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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태종 가계도
태조 - 신의왕후 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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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대 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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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남 : 방원,정안대군(1367-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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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 1400.11-1418.8(17년 10개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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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 12명 / 자녀 : 12남 17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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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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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대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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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녕대군(제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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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세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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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녕대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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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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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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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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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공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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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녕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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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녕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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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녕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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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옹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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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옹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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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옹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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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녕옹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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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경옹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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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근옹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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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응동에 규모 300평 정도의 무덤으로 화강암으로 된 호석을 두르고 있다. 충주에서 유일한 왕자의 무덤으로 비의 전면에는 윗면에 태종대왕자(太宗大王子)라 하였고 해서로 경녕군삼한공익제간추봉령종정경○지묘(敬寧君三韓公謚齊簡追封領宗正卿示非之墓)라 쓰고, 뒷면에는 (무오구월 일 십칠대손 건영근중수영규동역)戊午九月 日 十七代孫 健永謹重竪容珪董役이라 새겼다(1918). 상석 일체와 주전자를 놓을 수 있는 돌이 별도로 있고, 상석이 가운데 오도록 사방에 차일석 4매가 있다. 망주석 1조, 문관석 1조, 석양(石羊) 1조, 무관석(武官石) 1조. 상석 정면에 장명등이 있고 장명등 우측에 비가 있다. 봉분과 상석 사이에 天順 2년(1458년)에 세운 묘표서기 있는데 마멸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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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녕군의 휘는 비(裶)이고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1395년(태조 4) 12월 13일 개성의 정안군(후의 태종)의 사저에서 효빈 김씨의 소생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관후하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양녕·효령대군과 같이 수학하고 세종대왕의 사부가 되었다. 다섯 임금을 섬기면서 충성을 다하여 국정의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필히 자문에 응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정윤이 되고 그 해 10월에 원윤으로 승차하여 종부시 제조가 되었으며, 1417년(태종 17) 9월에 정헌대부 경녕군으로 봉작되었다. 1419년(세종 1) 8월 중국 명나라와의 마찰이 있자 상왕 태종대왕의 정사로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어 국교를 정상화시키는 동시에 파격적인 후대를 받았다.
특히 황제의 친필로 된 어제서(御製序)를 비롯한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 해 11월 18일 환국하였는데 상왕 태종대왕이 크게 기뻐하여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지금의 무악재까지 나와 환영하고 연회를 베푼 일은 매우 유명하다. 이때 공의 나이 24세였다.
공은 그 후에도 세종대왕을 수시로 보필하고 자문에 응하는 등 국방의 대비책과 불교문화의 정화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명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는 조정을 대표하여 국교를 돈독히 하였다. 이런 공로로 1425년(세종 7) 11월 숭록대부로 승차하고 1430년(세종 12) 정월에는 대광보국(大匡輔國)으로 승계되었다. 세종대왕은 승하할 때 “후일 경녕군 묘소는 왕릉에 못지 않게 예우를 갖추어 드리라.”고 했을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그 후 문종대왕·단종대왕 때에는 종부시 도제조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1458년(세조 4) 배위인 청풍김씨의 묘소가 있는 충주 숭선 땅으로 낙향하여 그 해 9월 9일 6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3일간 철조(撤朝)하고 `제간(齊簡)'으로 시호를 내리고 충북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언곡 계좌에 예장하였다. 1727년(영조 3) 9대손 도정 한겸(漢謙)으로 하여금 별립종손(別立宗孫)으로 봉사할 것을 명하여 오늘에 이른다. 1872년(고종 9) 영종정경으로 추봉하고 승지 이승우를 묘소에 보내어 제악으로 치제(致祭)하였다.
어머니 효빈 김씨의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 교문3동 한다리 아차산 남록 자좌이다. 배위인 부부인 청풍김씨는 참의 김관(金灌)의 딸로 1416년(태종 16)에 혼인하여 군부인에 올라 1450년(세종 32) 4월에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잔작동 축좌이다. 1872년(고종 9) 청원부부인으로 추봉되었으며, 1994년 충북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되었다. 군부인 개성부 마씨의 묘소는 부군 묘소 백호등에 설단하였는데 이후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삼화리 모양군 묘역으로 옮겼으며, 군부인 전주최씨의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신남리 함봉산 손좌이다.
공은 슬하에 10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4남 · 5남 · 6남은 후사가 없다. 장녀는 참봉 정석내(鄭石쨴)에게, 차녀는 현감 송계흥(宋繼興)에게 출가했다. 조선시대 경녕군의 후예로서 문과 급제자는 27인이고, 무과 급제자는 4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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