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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본문중에...

시베리아 선사 고고학!주류성,2003) 중에서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5.02.07|조회수52 목록 댓글 0
올리긴 합니다만 ...좀더 자세한 설명들을 곁붙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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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투스의 <역사>를 들수 있다. 그에 따르면 중앙 아시아에는 샤키가 거주하며

그 동쪽에는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 있다고 한다. 샤키는 중국사서에서 塞人 으로 표시되는데

단지 하나의 민족을 가리킨다기고바는 중앙아시아의 스키토-시베리아유형의 고고학적 문화를

지닌 초원적 유목민족을 통칭한다고 본다.

丁令은 러시아 학계에서는 여러 논의가 이루어 진다. 특히 그(정령)를 언급하면서 붉은 머리를

지니 있다고 해서 러시아 진출 이전에 시베리아에 거주했던 유럽인종의 거주 흔적과 많이 연관

시키는데, 구체적으로 타가르문화, 파지릭문화, 아파나시에보 문화등의 유존과 연결시키는 경우

가 많다.(1990)

중국의 자라오스소-골 유적과 寺谷 유적(28000년)을 들어 세형 돌날의 기원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 세형몸돌 자체의 형태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면 아직?까지 바이칼 기원을 밝힌

만한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또한 세형돌날의 말따 기원설은 더욱 동의 하기 히든 견해로서

시베리아 구석기학자들이 그 기원을 측면 몸돌로부터 찾ㄷ으려너느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 한

편 최근 폭넓게 발굴이 이루어진 우스띠-까라꼴 유적ㅇ세서ㅡㄴ 세형몽골의 기원이라 할수 있

는 유물(석기)거 벌견되고 있으며 그 연대도 25000년 전후로 제기 되고 있다 또한 까민나야

동굴유적에서도 40000년으로 절대연대가 나온 지점에서 역시 세형몸돌이 출토 되었으며 까라

봄에선 이와 유사한 연대에 그 형태나 기술을 상기 시키는 유사한 측면몸돌이 발견되었다.(이헌종 1997)

최근 원시형의 세형몽골이 바이칼지역에서 70000년을 넘는 층위에서 발굴 되었더눈 보고도 있

다.

듁타이문화의 대표적인 석기로는 양면석시, 칼, 새기개, 초생달형 격지, 양면박리를 원칙으로

하는 세형몽돌, 세형돌날 돌날상의 소형긁개 등이다. 듁타이 동굴 유적이 발견되면서 알려진 이

문화는 여러차례의 연대 수정을 거쳤으나 알단가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이히네, 우스띠-밀,

우스띠 듁따이, 에좐쯔이 등의 유적에서 ㅏ타나는 석기 전통이 각 문화층에 ㄸ라 시간폭을 달리

하며 계통성을 갖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문화로 ㅗ고 있다. 이 문화를 주창한 모차노프는 위의

유적들이 위치한고 있는 알단강 제2단구의 형성시기와 이히네 2(31200+_00)와 우스띠- 밀2

(35600+_900)에서 얻은 절대연대의 상한이 30000년을 넘으며서 이 문화는 대략 35000년 전으

로부터 11000년 전까지 형성된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단군의 형성시기에 대한 이견, 시료의

오염 혹은 이동, 화석목의 재퇴성 가능성, 맘모스 동물군의 분포 등 많은 문제점이 제기 되고 있

으며 이 문화의 상한을 18000년~20000년 이전으로 보려는 ㅕㅇ향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가능성

을 보충해주는 유적(1830+_180)의 조사결과이다.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 최말기가 되면 14000~13000년전부터 시작된

온난화 현상에 의한 환경변화에긴민하게 적응해야 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다양하고 복잡한 사

회구조가 나타나게 되며 세형돌날문화의 전성기와 소멸기를 맞이 하게 된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샳윤 문화상이 창출되는데 그것은 인류집단의 정착에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한 토기

가 등장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14000~13000년 전에 시작된 기후의 온난 현상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 분포해 살았던 구석기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이 시기에 유럽의

경우는 후기 구석기 시대 최말기에서 중석기 시대로 넘어가ㅡㄴ 많은 문화적 변화 과정을 밟아

갔다.동북아시아에서 기존의 석기문화의 특징을 유지하는 동시에 이러한 기후 변화에 적응한

결과 나타난 것은 토기의 생산이다. 토기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줄 만한 뚜렷한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토기는 새로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고안된 산물임에 틀림

없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은 근거로 하면 이러한 토기의 발생시키는 13000년을 상회한다. 극동지역

에서 가장 주목하여야 할것은 고古토기의 출현이다. 지금까지 극동지역에서 고토기가 발견된 유

적은 가샤유적(12960+_120 B.P.), 우스띠-울마 1 유적 ,훔미 유적(13260+_120 B. P.)등이 있다.

최근에는 연해주 동쪽의 제르깔리나야 강안에 위치한 우스띠노프까3 유적, 연해주 서쪽의 고르

바뜨까 3, 일리스따야 1, 우스띠- 까렌까 유적등이 발견 되었다.

용산문화에서 순동이 확인된 바 있고, 하가점하층문화, 제가문화, 악석문화등 기원전 3000년전

기의 초기 금속기문화에서 순동의 사용이 확인된다.


스키토-시베리아 유형의 문화의 종언은 기원전 4~3세기로, 우랄 서쪽지역은 사브르마뜨인에

의해 대체된다. 사브로마뜨인은 기원전 7세기 정도부터 볼가-우랄스텝지역에서 거주하다가

기원전 3~2세기에 지속적으로 스키타이 지역을 침략, 그 지역을 점유 하였다.

스키토-시베리아 유형이 주변지역으로 확산된 흔적은 중국 운남성 지역의 기원전 2세기~기원

후 1세기경에 석채산 유형 및 중국 길림지역의 노하심, 평양平洋,서분 유적등 선비,오환의

유적에서 발견되어서 스키토-시베리아계의 유물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나아가서 중국내의

漢墓에서도 동물형패식이 발견된다(광서 은사령, 하북 만성한묘등)



(파지릭문화의)후기는 유라시아 대륙에 기원전 2세기 부터 시작되는 흉노-사마르트 기(期)가 알

타이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시작된다.알타이 지역에 흉노문화가 침투하면서 현재까지 몇가지의

문화유형이분리되었다. 그중 파지릭 문호의 원형이 잘 유지되는 고분군을 학자에 따라서는 후

後 파지릭 문화로 본다.


따가르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중국기록에 나오는 유럽인의 특징을 가지고

잇는 정령인으로 대입하려는 노력이 있다.


미누신스크지역에서는 흉노-사브로마뜨기(기원전 2세기~기원후 3세기)대에는 타쉬트익 문화

가 존재한다. 이 문화의 연대는 대체로 기원후 1~5세기이며 학자에 따라 세부 편년에는 이견이

많다. 그 분포지역은 미누신스크 분지를 중심으로 하며 알타이 지역의 동시대 문화와는 분명하

게 구분된다. 후에 이 문화는 기운후 5세기경에 남시베리아 전역에 급속히 퍼지는 튜르크계(터

어키)문화로 대체되는데, 대부분 소멸되며 일부 타쉬트익인들은 튜르크 문화에 흡수된다.

아무르 초기 철기 시대는 기원전 2000년기 후반기~1000년기 전반기에 시작해서 기원후 1000년

전반기에 이르는 약 1500~1000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존속했다.

또한 다수의 탄소 연대측정에 의하면 철기시대의 상한(우릴문화)는 기원전 11세기, 수륜보정시

에는13~14세기에 이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철기시대의 출현을 기원전 2000년전기 까지 소급

시켰으나 현재는 기원전 8~9세기 정도로 낮추어 보는 경향이 강하다. 어쨋든 이와 같이 빠른

철기 시대의 시작은 주변지역에서 그예를 전혀 찾아 볼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아무르 지역의 철시시대는 대체로 기원전 4~5세기에 말갈문화가 들어서면서 점차 소멸된다. 현

재까지의 연구로 볼때 주목할때 주목할 만한 것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우릴문화는 거의

전지역에서 발견되나, 이후 기원전 1000년기 후반에서 기원후 1000년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가

되면 각 지역에 따라 여러 문화가 나뉜다는 것이다. 즉 폭째, 딸라칸, 떼바흐 문화는 서로 시기가

일부 겹치며 지역을 달리 분포한다. 또한 이후 이시기에서도 각 지역의 중세시기(말갈문화)는

나이펠드, 미아일롭스끼이, 뜨로이츠기 등의 유형으로 세분되며 각각 지역의 철기시대 문화와

유사함을 보여준다. 즉 아무르 지역의 철기 시대는 이전 신석기시대 문화와도 계승성이 뚜렸

하며 이후 말갈시기로 특별한 異文化의 충격없이 이어진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오끌라드니

꼬프 및 데레비얀코는 철기시대 문화는 후에 말갈,발해 문화의 기반이 되었고 나아가서 이 지역

의 원주민이 퉁구스-만어족을 형성하게ㅐ 되는 일종의 고대민족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중국 기록에 나오는 숙신,읍루에 비교 하였으며 그외에 실위 등에 비교하거나

친연관계에 있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뽈체인들의 민족 구성에 대해서 러시아 학계에서는 중국기록의 읍루에 비정하며, 구체적으로 퉁

구스족보다는 고아시아족에 가까운것으로 본다. 그이유는 기원후 4세기부터 뽈체 유적들이

완전히 다른 성격의 말갈 문화로 대체된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즉 말갈인은 후의 만주족의

조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며 뽈체인인 말갈과는 상이한 민족적 구성, 즉 고아시아족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것이다.


아무르강 유열의 뽈체문화(=올가문화)는 기원후가 되면 사방으로 그 분포범위가 확장되는데 특

히 연해주지역에서 확장된 증거가 보인다.

뽈체문화가 이지역 토착의 끄로유노프까(토착)문화인들과 군사적 갈등관계에 있었음을 증명

한다. 그러한 증거를 배경으로 데레비얀코는 기원전 3~1세기에 뽈체인들이 연해주의 북부지방

으로 진출했고, 다시 기원후 1~3세기에연해주의 중부 및 남부로 진출해서 일부 토착주민(끄로

우노프까인)들을 흡수하고 그 문화의 요소를 일부 받아들였다고 보았는데, 이는 매우 합당한

의견이다.



데비소바 동굴유적은 종전까지 3~4만년전에 형성된 무스테리안 성격의 중기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절대 연대에 의하면 9층이 10000년,12층이 12000년 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이 동굴의 최하층인 22층에서 무스테리안과 르ㅏㄹ루아기법을 가진 무스테리안기

이전 시기의 석기들이 발견되었으며, 발열광측 정법에 의해 282000년이라는 절대연대가 산출되

었다. 이 석기들은 형태학적으로 볼때 , 후기 아슈리안기期의 일부 석기 전통과 함께 고졸한

르발루아기법과도 유사성이 보이고 있어서 무스테리안기의 기원을 밝힐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1993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우스띠-까라꼴 유적에서 는 30000년전의 층위에서

고식의 세형몸돌이 나타나 주목을 끌었다.


신석기 시대의 기원문제와 관련하여, 아무르강 하구 사까치-알리안의 가새지구에서 나온 고토

기와 후기 구석기시대의 전통을 이은 세석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이칼호 근처의 구석기

시대의 우스띠 까렌까 유적(기원전 7000년), 일본 나가사키현의 후꾸이 유적(12700,10750년 B.

P.),아이히메현 의 가미구로이와 유적(12165, 10125년 B.P.)와 비록 연대가 약간 늦지만 우리

나라 강원도 양양 오산리와 제주도 한경면 고산리 유적이 이런 범주에 들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이른 시기의 융기문 토기는 극동지역에서도 대략 8~9000년 전을 전후로

시작되어 그로마뚜하 유적, 노보빼뜨로프까 유적, 세르레예프까 유적, 오시노오제로 유적등의

유적에서 나타난다.

바이칼의 앙가라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신석기 시대는 끼또이문화(5000~4000 BC),

이사꼬보문화(4000~3000 BC),세로보문화 (3000~2000 B.C)등의 세문화로 나뉘어지는데, 가장

오래된 토기는 직물문 또는 압인문토기이며,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즐문토기 양식은 청동기

시대까지도 나타난다. 벨리까치 유적에서는 기원전 4020년의 탄소연대가 나왔는데 여기서는 아

가리 둘레에 점열을, 몸통부분에는 압인승석문이 있는 토기가 나오며, 쉴까에서는 몸통부분에

문양이 없고 아가리에 단사건무늬가 있는 원저토기가 보인다.그래서 쉴까 토기는두만강 유역의

신석기 시대 전기의 아가리에 단사선무늬가 새겨있는 토기와 비슷한 전통을 가진것으로. 바이

칼, 레나 아무르 지역에 북유럽의 빗살무늬계통의 토기가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다.당시 이 지역을 점거한 종족은 련재 꼬략, 축치, 길략족들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현재 이 지역

에 거주하는 퉁구스족(에벤키, 야쿠트, 부리야트, 알타이족)에 의해 오늘의 거주 지역으로 옮겨

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종족 이동관계와 한반도로의 이주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것이다.

한반도의 첨저형(빗살무늬토기)는 기형에 있어서 바이칼 지역의 토기의 것들과 상당히 밀접

한 관계가 있다. 시베리아의 민족학자들에 의하면, 정착의 평저토기와는 달리 이 집단은 이동을

전제로 한 수렵인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횡주 혹은

종주어골문이 시문된 토기의 분포범위는 대단히 넓어서, 널리 서시베리아부터 중앙아시아에까

지 퍼져 있으며, 시간적으로는 신석기시대(서시베리아의 에까떼리닌스까야 문화기등)부터 청동

기 시대(아파나시에보문화기 등)에 이르기 까지 나타난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앞으로

시베리아 학자들의 연구를 기대해야 할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중국 요녕성 신락(기원전 4500년), 금주시 성내 제2유치원 근처

(기원전 3500년, 금주박물관 소장), 하북성 무안현 자산 (7300년 전, 기원전 5300년)과 천서현

서채(6500년전 기원전 4550년 이상 하북성 박물관 소장)을 들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무문토기가 나타나는데 반해, 시베리아 지역은 청동기 시대, 나아가서

역사시대에 이르러서도 계속 즐문토기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 해야 할것이다.


첨저 토기의 전통이 어떻게 하여 한반도에서 고립되어 나타났는가 하는 점이다. 한반도 서남부

를 제외한 주변 지역은 강한 평저토기 전통이 유지되며, 극동의 경우에도 신석기 시대 이후 초기

철기시대, 말갈, 중세시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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