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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교본 공부

[스크랩] 교본 다시 읽기-‘하느님의 어머니’ 호칭에 관한 묵상

작성자세레나 .|작성시간26.06.06|조회수3 목록 댓글 0

교본 다시 읽기-‘하느님의 어머니’ 호칭에 관한 묵상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교수, 전 서울 무염시태 Se. 영적 지도자

‘하느님의 어머니’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가리키는 가장 대표적인 호칭이다. 그래서 레지오 교본에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많이(39, 78, 88, 201, 223, 224, 319, 384, 420쪽 등) 나온다. 우리는 이 호칭의 의미를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밖에서 그분을 기다렸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반문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그리고 당신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복음서의 이 대목(마태 12,46-50; 마르 3,31-35; 루카 8,19-21)을 근거로 해서, 개신교에서는 가톨릭교회의 마리아 신심과 공경을 과도한 것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마리아의 모성을 간과하거나 경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모 마리아와의 혈연관계 자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혈연적 차원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는 내적이고 질적인 차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새로운 동반 관계가 선포된다. 이렇듯 ‘하느님 나라’ 안에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의 새로운 가족관계는 이제 교회 공동체로서 드러나게 된다. 이는 세상의 기존 질서와는 대조되는 새로운 복음적 가치를 증언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적 혈통 자체를 부인하시지는 않지만, 거기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혈통주의를 배격하신다. 그러한 태도는 ‘유유상종’의 배타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거부하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루카 6,32-33)


예수님께서 진정 강조하시는 것은 혈연관계를 넘어서 하느님 나라를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가족관계이다. 우리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는 예수님의 질문과 관련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마리아만큼 하느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충실하게 응답한 사람이 있겠는가? 마리아의 방문을 맞이해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외치는 소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해준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맞아,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응답하였다. 또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 공생활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선포, 그리고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쳐 성령 강림을 통한 교회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마리아는 철저하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갔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반문은 마리아의 모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이를 더 높고 새로운 차원에서 통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리아는 혈연관계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전망 속에서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어머니시라는 점이 드러나게 된다. 마리아는 온전한 순종과 의탁으로 인류 구원의 거룩하고 위대한 역사에 참여하여, 마침내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교회의 제3차 보편공의회인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장엄하게 선포하였다.
‘하느님의 어머니’ 호칭에서 드러나는 마리아의 모성은 혈연적인 차원을 넘어 전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드러낸다. 이 일치는 성령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초자연적 은총인 동시에, 마리아의 인격적 응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만남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리아는 ‘교회의 예형 또는 원형’이라고 일컬어지게 된다. 마리아가 구원 신비 안에서 그리스도와 이루는 완전한 일치는 필연적으로 교회론적 차원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암브로시오(339?-397)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마리아는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과 모범’, 즉 ‘교회의 예형 또는 원형’이라고 제시한다.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로서 또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과 모범으로서 존경을 받으시며, 가톨릭교회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자녀다운 효성으로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받든다.”(「교회 헌장」, 53항)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인 동시에 또한 ‘교회의 예형’이라는 마리아론의 핵심적인 기본 원리가 여기에서 제시된다. 예수님을 낳았다는 혈연관계 사실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실행하였던 완전한 제자임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마리아는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간택되기에 합당한 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인류 역사 안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도 그에 합당한 행실을 보이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저 자리가 전부인 양 내용 없는 삶을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 인간으로서 가장 완전한 모범을 보게 된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르면서도 지극히 겸허한 순종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행한 마리아의 모습은, 맹목적으로 혈통과 인맥만을 중요시하고 무조건 높은 자리에만 오르고자 하는 세속적인 욕심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처럼 통합적이고 균형 있는 신학적 전망에 기초할 때, 우리는 마리아를 신격화하고자 하는 과장된 신심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마리아가 우리에게 진정 위로가 되는 것은, 한 인간이었던 그분이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제자 됨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함께 높이 올림을 받았다는 점이다. 마리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와 구원의 성취는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마리아의 뒤를 따르는 온 교회와 모든 인류에게도 해당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에 직면하여,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켜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어머니가 되었기에, 이제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우리의 자애로우신 어머니 마리아는 오늘도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리스도를 따라 그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와 모범을 선사하신다.

[월간 성모님의 군단, 2026년 6월호,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 ( 가톨릭대학교 교수,  전 서울 Se. 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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