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성종의 아버지) :
의경세자(懿敬世子, 1438∼1457, 후에 德宗으로 추존)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成宗)의 아버지로, 자는 원명(原明)이고, 초명은 숭(崇), 이름은 장(暲)이다. 1445년(세종 27년) 도원군(桃源君)에 봉해졌으며, 1455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세자에 책봉되었다. 그리고 이 해에 좌의정 한확(韓確)의 딸 소혜왕후(昭惠王后)를 비(妃)로 맞아, 월산대군(月山大君)과 자을산군(者乙山君, 후의 성종)을 낳았다.
어려서부터 예절이 바르고 학문을 좋아했으며, 해서에 능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잔병이 잦았으며, 그 때문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그의 둘째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1471년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경릉(서오릉내에 위치)(敬陵)(관련유적참조)이다
-원종(인조의 아버지)
인조의 아버지는 원종으로 추존된 정원군이다. 선조의 다섯 번째 아들인 그는 선조와 인빈 김씨와의 사이에서 1580년(선조 13) 태어났으며, 1587년(선조 20) 정원군에 책봉되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종한 공로로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인조의 동생이자 자신의 셋째 아들인 능창군이 광해군대에 의해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뒤, 병을 얻은 그는 결국 1619년(광해군 11)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리고 인조반정 뒤에 대원군으로 추존되었는데, 1632년(인조 10)에는 이조판서 이귀의 주청에 따라 다시 왕으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공량(恭良)이다.
-진종(정조의 의붓아버지:효장세자)
영조의 맏아들. 자는 성경, 이름은 행이며, 효장은 시호이다. 정빈 이씨의 소생이고, 사도세자의 형이며, 비는 좌의정 조문명의 딸인 효순왕후 조씨이다. 1719년(숙종 45)에 태어난 그는 1724년에 영조가 즉위하면서 경의군으로 봉하였고, 그 이듬해에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1728년(영조 4)에 10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이복동생인 사도세자가 왕세자에 올랐으나, 사도세자도 즉위하지 못하고 그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효장세자를 계승하게 되었다. 효장세자는 이 때문에 다시 진종(眞宗)으로 추존되었다. 능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영릉(永陵)이다.
-장조(정조의 친아버지:사도세자)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정조의 생부(生父). 자는 윤관. 호는 의재, 휘는 선이다. 어머니는 영빈 이씨이며, 부인은 영의정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 홍씨이다. 이복형인 효장세자가 일찍 죽고 영조의 나이가 40세가 넘어서 출생한 까닭에 2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그는 3세에 부왕과 대신들 앞에서 『효경』을 외우고, 7세에 『동몽선습』을 익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글씨를 좋아하여 수시로 문자를 쓰고 시를 지어서 대신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익종(헌종의 아버지)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영, 자는 덕인, 호는 경헌이다. 네 살 되던 해인 1812년 (순조 12)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돈영부사 조만영의 딸을 세자비로 맞아들였다. 1827년 부왕인 순조의 명으로 19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하였는데, 그 임무를 비교적 잘 수행하였으나 대리청정을 행한지 4년만에 22세의 나이로 죽었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동안에 그의 외척인 풍양 조씨 일파가 대거 등용되어 안동 김씨와 정권쟁탈전을 벌여 정국과 민생이 혼란해졌다. 아들인 헌종이 즉위한 뒤에 익종에 추존되었고 1899년 고종에 의해 문조익황제(文組翼皇帝)로 추존되었다. 능은 수릉(綏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이들 왕들은 아들이 왕이 되면서 왕으로 추존된 왕 들입니다.
조(祖).종(宗)는 묘호(廟號)라 하는데 왕을 지칭할 때에는 흔히 이름 대신 묘호(廟號)를 씁니다.
신료들이 왕의 일생을 평가하여 공이 많다고 여기면 조(祖)를 붙이고(태조·세조·선조·인조·영조·정조·순조)
덕이 많다고 여기면 종(宗)을 붙여 두 글자로 지은 것입니다.
재위 중에 폐위되어 종묘에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묘호 없는 왕들을 군(君)(연산군과 광해군) 칭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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