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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경무장 창기병 - 울란(Uhlan) /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6.10.31|조회수261 목록 댓글 0

이 름     아마존 왕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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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타타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폴란드의 경무장 창기병 - 울란(Uhlan) 
 

 

 

울란(Uhlan)은 원래 기병창, 사브르, 피스톨, 라이플 등으로 무장한 폴란드 경기병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들은 나중에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군대에서도 복무하게 된다. 다른 유럽 군대에도 이와 비슷한 부대가 존재했으나 그들은 그저 '창기병(Lancers)'로 알려져있다.

 

 

 

울란 기병은 앞에 색깔있는 천을 붙인 두 줄 단추가 달린 상의와 색깔 장식띠, 사각형으로 각이 진 폴란드 창기병 모자를 착용했다. 이 창기병들은 창날 밑에 제비꼬리 모양의 작은 깃발을 달고 다녔다.

울란(Uhlan)의 기원


울란이라는 이름은 '용감한 전사'를 의미하는 몽골이나 타타르어 오글란(Oglan) 또는 우후안(Uhuan)에서 유래했으며,  터키어 오흘란(oghlan)은 '젊은이' 를 의미하기도 한다. (크림 타타르 칸국이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되면서 대부분 이 소수 민족중에서 징집된 타타르 신병들은 유럽의 무슬림 문화를 선도했고 칭기즈칸의 몽골 군단의 침공 이래 엄청난 군사적 도전을 가져왔다.)

 

 

1. 날개달린 울란(Uhlan) 타타르 기병, 1656년

2.  타타르 기수, 17세기 후반

3. 일반적인 타타르, 17세기 

 

 

크리미아 타타르 기병(왼쪽)과 싸우는 폴란드 - 리투아니아 병사(오른쪽)

 

 

훗사르

 

 

판케르니


타타르 병사들이 14세기 후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정착하면서, 폴란드는 타타르인들의 군사 용어와 전술, 전략과 함께 그들의 전통 중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다. 이 중에는 경기병 부대의 대형도 포함됬다. 내부적으로 대부분 타타르와 리투아니아인으로 구성된 울란 부대는 처음에는 중세 후반의 다양한 전투에서 척후병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중기병(훗사르와 판케르니)보다 앞에서 정찰 임무를 실행했으며, 적의 방어능력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최초의 울란 연대는 18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화기의 발달로 중장갑은 시대에 뒤떨어졌고 경무장 부대가 군의 핵심이 되어갔다. 폴란드 왕실은 다양한 부대를 지원할 정치적 능력이나 재원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폴란드가 분할 되기 전까지 울란 부대는 대부분 주변 국가들의 지원에 의해 만들어진 폴란드인 또는 폴란드 타타르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울란 기병의 인기 뒤에는 이들의 민첩성과 기동성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존재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된 후 바르샤바 공국은 많은 숫자의 울란 부대를 만들어낸다.  비스툴라(Vistula) 군단과 프랑스 제국군에 소속된 창기병 군 부대같은  폴란드 원정 군단은 프랑스편에서 에스파냐와 독일에 맞서 싸웠으며 폴란드 방식의 경기병은 유럽 전역으로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소모시에라(Somosierra) 전투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폴란드 기병이 프랑스 군인의 열배는 뛰어나다고 말했다. 16세기부터 1815년까지 이어지던 프랑스 경기병은 울란을 모델로 삼았다. 1807년의 탈지트 조약 이후 울란은 프러시아군에 다시 소개되었다.

 

 

 

 

나폴레옹의 군대에 소속된 기병들 중 가장 두려움을 주는 존재는 비스툴라 울란(Vistula Uhlans)에 속하는 폴란드 창기병들이었다. 에스파냐인들이 지옥의 피카도르(Hell's Picador), 로스 디아블로스 폴라코스(Los Diablos Polacos) - 폴란드 악마 - 라고 부르는 이 기병들은 가벼운 중간 크기의 말에 타고 훗사르에 맞먹는 속도로 질주했으며, 흉갑 기병만큼 엄청난 돌파력을 보여줬고, 용기병 만큼이나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여줬다. 폴란드 창기병은 이름이 보여주듯이 창과 함께 사브르와 피스톨로 무장했다. 창기병들의 기병창은 길이에서 보병의 총검을 압도했으므로 방진을 구성한 보병을 공격하는데 적합한 최고의 기병들이었으며 -  이와 같은 사례가 1811년의 알부에라(Albuera) 전투에서 콜본( Colborne)의 영국군 여단에 일어났다. - 행군중인 적들을 사냥하는데에도 적합했다. 워털루 전투에서 잘 증명된 윌리암 폰손비(William Ponsonby)경과  그의 용기병 부대 스코츠 그레이(Scots Greys)의 운명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울란 창기병은 다른 방식의 기병들에 대해서도 치명적이었다. 근위대에 소속된 창기병 부대들 말고도, 나폴레옹 부대에는 9개의 창기병 연대가 존재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폴란드 창기병의 위력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자신들도 창기병 연대를 설립하게 된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영국,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갈, 러시아와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 전역의 많은 국가에 울란 창기병과 비슷한 병과가 생겨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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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쉘  좋은글 58.236.96.127 2006/10/13 x
 
 한마루  잘 보고 갑니다~ 218.53.62.82 2006/10/14 x
 
 질문을..  저 근데 타타르는 몽골족의 한갈래인가요? 유럽에서는 몽골족을 타타르라고 부른건가요?   213.216.199.38 2006/10/14 x
 
 왕수달  여기서 말하는 타타르는 동부 유럽과 중앙 아시아에 거주하던 투르크계 언어를 구사하는 민족들을 말하오.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투의 러시아 침공, 금장 칸국, 킵차크 칸국과도 연관이 있긴 하다오. 몽골 지배자들도 현지 투르크계 유목민들과 뒤섞여 살다보니 정체성이 모호해진 점도 있고, 중요한 건 이들 대부분이 유목 생활과 약탈을 번갈아했기 때문에 폴란드는 이들을 증오하면서도 그들의 전투 기술을 높이 사 군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곤 했소. 222.108.105.94 2006/10/14 x
 
 질문을..  그렇군요.드라마 칭기즈칸을 보면서 타타르족에 대해서 궁금했었거든요.암튼 왕수달님 답변 감사합니다^^   213.216.199.38 2006/10/14 x
 
 Agolta  왕수달흉아는 도대체 이런 자료들을 어디서 찾는지....ㅎㅎㅎ 서양사전공하는 대학원생정도 되는거야? ...러시아로 간 주치의 일가는 실제로 순수몽골인을 얼마 배당받지 못했다고 하던데....왕수달흉아 맞나? 그래서 바투의 원정에 참여했던 애들이 잡다한 유목민의 짬뽕군대였다고말야.....바투가 러시아로 가기전에 이미 러시아 남부에 투르크계 유목민들이 이미 살고 있었던거지?? 211.44.92.85 2006/10/14 x
 
 아 각하  러시아남부 평원은 고대부터 유목민천지였어 스키타이인들의 발흥지도 러시아남부평원이야 투르크족들은 몽골이 오기전부터 유럽근방까지 진출했지 210.113.180.225 2006/10/14 x
 
 ㅂㅂㅂㅂ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의 일부는 몽고인들오기 전부터 투르크계 쿠만왕조 의 영역 불가르도 상층부는 투르크인 하층민이 슬라브였소 근데 당시 투르크인들은 다 이란화 되어 있어서 동유럽의 투르크국가들의 유적은 대개 사산조페르시아의 문화요(6세기 경 부터 루마니아,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은 이미 투르크인의 세상이었고요 125.131.8.93 2006/10/14 x
 
 전륜성왕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요즘 코삭2를 하는데 대열이 와해된 적군 보병 학살용으로 잘 써먹고 있습니다^^ 162.83.219.3 2006/10/14 x
 
 야스히로  좋은글이군요~ 전 타타르족이 몽골에서 분파된 일부 부족인줄알았건만 .. -_-;; 다른거였군요~ 125.138.25.18 2006/10/14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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