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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의 생태학적 인식과 자연친화적 홍익인간 사상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6.08.18|조회수124 목록 댓글 0
 

      단군신화의 생태학적 인식과 자연친화적 홍익인간 사상


                                                                           임 재 해

1. 단군신화의 홍익인간 이념

단군신화에1) 갈무리된 이념은 ‘홍익인간’이다. 왜냐하면 환인(桓因)의 아들인 환웅(桓雄)이 인간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의도가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천신 환인이 이에 동의하여 환웅을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데서 신화가 전개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단군신화의 이념이 홍익인간이라는 사실은 뚜렷하다. 그러나 홍익인간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이며 무슨 내용인가 하는 것은 전혀 진술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홍익인간 사상을 단군신화 자료 자체에서 포착하지 않을 수 없다.

단군신화에는 홍익인간을 추구해야 할 이념으로 분명하게 표방하고 있으되 이야기 줄거리 어디에도 이를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설명한 대목이 없다. 관념적 설명을 기대하게 되면 홍익인간의 이념적 행방은 묘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홍익인간을 실현하려고 한 환웅의 행적은 생생하다.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고자 하였으므로, 환웅이 지상에서 실현하고 이룬 행적을 재구성하면 그 가운데 홍익인간의 실천적 이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단군신화 속에서 홍익인간에 관한 설명을 찾을 것이 아니라, 환웅이 인간세상에 내려와 태백산 신단수 밑에서 신시를 베풀고 곰을 인간으로 만들어 단군을 낳았으며,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뒤에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해석학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하는 사실에 집착하여 건국신화로서 역사적 사실만 주목하기 일쑤이다. 이 사실은 단군신화의 한 대목에 해당되는 내용일 뿐 아니라 단군의 대표적 행적을 담은 하나의 사건에 한정될 따름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건국신화라고 하는 역사적 시각에서 벗어나 열린 눈으로 단군신화를 보면 단군신화의 전체 줄거리가 새롭게 포착되고 다양한 주체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신화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새롭게 보인다.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거느리고 지상의 어디에 터잡았으며 누구와 어떻게 교섭하는가 하는 점을 주목하면 다분히 자연친화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흔히 웅녀로 표기되는 곰네의2) 변신과정을 통해 최초의 인간은 누구이며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 하는 인간시조신화로서 성격도 포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군이 죽어서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는 신화의 마무리 대목을 통해서 단군신화는 산신의 기원을 말하는 산신신화일3) 가능성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단군신화는 건국신화이기도 하지만, 인간시조신화이자 산신신화이기도 한 것이다.

환웅과 같은 천신이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홍익인간’을 실현하려는 꿈을 꾸었다는 사실에 다시 눈을 돌리고, 우리 시대의 인간은 어디를 보고 무슨 꿈을 실현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신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데, 인간은 인간만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인간세상 속에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신이 인간을 위하듯이 인간도 누구를 위한다면 그 대상은 누구일까. 환웅이 인간세상에서 실천한 일은 인간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신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이타적인 행위를 했다면, 인간은 자연을 이롭게 하는 이타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신, 인간, 자연의 관계이자 질서이다.

신이 인간을 구원했다고 해서 인간이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신만을 섬기면 종교가 되지만, 신이 인간을 구원한 모범을 본받아 인간이 자연생명을 섬기게 되면 자연친화적인 공생의 세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신화적 서사의 내용이 바로 환웅이 의도한 홍익인간의 실현이라 생각하며 단군신화의 서사적 내용 전체 속에서 홍익인간의 이념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한편, 나는 생태학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 세계관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이 시대의 가치관이자 단군신화에 갈무리된 홍익인간 사상이라 추론한다.


 2. 단군신화의 생태학적 세계관 인식

크게 보면 단군신화의 서사적 구조는 신과 인간, 동물 사이에서 전개되고 그 주무대는 태백산 신단수에 설정되어 있다. 건국시조인 단군의 출현은 신과 동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루어지되, 신도 인간을 동경하고 동물도 인간을 동경함으로써 인본주의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천신인 환웅이 인간세상을 동경한 나머지 마침내 지상으로 내려올 뿐 아니라, 동물인 곰과 호랑이도 사람이 되고자 굴 속 수행을 한다. 인간이 신과 동물의 중심에 있는 것이자, 신과 동물이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계가 바로 인간세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에 터잡고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인간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밑에서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과정에 우사(雨師)․운사(雲師)․풍백(風伯) 등 기상을 관장하는 신격이 등장하는가 하면, 곰과 범 등 동물들까지 출현하여 사람이 되려고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는다. 그리고 사람으로 변신한 곰네가 환웅과 만나 비로소 단군을 낳는데, 그 단군은 죽어서 산신이 된다. 인간중심주의의 세계상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생태학적으로 공생할 뿐 아니라, 신과 인간, 동물이 존재론적으로 순환하는 인본주의 세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홍익인간 이념은 이처럼 자연과 공생하는 인간세상과, 다른 존재로 전환되고 순환하는 세계상과 만나는 것이다.

온전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단군은 생태학적 인간이다. 생태학적 인간을 달리 말하면 자연의 아들이자, 자연 속의 인간이다. 자연 곧 천지(天地)를 인간의 부모로 인식해 온 자연관은 민속신앙의 전통 속에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사실 가장 생생한 인식은 단군신화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그 역사적 뿌리가 퍽 깊다.


   1) 인간존재의 인식


    단군신화에 의하면, 단군의 아버지는 하늘에서 하강한 환웅(桓雄)이며 어머니는 동굴 속에서 사람으로 화한 곰네[熊女]이다. 하늘 아버지 환웅과 땅 어머니 곰네 사이에 단군이 태어난 것이다. 이처럼 단군신화는 천부지모(天父地母) 사상을 고스란히 갈무리하고 있다.

   천부지모 사상을 존재론적으로 인식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신성(神性)과 수성(獸性), 곧 신격과 수격(獸格)이 잠재된 존재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존재이자 신격인 아버지 환웅과, 땅의 존재이자 동물격인 어머니 곰네의 피를 반반씩 물려받아 태어난 인간 단군은 인간의 존재론적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도식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4)

인세를 동경한 환웅(인)격 : 수(인)←인간을 동경한 곰과 범

[인격이 잠재된 신격]            [인격이 잠재된 동물격]


인세에 내려온 환웅신인격 : 수인격동굴에서 금기를 지킨 곰녀

[인격이 드러난 신격]            [인격이 드러난 동물격]


곰녀와 혼인한 환웅(신)격 : 인(수)환웅과 혼인한 곰녀

[인격화된 신격]            [인격화된 동물격]


(신․수)

혼인에 의해 사람으로 태어난 단군

[신격과 수격이 함께 잠재된 온전한 인격]


   천상계의 ‘신()격’인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와서 인세의 왕이 되면서 ‘신인(神人)’노릇을 하다가, 곰네를 맞아 잠깐 ‘인()격’으로 화하여 성혼을 한다. 이와 맞서 지하계의 ‘수()격’에 해당되는 곰은 ‘수인(獸人)’으로서 곰네가 된 뒤에 환웅과 혼인함으로써 ‘인()격’을 성취하는 셈이다. 따라서 단군은 ‘인()격’과 ‘인()격’의 결합에 의해 태어남으로써, 가장 온전한 ‘인(신․수)격’에 이른다. 이러한 체계는 사람됨의 품격 위상을 나타내면서 인간이 지닌 인성의 특징을 상징해 준다. 공간적인 체계로 도식화하면 단군의 위상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천상계……인세를 동경한 환웅 : 신(인)격………………하늘[天]

          신시를 연 환웅대왕 : 신인격

지상계……곰녀의 짝이 된 환웅 : 인(신)격………… 아버지[父]


고조선……나라를 세운 단군왕검 : 인(신․수)격………사람[母]

지상계……환웅의 짝이 된 곰녀 : 인(수)격………… 어머니[母]

          여성으로 변신하는 곰 : 수인격

지하계……사람이 되고자 한 곰 : 수(인)격……………… 땅[地]


   인간존재는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존재이자, 신성과 수성을 안으로 간직하고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가장 사람다운 사람은 신과 동물의 상대적 존재면서도 어느 정도는 신과 동물의 성격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다. 신과 동물의 성격을 균형 있게 아우르는 가장 조화로운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수양하고 노력하면 신성한 존재로 비약할 수 있는가 하면, 욕망에 사로잡혀 나쁜 짓이나 일삼으면 짐승처럼 타락한 존재로 떨어질 수 있다. 단군신화는 인간의 자질을 절묘하게 나타내고 있는 셈인데, 단군은 사람됨의 본보기로서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신성을 널리 발휘하고 구현해서 나라를 세우고 마침내 산신으로 비약하는 성취를 이루었던 것이다.5) 


   2) 공간적 무대와 환경

   단군신화가 전개되는 서사적 무대를 보면 기상과 같은 자연현상과 지리적 공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환웅이 주체가 되어 태백산 신단수 밑에 자리를 잡아 신시를 베풀고, 비바람과 구름의 신을 통해 기상현상을 다스려서 우순풍조를 이룬다. 지리적 공간은 태백산 신단수이며, 기상학적 현상은 비바람과 구름이다. 산과 나무, 비, 구름 바람 등 자연현상 그대로이다. 이런 상황 속에 등장한 것이 곰과 범이다.


   ㅇ 공간 -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온다.      

   ㅇ 기상 - 환웅이 우사, 운사, 풍백을 거느린다.


   천신인 환웅이 인간화되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환인의 도움 아래 지상으로 내려와서 스스로 신시를 베풀고 천왕이 된다. 그러나 동물이 곰과 범이 인간화되는 데에는 시련이 요구된다. 인간세상을 이루는 주체에 따라 그 무대와 환경이 크게 다르다.

   같은 동굴에서 생활하던 곰과 범은 환웅을 찾아가서 인간이 되고자 빈다. 환웅은 천신일 뿐 아니라 스스로 인간화의 보기를 보였기 때문에 섬김의 대상이 된다. 동물이 인간으로 화한다는 것은 대단한 작위이자 놀랄 만한 비약이다. 그러한 비약의 공간이 동굴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쑥과 마늘이다. 동굴은 정착생활 공간이라는 점에서 집을 짓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햇볕을 볼 수 없는 땅속 생활이라는 점에서 예사 정착생활과 다르다. 더군다나 햇볕을 보지 못하도록 100일 동안 굴 속에서 지내도록 요구한 까닭에 상당히 지독한 정착생활이라 할 수 있다. 곰과 범이 먹은 쑥과 마늘은 식물이다. 식물을 먹는다는 점에서 채취생활에 의한 채식이지만, 쑥과 마늘은 맛이 아주 자극적이라는 점에서 예사 채식과 다르다. 아주 지독한 채식이다.    


   ㅇ 공간 - 동굴 속에서 햇볕을 보지 않고 생활한다.

   ㅇ 식생활 - 쑥과 마늘을 먹는다.


   동물은 인간화 과정에 대단한 시련을 거친다. 범은 그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 까닭에 좌절한다. 곰은 시련을 잘 견뎌서 3칠일 만에 여성으로 화한다. 범은 원래 육식을 하고 산천을 마음껏 내달리면서 지내는 짐승이다. 예사 채식과 정착생활도 견디기 어려운데 지독한 채식과 정착생활을 견딜 수 없다. 그러나 곰은 다르다. 원래 어느 정도 채식할 뿐 아니라 겨울에는 동굴 속에서 지내는 까닭에, 지독한 채식을 하면서 햇볕 없는 동굴생활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다음에 비로소 곰네가 신단수 밑에서 환웅과 만나 아이를 배고 단군을 낳는다. 단군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세우지만 곧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겨서 1천5백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 뒤에 도읍을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으나 다시 아사달에 돌아와 산신(山神)이 되었다. 단군의 지리적 공간도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시작하여 서너 차례 도읍을 옮기지만 백악산 아사달을 주무대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사달의 산신으로 좌정한다. 신단수라는 나무와 아사달의 백악산이 주요 공간이다.

   단군은 평양성과 아사달, 장당경을 무대로 삼아 오고 갔지만, 최종적으로 아사달의 백악산으로 되돌아 와서 산신이 된다. 인간으로서 단군은 평지와 산을 두루 택했지만 신격으로서 단군은 아사달의 백악산을 택한 것이다. 인간에서 신으로 비약하면서 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산을 길지로 선택하는 노력이 신격으로 비약을 보장한 것이다. 곰이 인간으로 비약하는 데 비하면 시련은 크지 않지만, 단군 또한 산으로 숨어들지 않고서는 결코 산신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비약의 시련이 적었을 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같은 신격도 인간세상에 동화하는 데에는 태백산 신단수와 같은 장엄한 자연공간의 선택과 비바람과 구름 등의 기후현상을 다스리는 존재가 필요하다. 신격답게 아무런 장애나 시련이 없었지만, 풍수지리에 해당되는 기본적인 자연조건을 잘 가리고 다스리는 슬기는 필요하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하더라도 자연지리와 기후현상조차 배제할 수는 없다.

   이처럼 단군신화에는 신과 인간, 동물이 함께 등장할 뿐 아니라, 하늘과 땅, 산과 나무, 비바람과 구름 등 모든 자연현상과 더불어 생태학적 공생을 이루는 가운데 고조선의 건국과정을 이야기하고 단군이 산신으로 좌정한 내력을 들려주고 있다. 따라서 단군신화는 한갓 건국신화로서 역사적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의 조화와 변화 속에서 인간이 태어나는 인간시조신화의 성격과, 인간의 자연선택에 의해 산신으로 비약하는 산신신화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하늘에도 천신이 있고 산에도 산신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자연의 영성을 인정하고 자연생명을 신성하게 여기는 자연친화적 세계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3) 주체의 성격과 전환

   기독교신화가 신본주의에 바탕하고 있다면 단군신화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단군신화에는 천신도 인간세계를 동경하고 동물도 인간세계를 동경하며 인간으로 살기를 원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하여 인간중심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환웅과 곰처럼 신과 동물이 인간으로 화하는가 하면, 단군처럼 인간 또한 신으로 화하는 양상을 보여서 신과 인간, 동물이 서로 존재론적 순환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다른 존재로 전환되지 않은 주체들은 더 이상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환인과 범이 그 보기이다. 처음에 한 차례 나타난 다음에는 신화 속에서 증발해 버린다. 

   신과 동물이 인간을 동경한다고 하여 신과 동물을 부정하지 않는다. 환웅이 인간세상을 동경하는 데 대하여 환인은 공감하고 도와주지만 환인은 여전히 하늘에서 신의 세계를 지킨다. 범도 곰과 함께 인간을 동경했지만, 중간에 사람되기를 포기하고 동굴을 뛰쳐나가 범으로서 산야를 지킨다. 따라서 신이 인간이 된다고 하여 신을 부정하지 않고 동물이 인간이 된다고 하여 동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환웅이 인간화되고 곰이 사람으로 변신해도 여전히 환인과 범은 신과 동물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를 지향하되 인간중심주의는 아니다.

   주체가 신과 인간, 동물이 함께 등장하여 존재론적 위상을 보이며 다른 존재로 전환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러한 전환과 함께 지리적 이동을 하는 것도 흥미롭다. 환웅은 하늘에서 산으로, 곰은 동굴에서 지상으로, 단군은 지상에서 산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하늘과 땅, 땅속, 산 등의 공간 이동에 따라 신에서 인간으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신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공간 어디에 머무는가 하는 것이 존재를 결정하는 상당히 중요한 조건임을 말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신화의 세 주체인 환웅과 곰, 단군은 제각기 신, 동물, 인간이면서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존재로 비약한다는 것이다. 환웅이 곰네에게 잉태시키기 위해 인간으로 전환하는가 하면, 곰은 여성으로 비약하여 환웅의 아기를 배고 단군의 어머니로서 성모가 되는 한편, 단군은 고조선의 시조인가 하면 아사달의 산신이 되어 이 땅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신과 동물, 인간을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순환적 존재인가 하면, 하늘과 땅, 산의 공간적 지점도 오고가는 순환성으로 포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과 자연의 공생성 못지 않게 이러한 순환성 또흔 생태학적 세계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

   그러므로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자연을 수단화하여 인간만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신과 동물의 조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생하며 순환하는 생태학적 세계를 이룸으로써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생명주의’라 할 수 있다.6) 홍익생명주의는 인본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되, 인간중심주의를 배격하며 신과 자연, 하늘과 땅의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두루 아우르는 공생적이고 순환적인 생태학적 인간주의이자, 곧 생태주의 세계를7)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환웅과 같은 신이 있어서 단군과 같은 인간이 있고 곰과 같은 동물이 있어서 또한 단군과 같은 인간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단군과 같은 인간이 있으니 고조선의 나라가 있고 아사달의 산신이 생겨난 것이다. 하늘과 땅, 도읍과 산, 신과 인간, 인간과 동물이 서로 공생하고 순환하는 생태학적 세계가 바로 홍익인간의 세계인 것이다. 


   3. 태백산과 신단수의 생태학적 상징


   1) 신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공간 태백산

   단군신화의 자연친화적 요소를 좀더 자세하게 검토하기 위해서 자연물에 해당되는 산과 나무의 요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신성한 공간으로 이야기되는 산을 보면, 3위태백의 하나로 지목된 태백산과 산신이 된 아사달의 백악산이 있다. 이들 산은 모두 신이 머무는 신성한 산이다. 태백산은 천신이 내려와서 다스린 산이고 아사달은 인간이 잠적해서 산신으로 깃들어 있는 산이다. 산에 신이 깃들어 있으면서 산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산의 영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 몸에 영혼이나 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생명으로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해서 다스리고 난 뒤에 산으로 잠적해서 산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도읍에서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는 말이고 존재론적으로는 인간으로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환웅이 태백산에서 신시를 열었던 것처럼 단군이 죽어서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는 것은 산을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태백산이 신시의 공간이자 천왕의 공간이며 천신의 공간이라면, 아사달은 도읍의 공간이자 인왕의 공간이며 산신의 공간이다.

   결국 자연을 사람처럼 살아 생동하는 실체로 인식하고 자연의 신령을 믿는 가장 오래된 전통이 산신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산지로 형성되어 있고 북방에서부터 내려온 문화적 전통 때문에 원초적으로 산신 또는 산신령을 섬기는 문화가 상당히 폭 넓고도 역사적으로 뿌리깊다. 가장 오랜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의 무대가 태백산일 뿐 아니라, 건국시조이자 민족시조인 단군이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신화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산신의 기원을 말한다는 점에서는 ‘산신신화’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산신이 되었는데, 그 후손인 우리가 산신을 섬기지 않을 수 없다. 산신신앙이 광범위하게 전승되는8) 까닭도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산신신앙을 민족신앙의 가장 중심 자리에 놓아도 지나치다 할 수 없다.

   이처럼 천신이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와 인세의 지도자 노릇을 하거나, 왕이 죽어서 산신이 되는 고조선의 전통은 단군신화에 한정되지 않는다. 삼국시대까지 널리 일반화된 전통으로 지속되었다. 신라 건국 이전의 6부 촌장들이 한결같이 하늘에서 제각기 산으로 하강한 신성한 존재이며 석탈해 또한 죽은 뒤에 토함산의 산신이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삼국유사󰡕에서 찾아본다.

   양산촌(楊山村)의 촌장 알평(謁平)은 하늘에서 표암봉(瓢嵓峰)에 내려오고, 고허촌(高墟村)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는 하늘에서 형산(兄山)에 내려왔으며, 대수촌(大樹村)의 촌장 구례마(俱禮馬)는 하늘에서 이산(伊山)에 처음에 내려왔으며, 진지촌(珍支村) 촌장 지백호(智伯虎)는 처음에 화산(花山)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섯째 가리촌(加利村) 촌장은 지타(祗沱)였는데 처음에 명활산(明活山)에 내려왔으며, 6촌 가운데 여섯째인 고야촌(高耶村) 촌장 호진(虎珍)은 처음에 금강산으로 내려왔다.9)

    6부 촌장신화는10) 자세한 줄거리가 남아 있지 않지만 시조들이 모두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다는 점에서 일치하며, 모두 특정 성씨의 시조가 되는 한편 일정한 공동체의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한결같다.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올림푸스(Olympus)산인 것처럼 우리 고대신화의 무대도 대부분 산이었다. 산은 하늘과 마찬가지로 신이 사는 신성한 공간으로 믿어졌기 때문이다.11) 그러면서도 우리 신화는 그리스 신화와 다른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하늘에 있던 신이 산으로 내려와서 건국시조가 되었다고 하는 천신 강림구조의 건국시조신화라는 점이다.

    수로왕(首露王)이 하늘에서 구지봉(龜旨峰)에 하강하는 것도 마찬가지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단군신화의 내용과 고스란히 일치한다. 


   하늘에서 환웅이 태백산에 하강   → 신시의 천왕이 됨 → 건국시조 단군왕검의 등장

   하늘에서 신들이 6촌의 산에 하강 →  6촌의 촌장이 됨 → 건국시조 박혁거세의 등장12)


   석탈해는 멀리 바다로부터 와서 신라 4대 왕이 되었는데, 죽어서 신으로 나타나 “내 뼈를 동악에 안치해 두어라”고 하므로 동악에 묻었더니 뒤에 동악의 신령이 되었다고 한다.13) 탈해왕은 죽어서 지금의 토함산 산신이 된 것이다. 단군 또한 고조선을 세우고 1500년을 다스린 뒤에, 도읍을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돌아와서 아사달(阿斯達)에 숨어 산신이 되니, 나이는 1908세였다”고14) 한다. 그러므로 고조선 이래로 천신이 산으로 내려와 인간세상의 통치자 노릇을 하고, 인간의 왕이 죽어서 또 산신이 됨으로써 산을 섬기는 제의적 전통은 나라 차원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하늘의 신이 더 이상 하늘에 있지 않고 산에 내려와서 터를 잡고 산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 사실상 이때부터 산신이 되는 것이다. 단군이 인세에 있으면 인신(人神)이자 인왕(人王)지만 산에 들어가면 산신이자 산왕(山王)이 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단군은 환웅천왕의 아들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태백산 산신의 아들로 해석되기도 한다.


  신인(神人) 단군(檀君)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밑에서 출생하여 일어나 시조(始祖) 왕이 되매, 중국 요임금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태백산이 처음으로 한 나라의 왕을 잉태하여 (太白 太白始胎 于一國王) 조선 국민으로 하여금 동방 오랑캐라는 이름을 아주 벗게 하였고, 마침내 삼계(三界)의 스승을 봉안하여 또 동방의 백성들로 하여금 부처가 될 인(因)을 잃지 않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산의 신령스러움이 아니겠는가. 󰡔청허당집(淸虛堂集)󰡕15)


   서산대사는 자장법사가 가져 온 사리와 유골을 봉안한 부도가 있는 곳이 바로 고조선의 신시(神市)이며 이 산의 산신이 단군을 낳아 나라를 처음으로 세웠다고 하였다.16) 이를 근거로 단군신화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건국시조인 단군은 산신의 아들로 태어나서 다시 산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신화에서 산은 신이 하늘에서 강림하는 공간이자, 인간이 신선이 되고자 하거나 산신이 되어 들어가는 신성공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산신은 우리 민족을 있게 한 최고의 민족신이자, 처음으로 민족국가를 수립한 최초의 국가신으로 재인식되어야 마땅하다 하겠다.

   시조왕 단군이 산신의 자손이면서 단군 또한 죽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고조선의 국가신앙은 산신을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나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예조(濊條)에 의하면, 한결같이 ‘산천을 존중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산천에는 각기 관할 영역이 나뉘어져 있어서 망령되이 서로 간섭할 수 없었다’고 하며, ‘시월의 제천행사 때는 음주가무하며 무천(儛天)이라고 하는 축제를 벌이고 호랑이를 신으로 위하여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17)

   이러한 뿌리깊은 전통에 의해, 요즘까지 세간에서 여전히 호랑이를 산신으로 인식하고 산신제를 올리는가 하면, 아예 범을 산신령으로 일컫는 전통이 널리 확산되어 있다. 따라서 산신당의 산신도(山神圖)에는 산신령과 함께 호랑이가 그려져 있게 마련이다. 이때 호랑이는 산신이기도 하고 산신의 사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호랑이를 보아도 범이나 호랑이로 일컫는 것을 금기로 여기며 굳이 지칭해야 할 때에는 신령님 또는 산신령이라 일컫는 것이다.18)  


   2) 산신의 신체로 상징되는 나무 신단수

   단군신화를 산신신화로 인정하고 이 주장을 근거 있다고 본다면, 산신의 신체는 나무이자 숲이다. 왜냐하면 환웅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 좌정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환웅은 천왕이지만 인간세상에 뜻을 두고 홍익인간의 이상을 펼치고자 태백산에 내려왔을 때에는 이미 산왕이자 산신이다.

  이때 환웅산신이 머물렀던 신단수는 신수(神樹)로서 나무이자, 신단쑤로서 신성한 숲이다. 무리 3천을 거느리고 신단수 밑에서 신시를 열었다고 하니, 신단수는 노거수의 신목(神木)일수도 있지만, 무성한 숲일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신단수는 나무 개체를 일컫는 말이면서 또한 신단수를 포함하고 있는 신성한 숲, 곧 신단쑤(神壇藪)를 일컫는 말이다. 나무 공동체로서 신단쑤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이 한 그루 나무 밑의 특정 지점이 아니라 ‘신시’라고 하는 제정일치의 신성한 공적 공간 구실”을 감당했던 것이다.19)  신단수를 중심으로 설정된 신시는 최고의 길지(吉地)이자 명당으로서 Ecotopia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신단수 아래에서 건국시조 단군의 잉태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계림 숲에서 김알지가 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호랑이와 곰이 인간이 되고자 환웅을 찾아온 곳도 신단수 아래였다. 그리고 굴 속에서 3칠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금기를 지킨 결과 여성으로 변신한 곰네[熊女]가 환웅에게 아이 배기를 축원한 것도 신단수 아래였으며, 이에 환웅이 잠깐 변하여 곰녀와 혼임함으로써 단군을 잉태하게 만든 것도 신단수 아래였다. 선녀와 나무의 교섭으로 목도령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 단군의 잉태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신단수 아래’인 신단쑤 숲 속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상을 처음으로 다스리며 교화를 편 신성한 장소로서 ‘신시’이자, 신화의 주인공 단군이 잉태되는 신성한 혼인이 이루어진 ‘성혼(聖婚, Hierosgamos)’의 장소이다. 따라서 신단수는 인간세계가 열리는 태초의 공간이자 생명이 비로소 잉태되고 출산되는 창조의 공간이다.

   인류의 시조를 잉태한 고목이나, 단군신화의 신단수(神檀樹), 김알지 신화의 계림(鷄林)은 한결같이 생명의 기원이자 삶의 원천으로서 문제될 뿐 아니라, 건국시조를 낳아 기름으로써 국가의 신성한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생명의 역사적 기원인 동시에 민족사의 지리적 출발 지점 구실을 하는 것이 신성한 나무이자 태초의 숲인 것이다.


   알타이족의 샤먼들은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세계수를 그리고, 그 세계수에 의해 하늘과 땅, 땅 속의 세계가 분리되고 질서화한다는 관념 아래, 세계수가 대지의 중심 곧 대지의 배꼽에서 움텄다고 믿고 있다.20) 세계수를 세계의 심장부에 살고 있는 신성한 나무로 믿었을 뿐 아니라, 그 뿌리 밑에 지하의 샘이나 바다가 있고, 가지 위에 하늘의 샘이 었어서 세계수가 풍요한 물의 힘을 길어 올리거나 내린다고 믿어 생명력의 원천으로 신앙하였다. 그러므로 세계수는 생명의 나무로 일컬어지기도 했다.21)

   그러나 우리의 당나무는 이러한 세계상과 일정한 거리가 있다. 물론 생명의 나무로 일컬어지는 법도 없다. 세계수나 우주목이라기보다 마을이나 고을을 지켜주는 지역공동체의 신격일 따름이다. 단군신화의 신단수도 우주목이나 세계수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22)

   더군다나 환웅이 머문 곳은 늘 신단쑤였다. 따라서 곰네가 항상 단수(壇樹) 아래 찾아와서 환웅에게 아이배기를 축원하였더니,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혼인하고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는 것이다.23) 이는 마치 세간에서 여성들이 아이를 얻고자 산신 앞에 가서 기도하는 풍속이나 다름없다.

   곰네가 신단수 아래에서 빌었다고 하는 것은 환웅천왕 또는 태백산 산신이 신단수에 깃들어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환웅이 잠깐 인간으로 변신하여 곰네에게 잉태를 시킨 것이다. 이때 신단수는 환웅의 신체이자 태백산 산신의 신체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태백산의 산왕 구실을 하면서 깃들어 있었던 공간이 신단수였던 것이다.

   바다신의 신체가 바다 자체가 아니고 하늘신의 신체가 하늘 자체가 아니듯이, 산신의 신체 또한 산 자체가 아니다. 하늘에 하느님, 바다에 용왕님, 산에 산신령처럼 관념적으로 신격을 설정하기도 하지만, 하늘에 존재하는 해와 달, 바다에 존재한다고 믿는 용처럼, 산에는 산에서 자라는 큰 나무나 무성한 숲을 산신의 신체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산신신앙의 전통은 현재의 산신당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낭당의 경우도 노거수나 마을쑤가 당신의 신체 구실을 하는 것이 원초적이듯이, 산신당의 경우에는 대부분 큰 거목이나 몇 그루의 나무로 조성된 숲이 산신의 신체 구실을 한다. 나무나 숲을 곧 산신당이라 하는 것은 산신이 나무와 숲에 깃들어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때 나무와 숲은 곧 산신이 머무는 집이기 때문에 산신당이라 하는 것이다. 산에 나무가 없고 숲이 없으면 산은 있어도 산신은 없는 셈이다.24)

   만일 태백산에 신단수가 없었다면 환웅이 있었고 곰네가 그 밑에 가서 아이를 배기 위해 빌었을까.


   4. 여성주의 생태학에서 본 성모 곰네의 재인식

   이제 단군이나 환웅 중심의 생태학적 인식에서 성모 곰네 중심의 생태학적 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여성주의 생태학(feminist ecology)과 만난다. 여성주의 생태학은 크게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와 생명여성주의로 변별된다.

   에코페미니즘이라고 칭하는 생태여성주의의 핵심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적 성차별주의와 사람의 무차별 개발에 의한 자연파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생태여성주의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가부장적 지배를 계급주의, 군국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산업주의 등 모든 지배와 착취시스템의 원형으로 본다. 그들은 특히 자연에 대한 착취가 전통적으로 자연과 동일화되어온 여성에 대한 착취와 함께 맞물려 있다고 인식한다.25) 서구 생태여성주의자들과 인도의 쉬바와 같은 학자들은 서구 과학을 “모든 제도적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궁극적인 원천으로서, 그리고 오늘날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기본적인 모델”이라고 지적하여 적극적으로 피지배 여성들과 자연의 관계 방식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26) 

   생명여성주의의 모색은 생태여성주의와의 관계에서 서로 대립된다기 보다는 상호보완하면서 발전되어야 할 것이면서 동시에 생태여성주의와 일정 부분 차별화 전략으로 이루어진다. 생명여성주의는 생명의 특성 및 사회․문화적 조건에 대한 이해를 양성평등 가치에 접목한 여성주의적 시각이다. 생명여성주의에서 시각에서 논의의 중심 틀은 생명 원리와 양성평등의 원리의 두 축으로 구성된다. 이 두 축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성별관계로 층화된 생명'의 이해, 곧 '젠더화 된 생명에 대한 관점'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양성평등 차원과 생명 원리의 맥락에서 곰네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1) 최초의 인간이자 성모로서 곰네

   단군신화는 단군본풀이이다. 단군신화를 건국신화라고 하면 역사적인 자료이지만 단군본풀이 또는 산신신화라고 하면 무속신화로서 굿문화의 자료이다. 단군본풀이를 달리 말하면 단군의 출생담이다. 단군은 예수가 마리아의 아들인 것처럼, 누가 뭐라 그래도 곰네[熊女]의 아들이 분명하다. 흔히 단군을 환인의 손자이자 환웅의 아들로만 인식하는데, 그것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다.

   신화에서 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계이다. 왜냐하면 모계야말로 실질적으로 가장 정확한 혈통을 입증하는 것이며, 부계는 한갓 그러려니 믿는 관념에 머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잉태의 주체인 부계는 잉태과정이 폐쇄적이고 개인적이어서 불분명하지만 출산의 주체인 모계는 출산과정이 어느 정도 공개적이며 객관적이어서 분명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부계는 정확하게 추적하기도 어렵지만 모계는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군을 잉태시킨 환웅천왕보다 단군을 낳은 단군의 어머니로서 성모 곰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단군의 어머니는 곰네로서 환웅보다 그 존재가 분명하다. 곰이 인간으로 변신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출신성분은 불확실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인간으로서 여성인 것이다. 이와 달리 단군의 아버지 환웅은 현실적인 존재로 인정하기 어렵다. 환웅은 환인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천신을 믿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과거의 출신성분도 알 길이 없지만, 현실 속에서도 환웅은 실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관념적 존재일 따름이다. 그러나 곰네는 여성이자 단군을 낳은 어머니이다. 곰으로부터 변신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워도 여성으로 단군을 낳았다는 사실은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럼 곰네는 어떤 존재인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지상의 인간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사람이다.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곰네가 낳은 단군이다. 다른 인물들은 모두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존재이거나 천신이다.

   곰네가 인간으로 비약하는 것은 환웅의 신탁을 고스란히 따른 결과이지만, 신탁의 내용이나 실제로 행한 실천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 또한 홍익인간의 이상이 갈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인간이 되어야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신은 신인 채로 하늘 높이 거들먹거려서는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환웅처럼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구체적으로 땅에 뿌리박고 있는 신단수에 깃들어 살아야 인간과 더불어 인간세상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더 주목되는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한 곰의 실천이자 겪는 시련이다.

   곰이 인간이 되는 데는 세 가지 요건이 있다. 하나는 신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단수 나무 밑에서 빌고 환웅의 공수에 따라 이를 고스란히 실천했다는 것이다. 신의 뜻을 무시하고 이를 따르지 않은 범은 인간이 되지 못한다. 신 곧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존재는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인간답다 할 수 없다.

   둘은 신의 공수에 따라 쑥과 마늘(달래)을 먹고 버티었다는 것이다. 이는 육식을 삼가고 ‘지독한 채식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동물이 사람으로 비약하려면 이 정도 시련은 겪어야 한다. 호랑이처럼 짐승을 잡아먹고 살아서는 결코 인간이 되지 않는다. 인간답게 사는 길은 채식문화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셋은 동굴 속에서 100일 동안 머물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은 이를 참지 못하고 뛰어나갔지만 곰은 3칠일 동안 굴 속에서 버티어 인간이 되었다. 쑥과 마늘을 먹는 것이 지독한 채식이듯이 햇볕을 보지 않고 동굴 속에서 생활하는 것은 ‘지독한 정착생활’이다. 범처럼 육식을 해서도 안되지만 범처럼 산천을 제멋대로 주유(周遊)해서도 인간답지도 않으려니와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어갈 수 없다.


   2) 시조왕을 낳은 여사제로서 곰네

   자력적으로 사람이 된 최초의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곰네가 단군을 낳는 방식은 독특하다. 사람이 되는 과정도 ‘늘 천신인 환웅에게 빌었을 뿐 아니라 환웅이 시키는 대로 쑥과 달래를 먹고 동굴에서 근신하여 여성’이 되었던 것이다. 천신인 환웅의 공수 또는 신내림을 지켜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은 내림굿을 하여 무당이 되는 것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 곰이 신령에게 빌어서 내림을 받아 일정한 통과의례를 거치고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예사 인간이 무당이 되었다는 말이나 같다. 그것은 사람이 된 곰네가 ‘날마다 신단수 밑에서 아기 밸 것을 축원했으며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고 잉태시켰다.’27) 단군은 곰네가 신단수 밑에서 천신인 환웅에게 빌어서 낳은 아이이자, 뒤에 왕검(王儉)으로서 조선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의 어머니는 한결같이 신단수에 깃들어 있는 천신 환웅에게 빌어서 곰네가 되었을 뿐 아니라, 천신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게 된다는 점에서 여사제로서 무당인 것이다.

   곰네의 변신과정과 단군의 잉태과정은 사실상 곰네를 무당으로 설정하고 있다. 천신의 공수를 받아 곰네로 비약할 뿐 아니라 천신의 내림을 받아 단군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신의 공수를 받거나 내림을 받는 이는 곧 사제이자 무당이다. 그러한 근거는 조선 말기에 편찬한 것으로 보이는 󰡔무당내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요임금 시절 상원 갑자 10월 3일에 신인이 태백산 신단목 밑에 내려왔는데, 이 분이 바로 단군으로서 신교(神敎)를 창설하고 가르쳤다.”고 하여 단군신화의 줄거리와 만난다. 이어서 단군의 “맏아들 부루(夫婁)가 어질고 다복해 사람들이 그를 높여 받들었고 뒤에 사람들이 땅을 골라 단을 쌓고, 토기에 벼를 담아 짚을 엮어 덮고서 이것을 부루단지 또는 업주가리라 불렀다. 매년 신곡이 나면 떡을 해서 술과 과일을 함께 바치며 기도했는데, 이 때에는 반드시 무인(巫人)이라고 부르는 늙은 여자가 기도하게 했다. 뒤에 무인의 수가 늘어나서 무당이라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28)

   단군의 큰아들 부루에게 기도하는 일을 무당이라고 하는 늙은 여사제가 반드시 이를 담당했다고 한다. 무당이 단군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 동시에 빌고 기도하는 여사제를 무당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반드시 무당이라고 하는 여사제는 신단수 밑에서 끊임없이 소원을 빌었던 단군의 어머니 곰녀와 다름없다. 곰녀를 무당이라 일컬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기능상 여사제이자 무당이었던 것이다. 성모 마리아가 여사제 구실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성령에 의한 잉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며, 곰녀가 무당으로서 여사제가 아니었다면 신단수 밑에 찾아가서 가당찮은 소망을 빌지도 않았으려니와 빌어도 환웅의 신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여사제 곰녀가 없었다면 단군은 박혁거세처럼 알로 태어났거나 김알지처럼 금궤 속에서 출현했을 것이다.   


   3) 단군 탄생과 예수 탄생의 구조적 일치

   여사제 마리아가 신의 강림을 통한 비범한 신통력으로 예수를 낳았으므로, 아들 예수가 예수교의 교조이자 기독교의 제사장이 되며 유태인의 왕으로 주목되는 것처럼, 여사제로서 무당인 곰녀가 낳은 인물이 바로 단군이므로, 단군은 타고난 당골이자 무당으로서 신교의 교조가 되며 천신 환웅천왕과 환인천제를 섬기는 제사장으로서 고조선의 왕이 된 것이다. 따라서 단군은 처음에 무당의 아들로서 제사장이었을 뿐이나 뒤에 왕검을 겸하게 된다. 왕검은 나라를 세운 뒤에 얻은 이름이자 지위였던 것이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움으로써 무당 ‘단군’이 비로소 ‘당골왕’이자 ‘무당통치자’로서 ‘단군왕검’이 된 것이다. 단군에서 왕검으로 이름을 획득한 과정은 바로 무당에서 왕의 권능까지 획득하는 과정이며 굿을 하는 사제활동의 능력이 나라를 세우는 건국시조로서 정치적 수완까지 발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풀이로서 단군출생담과 예수출생담의 구조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예수가 천손으로서 성모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예수교의 교조가 되었으며 죽어서 다시 하늘나라의 천신이 되었듯이, 단군도 천손으로서 성모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단군교의 교조가 되었으며 죽어서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 여사제가 천신의 영적인 힘에 의해 아들을 잉태하고 만인이 추앙하는 교조이자 사제왕을 만들었으며, 사제왕은 죽어서 멸망하지 않고 다시 부활하여 천신이 되거나 산신이 된다. 다만 사제왕 예수는 교조신화로서 성경에 실린 까닭에 사제장으로서 더 부각된 반면에, 사제왕 단군은 건국신화로서 사서에 실린 까닭에 시조왕으로서 더 부각되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여사제로서 성모 마리아나 성모 곰네의 종교적 힘은 부계가 불확실한 자신의 아들을 천신의 성령에 의해 탄생한 신성한 인물로 만들어 종교의 교조로 삼을 뿐 아니라 정치적 지도자로서 유태인의 왕으로 또는 고조선의 왕으로서 우뚝하게 만든 것이다. 사제로서 무당의 능력이 뛰어나면 정치적 지도자로서 왕의 권력을 겸하게 마련이다.


   4) 제정일치 시대의 사제권과 곰네의 역량

   단군신화와 단군 관련 굿문화를 살펴보면 고대의 제정일치 시대에는 왕권보다 사제권이 더 앞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전통은 정교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 정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직 로마교황이나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는 정치권력에 앞서 사제권의 확보가 한층 긴요하다. 바티칸왕국의 정치지도자는 교황이다. 교황이 되려면 우선 가톨릭 사제로서 신부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지도력과 상관없이 가톨릭의 사제로서 성공한 성직자가 로마교황이 되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마찬가지이다. 전생의 달라이 라마로 환생한 것이 입증된 아이가 법왕으로서 교육을 받고 달라이 라마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지도력은 달라이 라마가 되는 과정에서 수련에 의해 터득될 뿐 법왕이 되는 조건으로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달라이 라마로 환생했는가 하는 종교적 검증과정 뿐이다. 이처럼 로마 가톨릭과 티베트불교는 종교적 사제장이 왕이 되는 오랜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군왕검 또한 무당으로서 사제의 권능을 확립한 까닭에 고조선을 세우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고 시조왕이 되었던 것이다. 단군의 사제권은 무당이자 성모인 곰네로부터 계승되고 확립된 것이다. 만일 단군의 어머니가 곰네처럼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아니었더라면 단군은 사제왕으로서 건국시조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단군신화에는 무당으로서 단군의 제의적 신통력보다 곰네의 신통력이 두루 보인다.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거침없이 신단수 밑에서 비는 행위를 하고 그때마다 환웅천왕의 공수와 신내림 등을 통해서 인간으로 또는 성모로 비약하여 마침내 시조모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곰네가 발휘하는 신내림의 신통력과 신들림의 능력은 예사 사람들을 따르게 만들기에 충분하고 마침내 아들 단군을 시조왕으로 만드는 정치력으로 발휘되었던 것이다.29)

   따라서 곰네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단군신화는 사실상 성모 곰네가 끊임없이 비약하는 이야기이다. 곰네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비약하는 과정에 생태학적 삶의 시련을 꿋꿋하게 견딘다. 그러한 비약은 신단수를 매개로 이루어진 천신의 신탁과 신내림의 결과이다. 하늘의 천신과 나무에 깃들어 있는 신령을 인식하고 영적으로 소통하며 교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생태학적인 것이다.

   곰네는 인간으로 비약하기 위해 지독한 채식생활과 지독한 정착생활의 모범을 보인다. 채식하며 정착해 사는 것이 상대적으로 생태학적인 삶이다. 곰네의 생태학적 실천 역량이 인간으로 비약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된다는 것'은 곧 자연친화적 삶이며 생태학적으로 산다는 것을 말한다. 곰네와 달리 사람으로 변신하는 데 실패한 호랑이의 육식생활과 방랑생활은 사실상 반생태학적인 삶이다. 곰네는 생태학적 삶의 실천을 통해서 인간다운 삶의 길을 개척했으며, 그 결과 시조왕 단군을 낳고 나라를 세우는 큰 성취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주체로서 성모 곰네의 생태학적 삶을 빼놓을 수 없다.

  

   5. ‘홍익인간’에서 ‘홍익생명’ 이념의 생태주의로  

단군신화가 이상으로 그리는 인간세상은 산과 숲을 무대로 하늘과 땅, 신과 동물이 만나 인간을 잉태하는 天地人의 三才論 및 天父地母 사상이 토대를 이룬다. 따라서 신과 인간, 동물과 식물, 비바람과 구름이 공생적 세계관을 이루되 자연을 인간의 부모로 삼는다는 점에서 자연 우위적 인본주의이다.

 신화의 주체인 단군이 태어나는 과정에 천신이 인간으로 화하고 동물도 인간으로 변신하지만, 인간인 단군 또한 아사달에 숨어서 다시 산신이 된다. 따라서 신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신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우위를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존재하여 서로 순환하는 관계를 이룬다는 점에서 생태적이다. 특히 곰네가 자연친화적 삶을 통해 동물에서 인간으로 비약할 뿐 아니라 성모로서 단군을 낳아서 시조왕으로 만드는 과정이 여성주의 생태학의 한 보기가 된다.  

그러므로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자연을 수단화하여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생하며 순환하는 생태학적 세계를 이룸으로써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홍익민족(한국민족)도30) 아니고 홍익인간(인류전체)도 아니며 홍익인세 곧  ‘홍익인간세상’이다. 곧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모두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홍익생명주의 곧 생태주의 체제를 이상으로 여기고 있는 세계상이라31) 할 수 있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천신인 환웅의 사상이자 세계관이다. 천신인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으며 동물을 인간으로 비약하게 만들고 곰네와 혼인까지 하는 자기 희생적 실천을 하였다. 환웅은 결코 홍익천신의 이념도 아니고 홍익천상의 세계를 그리지 않았다. 환웅은 천신이지만 하늘세계나 신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신의 세계에 견줄 수 없는 땅과 인간의 세계를 이롭게 하고자 천상의 세계를 떠나온 것이다.

그러면 인간인 우리는 환웅의 실천적 보기에 따라 어떤 이념을 그리며 어떤 세계상을 만들어가야 할까.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위대한 천신 환웅천왕을 섬기고 받들어야 할까. 그러한 보기는 환웅의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 환웅은 자신의 꿈을 도와준 천제 환인을 섬기는 일에 골몰하지 않았다. 신단수에 깃들어 있으면서 오직 짐승과 소통하고 교감하며 인간으로 만들고 인간을 낳아서 인간세상을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환웅의 행적이야말로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하는 보기이다. 그럼 단군은 어떤가?

단군은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우는 성취를 통해 인간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데 머물지 않았다. 마침내 아사달에 잠적하여 산신으로 비약한 것이다. 시조왕이 산신이 되었는데 그 후예들이 산을 섬기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나라의 왕과 세간의 민중이 두루 산을 섬기고 자연생명과 더불어 사는 자연친화적 문화를 이루었다. 그것은 마치 환웅이 신단수에 깃들어서 나무의 신령으로 존재한 것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위상을 낮추어 나무와 동물 등 자연생명과 교감해온 환웅과, 마침내 산에 들어가서 자연신이 된 단군을 보기로 삼아, 인간이라는 주체로서 환웅과 다른 이념을 구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단군이 죽어 산신이 되었고, 신과 동물이 서로 몸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단군은 범이 될 확률이 크다. 단군 = 산신이 범이라고 쓰여 있지는 않지만 서사 이론상으로는 단군 = 산신 = 범의 등식 또한 가능하다

호랑이를 산신으로 여기는 관념은 수렵문화 단계까지 소급될 수 있으며, 삼국지 동이전의 예조(濊條)의 호신(虎神) 숭배가 그 저례(著例)로서,32) 범이 곧 산신이라는 관념은 우리 민족의 아주 오랜 전통이다.33)


천신 환웅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인간화되었듯이, 단군 왕검은 산속에 들어가 산신으로서 동물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과 인간, 동물’ 또는 ‘하늘과 인간세상, 자연’ 등이 천지인의 3재론적 체계 속에서 상중하의 위상을 가진다면, 천신인 환웅이 그 아래에 있는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인간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인간처럼 살았다. 그러한 실천을 보기로 삼으려면 인간도 인간세상보다 더 아래에 있는 동식물과 자연생명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자연생태계 속으로 들어가서 자연처럼 살아야 한다. 단군이 아버지 환웅이나 어머니 곰네를 섬기는 일에 골몰하지 않고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범)이34) 된 것은 그러한 실천의 보기이다.

그러므로 천신과 인간을 섬기는 신본주의나 인본주의에 맞서서 자연생명을 섬기며 자연생태계를 널리 이롭게 하는 일, 곧 ‘홍익생명’ 이념을,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생태주의 세계상으로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인간생명으로서 인간세상에 머문 채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며 먹이사슬의 정상에서 군림할 것이 아니라, 자연생명의 하나로서 자연생태계 속으로 들어가 뭇 생명과 대등하게 공생하며 순환하는 가운데 생명그물의 한 고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홍익생명’ 이념의 실천이자 자연친화적 홍익인간 사상이다. 


1) 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 古朝鮮.


2) 단군신화에는 곰이 변하여 여성 곧 熊女가 되었다고 한다. 웅녀를 우리말로 표기하면 곰녀이자 ‘곰네’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웅녀를 ‘곰네’라 일컫는다.


3) 임재해, ‘한국인의 산 숭배 전통과 산신신앙의 전승’, 김종성 편, 산과 우리문화(수문출판사, 2002), 14-38 쪽에서 처음으로 단군신화가 산신신화라는 사실을 제기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신종원, ‘단군신화에 보이는 곰[熊]의 實體’, 韓國史硏究 118(韓國史硏究會, 2002), 1-31 쪽에 서도 단군신화가 산신신화라는 사실을 제기했다. 


4) 임재해, 민족설화의 논리와 의식(지식산업사, 1992), 148-149 쪽 참조.


5) 임재해, 앞의 책, 149-150 쪽 참조.


6) Lim Jae Hae, ‘Ideology of the Greatly Profitable Man in Dangoon Myth and Ecological View of the World', Ecolgy in a Changing World(VIII International Congress of Ecology, Seoul COEX, 2002. 8. 6.) 발표.


7) 임재해, ‘농촌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성격과 문화종 다양성 가치’, 농업 그 다양성의 재발견, 2002경북세계농업한마당 국제학술심포지움(현대호텔, 2002년 10월 16-18일), 423-426 쪽에서 생태주의 체제를 자세하게 다루었다.


8) 산신은 가장 오래된 신앙이고 가장 풍부한 민속신앙이며 가장 높은 신으로 섬겨지고 있다.


9) 三國遺事 卷第一, 新羅始祖 赫居世王.


10) 임재해,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천재교육, 1995), 188-206 쪽 참조. 일반적으로 6부 촌장에 관한 기록은 신화로 간주하지 않는데, 나는 성씨시조이자 성읍국가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로서 신화적 내용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다른 건국시조와 서사적 구조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신화로 인정하고 이 책에서 다른 신화와 나란히 다루었다.


11) 그리스 북부에 있는 Olympus 산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살았던 공간인데, 신들이 사는 하늘의 세계(Heaven)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12) 임재해, 민족신화와 건국영웅들, 195 쪽.


13) 三國遺事 卷第一, 第四 脫解王.


14) 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 古朝鮮.


15) 조용호, ‘지리산 산신제 연구’, 경북대학교(2000년 3월 25일)에서 발표한 논문(http://www.jirisan21.com에서 재인용).


16) 조용호, 위와 같은 글.


17) 三國志 魏書 濊傳. “其俗重山川 山川各傅粉 不得妄相涉入 …十月節祭天 飮酒歌舞 名之爲儛天 又祭虎以爲神.”


18) 임재해, ‘한국인의 산 숭배 전통과 산신신앙의 전승’, 24 쪽.


19) 임재해, ‘한민족 숲의 문화와 민속문화의 전통’, 환경과생명 31(환경과생명, 2002년 봄호), 164 쪽.


20) 김열규, 韓國의 神話(一潮閣, )43-46 쪽.


21) 김열규, 앞의 책, 46 쪽.


22) 김열규, 같은 책, 50-51 쪽.“이 단수(檀樹)가 세계수(世界樹)임을 말해 주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묘사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그러한 가능성을 추론하고 있다.


23) 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 古朝鮮.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檀君王儉.”


24) 임재해, ‘한국인의 산 숭배 전통과 산신신앙의 전승’, 36-37 쪽.


25) Fritjof Cafpra 지음, 김성훈 번역,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 참조.


26) 브라이도티․로지 외, 한국여성 NGO위원회 여성과 환경분과 옮김,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 가능한 개발 - 이론적 종합을 지향하며(도서출판 나라사랑, 1995). 186-187 쪽,  이영숙, ‘21세기의 생명운동과 여성을 성찰하기 위한 새로운 파라다임 모색’,에서 재인용.


27) 三國遺事 卷 1 紀異 第 1, 古朝鮮 -王儉朝鮮.


28) 서대석, ‘󰡔巫堂來歷󰡕의 性格과 意義’, 口碑文學硏究 4(한국구비문학회, 1997), 345 쪽 참조.


29) 임재해, ‘굿문화의 정치 기능과 무당의 정치적 위상’, 민속과 정치, 比較民俗學會 2003년도 하계학술대회(단국대학교 2003년 6월 20-21일)에서 이미 다룬 내용이다.


30) 박혜령, ‘민족주의 전통담론과 단군의 수용’, 실천민속학회 편, 민속문화의 수용과 변용(집문당, 1999), 115-145 쪽에, 단군신화가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시대마다 역사적으로 다르게 해석되고 수용되어 온 과정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31) 임재해, ‘농촌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성격과 문화종 다양성 가치’, 423-426 쪽의 생태주의 체제 참고.


32) 서영대, ‘東濊社會의 虎神崇拜에 대하여’, 역사민속학 2(이론과실천), 62-90 쪽 참조.


33) 신종원, 같은 글, 5 쪽.


34) 朴恩用, ‘鷄林類事의 ’虎曰監‘에 對하여’, 自由 7,8,9(1980), 서영대, 앞의 글, 63 쪽 참고.


[사상] 참고하시게...
번호 : 20   글쓴이 : 우리말로 학문하자
조회 : 14   스크랩 : 0   날짜 : 2006.08.08 19:54
function deleteArticleSomething( kind ) { if ( confirm‎( "정말로 삭제하시겠습니까?" ) ) { document.location.href="/_c21_/article_something_delete_hdn?kind=" + kind + "&grpid=BfRN&mgrpid=&fldid=4NNG&dataid=20"; } } // 동영상 블로그에서 항상 호출. function AllBGMStop() {}

글을 길게 쓸 수 없어 참고자료만 말해 주겠습니다.

 

단군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민속원 원장이신 임재해교수님(안동대)의 논문이 있고,

 

저번에 한 번 언급한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책입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카에바 소바주2 - 곰에서 왕으로 라는 책은 곰에 대한 신화학적 해석을 담고 있어 곰에 대한 고대인들의 인식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은 올릴 수 없고, 임재해교수님의 논문만 올렸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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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의 생태학적 인식과 자연친화적 홍익인간 사상(임재해).hwp (46kb) [ 파일받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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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자료 감사하네 그려~내 읽고 감상평 쓰지요...그런데 출처가 안 나와있던데 이 자료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수 있겠습니까? 06.08.08 21:24
단군학연구 제 9호에 실려있다네... 그리고 임재해 교수가 쓴 '민족신화와 건국의 영웅들'을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06.08.08 23:25
단군신화의 의미에 대해 멈춤(곰네=정착문화)과 나아감(환웅=상업,기마문화)의 연합이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말로 표현한 이런 절묘한 표현은 역사를 배우면서 들어본 적이 없는 표현이었습니다. 06.08.08 23:29
안 그래도 논문을 보니 '곰네'라는 표현으로 웅녀를 표현하고 있던데...저도 이런 표현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도 표현이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에 아직도 학문의 길은 먼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군요.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책은 언젠가 꼭 한번 구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다른 공부를 하느라 여력이 없지만 말이죠. 암튼 좋은 자료 감사하고, 나중에 이에 대해서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 06.08.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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