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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현조(顯祖)들이 여러 대를 이어 유훈과 덕업을 계승한 정신은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진충보국(盡忠報國)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을 이은 선생의 부친 조정규 역시 문중에서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조성룡(趙性龍)의 외아들로 학덕을 겸비한 신망이 높은 유생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그 슬하에 장남 용하(鏞夏, 1977 독립장), 차남 소앙(1989 대한민국장), 3남 용주(鏞周, 1991 애국장), 4남 용한(鏞漢, 1990 애국장), 딸 용제(鏞濟, 1990 애족장), 5남 용진(鏞晋), 6남 시원(1963 독립장) 등 6남 1녀 중 6명을 비롯하여 손자 시제(時濟, 1990 애국장, 소앙의 2남), 인제(仁濟, 1963 독립장, 소앙의 3남), 손녀 순옥(順玉, 1990 애국장, 선생의 장녀, 안춘생 전 독립기념관장의 부인), 자부 이순승(李順承, 1990 애족장, 선생의 부인) 등 4명을 합하여 일가족 10명을 독립운동가로 육성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하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집안’이다.
이 같이 자녀 6명을 독립운동가로 육성한 조정규 자신도 1932년에 부인과 함께 5남 용진만을 남기고 상해로 망명하여 당시 그곳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소앙⋅시원⋅용제 등과 같이 망명생활 내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중요거점을 빠짐없이 전전하며 심혈을 기울여 이들을 뒷바라지 하였다. 선생은 이 같은 집안에서 성장하면서 필연코 항일민족의식이 싹트게 된 것은 물론, 망명 전부터 형들의 독립운동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맏형 용하는 1901년 대한제국 주독⋅주프랑스 공사관 참사관(參事官)을 역임하다가 1903년 귀국, 경기도 죽산⋅이천⋅마전의 3개 군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북경(北京)으로 망명, 경학사(耕學社)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13년 도미하여 안창호(安昌浩) 등과 같이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이후 《신한민보(新韓民報)》를 창간하고 독립을 위한 외교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둘째 형 소앙은 일본 유학 때부터 일제침탈에 저항하여 국권회복의지를 표출하고, 귀국 후 1913년 북경을 거쳐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7년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을 공표하고, 1919년 2월 1일 최초의 독립선언서인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기초하여 독립지사 39명의 서명 아래 공표하였다. 이어 4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인 임시헌장(臨時憲章)을 기초하고, 국무원비서장(國務院秘書長)에 취임하였으며, 8월에는 스위스 제네바 국제사회당대회(國際社會黨大會)에 참석하여 한국독립결의안(韓國獨立決議案)을 통과시켰다. 1920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한 러시아혁명대회에 참석하여 러시아 각처를 시찰하고 귀국길에 만주리선언(滿洲里宣言)을 발표하고 이후 임시의정원의원, 임시정부 국무위원, 외무총장, 한국독립당의 핵심간부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셋째 형 용주는 1913년 중국에 망명하여 친형 소앙과 협력하여 1916년 상해에서 아세아민족반일대동당(亞細亞民族反日大同黨)을 창립하고, 1917년 소앙이 기초한 대동단결선언을 같이 공표하였으며,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 작성에 있어 강경론을 펴기도 하였다. 그 해 국내에서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을 조직하고, 국내외 독립외교에 힘을 썼으며 그 후 대조선애국부인회(大朝鮮愛國婦人會) 등을 조직하여 상해와 국내를 왕래하며 활동하였다. 이러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전개하던 형들의 독립운동의 실상은 선생의 항일민족의식 형성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선생으로 하여금 항일민족독립운동에 투신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동기가 된 것이다.
임시정부의 <관보(官報)>와《독립신문》사건에 연루되어 16살 소년 때 상해 망명

이러한 시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관보(官報)>와 임시정부에서 발행하는 《독립신문》전람(轉覽) 사건에 연루된다. 이 사건으로 왜경의 감시를 받게 되자 선생은 1920년 2월에 친형 소앙이 활동하고 있는 독립운동의 중심지인 상해로 망명하였으니 이때 나이가 16세의 소년이었다. 이후 선생은 항일민족독립운동 전선(戰線)에서 소앙과 함께 헌신(獻身)하게 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