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한반도 남쪽 지역의 지석묘 축조시기를 기워넌 12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로 추정할 수 있으며...
2.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도 몇 개의 비파형 동검이 발굴된 바 있는데, 이것들은 중기형과 후기형에 해당된다고 한다. 실제로 송국리 유적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은 대체로 기원전 5세기 경으로 편년하고 있다.
3....고조선이 성장한 요동지역...
4.환웅 집단을 고조선의 유민에 비유한다면 지석묘를 축조하던 주인공들은 대체로 곰집단과 범집단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곰과 범으로 상징된 것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상나라의 유물 중 나무로 만든 의기나 무기에 범의 도안이 많이 보이는데, 그와 같은 범 도안은 왕실의 기에 장식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는 범의 입에서 사람이 태어난다고 하는 은대의 보편적인 사상과더불어 주목할 만하다. 범집단을 다순히 고조선 지역의 선주족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범 상징이 은족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면, 범으로 상징된 집단은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바로 은나라와 관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일단 범집단과 은족 사이의 관련성을 인정하면 이들 집단이 언제 고조선지역에 이주하여 곰집단과 어울려 살게 되었는지가 중요한 관심사로 된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은,주 교체기의 은나라 유민들 중에는 중국의 동북지역 대릉하 유역으로 이주한 집단이 있었는데, 그 중에 범 집단이 포함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정이 옳다면, 새로 이주한 범집단은 선주민인 곰집단과 일정 기간 공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다음에는 범집단과 환웅 집단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자. 어쩌면 그들 모두 은의 유민일 수 있다. 은나라가 망한 후 주나라의 지배를 피해 망명한 집단이 일시에 이주한 것이 아니라, 파상적으로 이주하여 고조선 지역에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여러 이주민 집단 사이에 시기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 규모와 세력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환웅 집단이 가장 큰 세력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추측이 타당하다면 고조선 지역의 토착 세력인 곰집단이 은나라로부터 온 이주민 집단 중 환웅집단과 결탁 하여 다른 이주집단들을 물리치고 고조선의 건국세력인 단군세력을 형성하게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단군으로 상딩된 집단에 대하여 살펴보자.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단군신화에 나오는 범집단의 존재를 은족의 이주민이라 본다면 고조선은 기원전 12세기나 그 이후에 세워진 것이 된다. 그때 은나라 유민들과 원래부터 고조선 지역에 살고 있던 곰집단은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조선의 표지적 유물로 거론되는 비파형 돔검이나 미소리형 토기 등은 은나라의 그것과 분명히 차이가 있다. 따라서 단군으로 상징된 집단이 고조선을 세웠고 그들이 비파형 동검등의 유물을 사용하였다면 그들은 은족과 구별된다. 여기서 범집단 및 환웅 집단인 은족과, 그 외 곰집단 및 단군 집단은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두 집단은 어떠한 관계에 있었을까? 범집단과 환웅 집단을 은의 이주민이라 본다면 그들은 은의 선진 문물을 가지고 고조선의 국가형성세력들에게 자극과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선진문물 중에는 청동기 제조기술이나 농업기술, 국가통치에 대한 정보 등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독특한 청동기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은나라의 이주민들로부터 청동기 제조기술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 형태 등은 독자적인 정치조직을 발전시켰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중국계 이주민들애게는 고조선 지역에서 토착민들을 지배하여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거나 또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조선은 중국과 구별되는 존재였던 것이다.이러한 정황에 근거하여, 곰과 ㅂㅁ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끔 해달라고 빌었다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겠다. 즉 환웅이라는 은의 유민보다 범으로 상징된 은의 유민이 어느 정도 먼저 고조선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그후 원래 그 지역에 살고 있던 곰집단과 일정한 동맹 또는 경쟁관계를 맺었으며, 그러다 결국 곰집단이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집단도 일부 은계 이주민과의 관계 속에서 자극과 영향을 받아 고조선의 국가형성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 결과 성장한 집단이 단군 집단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단군 집단은 중국계 이주민 집단과는 전혀 다른 세력이다.
5.환인은 중국 은나라 지배세력이었고 은이 망한 후 현재의 요하 서쪽의 대릉하 근처의 요서 지역으로 이주한 유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은의 유민들이 처음 거주한 곳을 단군시화에서는 신시라 지칭한 것으로 짐작된다. 은,주교체기에 현재의 요동 지역에 거주하던 범집단과 곰집단은 그와 같은 은나라 유민들의 영향과 자극을 받아 정치,사회적인 발전단계를 거쳤으며 결국 고조선 소국을 형성한 단군 집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6.은의 유민인 범집단이 환웅 집단보다 먼저 요동으로 이주하여 그 지역의 토착세력이었던 곰집단과 함께 머물었을 가능성 또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7.단군의 탄생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곰집단은 원래 추장사회 단계의 세력집단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하늘에 있던 존재, 즉 상제로 나오는 환인은 은나라의 지배세력일 수 있으며 환인의 아들로 지상세계에 내려온 환웅은 은나라가 망하고 요서지역으로 이주한 은나라 유민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곰이 먹었던 마늘과 숙은 은나라 유민이 가지고 왔던 선진문물일 수 있고, 웅녀는 은나라의 문명을 받아들였던 요동지역의 토착세력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논리로 단군은 고조선의 건국세력을 뜻하게 된다.
8.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은말,주초의 은족 이주민에 의한 자극과 영향이 초기국가형성의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앞에서 우리는 은의 우민인 범집단과 환웅 집단을 건국과 관련이 있었던 세력으로 거론한 바 있다. 그것이 옳다면 고조선의 국가형성 시기는 은나라가 망한 이후가 될 것이다.
9.기자가 조선으로 왔다고 해쑈는데, 그가 온 지역은 대릉하 유역이라고 추측된다. 이는 대릉하 유역에서 기족을 비롯한 주나라 초기의 은족계 청동기가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말,주초에 대릉하 유역까지 진출한 은족은 별다른 역할이 없었는지 동북아시아의 문화나 역사의 전개와는 거의 무관할 정도라고 한다. 필자 역시 은족 스스로 고조선을 세우지는 않았다고 본닫.다만 그들은 나름대로 정치세력을 형성하였고 또 고조선의 국가형성에 적지 않은 자극과 영향을 끼쳤던 것이ㅏ.
10.염사착설화에는 왕망 지황시(20-23)에 한인(漢人) 호래 등 1천 5백 명이 벌목하러 왔다가 한(韓)에 잡혀 노(奴)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1세기 초 한지에는 중국인 1천5백 명을 노비로 잡아 쓸 정도의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필자는 한반도 남쪽지역에 존재했던 추장사회의 지표적인 자료로서 지석묘를 거론한 바 있다. 그 축조연대는 기원전 12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로 추정되는데..
12.추장사회는 계급은 있었으나 신분은 없었다. 각 촌을 단위로 씨족 집단이 있었던 추장사회는 혈연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회였다. 하지만 소국 단계에 이르면서 이주민 집단으로 이루어진 최고 지배세력이 상층신분을 그성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층신분은 그 밑의 세력들과 혼인을 하지 않는 등 혈연적인 관계를 단절했다. 따라서 소국 이후 정치체의 지배는 혈연적인 원리가 아닌 행정적인 원리에 의하여 이루어 졌다.
13.여기서 한국의 초기국가로서 성읍국가를 형성한 세력들이 과연 신석기 이래의 부족장 후예이거나 그 전통을 이어받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한국의 초기국가로서 대표적인 나라들인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건국신화를 주목하면 그 건국세력들이 모두 이주민들이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초기국가를 형성한 세력들은 결코 신석기시대 이래의 부족장의 후예일 수 없다. 더욱이 소국 또는 성읍국가 형성 이전의 촌락세력들마저 이주민이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다음 단게에 해당하는 소국 형성세력은 신석기시대 이래의 지배세력들일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14.초기국가로서 소국을 세웠던 이주민들은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고조선계의 이주민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고리국-부여-고구려-백제로 이어지는 계통의 이주민집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