마치고 복토를 해 놓았습니다.

공주수촌리고분군 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백제시대 부묘(대형토광목곽묘, 횡혈식 석실분, 수혈식 석곽묘)등이 조사되었다.

▲ 현재의 고분은 이미 발굴을 마치고 복원한 봉분입니다만, 납작한 모습입니다.

초기철기시대 토광묘는 세형동검과 검파두식(검자루끝장식) 등 다양한 청동제품과 점토대토기(점토띠토기), 흑고장경호 등 토기가 매장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초기철기시대 묘제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 우측에서 바라 본 모습

백제시대 분묘는 공주지역 백제고분의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일 뿐만 아니라 출토된 유물이 백제의 웅진천도 이전에 조영된 것으로 짐작되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 좌측에서 바라 본 모습

금동관과 금동신발, 금제이식,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 중국제 흑유도기, 흑유 계수호(닭머리모양 주전자)등 위세품으로 판단되는 유물들이 함께 부장되어 있어 피장자의 신분이 당시 공주지역 유력자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는 한성 백제시대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관련성을 보여주는 백제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 산길 도로를 따라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건너편 능선에도 고분군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 어떻게 볼 것인가
 

연합뉴스|입력 2005.10.07 16:52|수정 2005.10.07 16:52

 

▲ 제2지역고분군 에서 멀리 바라 본 제1지역 고분군

충남역사문화원 이훈 문화재연구부장은 "올해 대회를 발판으로 내년에는 수촌리 유적에 대한 다각적이며 세부적인 접근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명대 노중국 교수의 기조강연 뒤 개별 발표에서 백제 고고학 전공인 이남석 공주대 교수는 수촌리 고분군이 백제 묘제(墓制. 무덤 양식)에서 어떠한 특징을 지니는지를 검출하려 했다.

그에 의하면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기 이전인 4-5세기에 조성됐음이 분명한 수촌리 고분군은 비록 6기만 조사되기는 했으나, 이를 통해서도 백제 묘제가 토광묘에서 석곽묘로, 석곽묘에서 석실분으로 옮겨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토착적 묘제를 바탕으로 새로운 횡혈식 묘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 2지역 6기의 고분을 발굴하는 사진이고, 2지역 우측의 밭은 최근에 발굴을 마치고 복토를 해 놓았습니다.

박순발 교수는 수촌리 고분군 출토 중국 도자기들에 주목해 그것과 같은 종류의 도자기가 중국에서는 어느 시대에 조성된 어떤 유적에서 출토됐는지를 추적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그러한 중국 도자기를 부장한 수촌리 유적 각 고분의 축조연대를 추정했다.

▲ 2지역 우측의 밭을 발굴하는 장면(공주향토문화연구회 카페 사진)

박 교수에 의하면 수촌리 1호분 출토 청자 유개 사이호(靑瓷有蓋四耳壺. 덮개가 있고 네 귀가 달린 항아리형 청자)는 중국에서는 4세기 중엽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4호분 출토 흑갈유 계수호(黑褐釉 鷄首壺. 흑갈색 유약을 바르고 닭머리 주둥이를 갖춘 자기)는 4세기 후반-400년 무렵에 조성된 유적에서 발견되므로 수촌리 두 고분 축조 연대 또한 각각 이들 시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2지역 우측의 밭을 발굴하는 장면(공주향토문화연구회 카페 사진)

그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중국과 같은 도자기가 출토된 유적의 경우, 그것이 한반도에 전래되는 기간을 고려해 그 유적 연대를 중국에 비해 반세기 가량 늦추어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하면서 "하지만 (중국 도자기가) 바다를 건너 백제에 오는데 넉넉잡아 한 달이면 족하므로, 중국 유적보다 백제 유적 연대를 더 늦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수촌리 유적 발굴책임자인 이훈 부장은 수촌리 유적 출토 등자 4점은 실제 말을 타는데 쓰인 마구(馬具)라는 점에서 그 이후에 보이는 장식 마구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강조했다.

▲ 2지역 우측의 밭을 발굴 중인 모습(다음 어느 블로그 사진)

발굴단 또 다른 주축인 같은 기관 강종원 문화재관리부장은 "수촌리 고분군에 묻힌 주인공들은 왕 다음 가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고, 정치적.군사적으로 상당히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토착세력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장에서는 수촌리 유적 발굴과정과 그 출토 유물 복원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오전과 오후에 각각 방영하는 한편 대회장 입구에는 그와 관련되는 각종 대형 사진 수집 장을 전시했다. 이 중에는 90% 가량 복원한 4호분 출토 금동관이 공개되기도 했다.

▲ 2지역 우측의 밭을 발굴 중인 모습(다음 어느 블로그 사진)

공주 수촌리 백제유물 다량 출토
 
고분 4기 추가 발굴… 금동신발 등 최고위층 무덤변화 확인
 
기사입력 : 2011-11-01 18:16     [ 박수영 기자 ]
 
2003년 고고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공주 수촌리 고분군에서 백제시대 고분 4기가 추가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금동신발 한 쌍과 환두대도(고리 손잡이 큰칼), 도자(손칼) 등 유물도 다량 출토됐다.
 
(재)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사적 제460호 공주 수촌리 고분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수혈 유구 및 원삼국시대 수혈 유구, 석곽묘(石槨墓) 2기, 석실분(石室墳) 1기, 토광묘(土壙墓) 1기 등 총 23기에 이르는 각종 유구를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수촌리 유적은 2003~2004년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 분묘 6기가 확인되고, 금동관 2점과 금동신발 3쌍, 중국제 자기 5점, 금동 과대(허리띠) 2점, 환두대도 3점, 등자 및 재갈 등 4~5세기경 백제 유물이 쏟아짐으로써 무령왕릉 이후 최대 백제고분 발굴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 조사된 수촌리 고분들과 유사한 유물의 출토양상을 보인 이번 발굴 조사에서도 백제시대 토기인 대호(大壺·큰 항아리), 광구호(廣口壺·넓은 잎 항아리), 단경소호(短頸小壺·짧은 목단지), 고배(高杯·굽다리접시)를 비롯해 말 재갈등의 철기류가 발견됐다.
8호분 내부에서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부식이 많이 진행된 금동신발 한 쌍과 옻칠도자(刀子·작은쇠칼)등 각종 토기류 등이 발굴돼 기존 조사된 수촌리 고분군과 성격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번에 확인된 수혈식석곽묘는 2003년 발굴된 토광목곽묘에서 횡구식석곽묘로 변화하는 중간단계 무덤형식으로 백제시대 최고위층의 분묘문화 변화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훈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수혈식석곽묘와 금동신발이 함께 확인돼 그 당시 최고위층의 무덤형식 변화와 금동신발의 변화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며 “마구류와 같은 중요유물도 출토돼 4~5세기 백제의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명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한편,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2일 오후 2시 공주 수촌리 고분 발굴조사 현장에서 '공주 수촌리 고분 발굴조사 현장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수촌리 고분군에서 확인된 백제시대 7호 수혈식 석곽묘.

공주 수촌리 고분군 위치도

 지도 하단의 시작 수촌리 고분군 2지역이고, 상단 끝 부분수촌리 고분군 1지역입니다.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의당면 태산리 101

지도 중앙 A 부분에 수촌리 고분군이 있습니다. 지도 하단 당진대전고속도로의 공주IC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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