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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요하의 위치비정 및 상고사 제반사항에 대해서..(1)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6.04.29|조회수198 목록 댓글 0
베트콩 (vietcon92, defence.co.kr)
2004/03/02 (07:02) powered by DEFENCE KOREA Article Number : 11276
Access : 2897 , Lines : 55
요하의 위치비정 및 상고사 제반사항에 대해서..(1)
현재 흔히 말하는 요하(遼河)는 북위 43도, 동경 116도 부근의 내몽고에서 발원한 서요하와 북위43도, 동경 121도 부근의 요원근처에서 발원한 동요하가 합쳐져 요동반도서쪽의 발해만으로 흐르는 강을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 일컬어지는 요하는 요나라 건국후 새로 붙여진 명칭이며 그 전에는 서압록, 아리하등으로 불렸으며 요나라 건국이전의 중국사서에 나오는 요하는 현재의 난하(북위42도 동경115도 부근에서 발원하여 발해만으로 흐르는 강)로 비정하는 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설들로 인해 재야사학계에서의 요하의 위치비정은 우리나라 상고사에서 아주 중요한 키포인트가 되기때문에 재야사학계에서 말하는 요하가 지금의 요하와는 다른 강을 말하는것인지에 대해 따져보는것이 좋을듯합니다.

해서..

중국상고사를 적은 사서에 나타나는 요하는 현재의 요하를 지칭하는것이다라는 주장은 사학계에서는 일반상식처럼 되어있기때문에 이것에 대한 논의는 건너뛰고 상고사에 나타나는 요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닌 난하를 지칭한다는 설에 대해 논해보고자 합니다.

1. 삼국사기에 나타난 요하 및 요동-요서에 대해서

가)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권2 대무신왕 11년조 기사를 보면 [한의 요동태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침입해왔는데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것인가 신하들에게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좌보 을두지가 말하길 “지금 한 나라 군사가 멀리 와서 싸우니, 그들의 서슬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대왕은 성문을 닫고 우리의 군사를 튼튼히 하여, 적군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린 후에 나아가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요동이 요하의 동쪽지역을 일컷는 지명이며 요수가 현재의 요하를 말한다면 한나라 군사가 멀리와서 싸운다는 을두지의 말에 어폐가 생기게 됩니다. 즉, 압록강 중상류지역과 송화강 사이의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고구려와 한의 영토인 요동과는 아주 인접해있게 되는데 이 사이의 거리는 보급이 곤란할정도로 거리가 멀지않습니다. 따라서 을두지의 말에 어폐가 있거나 요동의 위치가 지금과는 달랐을거라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권2 모본왕 2년조기사를 보면 [장수를 보내 한의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요동 태수 채동이 은혜와 신의로써 대접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라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부분에서 북평-어양-상곡-태원은 아래의 지도에서 처럼 북경근처의 지명입니다.



모본왕 2년은 한광무제의 시기로 왕망을 무너트리고 한을 다시 건국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던 시기입니다. 이렇게 다시금 성세를 맞이한 한나라의 영토인 요동과 낙랑,현토등을 치지않고 바로 유주의 핵심부인 위의 4곳을 직접공격했다는것은 고구려와 저 4곳사이가 기습공격이 가능할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다는 추정을 가능케합니다. 또한 이것은 위에 을두지의 말을 인용해보더라도 어폐가 있게됩니다. 요동과 고구려사이의 몇백리 안되는 거리도 먼거리라고 칭한바가 있는데 요동을 뛰어넘어 2천여리가 넘는곳을 공격하고 아무탈없이 물러나왔다는것은 후한서(그리고 후한서를 인용한 삼국사기)의 오류이거나 요동군의 위치와 고구려의 서쪽경계가 현재 알고있는것보다 훨씬 더 서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권3 대조대왕 94년조 기사를 보면 [가을 8월, 왕이 장수를 보내 한 나라 요동 서쪽 안평현을 습격하여 대방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 태수의 처자를 빼앗아 돌아왔다.]라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부분에서 요동 서쪽 안평현이 사서에 기록된 서안평인지 확실치 않으나 만일

ㄱ)동일한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이라면 요동이 압록강 동쪽에 위치하게 되는 난감한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서안평이 압록강 하구의 단동지역이라는 학설이 꾸준히 제기되고있고 그것에 따르게 된다면 저런 결론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ㄴ)안평현과 서안평이 다른 지명이라도 [낙랑태수의 처자]를 빼앗고 [대방의 수령]을 죽였다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아시다시피 낙랑과 대방은 모두 한사군의 행정구역들입니다. 즉, 안평현에 대방의 수령과 낙랑태수의 처자가 모두 살고 있었다는 뜻이 되며 요동이 현재의 요하 동쪽지역을 지칭하는 지명이고 안평현이 현재의 요동 서쪽이라면 한사군의 한반도 존재설을 부정할수 있는 또다른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안평현의 위치를 저렇게 비정한다면 위의 가),나)에 나타난 기사와는 또다시 모순이 생기게 되므로 요동을 현재의 난하동쪽(지금의 요서)로 비정하고 안평현(서안평?)을 난하의 서쪽에 존재하는것으로 비정하게되면 위의 기사들에 나타난 모순들은 일거에 해소가 됩니다.
ㄷ)따라서 한사군이 요하(현재의 난하)를 중심으로한 요동지역에 위치해있었다면 저 위의 기사는 제대로 기술한게 됩니다. 결국 요동의 서쪽에 위치한 안평(서안평?)을 공격했다고 판단하게되면 요동과 요하 그리고 모본왕 2년조의 기사가 오류가 아닌 적확한 기술이라는것을 알게됩니다. 더해서 서안평에 관한 내용은 뒤에 동천왕조 기사에서 다시한번 다루겠으며 한사군문제는 뒤에 위만조선과 한사군에 관한 내용에서 다시한번 서술하겠습니다.

라)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권 4 고국천왕 19년기사에는 [중국에 큰 난리가 일어나, 피난하여 귀순하는 한 나라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이 때가 한 헌제 건안 2년이었다.]
한헌제 건안 2년이면 황건적의 난이 끝난후 조조,원소,공손찬등이 하북지역에서 패권을 다투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로 귀순한 한나라 백성은 지금의 하북성일대에서 거주하던 한나라백성이라고 봐야할것이며 이들이 저 난을 피해 2천여리가 넘는 길을 피해왔을거라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즉, 하북지역과 고구려와의 거리가 생각외로 가까왔을지도 모른다는것을 암시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한의 요동이 현재의 나하동쪽이라고 이곳에서 고구려와의 국경이 접해있다고 하면 하북의 난을 피해 하북의 백성들이 고구려의 경내로 귀순하여왔다는 기사가 좀더 확실해지게 됩니다.

마)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권5 동천왕 20년 기사에는 [위 나라가 유주 자사 관구 검으로 하여금 1만 명을 거느리고 현토를 침공하게 하였다. 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비류수에서 전투를 벌여 그들을 쳐부수고 3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하략]라고 나옵니다.
이 위나라의 침입은 이해보다 4년전인 동천왕 16년조에 요동의 서안평을 점령한 사건이 발단이 됩니다. 즉, 서안평을 공격한 고구려에 대해 응징차원에서 관구검이 군사를 이끌고 침입해온것이죠. 여기서 먼저 고려해봐야할것이 저 비류수의 위치입니다. 비류수라는 이름이 고구려초기부터 변하지 않고 내려온 지명이라면 현재의 요하 중-상류지역에 있는 지류일 것입니다. 한의 종말과 더불어 요동(현재의 요서) 또한 고구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가게 되어(서안평 점령이 그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됨.) 요동태수니 하는 국경쪽 지방관리의 명칭은 모두 사라지고 이후로는 중국본토의 군사들이 고구려에 공격해오게 됩니다. 동천왕조의 기사또한 중국본토의 유주자사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게 된 것이며 고구려 경내 깊숙히 쳐들어와 지금의 요하중류지역인 비류수근처에서 고구려군과 1차접전을 벌이게 됩니다.

자, 여기서 요하와 서안평의 위치를 다시한번 따져보겠습니다.

위에 대조대왕 94년조에 나타난 [요동 서쪽 안평현]이 동천왕 16년조에 나타난 서안평이라는 가정하에

ㄱ)서안평이 흔히 말해지는것과 같이 압록강 하구 단동지역이라면 요동이라는 지역은 압록강 동쪽에 위치하게 되며 압록강이 요하가 되버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안평이 단동지역이라는 말은 오류가 되버립니다. 요동 서쪽 안평현이라는 지명과도 배치가 되므로 서안평은 압록강 하구에 위치할수 없습니다.

ㄴ)서안평이 지금의 요하서쪽에 위치한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사군의 위치문제와 결부된 문제점을 다시 드러내게 됩니다. 즉 한사군의 한반도 존재설을 부정하게 만드는 역설로 존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ㄱ)항목과 이 ㄴ)항목에 의거해서 한사군의 한반도 존재설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ㄷ)한사군이 후한서에 적힌대로 위만조선을 4개로 나눈것이라면 고조선의 서쪽 경계는 ㄱ)과 ㄴ)에 의해 최대 현재의 난하까지 비정이 가능하게 됩니다. 즉 고조선의 평양(현재의 평양)천도설은 또다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즉, 북한이 내세우는 단군릉은 날조일 가능성이 아주 커지게 되는거죠.

ㄹ)동천왕대에 이미 현재의 요동지역을 거의 완전히 석권한 고구려는 다시 현재의 요서(저당시의 요동)서쪽으로 세력을 넓히게 되며 서안평을 공격하므로서 요서(지금의 난하 서쪽)공략에 거점을 마련하게 됩니다.

따라서 요하라는 강의 이름은 위에 언급한 가),나),다),라)를 따져보면 지금의 난하를 지칭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다음에는 중국측 사서를 통해 요하의 위치를 비정해보겠습니다.


사학 비전공자인 제가 오로지 저만의 추측을 가지고 역사를 이리저리 재단해보았습니다. 전문가분들이 보시기에 많은 헛점이 있을겁니다. 많은 반론부탁드리겠습니다.


celles 이글보고 도서관에서 윤내현교수의 고조선 연구중 요하부분을 보았는데, 사마천의 사기등의 기사를 근거로 요수를 지금의 난하로 비정하더군요. 2004-03-02 19:08:51
celles
celles 다만, 윤교수는 요동이라는 지역은 고대 중국에서 극동이라는 개념으로 쓰였고, 요서라는 지명은 그래서 후대에 생기었고, 요수는 이지역을 흐르는 강이라고 한다라 하더군요. 그리고 후대에 중국의 영토가 동으로 이동하자 요동또한 동으로 이동했다고 하네요. 2004-03-02 19:15:38
celles
베트콩 예.. 윤내현교수를 위시한 몇몇 대학교수님들과 재야사학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중 많은 분들이 요하를 현재의 난하로 보고 계십니다. 다음에 제가 올릴 글의 내용도 윤내현교수가 연구한부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겁니다. 2004-03-02 19:21:47
vietcon92
최경식 베트콩님/ 얼마전에 \'요동사\' 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2004-03-03 08:31:59
210.204.102.245
최경식 고구려와 그 이후 그 지역국가들은 \'요동인\' 이라는 다른 개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나오더군요. 아직까지 몽고를 비롯해서 동북아 원주민 계열과 우리가 언어/풍습이 비슷한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2004-03-03 08:32:08
210.204.102.245
최경식 5세기 후반에 저기까지 진출했다는 얘기는 살짝 오버가 아닌가 싶군요. 저렇게 되면 남조와 대치하던 구 전진(북조)는 어떻게 될 것이며... 2004-03-03 08:33:36
210.204.102.245
celles 국경이 난하까지이니 전진은 별 문제없지 않나요. 2004-03-03 10:39:20
165.132.133.162
베트콩 경식군.. celles 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전진을 비롯한 북조제국과의 문제는 특히 신경쓸부분은 아니라고 보네.. 위나라를 계승하고 삼국을 통일한 진(晉)나라이후 양자강 이북지방에서 일어난 5호16국과 북조시대는 2004-03-03 11:38:33
vietcon92
베트콩 서로서로 멸망시키고 멸망하는 혼란기의 와중이라 장성이북과 난하이동의 지역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고 보여지네.. 오직 전연의 모용씨만 고구려와 무력충돌을 빚을 뿐이었지만..모용씨 또한 하북성을 근거로 2004-03-03 11:46:42
vietcon92
베트콩 나라를 새우고 서남쪽의 제국가(5호16국)들과의 전쟁에 신경쓸 뿐이지 고구려와의 몇 번의 전쟁은 영토확장의 개념은 아니라고 보네. 따라서 고구려의 서쪽경계가 지금이 난하일대라고 하더라도 2004-03-03 11:48:13
vietcon92
베트콩 중국 북부지방에서 명멸한 5호16국및 북조의 국가들로 인해 요하 및 요동-요서의 위치비정에 관련해선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보네.. 2004-03-03 11:50:49
vietcon92
칼론 난하 하구에도 요택이라 불려졌을만한 습지대가 있나요? 수당 전쟁시에 요택의 전략적인 의미가 컸다는 글을 몇차례 본적이 있는데.. 그것이 난하라고 하면 요택은 대체 어디를 지칭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지는군요. 2004-03-03 23:19:39
211.199.230.104
베트콩 저도 그 부분이 좀 의아스럽습니다. http://www.megapass.co.kr/%7Ehsg1000/a30g-7.htm <= 이 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이 페이지에 적힌 내용중 뒷부분의 군사적 해설은 그닥 맘에 들지는 않지만.. 2004-03-04 00:36:50
vietcon92
베트콩 지명에 관한 내용은 충분히 고려해볼만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말씀해주신 그 요택에 대해선 뒤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2004-03-04 01:03:13
vietcon92
80년대초반 인가(?)하버드대 도서관에소장된(1800년대중국에서쓸어온)중국역사서에.국경을지칭하는 강을 요하라..해서,역사속에 요하는 계속이동한다라고.\'.아리수\' 의 수를우리말 도랑의\'랑\'을써\'아리랑\'다시한자로\' 압록강\' 2004-03-04 01:18:06
61.34.138.74
이어서 국경은 주로 강을끼고그어졌고 오락가락했으니\'요하\'는고유명사가아닌대명사가아닐런지요 2004-03-04 01:21:21
61.34.138.74
또이어서 위글중 습지대목에대한 제짧은소견 강줄기와기후조건은상당하게 변화합니다.지금의상황과 천수백년전상황과는..3인지4세기인지 북쪽동네에이상저온현상도 장기간에걸쳐일어나고..결국생존문제로 훈족도이동하고... 2004-03-04 01:41:06
61.34.138.74
또또이어서 바람이나모래때문에 \'원\'의궁전도현재북경지하에잠자고있고 현재의조건을과거에금과옥조로 대입시킨다는것은약간무리가...죄송..... 2004-03-04 01:47:18
61.34.138.74
베트콩 아리수, 아리하, 패수등과 같이 요하또한 고유명사가 아닌 대명사처럼 쓰였다는 견해는 저도 익히들어왔습니다. 즉, 위에 138.74님의 말씀처럼 국경지역을 흐르는강을 요하,요수라고 칭했다고 볼수도 있겠고 2004-03-04 01:51:27
vietcon92
베트콩 아니면.. 요라는 지역에 흐르는 강들에 어떠한 고유명사가 붙어있지않아서 그냥 통칭해서 모두 요수,요하라고 불렀을가능성도 있지요. 그쪽이 중국의 시각에서는 변방너머의 미개척지 비슷한 곳이었을테니 말이죠.. 2004-03-04 01:52:50
vietcon92
베트콩 그리고 요택이라는 말이.. 요하,요수를 중심으로한 습지인지 아니면 요(遼)라는 지역에 있는 저지대 습지인지 그것또한 고려해봐야겠지요. 2004-03-04 01:56:34
vietcon92
베트콩님께 오래되어 지금그책의이름과설명한학자는(재미)기억않나지만 아리랑,아리수.요하.압록강등은 다같은말이라들었읍니다..\'고어\'한국과중국의발음차이\'때문..압록을중국식으로발음하면.....책내용중.주나라시기..조선이건방지게조공치않고.. 2004-03-04 0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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