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 휴거론 비판
그리스도의 이중 재림론
세대주의자 들은 그리스도의 이중재림을 주장한다.그리스도의 재림의 첫 단게를 공중재림이라고하고 이 때에 휴거(rapture)가 있다고 주장한다.이때에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 완전히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어느 지점까지 내려오신다.이때 모든 참된 신자들의 부활이 일어나게 된다.이 부활 후에 그때까지도 여전히 살아있는 신자들은 홀연히 변형되어 영화롭게 될 것이다.그 때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휴거가 일어나게 된다.즉 죽음에서 일어난 신자들과 변화된 신자들은 구름 속에 들림을 받아 강림하시는 주님을 공중에서 만나게 된다.교회라 불리는 신자들의 이 몸이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 그와 함께 7년 동안 어린양의 혼례잔치를 축하하며,그 기쁨을 나누게 된다.교회가 하늘에 남아 있게 될 이 7년 동안,땅 위에서는 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다니엘 9:27에서 예언된 환란이 시작되며 그 환란의 후반부를 소위 대환란이라고 부른다.적그리스도(바다로부터 올라온 짐승)가 이제 그의 잔인한 통치를 시작하는데,그 통치의 절정은 그가 하나님처럼 경배받기를 요구하므로 막바지에 이른다.그리고 무서운 심판들이 그 때에 땅위에 거하는 자들에게 임하게 된다.또 수많은 이방인들의 무리와 함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때에 구원받게 된다.땅의 왕들과 짐승의 군대들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게 된다.이 7년 기간의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함께 영광 중에 다시 이 땅에 오시게 될 것이다.이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땅위에 서실 것이다.그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의 적들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에 그의 보좌를 세우시며 그의 천년간의 통치를 시작하실 것이다.그러나,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러한 두 단계로 나뉜다는 입장에 대해서 어떤 확실한 성경적 근거도 없다.
1.세대주의의 환란전 携擧설의 부당성
1) 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세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강림을 지칭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첫번째 용어는 「파루시아(παρουσια)강림」란 말이다이 용어는 주의 재림을 표시하는 대표적인 낱말이다.특히 바울의 애용어로서 신약에 24회 사용되는 중 마태에 4회 공동서신에 6회 그외는 모두 바울이 사용하고 있으며 데살로니가 전-후서에 7회나 보인다「살전 2:19,3:13,4:15,5:23;살후 2;1,8,(9)」.이는 원래 왕의 임재를 표시했으나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시하는 유명한 낱말이 되었다.이 말을 바울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이 용어는 원래 일반적인 말 이었으나,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고유명사 비슷하게 되어 가는 경향이 있어서,급기야는 ‘예수의 강림’이 이 용어의 다른 것과의 관련성을 거의 막을 정도로 이 용어의 용법을 전유하기에 이르렀다.그리하여 후기에는 이것이 누구의 ‘강림’을 의미하는지를 규정하는 속격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기독교적 어법에서의 ‘파루시아’하면 그리스도의 강림이라는 한 사건만을 지칭하게 되어 더 이상의 구체화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그리고 이 말은 ‘도착’(arrival)과 ‘현존’(presence)의 두 가지 밀접히 연관된 개념을 표현한다.이 단어는 ‘도착’을 의미하지 ‘귀환’(retur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세대주의자들은 이 단어를 주님의 공중재림에 국한시킨다.
바울의 그리스도의 강림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둘째 용어는 「아포칼룹시스(αποκαλυψι )나타나심」란 용어이다.살후 1;7;고전1:7,3:13(롬 2:5,8:18)에 나타난다.이 용어는 자주 초자연적 영역으로부터 지상적영역에로 위대한 것들이 내려오는 것에 적용한 것이다(단 7:13).이 ‘아포칼룹시스’란 용어에 부가된 색조와 향취는 ‘파루시아’란 말에 의해서 전달되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파루시아’는 주로 신자들에게 관심하고,‘아포칼룹시스’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들에게 주로 관심한다(살후 1;7,8).즉,이 낱말은 ‘숨은 것이 드러남’을 뜻하여 주께서 나타나시는 사실과 더불어 심판을 통하여 인간의 숨은 일들을 밝히시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세대주의자들은 이 단어를 대환란 끝에 주가 세계를 심판하려고 지상에 영광스럽게 오실 때에 배치하였다.
그리스도의 강림을 지칭하는 세번째 용어는 「에피파네이아(επιφανε ια)나타나심」이란 말이 있다.살후 2:8에 한번 보이는 외에 모두 목회서신에 나타난다(딤전 6:14;딤후 1:10,4:1,8;딛 2:13).이 낱말은 공중에 나타나시는 주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그로말미암은 항거할 수 없는 권능을 표시하는 것이다.세대주의자들은 이 단어를 ‘아포칼룹시스’와 같이 주님의 지상 강림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세 가지 말로 표현했다.「파루시아,아포칼룹시스,에피파네아」이다.이 말의 차이점을 세대주의자 에서는 교묘하게 해석한다.여기서 첫번째 ‘파루시아’란 것은 세계의 모든 불신자들도 볼 수 있게 오시는 것이다.그들이 여기에 인용하는 성경은 예수님께서 「밤의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을 인용한다.이 오시는 때에는 불신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전혀 알 수 없고 이 기간에는 공중의 혼인 잔치가 있은 후에 지상 재림을 하시게 되는 것으로 그 때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며,이 때의 재림을 「아포칼룹시스‘라고 했다는 것이다.Dr.Allis는 이 문제에 대하여 평하기를 바울 사도가 재림에 관하여 말할 때에 이 세가지 말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나 살전 4:15,살후 2:1,살전 3:13,살후 2:8에 보면 동일한 사건을 다른 말로 표시한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에 있어 바울 서신에는 두 가지 재림설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그러므로 재림은 두 가지로 시간적인 간격을 둔 사건이 아니고 단회적인 사건으로서의 단지 말의 표현이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이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혹자는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든다.
첫째,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두 번 환난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게 되면 주님이 두 번 심판을 받는 결과가 된다고 한다.교회가 환난 당하는 것을 예수님이 두 번 심판을 받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는가? 초대교회시대부터 지금까지 교회가 받은 환난과 핍박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이는 이론이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둘째,노아의 때와 롯의 때를 비유로 보건대 교회는 환난 전에 공중으로 휴거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환난과 진노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한데서 나온 오류이다. 앞으로 있을 환난시 성도가 그 환난을 통과하나 하나님의 진노는 성도에게 임하지 않는다(계16:2).
세째, 계3:10에서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하였으므로 환란기 전의 휴거로 본다.
이 구절에서 “시험을 면한다”는 내용은 번역상 오역이다. ‘면하게 하리니’는 “보호한다 또는 지킨다”는 말로 번역이 되어야 한다. “시험의 때”는 이중적인 환난을 의미한다. 그 하나는 세상 종말에 있을 무서운 대환난(계13장)이고,또 하나는 주께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심판하심으로 온 세계에 임할 심판이 그것이다.주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로하시면서 하신 이 말씀은 이러한 이중적인 환난이 온 세계에 임할 때에 그들을 주께서 지켜 보호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네째,계 2장과 3장에서 교회라는 말이 언급되다가 4장 이후에는 한 번도 없으니 이전에 교회는 휴거되고 나머지는 이삭줍기에 해당되는 성도들이라고 한다.
계시록 4장 이후부터 교회의 개념이 없다는 주장은 너무나 비성경적 발상이다. 4장 이후에도 성도들이 환난받는 장면이 여러번 기록되어 있는데 세대주의자 들은 “지상에 남은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로 가리킨다”고 못박는다. 그러나 “성도”의 용어는 신약용어이며 신약적 개념이지 구약이나 이스라엘의 용어가 아니다.구약 다니엘서 7장에서 사용한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섯째, 계 4장의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씀을 요한의 휴거와 교회의 휴거로 보고 있다.
이 는 요한의 휴거도 교회의 휴거도 아니다.그것은 성령에 감동된 것(in spirit=성령안에 있음)이지 변화되어 휴거된 것이 아니다(계 4:2).요한은 밧모섬에에서 에배소에 온 후 천수를 누리고(100세) 죽었다(주후 106년경).
지금까지 “환란전 휴거설의의 부당성”을 거론하였다.
사실 초대교회로부터 19세기까지는 대부분 “환란 통과 후 휴거설”을 주장하고,또 그러한 신앙적인 믿음의 생활을 정립하여 왔었다.그러다가 세대주의 창시자 다비에 의하여 이 학설이 주창되었고 그 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이 학설이 발전되었다.19세기 이 후 신비적인 세대주의 신학이 교회내에 스며들면서 어빙 목사와 시카고 무디 신학교의 스코필드 박사와 달라스 신학교 월드 브리너 학장이 이 학설을 체계화시킴으로 환난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어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2.환란기 후 휴거설의 타당성
환란통과 후 휴거설은 초대교회로부터 맥을 이어온 보수적인 신학의 정통견해이다.이 학설은 루이스 뻘콥(L.Berkhof)과 박형룡 박사의 주장이다.환란기 후 휴거설을 편의상 “통과설”로 말하기로 한다.
1) 바울과 요한과 마태가 예언한 종말의 진행 순서를 볼 때 통과설이 성경적이다.
바울과 요한이 예언한 종말에 대한 말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순서가 된다.종말의 진행순서
A.바울의 종말 순서
배도하는 일(살후 2:3a)→ 막는 자(성령)의 역사와 옮김(살후 2:6-7)→ 불법의 사람 나타남(살후 2:8a)
B.요한의 종말 순서
대환란(계 13:1-18)→ 주 예수의 강림(계 19:11-16)→ 적 그리스도의 심판(계 19:17-21)→ 사탄의 결박(계 20:1-3)→휴거(살전 4:16-18,계 20:4-6)→천년왕국(계 20:4-6)
C.마태의 종말 순서
2)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회적(單會的)이다.
세대주의자 들은 그리스도의 이중 재림을 주장하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회적이다.데살로니가가 전서 4:17절에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고 한 말은 마 25:6절에서 처녀들이 신랑을 영접하여 돌아옴을 의미하고,사도행전 28:15,16절에서 로마의 교우들이 바울을 영접하여 돌아옴을 의미하였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을 위하여 오시고 그들과 함께 오시는 일이 연속하여 될 일이다.두 사이에 몇 해의 간격이 있으리라고 추상할 이유는 없다.히 9:28절의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이중 재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말하는 것이다.
3) 성도의 부활은 단회적이다.
바울은 부활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3-24)고 하였다.부활의 첫 부대는 그리스도시다. 부활의 제 2부대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성도들이다. 부활의 세번째 부대는 천년왕국 이후에 있을 불신자들의 부활이다. 이처럼 성도의 부활이 단회적 임을 말하고 있는데 세대주의는 성도의 부활을 두 번 있다고 말을 한다. 환난 전과 환난 후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성경적이다.
4) 성경은 신,불신을 막론하고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와 이마와 손에 666의 표를 받게하는 시험의 때가 있음을 말한다(계13:9,11-18,14:9-12).
5) 성경은 대환난 기간 중에도 성도가 이 지상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계 13:6-7)
세대주의자 들은 이들이 “유대인”이라고 한다.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시에 휴거하지 못하고 환난에 떨어진 자들이라고 한다.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1:7)고 하셨는데 그 말씀의 뜻 가운데는 성경의 해석을 바르게 하라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유대인으로 봄은 바른 해석이 아니다.
6) 바울은 적그리스도의 출현 후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하였다(살후 2:3)
7) 성경은 “마지막 날”에 성도의 부활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요 6:39,40,44,54,11:24).
8) 살전 4:16-17절의 해석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본문에 나타난 휴거의 장면 즉,상황을 살펴보면 일곱 가지의 모습을 설명할 수가 있다.
첫째,주님의 호령 소리가 난다.
여기 “호령”을 발생한 주체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이시다.이 명령(호령)은 주님이 하늘을 떠나면서 죽은 자들에게는 ‘일어나라’(막 5:41)고, 산 자들에게 ‘이리로 올라오라’(계 4:10고 하는 명령이다.이 명령은 주님의 입술로 통해 주님이 친히 내리시는 명령이다.
둘째,한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은 접속사 and로 결합되어 있다.
본문의 천사장은 미가엘이다(유 9;계 12:7).그는 특히 하나님을 위하여 사단을 대적해 싸우는 천사이다.주님의 재림은 사단을 멸하시는 것인 만큼,미가엘이 활동하게 된다.이 나팔은 천사가 불 것이다.이 나팔 소리는 주님의오심을 알려 주는 신호이며,당신의 백성에 대한 당신의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 발해지는 신호이다.이 말씀을 볼 때 주님은 공공연하게 만인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들을 수 있게 오시는 것이 아주 명백해진다.
세째,주께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신다.
이 강림은 눈에 보이는(계 1:7),귀에 들리는(살전 4:16),장엄한(살후 1:7) 강림이요,심판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마 25:31-46) 오시는 강림이다.
네째,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주님이 재림 하실 때 하늘에 있는 영혼들(성도들)을 데리고 오신다(살전 4:14).예수님은 하늘을 떠나면서 소리를 발하시고,이때 하늘을 떠나 예수와 같이 내려오던 영혼들이 그들의 육체와 눈 깜짝할 사이에 신속히 재연합 한다.
다섯째, 우리 살아 남은 자는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간다.
그 때에 성도의 변화는 “홀연히”이루워질 것이고 그 몸은 육체가 아닌 영체이다.죽은자가 먼저 산자는 나중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선후를 말하는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동시에 발생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데 큰 광풍으로 물결이 배에 부딪혀물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매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을 깨우며 “선생님이여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고 하였다.이때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하였다(막4:35-41).주님의 말씀 즉,잠잠하라 고요하라 하니 바람이 멈추고 바다가 잔잔하여졌다.이 두 사건은 동시에 이루워졌다(막 4:35-39).
여섯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된다.
여기 “영접하게”로 번역된 헬라어는 “만나게”(to meet)란 뜻이다. 그들이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기에 적합한 곳은 땅 위의 어느 지점보다 높은 공중이다. 그를 만날 자들은 땅 위의 어떤 한 지역 사람들만이 아니다. 리델보스(H.N.Ridderbos)는 이 사건이 “공중에 머물거나 하늘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의 지상 내림에 따라 함께 있으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박형룡은 이 본문의 첫째 치중점은 그리스도를 영접함에 있고 그 영접의 처소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공중에 치중하여 거기서 내려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본문의 둘째 치중은 신체의 변화,즉 부활체와 같이 썩지 않을,영광스러운,능력있는 신령한 몸으로 되는데 있다(고전 15:42-44). 그러한데 휴거의 시기에 치중하여 대환란 전에 휴거된다고 상상하는 것은 공연한 일이라고 했다.
일곱째,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두 그룹의 무리들이 연합하여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이 말씀이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것은 공중에서 이러한 만남 후에 주님께서 그의 방향을 바꾸사 그와 함께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심을 받은 자들과 변화받은 교회의 구성원들을 데리고 하늘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이다.이 구절은 이런 말을 결코 한 마디도 하고 있지 않다.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만난 후에 그와 함께 하늘에서 7년동안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단순한 추론에 불과하다.“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헤어짐이 없다는 말이다.주님과 같이 공중에도,주님과 같이 지상에도,주님과 같이 천상에도 항상 같이 한다는 것이다.
9) 고전 15:51-52절의 해석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위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있을 성도의 변화에 대한 말씀이다.위의 말씀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바울은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바울이 “비밀”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그것은 그가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어떤 진리를 말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면 새로운 그 비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산 자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다시말하면 바울은 지금까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했다.그는 여기서 하나님의 비밀을 계시로 깨달은 것을 밝히고 있는데 주님 재림시에 산 자의 변화인 것이다.
둘째,마지막 나팔이 불게 될 때에 죽은 성도의 부활과 산 성도의 변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의 마지막 나팔은 살전 4: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과 마 24:31(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과 계 10:7(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의 나팔은 같은 것이다.바울은 본문에서 휴거의 시기를 분명히 밝혔다.그것은 “마지막” 나팔이 불 때 이다.
세째,그리스도의 재림시 크리스찬들 중에 죽음을 맛보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다.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육체적인 죽음을 겪지 않은 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이 비밀을 안 것이다.
네째,주님 재림시 모든 믿는 자들이 육체적인 죽음을 모면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 계시의 수혜자로 고린도교회를 택하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왜냐하면 신약에 기록된 세상의 모든 교회들 가운데서 고린도교회가 가장 세속적이었기 때문이다.휴거의 기준은 우리의 구원의 기준과 똑 같다.믿는 자는 다 휴거된다.“우리가 다 변화하리라”고 말했다.
다섯째, 모든 크리스찬들이 변화될 것이다.
바울이 이 장에서(고전15장) 부활된 몸에 관해 가르치고 있는데 변화의 성도도 죽음을 겪지 않는 점만 제외하고는 부활한 성도와 똑 같다. 즉,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욕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고전15:42-44).
여섯째, 휴거는 순간적이다.
헬라어로 원자를 아트모스(atmos)라고 하는데 그것은 더 이상 나눌 수없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말하면 1 시간을 나누면 60분이다. 1분을 나누면 60초이다. 또 똑닥하는 1초를 나누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휴거는 너무 빨리 그리고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사람들이 도저히 나눌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결론
환란전 휴거설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리고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 믿는 환란기 후 휴거설의 타당성을 논했다. 세대주의자들의 환전전 휴거설은 분명히 비성경적이다. 그리고 주님의 이중재림도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세대주의자들이 요한계시록을 유대인에게만 국한 시키는데 그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본인은 계시록에 대한 주석 및 강해집이 40여권 있다. 그런데 슬프게도 대부분 책들이 세대주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그리고 종말에 대한 책들도 거의 다 세대주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개혁주의 입장에서 많은 책들이 쓰여지기를 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