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말씀대로 논문을 찾아보니 임재해 선생님이 2003년『단군학연구』9집에 실은 논문이더군요. 그런데 어디서 한글 파일을 구하셨는지 조금 신기합니다. 제가 알기로 논문을 한글 파일 그대로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서 말이죠. 안 그래도 'DBPIA'(http://www.dbpia.co.kr/)에서 논문을 검색해서 다운받아 봤더니만 님이 올려주신 한글 파일과 PDF 파일이 내용에 차이가 있더군요. 목차나 주석에 있어서도 차이가 났고, 한글 파일은 15장이었는데 PDF 파일은 42장이나 하는, 꽤 양이 많은 논문이었습니다. 암튼, 실제로 읽어보니 제가 이전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참신한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단, 단군신화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홍익인간'의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돋보였고, 그것을 생태학적인 시각에서 해석하려는 것이 참신했습니다. 필자도 말하고 있지만 홍익인간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알고 그냥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홍익인간'을 두고 '정관의 치'니 '개원의 치'니 하는 중국식 표현과 다른 우리식의 치세(治世) 표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홍익인간에 대해서 다시금 언급한다는 것 만으로도 이 논문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참신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단군신화를 해석하는데 있어 그 내용의 신이(神異)한 점에 착안해 그것을 국문학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주목하는데 저는 그것 갖고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단군의 탄생과 등장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 신화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그 이후의 내용에서는 홍익인간이나 기타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치적에 대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 부분을 분명하게 해석한다면 단군조선(위만조선이 아닌)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꺼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예전에『유기』(지금 찾아보니 하용준이라는 사람이 썼는데『고구려 유기』라는 제목으로 해서 2004년에 다시 나왔네요.)라는 소설책이 있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홍익인간에 대해서 해석한 부분이 있더군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홍익인간을 '점점 사람을 더해서 그 무리가 늘어나다'는 식으로 해석했던 것 같습니다.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다'라는 기존의 해석과 달리 한 것이죠. 선사시대때 인력(人力)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해석했던 듯 합니다. 나머지 내용은 환단고기류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아 주목해서 볼만한 것은 없었지만 홍익인간의 해석 부분은 아직껏 제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는 것 같네요. 한 5년 됐는데 말이죠.
암튼, 신격(神格)과 수격(獸格)이 포함된 존재가 바로 인격(人格)이라는 식의 해석, 특히 신격과 수격이 점차 인격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설명해낸 것은 이전에는 없던 것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사람이 가끔 본능적으로 행동할때 금수만도 못한 짓을 저지르곤 하는데 이렇게라면 자연스레 그런 것들이 설명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필자는 단군신화를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의 신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자연을 수단화하여 인간만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신과 동물의 조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생하며 순환하는 생태학적 세계를 이룸으로써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홍익생명주의라고 결론맺고 있지요.
맞습니다. 제가 우리나라의 그 어떤 신화를 봐도 우리나라는 서양의 신화와 같이 피비린내 나는 동족 혹은 형제들간의 골육상잔, 철저한 수직적 계급사회에서의 위계질서 확보를 위한 투쟁과 대립에 대한 내용이 나오질 않습니다. 또한 자연을 억누르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그런 내용의 신화 역시 없죠. 대부분 자연과 동화하고 적과 동화하고 라이벌을 감싸안아주는 과정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나의 자리를 지켜내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봤을때 이미 그런 신화들은 오래전부터 형성되어온 단군신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며 그 내용은 바로 홍익생명주의와 맞닿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도 제가 궁금해하는 호랑이에 대한 해석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왜 호랑이는 환웅에게 선택받지 못 하였음에도 동예인들은 호랑이를 숭상하고 뒷날 호랑이는 산신령으로서 숭배받아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많은 연구서적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나름의 견해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부분에 대해서 확고하게 정리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호랑이는 지독한 채식생활(정착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뛰쳐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되지 못하고 동물로서 그대로 남게 되었다고 말이죠. 하지만 단군은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홍익생명주의를 실현코자 신단수로 대표되는 아버지와 곰으로 대표되는 어머니를 숭배하지 않고 산신이 되어, 즉 호랑이가 되어 자연과 인간과 신을 아우르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필자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일관적으로 신화를 해석했다면 이는 분명 맞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호랑이가 곰과 달리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뛰쳐나갔음에도 왜 단군이 그러한 호랑이, 즉 산신령이 되어야 했는지의 필연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필자는 쑥과 마늘을 먹으며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인간이 되길 원하는 곰의 행동을 지독한 채식생활, 즉 정착생활이라고 표현하게 되었고 호랑이는 그것을 이뤄내지 못 했다고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결론은 육식을 해서는 인간답게 살지 못 한다, 가 나왔고 말이죠. 하지만 수렵(獸獵)은 이후 농경이 국가의 근본으로 자리잡은 조선시대까지도 인간의 중요한 영양소 공급원으로서 존재하게 되었고 벼농사가 최초로 정착한 청동기시대때는 뭐 두말할 필요도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이러한 농경 만능주의(?)적인 발언은 위험하며, 그 결론을 단군신화를 갖고 이끌어냈다는 것에서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필자가 결론내렸기 때문에 더더욱 앞부분의 호랑이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했지만 그러지도 않았고 말이죠.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단군신화를 바라봤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 논문은 참신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참신한 방법론은 늘 위험한 급진성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논지 전개와 결론 도출에 있어서 적지 않은 취약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저는 이 임재해 선생님의 이러한 주장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공부를 해 봐야겠지만 여전히 호랑이에 대한 부분은 많은 연구가 요구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겠고, 단군신화 역시 이처럼 새로운 시각에서 더 많이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좋은 연구성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p.s) pdf 파일을 첨부하려고 했더니만 용량이 크다고 안 되네요. 혹시나 해서 [뿌리아름]대용량실에 옮겨놓겠습니다. 필요하면 가져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