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동아시아의 문제아 중국?? | |
| 번호 : 6 글쓴이 : 麗輝 |
조회 : 10 스크랩 : 0 날짜 : 2006.04.24 2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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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천하의 중심? 왜 그런 말들이 나왔을까?'
그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한번쯤 고민해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뭐라고 대답을 할껀지. 주인장 역시 이런 질문은 내심 갖고 있으면서도 막상 대답하려니까 쉽지가 않았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에 대한 주인장의 생각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도 될꺼니와 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생각이 어떤 고정관념에 의해 생겨나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있는 질문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엉뚱한 의문이지만, 사람들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이 아닌가.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다, 라고.
유목국가는 대체적으로 중원의 영토에 대한 야욕이 없었다. 마읍에서 흉노군에게 포위당한 한군이 묵특선우의 연지에게 뇌물을 주면서 포위를 풀어주길 원했고, 그 자리에서 연지는 묵특에게 이렇게 전했다.
"두 군주께서는 서로 곤홉스럽게 하지 마시오. 지금 한지(漢地)를 얻는다 해도 선우는 끝내 그 곳에 살지 못할 것이오."
이것만 보더라도 유목국가는 중원의 영토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그 곳을 지배하고 영유할만한 여력도, 이유도 없던 나라였다. 흉노가 그러했고, 유연이 그러했고, 돌궐과 위구르가 그러했다. 모두들 중원 왕조를 멸망시킬 정도의 신생국으로서의 에너지와 가공할만한 군사력을 지닌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오직 중원 왕조와 적당한 거리를 둔채 관계를 지속시킬 뿐이었다. 물론 중원을 지배할 경우, 엄청난 재화의 축적이 이루어져 유목국가의 국력 신장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호동은 이를 두고 그럴 경우, 물론 구성원들의 재력이 축적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만큼 군주권이 강화되기 때문에 군주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나, 부족의 수령이나 여타 구성원들에게 있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요의 태종이 후진을 멸하고 북중국을 장악한 뒤, 그 곳에서 국가의 기틀을 닦고자 하였으나 부족의 수령들이 한사코 반대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결국 군주권의 토대 자체가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결국 정복왕조 시대에 와서야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유야 어찌했든, 유목민족으로서는 그들만의 공간과 존재가 위협받지만 않는다면 중원의 숨통을 강하게 죌 필요가 없었던 듯 하다. 이는 마찬가지로 한국사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위만조선은 전한과 주변 제국의 교통로를 장악하고 그 중간이득을 취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중국의 재물과 지원을 통해서 동북방의 맹주로 군림하였다. 그럼에도 위만조선은 흉노와 전한 등과 활발한 교류를 했을 뿐, 본격적으로 타 문화권에 대한 침략 의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한 무제가 침략해 왔을때의 대응만 보더라도 자신들의 존재가 위협받을 경우에는 어떠한 무력행위도 불사할 정도였다.
이후에 등장한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다. 북방의 유연과 서쪽의 토욕혼, 북중국의 북위, 남중국의 여러 남조 왕조들과 함께 각각의 중심축으로서 천하를 관리했다. 그 과정에서 한 무제나 당 태종과 같은 주변 국가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야욕은 보이지 않는다. 비록 고구려가 요서를 넘어 북중국 일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고 북위에서 고구려계가 득세하여 정권을 독단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고구려는 자신의 천하를 지켰을 뿐, 다른 사람의 천하까지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과 대립 속에서 노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긴장과 패기를 잃지 않고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 태종 이후 당 고종이 등장하면서 당은 천하통일이라는 야욕을 버리지 못 했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몰락한다.
그러는 사이, 중국이라는 대상 자체가 불분명한 시간들이 흘러 정복왕조가 등장하고서도 그런 현상은 계속된다.
송이 존속할 당시 북으로 요-금-원으로 대비되는 정복왕조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들은 북중국을 침략해 세폐를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북중국을 기반으로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기까지 하였다. 분명 앞서 존재했던 흉노~위구르들과는 다른 현상이었다. 이미 중원의 거대 제국에 의한 기미주 지배를 통해 유목민족은 정주국가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국의 통치에 효율적이었던 기미주 지배는 결국 창날이 되어 정복왕조의 등장이라는 결과물을 낳았던 셈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도 중국, 즉 송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버리지 않았다.
윤영인은 당시 송이 정복왕조에게 계속되는 침략을 받고 엄청난 양의 세폐를 바쳤지만 당시 송에게 있어 물자적 부담은 과다하지 않았고 송 관료들 역시 이런 조약을 외교적 성공으로 보았다고 했다. 세폐의 액수는 전쟁 비용의 1~2%, 송 일년예산의 0.5%에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요에 보낸 비단의 생산량은 일개 郡의 생산량 정도였고 심지어 그중 최소 60%는 국제무역에서 큰 흑자를 본 송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추정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당시 송은 동아시아 최고의 경제대국이었고 그 경제력을 기반으로 주변 국가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는 경제적으로 번영을 맞이하였던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송이 자꾸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석한다. 즉, 자신들에게 얼마 되지도 않는 세폐만 잘 내면 천하가 다 경제적 번영을 맞이하고 안정을 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군사를 일으켜 주변 세력과 분란을 벌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송의 패배와 세폐의 증가, 국경에 대한 약탈로 이어졌다. 그 모든 것은 중원의 영토에 대한 정복왕조의 욕심도, 이민족의 지배하에서 독립하려는 북중국 예하 한인들의 욕망도 아니었다. 다만, 천하의 중심은 송이어야 한다는 쓸떼없는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역대 송 황제들의 아집이요, 망상때문에 일어난 분란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대체 왜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것일까? 이제 그에 대한 답을 할까 한다.
중국은 마치 여러 정의로운 용사들이 처리해야 할 무시무시한 큰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인간들을 공포와 살육의 현장으로 몰아넣는 악마가 때로는 큰 힘을 얻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영웅적인 용사들에 의해 봉인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악마의 등장에 대비하기 위해 그만큼 인간 세상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고 항상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준비를 해왔던 셈이다. 그러면서 힘을 길러서 악마의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인간은 늘 노력해왔다. 그렇다고 인간이 악마가 봉인되었다 하여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그 악마적인 기운에 그 자신이 악마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 악마를 억누르던 인간에게 악마가 씌었으니 그 무시무시함은 기존 악마보다 훨씬 더 한 경우가 도래하기도 했다.
뭐 대강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정도다. 중국은 동아시아의 용광로이자 동아시아의 활력소였다. 하지만 그런 원초적인 존재가 중국이었기 때문에 항상 그들을 통제해주고 감시해야 하는 존재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바로 중국에서 변방 이민족으로 불리던 집단들이었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들이야말로 동아시아의 질서를 유지하고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중국은 오직 동아시아의 문제아 노릇만 했지, 요즘식의 '세계경찰' 노릇을 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즉, 동아시아의 균형잡힌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한번도 갖질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헛된 한무제병같은 고질병에 앓아서 동아시아를 두고두고 분쟁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중국을 천하의 중심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제어가 안 되는 원시적인 상태의 중심이 사라진다면 동아시아 자체가 대응할 상대가 사라질테니 말이다. 중원에 소위 한족에 의한 국가가 사라지더라도 한문화라는 것이 남아 그 중심에 존재했기에 오늘날까지 중국과 주변 국가들간의 대립은 계속 이뤄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중국은 그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주변을 마구마구 삼키려고 하고 있다. 마치 판타지 소설 속의 무시무시한 마왕처럼 말이다.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뜻을 주인장은 이렇게 해석하려고 한다. 천하를 유지시켜주는 가장 원초적인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중국은 진정한 천하의 중심은 영원히 될 수 없을 듯 싶다. 앞으로도 영원히.
- 참고문헌 -
김호동, 1993,「당의 기미지배와 북방 유목민족의 대응」『역사학보』137, 역사학회. 고마츠 히사오 외, 2005,『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소나무. 윤영인, 2005,「몽골 이전 동아시아의 다원적 국제관계」『만주학회 11차 학술대회발표문』, 만주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