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티베트 불교와 동아시아의 다원적 천하관 | |
| 번호 : 7 글쓴이 : 麗輝 |
조회 : 7 스크랩 : 0 날짜 : 2006.04.23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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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제, 당 고조, 대원울루스, 청
이들의 공통점은 한때 일원적 천하관을 이룩한, 소위 천하통일(天下統一)을 이룬 군주들이다. 하지만 몽골족에 의해 대원울루스라고 하는 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제국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한 무제와 당 고조 당대에 잠시만 실현된 특징이 있다. 즉, 몽골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12세기 이전에는 동아시아 전체가 항상 다원적 천하관으로 구성되었지, 일원적 천하관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몽골이 등장한 이후에는 세계가 바뀌었다. 당시 사람들이 세계라고 하는 대부분의 판도가 몽골의 지배 아래 놓였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삼한(三韓), 즉 고려만이 왕조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려 왕가가 원 왕조 후기, 부마도위 집안이 되면서 고려는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12세이 이전, 요, 금, 서하 등의 정복왕조와 남송이라고 하는 중원왕조와 함께 다원적 천하관을 구축하던 세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었다. 즉, 동아시아는 물론 전아시아가 다원적 천하관이 아닌 일원적 천하관에 의해 100여년간 지내면서 긴장과 상호 견제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것이다.
이후 명 왕조가 들어서면서 대원울루스가 이룩한 일원적 천하관을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청 왕조가 생겨난 초기에도 이런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분위기에는 단순히 대원의 지배 아래 있던 여러 세력들이 군사적으로 성장한 것 뿐만 아니라 티베트 불교라는 사상적인 면도 일면 동조하고 있다. 속칭 라마교라고도 불리던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뿐만 아니라 몽골과 만주, 중앙아시아, 칭하이(靑海) 고원 등지에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13세기 이후 중앙유라시아사 전개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원이 홍건적의 난에 의해 타격을 받아 결국 주원장의 명에 의해 다시 북방 초원으로 쫓겨났지만 칭기즈칸의 가계는 여전히 몽골 일대에서 주도적인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후대에 가면 티베트 불교의 권위에 힘입어 혈통적인 면이 강한 칭기즈칸계보다는 전생과 윤회의 사상에 입각해 칭기즈칸계 군주들의 전생군주로 인정받은 계열이 더 강한 권세를 보유했지만 어쨌든, 몽골이 명에 밀려 북방 초원에서의 주도권마저도 내준 것은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티베트 일대에서 달라이 라마라고 하는 종교적 지배자의 위세가 티베트 뿐만 아니라 몽골과 만주 일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중원왕조에 의한 일원적 천하관은 형성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 사상이 왕권과 결부되어 생겨난 보살왕 사상이 티베트와 만주, 몽골 등지에 널리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은 부처이다. 번뇌를 끊기 위해서 계율을 지키고 부지런히 명상하고 수행한 사람은 곧 '깨달은 자(부처)'가 될 수 있었는데 이처럼 축복받은 사람은 소수의 엘리트에 불과했다. 여전히 윤회라는 고통의 바다(苦海)를 헤매는 일체의 생명이 있는 것(衆生)을 위하여 이후 대승 불교 운동이 일어났고 거기에서 보살(菩薩)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이 생겨났다. 보살은 수행을 완수하여 완전히 부처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일체의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한 자비심으로 인하여 육도윤회의 세계에 남아 일체의 생명이 있는 것을 '부처의 경지'로 인도할 때까지 스스로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서원(誓願)한 존재를 말한다.
이처럼 자비심 때문에 육도윤회에 남게된 보살이 불교를 통해 사람들을 선행으로 인도하는 이상적인 왕이 보살왕, 더 자세하게 언급하자면 흔히 말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인 셈이다. 군대(車輪)으로 사방을 정복하고 태양(日輪)이 만물을 기르듯 국토를 풍요롭게 양육하는 이상적인 왕, 이러한 전륜성왕 사상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불교와 태양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전륜성왕에게 불교를 융성시켜 국토를 편안히 보호하고 육성하는 왕이라는 의미가 부가된 셈이다.
그렇게 봤을때 보살은 수행을 통해 부처 경지에 이른 자를 가리키므로 이론상 여러 보살이 동시에 출현할 수 있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 사상은 여러 보살왕이 각자의 왕국에 군림하면서 전체로는 하나로 통일되어있는 다원적 천하관을 만들어낸다. 이는 유교 세계가 천명을 받은 한 사람의 황제를 인정하고 그 황제를 피라미드형 사회의 정점에 두는 일원적 천하관을 갖고 있는 것과 확실하게 대조적이다. 실제 이런 보살왕 사상은 티베트 불교 세계에 수용되어 티베트의 송첸 감보왕, 티송 데첸 왕, 몽골의 쿠빌라이 칸과 알탄 칸, 청 왕조의 강희제와 건륭제같은 유명한 보살왕들을 배출해냈다.
흔히 알고 있는 대승불교, 소승불교와 함께 티베트 불교는 분명 불교의 3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는 13세기 격동의 중앙유라시아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쟁점 사항으로 부각된 것 또한 사실이다. 티베트 불교의 수장격인 달라이 라마는 청 황제와 동등한 존재이자 몽골 왕공들에 있어서 상위의 존재였는데 이는 청 황제조차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즉, 달라이 라마에 의해 티베트 불교의 보살왕 사상이 동아시아의 마지막 다원적 천하관을 이룩해냈던 것이다.
명-청이 지속되는 시기에 조선에서 불교를 국교로 신봉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이다. 소중화를 외치며 청에 대항하는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국난을 치르기보다는 오히려 국제적인 안목으로 사상적인 면에 개혁을 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실제 티베트 불교가 중심이 되어 돌아간 당시 국제사회에서 조선과 일본은 전혀 주류로 유입되지 못 했으며 언제나 변방에만 머물러 있었다. 마지막 다원적 천하관이 실현되던 시기에서 조선이 거시적인 안목으로 자발적인 노력을 했더라면 어찌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원적 천하관은 건륭제가 금병제도, 즉 티베트 불교의 전통적인 활불 제도를 폐지하고 차기 달라이 라마의 후보자를 적은 종이에 적어 금병에 넣어 추첨하는 제도로 바꾸게 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화신 라마승간의 부패의 근원을 단절하고 네팔의 구르카 군대가 티베트를 침범한 것을 정벌하면서 건륭제는 막대한 전비금을 쏟아부었고 결국 그의 불교 신앙은 급속히 냉각되어 이와 같은 제도를 마련했으니 이것이 현재 중국이 티베트를 지배했다는 증거로 삼는 금병제도이다. 실제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인해 청 왕조가 티베트 내정을 강하게 간섭할 여유가 없어지자 금병제도는 사라지지만 한편으로는 티베트 불교는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청 왕조를 같이 잃어버려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보살왕 사상에 입각한 다원적 천하관. 그것을 유지하고 다양한 티베트 불교 신봉세력들이 다투던 동아시아는 18세기가 넘어서면서 점점 기존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미 티베트 불교의 신봉세력들이었던 칭하이 호쇼트부, 몽골의 오이라트, 준가르 등이 점차적으로 청 왕조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고 티베트마저도 청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티베트 불교에 의해 다원적 천하관이 형성되던 마지막 시기가 지나고 서구 열강의 침입 아래 아시아 전부가 고통에 신음받게 되고,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원적 천하관의 재현은 동아시아에서 다시 찾아보기는 힘들어졌으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다 할수 없다.
- 참고문헌 -
르네 그루쎄 / 김호동 외 譯, 1998,『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사계절. 고마츠 히사오 외 저 / 이평래 譯, 2005,『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소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