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4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9:9~13
서론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 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은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고,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죄인을 회개시켜 구원 얻게하려고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를 부르실 때 마태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과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1, 세관에 있는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마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 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 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눅5:27~28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 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의 말씀이 (막 2:13~17)과 (눅 5:27~32)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마태”라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레위”라고 했습니다.
“레위”는 “야곱”의 셋째 아들로 레아가 나았고 제사장 가문인 “레위 지파”의 이름입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께서 “새로 지어주신 이름”이라는 해석합니다.
“아브람이 변하여 아브라함”,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처럼.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레위”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은 분봉 왕 헤롯 안디바의 영지와 그의 형제 빌립의 영지로 요단강 동쪽과 서쪽을 잇는 국경선 근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과 물자가 국경을 넘을 때 내는 통관세와 관세를 내는 “세관”이 있었습니다.
“마태”는 “세관”에서 일을 하는 “세리”였습니다.
당시의 “세리”는 로마와 유다의 헤롯왕을 위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모든 주민들은 나라에 세금을 내야 했고, 가버나움을 통행하는 자들도 통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유대인들에게는 “죄인”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눅3:12-13을 보시면 세리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할 때 세례 요한이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 제국의 하수인으로 부를 축척했습니다.
세리들은 로마 당국이 “정해준 합법적인 세금 외에 추가로 세금을 징수해서 착취”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세리들”은 같은 유대인들에게는 일제강점기에 “친일파”처럼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눅5:28을 보면 “세리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마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때, 세금 장부를 정리할 때 쓰던 “펜 한 자루”를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 펜으로 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던 펜을 “마태복음”을 기록하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2,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마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눅 5:29을 보시면 “레위(마태)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 큰 잔치를 했다”고 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 “큰 잔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태”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초대했습니다.
“마태”는 그들도 자신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선물”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마태의 마음을 아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런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철저히 율법과 장로들의 전통을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3,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말을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 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구약성경 (호 6:6)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인애”라는 <헤세드> 라는 단어로, 우리말로 “친절, 인자, 자비, 자애, 사랑”등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헤세드”는 “언약적인 관점에서 끝까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십니다.
형식적인 제사, 번제보다 “인애”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마1:21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하나님은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시면서,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세리 마태”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어떤 죄인도 예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불 못 지옥가게 됩니다.
결론
눅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고 했습니다.
눅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 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 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어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마태”처럼 “세리”처럼 “죄”를 고백하고 죄용서 받고 천국 잔치에 참여는 임마누엘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