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6일 연중 12주간 월요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들보를 뽑아낼 수 있나요?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지으려면 많은 것을 준비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나무일 것입니다. 사실 재목이 없어서 집을 짓지 못하고 집짓기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많은 재목이 필요합니다. 재목은 집을 설계하고 설계에 맞도록 서서히 준비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설계가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대목수는 집을 어떻게 지어달라는 주문에 의해서 나무를 선정하고, 나무를 다듬는 일에서부터 모든 것을 준비시킵니다. 나무는 산에서 베어서 그냥 금방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잘 말려 두어야 합니다. 또한 그 크기와 길이와 단단한 강도(强度)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재목에는 기둥에 쓸 것과 크고 작은 들보에서부터 대들보로 쓸 것도 있습니다. 재목이 굽은 것이라고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굽은 것이 대들보나 들보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은 나무의 인장 효과가 높아서 지지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의 생김생김을 잘 활용한다면 버릴 재목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나무의 결이나 옹이도 각각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쓸모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쓰는 대들보가 있어야 합니다. 서까래와 도리가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잇는 중간 보(椺 : 들보 보)가 있어야 합니다. 기둥에 사용할 재목은 구하기가 이만저만 어렵지 않습니다. 집을 이루는 뼈대이기도 하지만 집의 크기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둥이 튼튼해야 그 집이 오래 버틸 수 있고, 지붕을 잘 견뎌낼 수 있으며, 많은 보들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들보(椺, Beam)는 주로 수직으로 서 있는 기둥에 연결되어 하중을 지탱하고 있는 수평구조부재입니다. 그래서 들보는 집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구조물입니다. 대들보(Girder)는 들보 중에서 가장 큰 들보로 대들보 감을 구하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들보는 우선 지붕 전체를 떠받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크기도 커야하고, 지붕의 하중을 모두 감당할 만큼 단단하고 집의 모양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훌륭한 인재를 동량지재(棟梁之材)라고 하였습니다. 동량(棟梁)이란 말은 지붕의 용마루와 그 용마루를 이루는 대들보를 말하는 것이며, 그 대들보와 같은 인재를 동량지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중임을 맡은 만한 큰 인재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운 세상입니다. 장관들의 청문회에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대들보와 도리에 서까래가 얹어집니다. 서까래 위로 지붕이 생기고 집이 완성됩니다. 들보는 기둥과 연결되어지지만 대들보는 들보 위에 얹어집니다. 그래서 들보는 수직으로 세워지는 기둥들을 수평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둥이 서 있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기둥만 있다면 전혀 세상 일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들보가 있어야 하고, 눈에 띄는 대들보도 있어야 합니다. 서까래도 걸려야 하고, 기와지붕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에서는 다른 말씀으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뒤집어 놓습니다.
눈에 들보가 박혀 있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들보가 크기 때문에 이웃의 티를 볼 수 없겠지만 아무리 작은 들보라도 그 들보를 뽑아 버리라고 하시는 것은 너무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들보는 크고 티는 아주 작기 때문에 못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우선 접어놓고 생각해 봅니다. 또한 허물이나 잘못, 죄에 대해서 비유되는 들보에 대한 생각도 잠시 접어둡니다.
들보는 수평으로 이용되는 재목이고, 옆으로 연결되어야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도 옆으로 뚫려 있기 때문에 들보가 가로 막고 있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횡으로 가로막혀 있는 안대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눈을 가로막고 있을 것입니다. 기둥이 눈을 가리고 있다면 그래도 여백이 조금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들보가 눈을 가리고 있다면 기둥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이 세로로 열려 있다면 아마 예수님은 기둥을 빼어버리라고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이웃을 봅니다. 수평적 차원에서 이웃을 보고 자기의 생각과 의견으로 이웃을 탐색하고, 판단하고, 해석하고, 충고합니다. 사실 이웃에게 올바른 충고나 선도(先導, 善導)적 도움은 귀중할 것입니다. 그러나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다면 이웃을 탐색하고, 판단하고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충고로 이웃을 도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들보에는 기둥이 연결되어 있고, 서까래도 걸려 있습니다. 들보에 매달린 많은 것들을 같이 없애지 않으면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이웃을 보는 눈에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오해로 눈이 가려졌다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모든 것들이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모두 없앨 수만 있다면 맑고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웃의 티가 오히려 아름다운 보석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