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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볼 땐 수호신, 장난칠 땐 귀염둥이 경복궁의 석조 동물(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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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는 둥글게 말린 눈썹에 머리털을 휘날리며 매서운 표정으로 물 속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머리 뒤쪽으로 뻗친 서기와 왕방울 같은 눈, 날카로운 발톱을 보면 아무리 사악한 악귀라도 도망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경복궁에 있던 총독부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흥례문과 월랑을 복원하고 명당수인 금천도 옛 모양대로 만들었습니다. 이 금천에 영제교라는 넓은 돌다리가 있습니다. 영제교 돌난간의 앞 뒤 기둥 위에 청룡이 앉아있고 돌다리 옆 좌우 석축에 네 마리의 해치(해치·해태의 다른 말)가 물로 뛰어들 것 같은 모습으로 아래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물길을 타고 침입하려는 잡귀를 막는 역할을 한답니다.
해치는 둥글게 말린 눈썹에 머리털을 휘날리며 매서운 표정으로 물 속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머리 뒤쪽으로 뻗친 서기와 왕방울 같은 눈, 날카로운 발톱을 보면 아무리 사악한 악귀라도 도망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서쪽에 있는 해치 한 마리가 혀를 내밀고 장난질을 치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창의성이 뛰어난 석수의 재치 있는 작품입니다. 엄숙한 궁궐에 혀를 날름 내민 해치를 보초로 세울 수 있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유럽의 석조유물을 보고 와서는 우리 것을 낮춰보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펜화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보는 관점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서구식 미술교육을 받았습니다. 서양화인 데생이나 수채화는 그냥 ‘미술’이라고 열심히 배우면서 우리 것은 ‘한국화’라고 부르며 모르는 체했지요. 이렇게 우리 것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지요. 참 낯 뜨거운 사실입니다.
서구인들이 세상을 보는 방법은 우리와 정반대입니다. 저들은 인간을 세상의 주인으로 보고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았지요.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회화와 조각에서 인간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을 최고로 알았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인간이 우주 만물의 하나이며 우주의 이치를 도(道)라고 하고 그것을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연과 인간을 공존의 관계로 보았습니다.
간다라 불상은 그리스와 로마 조각기법에서 시작됩니다만 중국을 거쳐 우리 땅으로 오면서 관념적 형태의 도식화된 불상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부처님이나 팔부중상, 사천왕 등은 사실적 형태의 인간 모습이 아니라 도식화된 묘사가 표준이 됩니다. 이런 근본을 모르고 서양인의 시각으로 우리 미술을 보는 동안 우리는 서구 예술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재직 시절 외국의 박물관에서 세계 각국의 큐레이터들과 함께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큐레이터가 ‘각 국가별로 대표 조각상을 내놓고 최고 작품을 가려보자’고 했답니다. 투표 결과 세계 최고로 뽑힌 것이 바로 석굴암 본존불이었습니다.
펜화가도 석굴암 본존불을 처음 보는 순간 ‘숨막히는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서구의 사실적 인체조각의 아름다움이 형이하학적이라면 석굴암 본존불은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이지요. 인간의 영혼에 와닿는 아름다움입니다.
궁궐을 보면 지붕의 용마루 끝에 흙으로 구워 만든 동물이 있습니다. 새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태는 취두라 하고, 새 꼬리 모양은 치미, 망새라고 부릅니다. 취두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내림마루 끝에는 용두가 있고, 내림마루 아래 추녀마루에는 잡상이 있습니다.
잡상 맨앞에 대당사부(大唐師傅)인 삼장법사, 그 다음이 손행자(孫行者)라는 손오공, 저팔계(猪八戒), 사화상(沙和尙), 마화상(麻和尙), 삼살보살(三煞菩薩), 이구룡(二口龍), 천산갑(穿山甲), 이귀박(二鬼朴), 나토두(羅土頭)로서 장식 효과와 잡귀들이 건물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건물의 품격에 따라 잡상의 수를 달리했습니다. 보통 다섯 개이나 근정전에는 일곱 개, 남대문에 아홉 개, 경회루에는 열한 개입니다. 그만큼 경회루의 격이 높았습니다. 경회루에는 동쪽에 세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임금이 다니는 가운데 다리 난간의 앞기둥에 법수는 이름을 모르고, 북 측 다리 난간석에는 불가사리를, 남 측에는 용을 법수로 조각해 놓았습니다.
그 밖의 모든 난간석에도 해태를 비롯한 여러 동물 조각이 있는데 전문가도 이름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궁궐 건축이 끊기면서 기술과 함께 이름도 잊혀진 것이지요.
경회루와 교태전 사이에 있는 함원전 뒤 화계언덕에 이름 없는 돌확이 있습니다. 수조에는 네 마리의 용을 뛰어난 솜씨로 조각하였습니다. 돌확을 받치고 있는 거북이는 말려 올라간 꼬리와 금방이라도 나아갈 것같이 웅크린 다리에 생동감이 넘칩니다. 무언가 물어 보려는 듯 머리를 갸웃하니 들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습니다. 많은 돌거북을 보았지만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거북은 처음입니다. 경복궁에 갈 때마다 찾아보아서 이제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대비마마가 살던 자경전 마당에 노주석같이 생긴 석대에 해태로 보이는 돌짐승이 앉아 있습니다. 임금이 있는 강녕전이나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에도 없는 것이 왜 자경전에만 있는지 전문가도 모른답니다. 혹시 대왕대비에게 고자질을 하여 임금을 괴롭히지 말라고 배치한 것은 아닐까요. 민속박물관 입구와 경복궁 관리사무소 앞에 돌사자가 한 쌍씩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하던 사자인지 아는 분이 없답니다.
그림ㆍ글ㆍ사진=김영택 펜화가 (hongin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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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매거진] 김영택님의 글을 퍼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