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의 영성훈련(새생활영성훈련원) 무엇이 문제인가?
이단사이비대책위원 및 전문상담위원 박형택목사
요즈음 “영성”이라는 단어가 기독교 언론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신문에 나는 광고도 과거에는 전도훈련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요즈음 영성훈련이니 영성세미나니 하는 광고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 가운데 두드러지게 주목을 받으며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 새생활영성훈련(박철수)에 관한 것이다. 이미 우리 교단의 여러 목회자들이 이 새생활영성훈련에 관련되어 있고 또 박철수 목사가 합신 1회라는 사실 때문에 교단에 미칠 영향을 생각지 않을 수 없고 또 여러 차례 문의를 받아온 터라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박철수 목사는 누구인가?
그는 1971년 이만신목사(중앙성결교회 원로목사)의 집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은 후 8개월 동안 영안이 열리는 신비한 체험과 영혼의 육체이탈을 경험했다고 한다.
1978년 총회신학교 신학부에 입학하였고 그해 8월에 서울 종로구 원남동 179-3에서 새영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으며 이 때 방언과 방언통역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한다.
1979년 한얼한 기도원에서 기도하던 중 성령의 불같은 능력을 받아 신유, 능력행함, 영분별, 지혜, 지식의 은사 등 나머지 아홉 가지 은사를 다 받았고 자기 속에 있던 귀신 53마리가 신고를 하면서 떠나는 것을 체험했다고 한다.
1981년 12월에 예장 호헌측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합신 졸업 전에 벌써 안수를 받다.
19877년 교회를 서울 신사동으로 이전하면서 교회부설 영성훈련원을 개원하였고 다시 1988년 12월에 청담동으로 교회를 이전하면서 아시아교회로 교회이름을 바꾸었다.
1994년 11월에 제 1회 영성교육 상담세미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0회 가까이 세미나를 했다.
1996년 8월에 경기도 남양주시 시내산 기도원으로 아시아교회와 새생활 영성훈련원을 옮기게 되어 발전을 하게 되었고 1997년 11월 서울 노원구 중계동 358-6 상가지하에 아시아교회와 함께 이전하였고 다시 답십리로 이전하여 지금까지 자리잡고 있다. 1998년 7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호헌 총회 한남노회에서 박목사의 사상문제를 지적하자 교단을 탈퇴하였고 1998년 10월 예장서울노회(독립)를 독자적으로 세웠다. 지금은 강북본당(답십리), 강서 예배당(양천구 신월동)과 기독교 영성신학연구소, 기독교영성운동본부, 기독교 영성신학연구원,기독교영성홍보선교,월간 영성의 샘, 도서출판 영성이 있으며 전국에 100여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고 한다.
2. 새생활영성훈련원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까지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종합해 본다면 첫째 직통계시에 대한 문제요 둘째는 영서문제요 셋째는 그의 인간론문제요 넷째는 잘못된 구원관 문제요 다섯째 귀신론문제요 여섯째 잘못된 성경해석문제요 일곱째 기성교회와 목회자들의 비판문제이다.
이미 [현대종교]에서 박철수의 영성운동에 대하여 98년도에 문제를 제기했고 [교회와 이단]이라는 월간지에서도 이단으로 규정을 하고 있고 [교회와 신앙]지에서도 기자들이 잠입 취재하여 그 실상을 공개하고 정훈택교수등 여러 학자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고신측에서도 이미 문제점을 파악하여 교회에 배포하고 있다. 그리고 박철수 영성운동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교회와 신앙지의 기자와 인터뷰를 통하여 여러 기독교인사들이 공표하고 있다. 김이곤(한신대대학원장), 김지찬(총신대), 박형용(합동신학대학원), 송순열(한신대), 심창섭(총신대), 오성춘(장신대), 이중표(기장총회장),이성희(연동교회)목사등이 박철수목사의 영성운동은 성경적인 근거를 둔 것보다 자신의 신비적인 체험에 근거를 둔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박철수 목사의 각종세미나에 강사로 초빙되어 관계를 맺어오던 교수들도 뒤늦게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영성세미나를 하면서 언제나 교계에 이름있는 학자들을 초청하고 강의를 하게 하는데 그것은 그 분들의 대외적 명성을 통하여 자신의 입지를 세워보고자 하는 수단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1) 직통계시와 영서 문제
박철수의 목사가 지은 책 “변화되는 삶을 경험하라” (159쪽)에 보면 성령의 조명계시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는 분명히 성경 66권외에 더 추가로 기록되게 하는 계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기록된 성경말씀을 우리들에게 깨우쳐 알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계시(Illumination)는 지금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은사적인 차원에서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고 “생활상담에 관계된 예언적인 계시”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성경계시, 조명계시 예언계시로 계시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며 기록된 성경계시는 완성되었지만 조명계시와 예언계시는 계속된다는 말이다. 물론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자들을 영성상담을 하면서 발생되는 예언계시의 문제이다. 신앙상담을 하면서 제일먼저 사람을 척 보고 그 사람의 신앙상태를 단계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크게는 애굽단계, 광야단계, 가나안단계로 나누고 거기서 또 세분화하여 피상담자들을 광야 00단계 혹은 가나안0단계 등으로 점을 치듯 판정을 해 주는 것이다. 심지어 얼굴만 봐도 또는 신상카드만 보아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이 자기의 판단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렇게 알려 준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령께 물어보면 그 사람의 영적 상태, 상황, 사명 영적 수준을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을 “성령상담”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설교를 하는 것도 성령께 물으면 성경 어디를 강해해라 또 대지는 이렇게 하고 소지는 이렇게 해라등 기도로서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해야 진짜 설교이지 사전 찾고 뭐찾고 그것 찾아 가지고 하니 세월만 다 가고 골치만 아프고 머리만 빠개진다고 말한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으면 제목 대지 소지를 착착 알려 주시고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으면 그 말씀을 주신 이유를 환상을 통해서 알게 해 주시는데 이것을 안 받으면 목회를 못한다고 강조한다(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이러한 직통 계시적인 행위는 모든 이단들의 출발점이다.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복종하게 하고 하나님의 계시라는 미명아래 갖은 사악한 일들을 하는 것이 이단들의 일반적인 방법이다. 92년도 예수님 재림한다고 물의를 일으켰던 이장림과 그 일파가 직통계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다베라 선교회에 직통계시를 받아 92년 재림한다고 했던 하방익군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직통계시를 믿고 따랐던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지금도 방황하는 자들이 많다.
또 하나님은 영서를 통하여 예언을 주신다고 한다. 모든 방언과 예언이 영서를 통하여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박철수 목사는 영서에 대하여 기도해서 물어 보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방언, 통역, 예언의 복합적인 은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원에서는 영서 쓰는 법을 훈련시키기도 한다. 영서를 많이 써야 계시가 정확하게 온다는 것이다. 성경에 영서라는 말도 영서에 대한 것도 없다. 박철수목사는 영서에 대한 근거로 벨사살왕 때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쓴 사실과 예수님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가운데 두고 돌로 치려는 사람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쓰신 것을 영서라고 견강부회한다.
다니엘서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쓴 글씨는 사람이 쓴 은사로서의 영서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만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벨사살왕을 심판하시는 사건이다. 사람의 손가락이 나와서 글을 썼지만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권능으로 행하신 이적적인 사건이다. 또한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쓰신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셨는지 무슨 글을 쓰셨는지 알 수 없지만 글을 쓰신 것은 돌을 들어 여인을 치려한 사람들에게 침묵의 심판을 하시는 행동이다. 박철수 목사는 자신의 신비체험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견강부회식으로 억지로 가져다 붙인다.
2) 인간론의 문제점
며칠 전 부천에서 목회를 하는 신흥교회 이용근 목사님이라는 분을 만났다. 이 분은 라보도신학(웨스트민스터신학교/현재)을 공부한 분인데 자신이 과거에 박철수 목사의 영성훈련에 대하여 크게 피해를 입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박철수목사가 과거에 가르쳤다는 녹음테이프를 상당수 전해 주었다. 그 목사는 부천에서 개척을 하여 열심히 목회를 하던 중 교인 중에 한 명이 그곳에 갔다가 미혹이 되었고 박철수 목사는 공공연히 “신흥교회는 영이 죽은 교회”라고 말하므로 인하여 20명의 교인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박철수목사는 그 사람들을 데리고 따로 교회를 하다가(지부처럼) 결국 다 흩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당시 반주자였던 자매인데 박철수목사를 지금도 돕고 있다고 한다.
개척교회에서 20명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목회자에게 있어서 정말 큰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영 분별하는 은사가 있기에 이용근 목사가 목회 하는 교회는 영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도 성실하게 목회를 하고 있는 이용근 목사는 당시의 아픔을 되새기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단과 사이비종교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이 사실을 볼 때 훈련원에서 영성훈련을 시켜 더욱 믿음이 성장하고 각 교회에서 잘 섬기고 헌신하도록 만든다는 박철수 목사의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결국 그는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 추종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박철수목사가 주장하는 인간론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신학은 모두가 인간론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삼위일체도 인간론을 통하여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전도 그렇고 하나님나라도 그렇고 심지어 성경해석도 그렇다. 그는 워치만 니와 지방교회 윗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아 인간론을 자기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
그가 인간론에서 주장하는 것을 열거해 보면
첫째 인간은 본체론적으로 구분할 때는 몸과 혼과 영이고 인격적으로 구분을 할 때는 영혼과 몸이라고 한다. 이 때 몸은 육체+혼을 말하고 영혼은 영을 말한다고 한다.
둘째 혼은 하나님이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실 때 만들어 진 생령이라고 말한다.
셋째 인간에게는 두 인격이 있어 혼의 인격과 영의 인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넷째 영이 몸을 떠나 이탈하여 자기의 혼과 육체를 본다고 한다. 두 단계가 있는데 인격적인 분리와 본체적인 분리가 있다.
다섯째 삼위 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과 같이 인간도 영 혼 육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지음 받았다고 말한다.
여섯째 영혼에도 몸이 있는데 투명한 몸이요 눈도 귀도 이성도 있지만 배꼽은 없다. 영혼의 지능지수는 육체보다 만 배나 고차원적이다라고 말한다.
일곱째 몸은 기계와 같아서 인격이 없고 혼은 야비한 사람, 무지무지한 죄인이고 영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아주 좋은 사람, 사랑의 극치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여덟째 혼이 내 몸의 주권자였는데 영에게 양보하고 영이 주권자가 되니까 말씀도 깨달아지고 죄가 깨달아졌다. 이것이 영생체요 기독교의 특권과 축복이다라고 말한다.
박철수 목사는 인간론에 있어 인격적인 면에서는 2분설이요 본체적인 면에서 볼 때는 3분설이라고 하는데 두 가지 설을 종합하여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이 아니다. 창세기 2장 7절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는 말씀을 흙은 몸이요 생기는 영이요 생령은 혼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워치만 니의 “영에 속한 사람” 제 1권에 나오는 사람의 본질적인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워치만 니는 혼을 설명하기를 흙으로 만든 몸과 하나님의 생기 곧 사람의 영이 접합되는 순간 만들어진 새로운 존재가 혼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워치만 니가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은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자 살아있는 실체로서 영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생령은 제 3의 새로운 개체로서 혼이 아니라 흙으로 만든 몸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자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변화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자기 개인의 영적 체험을 앞세워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곡해하고 있다. 또한 한 인간 안에 두 인격이 있다고 말한다. 혼의 인격이 있고 영의 인격이 있다 말한다. 한 인간 안에 어찌 두 인격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인격이라 함은 지정의(知情意)를 말함인데 영의 인격이 다르고 혼의 인격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교리 즉 영과 혼을 분리하고자 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영은 선하고 혼은 악한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나온 영지주의적 사고의 결과이다. 박철수 목사는 죄를 짓는 것은 혼이 하는 것이지만 영과 혼과 몸이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한다.(변화되는 삶을 경험하라 P72) 이러한 그의 주장은 영지주의적 사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박철수 목사 말대로 한 인간 안에 두 인격이 있다면 인간되신 주님 안에도 두 인격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가 신비적인 체험을 했다고 말하는데 자기가 길을 가다가 자신의 영이 몸(혼과 육체)을 이탈해서 5-6미터를 앞서 가기도 하고 혼이 영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경이 겉사람과 속사람,그리고 영과 육을 대조해서 말하는 것은 인격이 둘이라서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양면성을 말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박철수의 인간론은 삼위일체까지도 인간론적인 입장에서 이해를 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창 1:27)에 하나님의 형상을 영이신 하나님과 육신을 입으시고 오신 예수님과 몸체는 없지만 인격이 있는 성령님이 삼위일체가 된 것처럼 인간도 영과 혼과 육체가 일체가 되도록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은 성부 하나님에 해당하고 육체는 성자 하나님에 해당하고 혼은 성령 하나님에게 해당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삼위일체적인 것을 말하는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존재로서 그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든 것이다.(에베소서 4:24)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인격(곧 신격)을 말씀하는 것이다. 물론 어거스틴도 삼위일체를 논증하면서 인간의 모습(즉 마음 지식 사랑 혹은 기억 지성 의지)속에서 삼위일체의 형상이 반영되었다고 주장한 예도 있기는 하다.
또 인간의 몸과 하나님의 성전을 같은 방법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영은 지성소요 혼은 성소요 몸은 성전 뜰인데 지성소는 영원천국이고 성소는 현세천국이고 성전 뜰은 이 세상나라라고 한다. 모든 것은 인간의 3분설에다 맞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은 인간의 구성요소를 보여주는 예표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을 예표하는 것이다.
따라서 억지로 이것저것을 3분설 인간론에다 가져다 붙이는 것은 자신의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의 잘못된 인간론으로 말미암아 성경해석도 구원론도 삼위일체론도 성경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성경이 말씀하는 인간론이 아니라 자신의 믿는 바를 성경으로 입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3) 구원론과 타락론에 나타난 문제점
박철수 목사의 구원론은 한마디로 마귀에게서 구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빼앗겼던 우리를 되찾기 위하여 예수님의 피를 값으로 주고 마귀로부터 우리를 건져낸 것이다. 마치 흉악한 범죄자에게 납치된 자녀를 많은 돈을 대가로 치르고 되찾는 것처럼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자녀라는 긍지와 확신이 있어야 한다” (영성훈련 입문 p.138) 그의 구원론을 좀더 분석해 보면 그는 세 가지 나라에 대하여 말한다. <세상나라와 이세상 나라와 이세상 천국>이다. 왜 이러한 이 세 나라를 말하는가 하면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구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왕권을 주셨는데 인간이 범죄함으로 세상나라를 빼앗겼다. 마치 한반도를 북조선에게 빼앗겼던 것처럼 마귀에게 왕권을 빼앗겼다. 마귀가 이 세상나라의 왕이 되었다. 마치 북한이 한국을 배앗아서 조선(조선인민공화국)이라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마귀더러 이 세상임금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귀가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든지 아니든지 전부 마귀의 자녀가 되었고 결국 마귀의 종, 마귀의 집, 마귀의 제사장, 마귀의 신부가 되어진 꼴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또한 십자가의 승리를 통해서 마귀가 다스리는 ‘이세상 나라’ 의 일부를 빼앗아서 ‘이세상 천국’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었다. 마치 북한이 남한의 땅을 빼앗아서 조선이라고 불렀는데 재차 유엔군이 회복시켜 줌으로 돌려 받은 것과 같다. 피값을 주고(죄값을 치르고) 이 세상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어 이 세상 천국으로 옮겨 놓았다.”(골1:13)
이렇게 건져낸 것을 ‘구원’이라고 말한다.(요 3:16-17) (영성훈련입문 pp 28-30)
“그러나 예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나라의 권세의 일부를 빼앗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켜주어 이 땅에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는 영적 세계를 개설하셨는데 이것을 ‘이세상 천국(현세천국)’이라고 말한다.”( Ibid 32)
박철수 목사의 구원론은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나라에서 이 세상천국으로 옮긴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박철수 목사는 구원을 왜곡 축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귀에게서 구출을 구원으로 보고 있는 박철수 목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건이 사단 배상설 이론을 연상케 한다. 그의 논리나 그의 글을 보면 결국 예수님의 피값을 마귀에게 지불하고 영혼들을 마귀에게서 건져냈다는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가 그려 놓은 도표에 보면(영성훈련입문 p29 그림 1-5)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나라에 세 개의 글이 있다. 첫째가 이세상나라 둘째가 마귀 셋째가 피값이다. 이 표를 보면 박철수 목사가 예수님의 피값을 마귀에게 지불하고 사람을 구원해 냈다는 사단 배상설 사상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가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는 하나님과 마귀의 두원리로 구원을 설명하는 마니교사상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그의 타락론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타락과 그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의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하기 전에는 혼이 영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혼의 능력은 바로 영의 통제를 받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빠져 범죄한 이후로는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인류전체가 사단의 영향권아래 놓이게 되었고 그 동안 온 몸을 주도하던 영이 그 주도권을 상실함으로 몸을 거룩하게 하는 통제력을 잃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영중심의 삶에서 육중심의 삶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 결과 인간은 지각이 어두워져서 영혼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세계가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되었다.” 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그가 이미 자기 신학의 틀 속에 성경을 맞추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므로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렸고(사망)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마귀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 그래서 구원이란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그 결과로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대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을 위해서이지 결코 마귀에게 지불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박철수 목사의 구원론과 타락론은 하나님과 마귀,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의 나라라는 이원론적인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4) 귀신론에 대한 문제점
그가 체험한 간증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은사의 충만함을 통해서 나에게는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그 하나는 많은 기적을 행하게 하시고 또 하나는 내 속에 있던 53마리의 귀신이 하나씩 하나씩 신고를 하고 떠나는 것을 경험시키셨다. 거짓말 잘하는 것은 봉이 김선달 같은 귀신이 붙어서 부추겨 한 것이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인기가 있는 즉 매력이 있어 보인다는 것조차도 귀신이 하는 장난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누구에게 매력이 있어 보인다는 말도 함부로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영성훈련입문 p 63)
박철수 목사는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는 것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태어날 때 들어가 자기화된 귀신(성격형성, 개성) 둘째 죄를 지음으로 들어가는 귀신, 셋째 지나가다 슬쩍 들어가는 귀신(거릿귀신) (Ibid p71)
박철수목사가 자신에게서 53마리의 귀신이 나간 때를 보면 이미 그가 원남동에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할 때이며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임 방언 통역 예언의 은사를 받았고 1년 후 한얼산에서 기도하다가 경험한 얘기다. 그렇다면 신자에게도 귀신이 많이 붙어 있을 수 있으며 성령의 은사를 받고서도 53마리의 귀신을 지니고 다녔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성령이 귀신과 함께 한 사람 안에 거하였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도대체 그 많은 귀신이 성령이 임하시는데도 끄떡없이 함께 있었다는 말인가? 성령께서는 그 귀신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는 말인가? 성령의 임하면 하나님나라가 임한 것인데 아직도 귀신이 같이 있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 많은 귀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귀신이 하나만 들어가도 귀신들린 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많은 귀신이 붙어 있었으면 온전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귀신 들린 사람이었을까? 박철수목사에 의하면 신자도 귀신이 많이 붙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신자의 삶가운데도 귀신의 역사가 있다는 말이고 많은 신자들이 귀신에 의해 시달림을 받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의 귀신론은 어디에서 많이 써먹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한 때 귀신을 쫓아낸다고 안찰을 하는 대O수도원의 안타부대가 생각나고 귀신축출을 잘하는 목사들이 생각난다. 정말 황당무계하고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날 때 귀신이 들어가 자기화된 귀신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성격형성이나 개성을 만든다고 한다. 개성이나 성격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귀신이 만든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어떻게 해서 태어날 때 귀신이 들어갈까? 성령과 귀신이 한 사람속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론은 성경과 완전히 배치된다. 만일 박철수 목사가 성령이 충만해서 은사를 받은 상황에서 아직도 귀신이 있었다고 한다면 성령충만이 거짓이든지 53마리의 귀신이 꾸며낸 가짜이야기일 것이다.
5) 성경해석의 문제점
박철수 목사가 자신의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첫째 역사적 문자적 문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둘째 성경은 비유, 혹은 미래의 될 일, 예언, 계시 등으로 설명하는데 구속사(구원의 역사)적 견지에서 해석해야 한다. 셋째 성경을 성경으로 이해하는 성경 신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넷째 영적 비유로 해석해야 한다. 다섯째 영적인 실제로 해석을 해야한다. 고 주장한다. (영성훈련입문 p173-176)
박철수 목사의 성경해석 다섯 가지를 보면 스스로 건전한 성경해석 방법을 취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 역사적 문법적 해석과 구속사적 해석은 상당히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말하는 역사적 문법적 해석과 그가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고 구속사적 성경해석도 우리가 말하는 것과는 상이하다. 역사적 문법적 해석은 성경을 기록한 당시의 상황과 문화 그리고 쓰던 언어 등을 잘 살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찾아가는 것인데 박철수 목사는 역사적 문법적인 것은 성경의 사건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역사적인 해석방법이며 구속사적인 해석방법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가시는 모든 계획과 과정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성경에서 찾아가는 것인데 박철수 목사의 구속사적 해석방법은 전혀 다르다. 그는 구속사를 객관적인 구속사와 주관적인 구속사로 나눈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구속사적으로 이해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 혼, 몸을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신령한 집으로 건축을 해서 하나님이 거기 내주 내재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받으시기 합당한 사람을 만드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지 육신의 풍요를 위해 육신의 욕망대로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객관적 구속사는 우리의 영혼과 육체,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이 계신 보좌(사람은 손댈 수 없고 하나님이 건축) 이다. 그러나 우리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은사와 능력을 주시고 환경을 주셔서 주의 말씀대로 삶으로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신령한 집으로 건축해야 될 책임이 각인에게 있다.(이것이 주관적 구속사?) 이 책임을 수행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은사와 능력과 권능을 모두 다 예비해 주셨다.” 라고 말한다.
요약하면 그의 성경해석은 자신의 신학 즉 인간론 중심의 신학의 바탕 위에 성경을 보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적인 해석이라 하여 구약성경을 비유로 해석하고 그것을 성경 신학적이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4: 21-31에 보면 바울사도가 구약의 아브라함의 두 아내와 아들을 들어서 비유라고 하며 해석을 하는데 육체를 따라 난자와 약속을 따라 난자,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 계집종의 아들과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의 대조가 나온다. 이것을 객관적인 구속사라 하고 또 이삭이 리브가를 통하여 두 아들을 낳는데 하나님은 먼저 난 에서를 미워하고 나중에 난 야곱을 사랑하셨다. 야곱이 팥죽을 주고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사게되는 일은 주관적인 구속사를 의미하고 예수 십자가의 물과 피로 영혼이 거듭나서 장자권을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것을 영적으로 말할 때 거듭난 후의 성도들의 영혼은 복음만을 사랑하게 됨을 의미한다고 말한다고 한다. 아브라함과 두 아내를 통하여는 객관적인 구속사를 야곱의 두 아내와 장자권을 사는 일에 대해서는 주관적인 구속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구속사에서 율법과 복음이 다르고 주관적인 구속사에서 율법과 복음이 다르다고 한다.
성경해석가운데 가장 위험한 해석이 우화적인 해석과 영적인 해석이다. 이것은 얼마든지 자신의 신학이나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짜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에서를 우리의 육체에 비유하고 야곱을 우리의 영혼으로 비유하며 장자권을 사는 것을 우리의 거듭남으로 해석한다. 레아는 율법으로 라헬은 복음으로 비유를 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먼저 주시고 복음을 나중에 주시며 야곱과 같이 장자권을 회복한 거듭난 신자는 복음만 사랑하게 됨을 의미한다고 한다. 얼마나 기상천외한 해석인가? 이것은 자신의 신학적인 원리를 따라 짜 맞추는 우화적인 해석으로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구약의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믿음과 믿음의 언약이며 야곱을 통하여 주시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선택을 말씀하신다. 성경의 모든 사건 행동 하나 하나를 비유로 풀이하여 영적 해석을 하는 것은 전혀 성경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와는 딴 것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박철수 목사의 성경해석은 풍자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위험한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