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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교리의 역사(14)

작성자성모세|작성시간16.05.13|조회수49 목록 댓글 0

구원교리의 역사(14)



* 아르미니우스의 예정론

개인 예정은 없다. - 개인 예정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으며, 하나님은 회개하고 (repent), 그리스도를 믿고 (believe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remain in Christ), 그리스도에 연합된 (be united with Christ) 자는 누구든지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 (아르미니우스의 구원의 4단계)

구원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자들에게 부여된다. - 각 개인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은 잃어버릴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은총을 부여 받았다. -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대신하여 믿을 수는 없다. 믿음이라는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부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얻지만 그 은혜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하나님이 <죄의 창시자>라는 오명을 벗기기 위해 롬8:29-30을 근거로 예지예정론 (하나님은 믿을 사람과 믿지 않을 사람을 미리 아시고 그에 따라 예정하신다.)을 주장함

 

아르미니우스의 한계예지예정론<하나님께서 미래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누가 믿어 자녀가 될지를 미리 아셨고 그에 따라 미리 자녀를 정하셨다.>는 예지에 근거한 예정론으로서 구원을 위한 믿음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이 죄의 창시자임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의 예지예정론은 칼빈의 예정예지론과 다를 바가 없는 숙명론에 불과합니다. (예지예정론은 아르미니우스에게 있어서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아르미니우스의 예지예정론()은 자신의 다른 3개의 주장(,,)의 내용들과 상충하게 되어 자체적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 8:29-30에서 문장의 중심어인 <자들을>1인칭 복수이므로 엡1장처럼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공동체>를 미리 아셨고(공동체 예지), <공동체>를 세울 예정을 하신(공동체 예정) 것입니다.


칼빈의 예정예지론은 예정에 근거한 예지로서 칼빈의 은 자녀를 미리 정하였고 그들을 미리 안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책임은 칼빈의 에게 있는 것이며, 결국 칼빈의 은 예정과 유기에 근거해서 타락을 주도한 결과가 됩니다.

 

* 칼빈주의자들의 주장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1: 전 인류의 타락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영광을 드러냈다.

강정진 : 인간의 타락 그 자체는 하나님에 의해 명령된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Gorden H. Clark : 의심의 여지없이 신은 그의 섭리 가운데에서 이 최초의 인간의 타락에 개입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아담이 타락하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에 첫 번째 사람이 타락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의미에서는 죄의 원인자 (Cause of Sin)이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John Wesley (1703-1791)의 비판 - <Free Grace (자유 은총)> 에서 :

만약 <예정/선택>이 옳다면 모든 설교는 헛되다. <예정/선택>된 사람에게는 설교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설교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필연코 구원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설교의 목적은 그들과의 관련 하에서 볼 때 공허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설교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교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필연코 멸망하게 된다.

 

* 칼빈 예정론의 역사적 배경 :

제네바에서 위압적인 방법으로 확립된 칼빈의 예정론은 시작부터 성경적/이성적으로 모두 무리한 것이었으므로 논란의 불씨가 되었으며, 특히 그의 주변의 가까운 동료/학자/추종자들(Bolsec, 불링거, 파브리, 멜란히톤, 카스텔리오, 비블리안더)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았으나 제네바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들의 투옥/추방/파면/축출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확고히 세워갑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본능 가운데에 내재하는 내세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삶이 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점점 더 증폭하게 되며, 칼빈주의는 그러한 두려움을 단번에 제거하는 심리적인 안정감/편안함/안도감/성취감을 주기 때문에 한번 받아들이면 맹목주의에 빠지게 되며 결국 그것을 절대 진리로 착각하게 됩니다. 칼빈주의는 분명히 비성경적/비논리적/비윤리적/철학적 이론이며, 하나님의 공의(자신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임)에도 위배되며, 오히려 일방적인 천국으로의 선택과 일방적인 지옥으로의 유기는 하나님의 공의라고 억지 주장합니다.

칼빈의 예정론처음부터 그 출발이 성경이 아닌 Augustine (354-430)의 신플라톤주의에 근거를 둔 예정론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

 

* John Calvin - Tracts and on the Doctrine and Worship of the Church - Vol.3 / 1958 / P468-469

어거스틴은 몇 가지 전적으로 새로운 견해를 교회제도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그 중 몇 가지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절대적인 예정, 그리고 선택된 자들에게만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제한된 속죄이다.

 

* 신플라톤주의 (Neo-platonisim)

플라톤의 철학은 이데아(Idea)론에서부터 출발하며, 이는 그의 책 <국가론 (Politeia)>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신플라톤주의가 뿌리를 둔 플라톤주의에 의하면 구원은 깨달음에 있으며 (어거스틴/칼빈이 구원에서 행함을 빼버린 근본 동기가 됨), 의 전적은총으로 육체적인 감각 (가상 세계/허구의 세계-그림자/허상/-육체적/물질적)에서 벗어나 (이데아/횃불/실제 세계-진리/실제-정신적/영적)에 이르는 길을 思惟/생각을 통해 발견할 때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 육체적/물질적인 것을 버리고 정신적/영적인 것을 깨달아 이데아로 올라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칼빈 철학의 TULIP은 어거스틴이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관점으로 성경에 대입한 전적 은총과 궁극적 견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삶이 아닌 책상에서 구원을 깨닫고/책상에서 구원을 완성시키는 칼빈주의는 결국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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