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7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다윗의 애가
삼하1:17~27
서론
우리 성경에는 사무엘서가 사무엘상과 하로 나누어져 있지만, 사무엘상,하는 원래는 히브리어로 된 한 권의 책입니다.
인물별로 사무엘 상은 사무엘, 사울, 다윗, 사무엘 하는 다윗이란 인물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1, 다윗의 애가 – 활의 노래
“다윗”은 “사울 왕”과 “사울왕의 세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슬픈 노래, 애가”를 불렀습니다.
삼하1:17~18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다윗”은 슬픈 노래, 애가를 지으면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조상(弔喪)”했습니다.
“조상했다”는 말은 “슬퍼했다”는 뜻으로 “야살의 책”에 기록하여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게 했습니다.
“야살의 책”은 “의로운 자의 책”이란 뜻으로, 역사상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수10: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 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야살의 책”은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권의 속성상 새롭게 권력을 잡은 자”는 “전임자와 전임정권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속성입다.
그러나 “다윗”은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있었지만 “전임자 사울”을 깎아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원한에도 “다윗”은 “사울 왕”을 높여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합니다.
“사울”을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전에 “사울과 약속”하였습니다.
삼상24:20~22(엔게디 광야 동굴에서 사울을 살려 준 후에)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되고 이스라엘 은 네가 다스릴 나라임을 알고 있다. 네가 왕이 되면 내 가족을 죽이지 않고 내 후손 들의 혈통을 끊어 버리지 않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에게 맹세하여라. 그래서 다 윗은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다윗”은 “사울과의 약속”을 지켰고, 또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구원해 준 은인”이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죽음”을 정말로 애통해하며 “애가의 제목”을 <활의 노래>로 지었습니다.
“활”은 당시 “요나단”을 상징하는 것으로 “요나단”이 “활을 잘 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윗” 요나단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활의 노래>로 지었습니다.
2, 슬픈노래 애가의 내용
“다윗”의 슬픈 노래 속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첫째, 다윗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삼하1:19~21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고 “아스글론”에도 고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의 5 도시”는 “가사, 에글론, 아스돗, <가드, 아스글론>”입니다.
“가드”에도 고하지 말고 “아스글론”에도 고하지 말라 그 이유를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승전가)를 부를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목을 베어 다곤 신당”에 매달았고, “몸”은 “벧산 성벽”에 못 박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으로 인하여 “원수들이 기뻐하는 것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길보아산”이 황무지가 되어 치욕적 흔적이 사라지게 되길 바라는 “다윗의 심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애가”는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염려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배”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임마누엘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칭송합니다(22-24절).
삼하1: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새번역 “원수들을 치고 적들을 무찌를 때에, 요나단의 활이 빗나간 일이 없고, 사울의 칼이 허공을 친 적이 없다.”
먼저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용맹성”을 칭찬하였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승리”를 “피와 기름”이란 말로 표현했는데, 이는 “희생 제물”을 대표하는 것들로
이스라엘의 전쟁승리는 “여호와께 드리는 희생 제사와 같았음”을 의미합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이방 민족들과 싸워 이겨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증거함으로써 그것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요나단의 화살이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화살로 겨냥한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는 의미합니다.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은 “사울”이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항상 승리하여 전리품을 풍부하게 가지고 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삼하1: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 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아름다운 부자 관계”를 칭송하며 부자 관계가 얼마나 각별한 관계인지 “죽음을 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관계는 “다윗”이 미화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건 다윗과의 언약으로 아버지 사울에게 창에 맞아 죽임을 당할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자신에게 모질게 행동했던 아버지 사울과 생명을 건 전투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요나단의 숭고함에 무개를 두며 “요나단과 사울의 관계”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딸들에게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울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삼하1: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이스라엘의 딸들이 “사울과 요나단”을 통해 그 동안 혜택을 보며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붉은 옷”은 일반적으로 왕이나 부유한 자들이 입는 옷으로 “사울”이 백성들에게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전리품을 풍성히 안겨 주어 그들이 부유하게 되었음”을 표현한 말 입니다.
“다윗”은 값비싼 전리품을 나타내는 표현인 “금 노리개”를 언급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러한 칭송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이웃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는 눈이 열려 이웃을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타인의 단점”을 “비난하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가 부족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진 사람”입니다.
주님은 “말세”가 될수록 교회에서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마24:12).
히브리서는 “말세”가 다가올수록 우리 성도들이 힘써야 할 것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히10:23-25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단점”은 서로 가려주고 “장점”을 크게 칭찬하여 서로 격려하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임마누엘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다윗은 특별히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입니다.
삼히1:25-27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 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다윗”은 자신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요나단의 사랑”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에 기반을 둔 사랑”이었습니다.
“요나단”의 입장에서 “다윗”은 자신이 물려받을 왕권을 가로챌 “대상”이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하고, 사심 없이 “다윗”을 차기 왕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적극적으로 지키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고대세계”에서는 “왕과 왕위 계승자인 왕자가 함께 중대한 전투에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왕위 계승자”는 “궁”에 머물러 있다가 “선왕”이 사망하면 그 왕조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차기 왕으로 세운 것을 인정”하였기에 거리낌 없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다가 “길보아 산 전투에서 결국 전사”하였습니다.
이러한 “요나단의 사랑”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윗”은 “내 형 요나단이여”라고 부르며, “요나단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과 성도들과의 사랑도 주의 종과의 성도들과의 사랑도 “요나단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가지시는 임마누엘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원수 “사울”의 죽음 앞에서 “진심으로 애도”하며, 그들의 공로를 높여드리는 “다윗”의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보았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앙과 인격”도 “다윗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의 신앙과 인격”을 닮아 원수의 죽음 앞에서 진심으로 진정한 애도 할수 있고 “요나단의 사랑”을 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는 임마누엘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