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시대의 문을 연 주역, CDMA

세계적인 IT 기업, 구글은 자사의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의 표준 기기 제조 상대로 HTC를 선택했다. 유명 브랜드에 완제품 휴대폰을 개발하여 납품하던 대만의 업체인 HTC가 다름 아닌 애플의 iOS대항마, 안드로이드의 표준 레퍼런스 휴대폰 개발업체로 선정됐다는 사실은 세계 최고 성능의 핸드폰 제조국을 자임하던 우리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세계 IT 업계가 스마트폰 위주로 급변하는 하는 사이 문을 꼭꼭 닫아걸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키워가던 국내 휴대폰 업계가 어쩌면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HTC의 제품은 인터페이스나 소프트웨어는 뛰어났지만, 하드웨어의 완성도 문제로 항상 발목을 잡혔다. 삼성과 LG도 상대적으로 늦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개발을 시작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 빠르게 적응했다. 스마트폰이 국내 도입된 지 2년 정도 지난 지금, 삼성은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여 애플과 서로 경쟁하는 경쟁 회사로 굳혀가고 있으며, 삼성이나 LG에 뒤처졌던 팬택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무선 데이터통신 환경도 순식간에 역전하여 이제는 오히려 외국에서 한국의 무선통신 환경을 부러워하는 상황이다. 예상을 뒤엎는 빠른 적응과 발전의 비결은 바로 ‘인프라’와 ‘경험’이었다.
사실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환경은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카폰이 도입되기는 했지만 엄청난 비용 탓에 부유층의 전유물 정도로만 여겨졌고 개인용 이동통신이라고 해봐야 지금 기준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문자호출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판도를 단숨에 뒤엎을 만큼 탄탄한 이동통신 인프라와 실력을 갖춘 국가로 변화했다. 이처럼 높은 수준의 이동통신 산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세계 최초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상용화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다.
CDMA를 도입하기까지
CDMA는 ‘지는 해’다. 2007년부터 시작된 3G 서비스 상용화 이후 2G 이동통신 기술인 CDMA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신규 기지국도 더는 신설하지 않아 CDMA 서비스는 2018년쯤이면 완전히 종료될 전망이다. 이처럼 과거의 기술이 된 CDMA지만 우리에게는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이동통신’의 시대를 연 결정적인 계기였다.
국가의 주요 통신망 사용되는 기술인만큼, CDMA 도입에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 1989년 최영철 당시 체신부 장관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 개발을 국책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동통신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에 따라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이하 ETRI)를 주축으로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다. ETRI에서 처음으로 주목한 기술은 당시 미국 표준이던 TDMA(시분할다중접속, Time Division Multiple Access) 방식이었다. TDMA를 참고하여 독자개발을 추진했지만, 기반기술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는 TDMA의 개발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결국, ETRI는 자체개발을 포기하고 AT&T, 모토로라와 같은 외국 기업들과 공동개발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CDMA는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등장했다.
1990년 11월 초, TDMA 방식의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기 위해 모토로라의 미국 본사에 출장 갔던 이원웅 단장(당시 ETRI 무선통신개발단)은 별 성과 없이 귀국길에 오르던 참이었다. 그 당시 이 단장과 예전에 같이 연구하던 오태원 박사(현 고려대학교 컴퓨터통신학부 교수)가 뉴욕의 나이넥스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귀국하기 전 이 단장은 오랜만에 오 박사를 한번 볼 요량으로 나이넥스사를 찾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 오 박사는 퀄컴사의 이동통신분야 기술시험을 주관하던 있던 중이라 이 단장은 필드테스트를 통과한 CDMA 기술을 접할 수 있었다. CDMA에서 가능성을 찾은 이 단장은 귀국해 경상현 소장(당시 ETRI 소장, 현 KAIST 겸직교수)에게 보고했다. 경 소장 역시 유선전화 전자교환기 사업으로 접촉하던 펙텔사를 통해 CDMA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막연한 가능성이 이 단장의 보고로 확증으로 점점 굳어지자 퀄컴과 본격적인 협력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림 1 1995년 ETRI를 방문한 퀄컴 사장단 ⓒ ETRI 사이버 박물관
당시 CDMA 방식의 기술 전망은 매우 어두웠다. 기술적으로는 훌륭했지만, 미국의 표준기술이 TDMA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CDMA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신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기술을 팔 기회를 갖지 못했던 퀄컴도 ETRI의 공동연구와 상용화 제의는 좋은 기회였다. 퀄컴의 CDMA 기술은 아직 시험확인 단계에 불과해 시스템 용량이 200명에 불과한 ‘미완의 기술’이었기 때문에 ETRI와의 공동 연구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처음부터 TDMA 독자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CDMA 도입을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 이유는 퀄컴사와의 공동연구가 이동통신 원천기술의 국산화에서 후퇴한 것처럼 보였을 뿐 아니라 특정 민간기업과의 공동개발 계약이 특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퀄컴 본사에 찾아가서 대전과 CDMA로 시험통화를 시연한 끝에 관계자들에게 CDMA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었다. 당시 퀄컴의 약점은 대량 동시 통화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퀄컴의 통신기술에 국내에서 이미 자체개발한 전자식 교환기, TDX-10을 결합한다면 경쟁력 높은 무선통신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림 2 1995년 6월 9일 세계 최초 CDMA 상용 시험 통화 시연회 ⓒ ETRI 사이버 박물관
이러한 구상은 여론과 학계의 분위기를 한번에 바꾸었다. CDMA 공동개발사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여ETRI와 퀄컴은 3단계에 걸친 개발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정권 교체와 정부 부처 간 경쟁구도가 이동통신기술 개발정책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CDMA 방식이 아직 전례가 없는 기술이었음에도 TDMA 대비 수용용량이 크고, 단말기 소모전력이 적은 한편, 주파수 이용효율과 응용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신기술임에도 국산화에 성공한 TDX-10과 결합하여 비교적 저렴하게 개발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주변 여건과 관계없이 개발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6년, 세계 최초의 상용화에 성공하여 2세대 무선통신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 되었다.
CDMA, 특징과 한계
CDMA 방식이 이전과 가장 크게 다른 특징은 신호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이동통신에서는 각 사용자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통화하는 두 사람을 유선전화처럼1:1로 연결할 수 없고 하나의 무선중계국을 여러 명이 동시에 이용해야 하다 보니 각 사용자에게 도달할 정보를 어떻게 엉뚱한 곳에 보내지 않고 정확하게 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CDMA 개발 당시 미국 표준이던 TDMA는 이를 시간 단위로 나누어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림 3 2001년 6월 출시된 TDMA 방식의 단말기 ⓒ 동아일보
TDMA에서는 각 기지국에 할당된 주파수에 따라 특정한 중계기 사용 가능 시간을 부여하여 이용자들의 정보가 서로 겹치지 않게 했다. A가 통화하는 동안에는 B가 통화하지 못하는 식이다. 다만, 시간 분할이 매우 미세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자신의 신호가 특정 시간대에만 전송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 방법은 기술개발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 데이터양에 상관없이 일정한 시간을 한 회선에 독점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효율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CDMA 방식은 디지털 전송방식으로 TDMA와 같은 기존 아날로그 방식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수용용량을 자랑했다. CDMA 방식은 신호를 전송할 때 기지국별로 특정 코드를 부여하고 이를 이용하여 원래 송신하는 신호보다 훨씬 넓은 대역폭으로 신호를 넓게 펼쳐 보낸다. 이렇게 얇고 넓게 펼쳐진 신호는 존재 유무를 검출하기 어려울 만큼 전력밀도가 낮아지는데, 수신 측에서는 펼칠 때 사용한 코드를 이용하여 이를 다시 모아서 원래의 신호로 만들어준다. 이처럼 특정 코드를 매개로 송신과 수신이 이루어지므로 같은 시간대에 동일 중계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보안성도 높아진다.
문제는 TDMA와 달리 전송되는 신호가 물리적으로 구분되지 않아 각 신호간 간섭이 일어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비교적 정보전송량이 적은 음성통신에는 별 영향이 없지만, 영상이나 인터넷 등 많은 양의 데이터 처리를 할 때에는 그 효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렇게 대용량의 데이터를 교환해야 하는 고속통신에서 CDMA의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LTE, WiBro 등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무선통신 환경이 점차 인터넷 기반으로 옮겨감에 따라 2G 무선통신 시대를 이끈 CDMA 방식은 역사 속의 한 장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선’으로부터의 해방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우리나라의 무선통신은 그 발전이 매우 느렸다. 과거 무선통신은 한정된 주파수 대역으로 통신을 할 수 있는 단말기가 많지 않았고, 보안도 취약한 탓에 군사적 목적으로만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함께 이동통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 방법을 해결한 것이 바로 CDMA 기술이었다. 우리나라의 진정한 무선통신 역사의 시작은 ‘삐삐’로 표현되던 문자호출기가 아니라 휴대폰의 대중화였던 것이다.

그림 4 1996년 국내 최초로 한국형 CDMA 개인통신 교환기 개발에 성공한 대우통신의 현장시험
ⓒ 동아일보
CDMA 휴대전화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상용화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무선정보통신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탄탄한 인프라를 갖출 수 있었다. 이동통신 시장은 관련 IT 분야를 활성화하는데 크게 이바지를 하여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세계 1, 2위를 다투는 산업분야를 만드는데 기본이 되는 역할을 했는가 하면 WiBro와 같은 우리의 독자 기술이 세계 표준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게 했다. 경제학자들은 대한민국을 IMF 관리체제의 수렁으로부터 건져낸 주역이 바로 이동통신을 중심으로 한 IT산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CDMA는 어디까지나 2~3세대 기술일 뿐, 미래의 시장은 이전보다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CDMA개발이 우리의 IT 발전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긴 했지만 4세대 이동통신 전쟁에서의 승리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CDMA의 경험을 뛰어넘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야말로 IT 강국으로 부상한 우리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다. CDMA를 탄생시킨 각고의 노력과 치열한 도전은 그래서 아직 진행형이다.
[교육팁]
CDMA이나 TDMA와 같은 통신 분야는 상업적인 용도의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분야이기 때문에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 과학 교과 과정에서 현재 다루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교육팁은 생략한다.
[교육과정]
- 고등학교 1학년 2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