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성직자 계급
로마가톨릭 교회에서 교황 다음으로 가장 높은 서열을 가진 사람은 ‘추기경’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선포자들과 목사들과 교사들을 두셨다고 말한다(엡4:11). 실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추기경 그룹을 지명했음을 암시하는 그 어떤 말씀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성경과는 대조적으로 원래의 추기경들은 기독교가 탄생하기 이전 시대에 존재하던 로마의 고대 이교 종교에서 있었던 주도적인 제사장 그룹이었다. 콜럼버스 기사단이 출간한 「이것이 가톨릭 교회이다」라는 책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대에 추기경들은 로마의 주요 성직자였다. 추기경(cardinal)이란 단어는 ‘돌쩌귀’를 의미하는 라틴어 ‘cardo’(hinge)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로써 우리는 이들이 성직자 계급의 중추적 요원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고대 로마의 사제들이 ‘돌쩌귀’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단 말인가? 분명히 그들은 문과 돌쩌귀의 신이던 야누스(Janus)의 사제들이었다. 야누스는 ‘시작의 신’이며 달력의 첫 달이 영어로 ‘January’인 것은 바로 이 단어가 야누스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문들의 신인 야누스는 그들을 보호하며 지키는 자였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문을 지키는 자를 가리켜 영어로 ‘janitor’라 하는데 이것 역시 야누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편 야누스는 ‘여는 자와 닫는 자’로도 알려졌다. 소아시아 같은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야누스에게 경배했기 때문에 우리는 필라델피아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배경을 통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며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니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느니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계3:7‐8).
이교도들의 신인 야누스는 위조품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참 하나님이시다. 히슬롭은 추기경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황을 머리로 하는 추기경 그룹은 이교도들의 대승원장(Pontifex Maximus) 혹은 최고 승원장(Sovereign Pontiff)을 머리로 두는 승원장들(Pontiffs)의 집단과 비슷하며 이 같은 제도는 바빌론에 있었던 원래의 승원장 공회라는 모델에 그 뼈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교도 신앙과 기독교가 서로 혼합되었을 때 이교 국가 로마에서 우상을 섬기던 돌쩌귀 사제들인 추기경들은 결국 교황의 로마가톨릭주의에서 자기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로마가톨릭 교회의 추기경들이 입고 있는 의복은 빨간색이다. 홍관조(cardinal bird), 카디날 꽃(cardinal flower: 북미에서 나는 빨간색 꽃) 그리고 카디날 사제들은 다 빨간색과 관련이 있다. 성경은 빨간색 의복을 입고 있는 바빌론의 통치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또 그녀가 자기의 행음을 많게 한 것을 보았나니 그녀가 벽에 그린 사람들 곧 주홍색으로 그린 갈대아 사람들의 형상들을 볼 때에 그리하였느니라. 그들은 띠로 허리를 동이고 물들인 수건으로 머리를 엄청나게 쌌으며 그들은 다 자기들이 출생한 땅 갈대아의 바빌론 사람들의 방식을 따르며 바라볼 만한 통치자들이었느니라(겔23:14‐15).
한편 바빌론 종교를 상징하는 음녀는 주홍색의 옷을 입고 있다(계 17:4). 고대로부터 붉은 색이나 주홍색은 죄와 관련이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간음은 종종 주홍빛 죄로 언급되며 붉은 색은 ‘홍등가’(red‐light district)라는 표현이 있듯이 매춘과도 관련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살펴볼 때 로마가톨릭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붉은 색의 의복을 입는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결코 붉은 색 옷을 입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추기경들이 이런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째 좀 이상한 관행처럼 보인다. 우리는 과연 사도들도 그런 의복을 입었다고 추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그런 옷을 입지 않았다면 추기경들의 붉은 색 의복은 고대 로마의 이교도 사제들이 입은 옷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교도들의 시대에 돌쩌귀 사제들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Flamens)으로 알려져 있다. ‘플레어’(flare)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거룩한 불을 켜거나 부는 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바커스 신의 신비한 부채로 부채질하면서 거룩한 불꽃을 지키는 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지키는 불의 색깔처럼 그들의 의복도 붉은 색이었다. 그들은 이교도들의 시대에 최고 승정원을 섬기는 종들이었고 사실 오늘날의 추기경들 역시 최고 승정원이란 칭호를 주장하는 교황의 종들이다. 이교도들의 시대에 제사를 드렸던 사제들이 세 그룹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었던 것처럼 추기경들도 그렇게 나누어진다. 추기경 그룹은 추기경‐주교들(Cardinal‐bishops), 추기경‐사제들(Cardinal‐priests) 그리고 추기경 부제들(Cardinal‐deacons)로 구분된다.
로마가톨릭 교회에서 교황과 추기경 다음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주교들(bishops)이다. ‘교황’ 또는 ‘추기경’이라는 칭호는 성경에 없지만 ‘주교’는 성경에 ‘감독’으로 나온다. 그러나 ‘성인’ ‐ 성경의 성도 ‐ 이란 말처럼 ‘주교’란 말도 대체적으로 잘못 이해되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주교’ 혹은 ‘감독’을 다른 목회자 그룹이나 교회들을 다스리는 권위를 가진 상당히 높은 서열의 목회자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상은 ‘대성당’(cathedral)이란 단어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이 단어는 ‘보좌’(throne)를 의미하는 ‘카쎄드라’(cathedra)에서 파생된 말이다.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대성당은 주교의 보좌가 놓여 있는 성당이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선택된 도시들의 목회자들만을 ‘주교’ 혹은 ‘감독’이라 부르지 않고 모든 목회자를 ‘감독’(bishop)이라 부른다.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각 도시에 장로들을 세우라.”고 지시하였으며(딛1:5) 그 뒤에 이 장로들을 주교(감독)라 불렀다(딛1:7). 성경에는 지역 교회의 감독이 있을 뿐이지 교단의 감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제도는 다 로마가톨릭주의에서 나온 산물이다.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둔 목적은 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같이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 어떤 사람이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거나 제멋대로 한다는 비난을 받지 아니하는 신실한 자녀를 두었으면 임명하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결코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며 쉽게 화내지 아니하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에 빠지지 아니하며(딛1:5‐7).
또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행20:17, 28)
여기서 감독자(overseers)로 번역된 단어는 다른 곳에서 감독(주교)이라 번역된 것과 동일한 단어이다. 역시 ‘먹이다’(feed)란 단어도 ‘목사’라고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사역자들은 장로, 감독(주교), 감독자 그리고 목사를 뜻하며 이 모든 표현은 정확하게 동일한 직무를 언급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성경에 나타난 감독(주교)은 특별 보좌에 앉아서 다른 목회자들을 다스리면서 권위를 행사하는 큰 도시의 목회자 ‐ 혹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노회나 연회의 감독 ‐ 가 아님이 확실하다. 각 교회마다 장로들이 있었고 이 장로들은 감독들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마르틴 루터는 잘 이해하였으며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주교들(감독들)은 성경과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제정된 직분이며 이로써 한 목회자가 다른 목회자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에 니골라당의 교리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필요하였다(계2:6). 스코필드에 따르면 ‘니골라당’이란 단어는 ‘정복하다’란 의미를 지닌 ‘니카오’(nikao)와 ‘일반 백성’이란 의미를 지닌 ‘라오스’(lao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만일 스코필드의 해석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후에 평등한 형제들(마23:8)을 ‘사제 계급’과 ‘평신도 계급’으로 나누어 일반 백성을 짓누른 ‘사제단’ 또는 ‘성직자’ 개념의 초기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사제’(priest)란 말은 ‐ 혹은 성경의 제사장 ‐ 교회 지도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신자를 말한다. 베드로는 목회자들에게 성도들 위에 군림하지 말라고 말했다.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벧전5:1‐3).
여기서 ‘상속 백성’(heritage)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성직자’를 의미하는 ‘클레에론’(kleeron)에서 파생되었다. 「매튜 헨리 주석」이 설명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상속 백성’ 또는 ‘성직자’라는 칭호가 주어졌는데 이 단어는 결코 신약성경에서 단지 종교와 관련된 목회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사용되지 않았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해서 목회자들에게 합당한 존경과 영예를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한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그리할지니라(딤전5:17).
그러나 이러한 구분으로 인해 대부분의 회중들은 목회자만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백성이 수행할 사역을 주신다. 이것은 결코 모든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설교 사역을 해야 함을 뜻하지 않는다! 사실 주님을 생각하며 심지어 냉수 한 잔 주는 것에도 그 목적이 있고 그에 따른 보상이 있다(마10:42). 따라서 우리 모두는 “주여! 제가 행할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행9:6). 신약성경에서는 교회의 모든 사역이 한 사람에게 놓여 있지 않다. 성경이 여러 곳에서 보여주듯이 교회의 초기에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라 여러 명의 장로가 목회를 했다. 다음의 성경 구절은 이를 보여 준다.
그들이 각 교회에서 그들을 위해 장로들을 임명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자기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맡기며(행14:23)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둔 목적은 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같이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딛1:5)
이와 같이 ‘교회의 장로들’(복수)이란 표현이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다(행20:17; 약5:14).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다 ‘하나님의 제사장’이고 ‘왕가의 제사장’이다.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라는 개념은 분명하게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높여서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군림하려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은 죄를 고백할 사제와 세례를 주고 성수를 뿌려 주는 사제와 마지막 의식인 노자 성사를 집례할 사제와 미사를 올려 주는 사제 등이 필요하다고 가르쳤다. 예배를 집례한다는 개념 자체가 로마가톨릭 개념인 것이다.
사람에게 아첨하는 말을 하거나 호칭을 주려 하지 않았던 엘리후와는 달리(욥32:21) 자기 자신을 높여 성도들 위에서 군림하려 한 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비성경적인 호칭을 취하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에 그들은 심지어 유일하게 하나님께만 속하는 칭호까지도 사용했다! 이러한 관행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니라. 또한 너희는 지도자라 불리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 오직 너희 중에 가장 큰 자는 너희 종이 될지니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9‐12).
그리스도가 교회를 설립하신 분이라고 주장해 온 교회가 수세기 후에 그분께서 결코 사용하지 말라고 한 바로 그런 칭호들을 사용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주교는 ‘교황’(Pope)이라 불렸는데 이 말은 단지 아버지란 단어를 조금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잘 알다시피 로마가톨릭주의의 사제들도 한결같이 ‘신부’ 즉 아버지라 불린다. 우리는 초기 시대의 로마에 들어온 ‘신비주의’의 주요한 분파 가운데 하나가 미트라교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미트라 종교에서는 거룩한 의식을 주재하는 사람들을 ‘아버지들’(fathers) 즉 ‘신부’라고 불렀다. 「가톨릭 백과사전」은 미트라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들 즉 신부들(여기에서는 종교적인 칭호로 사용됨)은 예배를 집례했으며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는 일종의 교황으로서 항상 로마에 살았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들의 아버지’(Pater patrum)라 불렸다.
만일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자기들의 사제들을 ‘아버지’라 불렀고 그리스도께서도 땅에 있는 어떤 지도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했다면 사제를 신부라 부르고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 즉 ‘성부’라 부르는 로마가톨릭 교회의 관행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이교주의에서 나온 것인가?
심지어 성경은 이교주의의 사제가 아버지라 불린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사사기를 보면 미가라는 사람이 나이 어린 레위 사람에게 다음과 말하는 대목이 있다.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거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십 세겔과 의복 한 벌과 양식을 주리라, 하므로 이에 그 레위 사람이 거기로 들어갔더라.(삿17:10).
미가는 아들이 있는 어른이었고 그 레위 사람은 청년이었다. 여기서 ‘아버지’란 칭호는 분명히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이교도들의 사제직을 규정한 말이다. 미가는 그 청년이 자기의 신들을 모신 집에서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기를 원했다. 이것은 가톨릭주의의 전형적인 모형이다. 왜냐하면 그 청년이 주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주장했지만(삿 18:6) 그 경배가 분명히 우상 숭배와 이교주의로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로마가톨릭 교회는 고위 성직자에게 ‘나의 주’를 의미하는 ‘몬시뇨’(Monsignor)라는 칭호를 주고 있다. 이것은 다소 일반적인 칭호인데 「가톨릭 백과사전」은 몇몇 고위 성직자들을 칭할 때 이 칭호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초기의 주교들을 가리켜 ‘당신의 축복’(Vostra Beautitudine)이라 하지 않고 대주교를 ‘은혜로우신 이’(Your Grace)라 하지 않으며 주교들을 ‘나의 주’(My Lord)라 하지 않고 이 모든 칭호 대신 몬시뇨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은 합당하다.
‘대주교’(archbishop)에서 ‘대’를 뜻하는 ‘arch’라는 단어에는 ‘지도자’ 혹은 ‘선생’(master)이란 뜻이 있다. 따라서 대사제(archpriest), 대주교(archbishop), 대부제(archdeacon)라는 말에는 ‘지도자’ 혹은 ‘선생’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로마가톨릭 도미니칸 파의 수장은 ‘지도자 대장’(master general)이라 불린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이러한 칭호를 배격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또한 너희는 지도자(master)라 불리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라(마23:10).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목사들이 사용하는 ‘레버런드’(Reverend)라는 칭호도 하나님에게만 적용되는 칭호이다. 이 칭호는 성경에 단 한 번 나타난다.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구속함을 보내시며 자신의 언약을 영원히 명령하셨으니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111:9).
‘지존자’ 즉 ‘레버런드’란 단어는 라틴어 ‘레베르’(revere)에서 온 것으로 15세기에 처음으로 존경의 칭호로 영국의 성직자들에게 적용되어 사용되었다. 이 칭호에서 변형된 칭호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The Reverend’, ‘The Very Reverend’, ‘The Most Reverend’, 그리고 ‘The Right Reverend’ 등.
이 칭호들은 다 ‘가장 지존하신 분’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칭호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런던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C. H. Spurgeon)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석을 썼다.
나는 단순히 하나님의 종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모든 언행이 정말로 내가 그분의 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길 원한다. 만일 하나님의 종인 내가 나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존경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내 이름 앞에 하나님의 지존하신 호칭을 도둑질해서 붙이거나 천주교 사제의 로만 칼라를 하거나 성직자처럼 보이는 가운을 입는 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하는 일로 인해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아첨의 칭호들을 반대하셨을 때 그분께서 염두에 두신 것은 제자들끼리 겸손하게 평등하게 행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자세를 취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가장된 권위를 마땅히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스스로 영광을 받는 대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