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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정말 동북공정에 맞장구치는 드라마일까?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6.12.04|조회수175 목록 댓글 0

"주몽"은 정말 동북공정에 맞장구치는 드라마일까? 
 
번호 : 9954   글쓴이 : 소요자
 조회 : 138   스크랩 : 0   날짜 : 2006.11.29 18:23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주몽얘기가 한창입니다. 드라마 주몽이 중국 동북공정에 맞장구를 친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분들의 글이 많이 보이는데 정말 그럴까요? 글쎄요...전 전혀 아니올씨다라는 생각입니다만...

 

중국의 동북공정이 뭐였습니까? 고구려를 중국사라 주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몽을 보면 과연 작가가 부여나 해모수 주몽을 중국적인 정체성을 가진 국가나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작가는 드라마 주몽에서 부여국과 졸본 및 해모수나 주몽등의 등장인물을 완벽하게 중국적인 정체성과는 구별되는 한민족의 원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곁들여 고조선 역시 우리의 원류로 못박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구려 사료(영락태왕 비문이나 모두루 묘지명 등) 를 보면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의 원류를 북부여로 인식하고 있었지 고조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천제의 아들, 하백의 손자, 일월의 아들등의 표현이 등장하고 북부여 출신이란 것만 중국이나 우리의 사료에 등장할 뿐 고구려나 부여인들이 고조선을 그들의 원류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와중에 작가는 드라마에서 고조선 및 부여와 등장인물들을 한나라와는 명백히 다른 정체성을 가진 민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한나라와는 공존이 불가한 적대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드라마라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래 어떤 분이 올린 글에서 서모교수가 당시의 한나라를 강대하게 묘사하고 현토군을 강대하게 묘사했다고 해서 동북공정에 맞장구친다는 식의 글을 쓴 걸 봤는데 그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학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의 시각이 이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실망감이 드는게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현토군이 강대한게 아니라 당시 한나라가 강대했겠지요. 적어도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한나라보다 부여가 더 강성한 나라라고 주장하실 분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한무제 이전이라면 몰라도 그 이후니까요. 그렇다면 주변 소국이 현토군을 두려워한다는 설정은 현토군자체의 능력보다 그 뒤에 있는 한나라를 의식하는 행동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철기군이 있었니 없었니하며 논쟁하는것도 좀 우습지 않습니까? 그냥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설정한 것으로 생각하면 되는거지 철기군이란 요소를 드라마에 삽입했다고 해서 동북공정에 맞장구치는 드라마라는 발상 자체가 웃기는 거지요. 그정도로 협량한 인식세계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겁니다.

 

주몽은 그냥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주몽에 대한 사료는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이며 그나마 삼국사기의 기록중에도 신화적인 요소가 많아 그걸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 소서노는 고구려본기가 아닌 백제본기에 엉뚱하게 등장하며 이 여인이 정말 실제 존재한 인물인지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해모수가 오룡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유화부인을 꼬셔서 겁탈한 후 나몰라라 내빼버리고 주몽이 태어나자마자 활의 명인이며 도망칠때 물고기와 자라가 몰려들어 다리놓아준다는 식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결국 이 드라마는 작가의 상상력이 거의 99%를 차지할 수 밖에 없는 드라마입니다. 한마디로 픽션입니다. 김용의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가 그 속에 약간의 역사가 들어있다고 해서 그걸 역사라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몽도 그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볼 때 주몽은 그나마 완전히 망쳐버린 연개소문보다는 백배 낫습니다. 백배는 조금 심한가요? 어쨋든 연개소문은 초반에 완전히 실망을 해버려 아예 손놔버렸는데 그나마 합판을 등장시켜 완벽한 종지부를 찍어버리더군요. 정통사극을 표방한다고 큰소리치고 동북공정에 맞대응한다고 큰소리쳐대다가 무슨 환빠도 이런 환빠가 다 있나싶게 극을 이끌어가질 않나 삼국지의 설정을 그대로 베껴오질 않나...정말 연개소문은 눈을 뜨고 제 정신으론 보기 힘들더군요. 그 드라마에 역사교수들이 자문역을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황당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는지...

 

드라마 주몽은 적어도 동북공정에 맞장구치는 드라마는 절대 아니라 봅니다. 그 드라마는 고조선과 부여 및 고구려를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정체성과 혈통을 가진 민족의 역사로 설정했으며 바로 그것이 우리의 역사임을 말하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뼈대 1%위에 99%의 픽션이 가미되어 이루어진 드라마입니다. 당시 부여나 그 어떤 나라보다 한나라가 강대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며 그런 강대한 나라에 맞서 고조선의 유민들을 이끌고 우리민족의 새로운 나라 고구려를 세워 700년제국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설정이 어째서 동북공정에 맞장구친다는 건지 이해가 안갑니다. 철기군이니 뭐니 하는 말은 꺼내지 마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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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국왕 인종 저도 주몽에서 가장 불만이었던 것이 해모수가 장군으로 나오고 너무 굴욕적이었다는 것..왕이었던 사람을 장군으로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요? 주몽 어릴 때 진짜 황당했는데..주몽 어릴 때는 안 봤습니다..진짜 갑갑해서요.. 06.11.29 22:29
 ★明治好太王★ 어릴 때는 아예 생략을 했습니다.^^; 06.11.29 22:32
 이정기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더 우스운데... 공부 좀 하셔야겠네요... ㅋㅋㅋ 서영수교수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100%틀린 말씀도 아니죠... 결론을 내리면... 최완규가 미친놈이라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결론은 없을 듯... ㅋㅋㅋ 미친놈이 쓴 작품을 보는 나도 결국 미친놈이지... 06.11.30 02:14
 추모왕 이정기님 쌍시옷 발음... ㅋㅋ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구요^^;; 고구려인들의 어떤 벽화를 보면(고구려의 발견에 나오는데 제가 격이 ㅡㅡ;;) 고구려들인 단군신화를 그려놓았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고조선의 후예라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다는 것이고요. 당시 북부여는 동방최강의 국가였습니다. 그것이 동방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난것이죠. 그래서 북부여 후손이라고 해서 주변부족들을 정복후에 빠르게 고구려화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06.11.30 11:57
 소요자 고구려벽화에 단군신화가 그려져있다란 말은 이해가 힘들군요. 하긴 그런식의 주장이 있긴 했지만 그냥 몇몇 사람들의 주장일뿐 그걸 뒷받침할 아무 근거도 없습니다. 각저총 벽화를 말하는 모양인데 거기 그려진 동물이 정말 호랑이와 곰인지도 불명확하죠. 또 그 벽화의 주제는 씨름을 하는 사람이지 단군신화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고구려인들이 단군신화를 그리려 했다면 왜 쓸데없이 씨름하는 두사람을 주제로 삼았을까요? 그리고 또하나 이해할 수 없는건 북부여가 당시 동방최강이라고 하셨는데 도대체 뭘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시는지...북부여가 당시 동방최강이라 주장할 수 있는 자료를 속시원히 말씀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 06.11.30 16:08
 한단인 주제가 씨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주변 그림에 대한 설정이 아무렇게나 설정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요는 주변 그림을 그리는 화공의 문화 정체에서, 혹은 무의식적으로 묻어나는 문화 관념에서 단군신화에 대한 관념이 어쩌다 보니 그려졌다라고 생각하면 될겁니다. 아,,그리고 호랑인지 곰인지 불명확하다고 하셨는데 곰 맞습니다. 호랑이는 사냥당하고 있고 곰은 나무 아래서 웅크리고 있죠. 아,,그리고 추모왕님이 말씀하시는 북부여가 동방 최강이란 표현은 아시아 최강이 아니라 산해관 이동 지역에서 최강이란 말일 겁니다. 왜냐면 동부여가 해모수 때문에 천도했다는 기록 때문인데,,사실 이 기록은 해석 논란이 좀 있긴 하죠. 06.12.01 23:19
 대황제국고구려 주몽을보면 가면갈수록 회의가드네여.....과연 저게역사드라마냐 ,,,남녀관계의 애정표현을 다루는 드라마냐 ㅡㅡ; 역사드라마가 아니라 멜로드라마에 한표 06.11.30 22:20
 용의군사 저는 주몽 열렬히 시청 하고 있는데 소요자님의 의견에 100% 공감 합니다..다만 요새 실망스런 부분은 부여를 탈출하고 비밀통로로 다시 성안에 몰래 잠입하고 못만날것 같던 예소야도 힘들게 만났는데 유화부인이 아프다는 이유로 구출할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냥 나오는 내용 감옥에선 독침 한방으로 탈출하고 뭔가 어려운 상황이 쉽게 풀리는 식의 내용 같은점 들이 실망 이네요;; 좀더 리얼하게 했음 좋겠어요 06.12.01 16:15
 한단인 어,,소요자님 제가 다른 건 공감이 갑니다만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하고 비교하는 건 좀 문제가 있는 듯 한데요.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것과 가상 인물을 역사적 상황에 맞게 재조직하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지요. 또한 현도군 역할이 한무제 시기도 아닌데 너무 강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표현이 좀 중뿔나게 되었다고 할까요? 현도군 치소가 완전 황궁처럼 되어 있질 않나,,확실히 최완규 작가가 실수하긴 실수한 부분입니다만,, 06.12.01 23:12
 이정기 작가놈이 실수 한게 아니라 미친놈이라 그런거지... 06.12.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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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9956   글쓴이 : ★明治好太王★
 조회 : 103   스크랩 : 0   날짜 : 2006.11.29 23:03
 
제작진은 고구려 주몽에 관한 것은 설화(혹은 신화)일 뿐이고, 사료가 부족하다는 미명하에 전체적 내용을 상상력로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의 이러한 태도는 분명 잘 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료라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전란등 때문에 사료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단 한줄의 사료가 발견되면 엄청난 발견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 장수태왕의 남진정책은 기껏해야 단 한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줄이 무엇을 말합니까?
고구려의 정책 자체가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료의 한줄 한줄은 귀하디 귀합니다.
물론 제작진들 보고 역사학자가 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말그대로 사극이지 다큐멘터리는 아니니까요.
그러나 사료가 부족한 시대의 사극을 만들려면 최소한 그 시대를 연구한 학자들의 책이나 논문을 한번 쯤은 봤어야 하지 않을까요?
학자들은 바보라서 그 한줄의 사료에 매달려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작진 처럼 사료 갖다 버릴 정도로 가치가 없다면 연구 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치가 있기에 연구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드라마 주몽은 정통 사극은 커녕 퓨전 사극의 조건 조차 갖추고 있질 않습니다.
퓨전 사극도 사료를 기초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주몽은 사료를 기초로 만들어진 티가 100%에서 10%도 안됩니다.
작가의 픽션과 왜곡설정은 엄연히 다릅니다.
왜곡이란 뜻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뜻하는데, 주몽 작가진은 "재미"라는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기록마저 왜곡했기 때문에 픽션이라 부를 수 없고 "왜곡"이라 불러도 합당할 것입니다. 사극과 퓨전사극이라 불리기에는 너무도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신화를 극으로 재구성하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해석하는 것은 제작진들의 의도에 맞게 해석을 했던 학자들의 논문을 참고했으면 ?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퓨전사극인 서동요가 이도학님의 백제 연구 자료를 중점으로 참고했듯 말입니다. 주몽 제작진들은 그런 노력 조차 하지 않고 그저 오로지 "재미"만을 위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제작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주몽 신화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창조한 것과 같습니다.
드라마에서 주몽이 알까고 나오는 장면 넣기가 껄끄럽다면 신화를 풀어서 쓰면 그만입니다. 예를 들어 주몽이 나라를 창업하자 주위 신하들이 소문 잘 내는 적당한 사람을 골라 주몽은 원래 알에서 태어났으므로 신성했다등으로 소문내는 장면을 묘사할 수 도 있습니다.
또 해모수가 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등장을 시킬거면 최소한 북부여의 왕이라든지 태자로 설정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주몽이 7살 때 부터 날파리 잡고 다녔다는 것은 분명 신화적 과장이지만, 최소한 그 때 부터 활에 대해 유난히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어이상실 설정은 매우 많습니다.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최대한 개연성 있게 가겠다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개연성 거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소서노를 위한 억지설정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삼국사기와 한서등을 검토할 만큼 했다면 이 정도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인명, 지명, 국명 그리고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다는 것 빼고는 사료를 검토한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99%로 상상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검토할 노력이라도 했다면 고증은 훨씬 잘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인물들의 캐릭터와 관계, 국가간의 관계등은 사료 한 줄에만 집중해도 고증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학자분들이나 사학도분들의 전문적인 사료 검토 수준과는 다르지만 그 분들 처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만들 것이면 고증의 폭도 의외로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논점이 많은 빗나갔네요.^^)
주몽이라는 왜곡설정 드라마가 다른 나라에 수출된다면 타국인들은 드라마 내용이 고구려 역사라고 믿을지도 모르며 고구려 시조는 본래 나약한데, 여자 잘만나서 성공한 인물로 비춰질지도 모릅니다.
일본과 중국 같은 경우는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중국 같은 경우는 고구려관련 드라마가 막 나오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음은 잘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 드라마 수입도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국이 왜 주몽이라는 고구려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수입하고 중국인이 왜 중국인이 봐도 실망하지 않을 드라마 1위로 선정했을까요?
드라마 주몽에서는 부여국 왕을 기껏해야 동네북이었고 요즘으로 치자면 강원도군수 쯤 되는 현도군 태수와 대등하게 그리며 부여와 한나라의 관계를 상, 하 관계 처럼 묘사하였으며 결정적으로 극초반에 당시에 있지도 않던 무적의 한나라 철기 기마군까지 등장시키고 철기를 중국이 더 강하게 잘 만든다는 내용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한나라와 부여의 국력이 대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나라는 로마와 더불어 세계제국으로 성장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어느 국가가 그렇듯이 계속 한나라가 강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분명 한나라는 한무제 치세 중반 이후로 쇠락해가고 있었습니다. 진번, 임둔 같은 경우는 예족의 공세를 이기지 못해 낙랑군과 현토군에 편입되고 현토군 또한 공격을 받으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때였습니다.
사실 한사군 중 제대로 그 역할 수행을 한 군은 낙랑군 하나입니다. 한무제 이후를 살펴본다면 그의 아들은 소제는 8살에 즉위하고 상대적으로 전한의 정권은 약화됩니다. 그리고 그 해 흉노의 대대적은 침입도 있습니다. 거기다 한황실 사람 중 하나가 반란도 일으킵니다.
이런 중앙정부도 어수선한 상황에서 현토군이 부여와 싸울 여력이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지방태수들은 낙양주변 태수들에 비해 대접도 제대로 못받습니다.
대표적으로 한사군 같은 것 말입니다. 전한시대 현토군 병력은 많아야 1만명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부여 같은 경우는 최대 5만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이런 현토군이 부여에게 압박이나 가할 수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낙랑 같은 군하고 유기적으로 함께 했다는 뚜렷한 근거도 없을 뿐더러 당시에는 분명 한나라 본국이 훨씬 급했을 시점입니다.
이것은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한나라가 무제 시기에는 세계적인 최강국이었음에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이후는 확실히 아닙니다.
그 이유에는 한무제 본인의 지나친 과대팽창이라는 책임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해 경제가 파탄
나는 수준에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나라에서는 부여의 왕이 죽을 때 마다 옥갑을 보내는데 이것은 한나라가 최소한 부여의 왕을 중앙귀족으로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일개 실권도 없던 현토군 태수가 아예 앵앵거릴 처지가 못됩니다. 그런 가운데 드라마 주몽에서는 마치 한나라가 아직도 전성기인냥 지금의 강원도 군수 쯤 되는 현토군 태수가 부여에게 쳐들어오지 말라고 아부해도 모자랄 판에 행패나 부리고 있으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강하지도 않았던 한나라를 여전히 강하게 묘사하고 더불어 철기군까지 타임머신 타고 등장시켰으니... 이걸 보고 중국이 대장금 때 처럼 억지부릴까 살짝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기껏해야 당시 동네북이었던 현토군태수에게 부여의 왕이 휘둘린다는 모습을 타국인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한나라가 부여에 위협이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여가 한나라에 위협을 주고 또 도움도 주었습니다.
쇠퇴기를 걷고 있던 한나라는 내부의 문제때문에 부여를 침공한 적이 없고 반대로 부여가 몇번 한나라를 공격했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고구려의 침입에 시달리자 부여에 도움을 청하고 부여는 원병을 보냅니다. 부여는 한나라에게 굴복해서 원병을 보낸 것이 아니라 공통의 적인 고구려 때문이었습니다.
즉 결코 부여는 드라마에서 처럼 약소국이 아닙니다.
비록 부여는 고구려 처럼 대국(大國)으로의 성장은 하지 못하였지만, 적어도 현토군 태수따위 물론 한나라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동방 지역의 읍루나 숙신등을 제후로 두고 5만이상의 정병을 보유할 정도로 강국(强國)이었습니다.
부여 관련 이야기는 중심 논지가 아니므로 이쯤에서 접겠습니다. (또 논지에서 벗어났네요.ㅠㅠ)
우리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드라마 주몽에서 금와왕이나 주몽(혹은 해모수)이 한나라의 태도에 분개하는 것을 자주적 용맹성으로 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본다면 어떨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국 얘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저 조그만 나라 부여가 속국인 주제에 한나라한테 뒤질려구 개기네?" 하는 심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이 뿐이겠습니까?
어쩌면 중국얘들은 주몽내용 중에 철기군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한국 드라마에서는 철기군의 원조는 한나라이고 철기군이 있었음을 증명했다', '부여가 한나라 현토군에게 휘둘리는 것 또한 한국 드라마가 증명하였다'.등으로 믿고 실제 역사로 생각할 겁니다.
반면에 주몽 내용 중에 '주몽이 고구려를 세워서 한나라와 대등할 정도로 커진다', '고구려는 원래 부터 중국 소수민족이었다', '주몽은 실제로 한나라와 싸운 적도 없다'등의 드라마 내용은 허구로 생각할 것입니다.
즉 자신들의 입맛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 하고 필요 없는 것은 거짓이라 하겠죠.
지금 중국은 전설상의 왕조인 하왕조까지 실제로 꾸밉니다. 그리고 그 성과는 크고요.
왜 일까요?
하왕조를 현실화 하는 것이 자국 역사발전에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몽 의상을 봐도 그럴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보기에는 "역시 조선족 얘들은 옛날 부터 우리 것 다 따라했어."라는 심정으로 볼 것입니다.
중국은 다른 100여개의 국에도 고구려를 자국사라고 홍보하는 책자까지 만들어 배포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타국 교과서에서는 한국의 역사는 늘 중국의 조공국으로 묘사되고 있는 판에 다른 나라들은 한국이 거짓말 하고 중국이 하는 말이 진짜인 줄 알겠죠.
중국 뿐만이 아니라 타국에도 방영이 된다면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가 아닌 한국사로 인식하는 사람 들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 까지일 뿐, 그저 중국에 저항하는 약소국으로 보여지겠지요. 처음 부터 약한 민족으로 설정했으니까요.
이렇게 너무도 냉혹한 현실에서 주몽을 수출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의도야 어떻든간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동북공정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좀 더 확실하고 현실적인 고구려사 드라마를 만들어 낸 후에 수출을 해야 합니다.
이런 허구, 왜곡이 90%이상인 드라마는 고구려를 우리 역사라고 홍보하는 것에 도움이 많이 되질 못할 것입니다.
도리어 역효과만 일어날 뿐입니다.
그리고 신조협려등을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판타지 드라마(특히 중국의 무협물) 만드는 것하고 입장이 다른 것이 현실입니다. 다른 나라 들은 역사를 빼앗길 위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빼앗길지도 모를 특수한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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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국왕 인종 이런 글들을 보고 있자면 최완규란 사람이 우리나라사람이 맞나 이런 생각도 들고 혹시 중국인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옛날에 친일파들을 생각하게 하네요..나라 팔아먹는 거랑 지금 주몽 이렇게 만드는 거랑 뭐가 다른지.. 06.11.30 00:29
 소요자 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만 너무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시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부여가 현도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설정을 하셨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옥갑만 봐도 후한서 부여전등에는 그 옥갑은 현토군에 맡겨놓으면 부여에서 이를 가져다가 장사지냅니다. 이런걸 보면 한나라는 현토군을 통해서 부여에 권한을 행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토태수가 부여왕에게 앵앵거리지도 못하는 그런 실권없는 자리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 또 님의 글 중에 현토군은 당시 1만여 군사만 동원하고 부여는 5만여 군사를 동원할 수 있었다는 말은 뭘 근거로 한 말인가요? 06.11.30 17:04
 ★明治好太王★ 전한 시대 현토군 인구는 221,845명입니다. 어느 나라고 무리 없이 동원되는 병력은 인구의 5%입니다. 그렇게 되면 현토군 군 동원 능력은 최대 11100명입니다. 게다가 다른 군들하고 유기적으로 군사협조를 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부여 같은 경우는 삼국사기에 나와 있습니다. 임둔과 진번이 제대로 군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리가 있는 낙랑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낙양으로 오라가라 할 수도 없으니 상대적으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토군에서 전해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옥갑은 한나라에서 임금이나 대귀족, 혹은 공신들이 장례를 치를 때만이 쓸 수 있는 특권중에 특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건대 06.11.30 17:48
 ★明治好太王★ 한나라가 부여에 옥갑을 보냈다는 것은 최소 중앙귀족으로 대우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현토군 태수의 위치는 변방 중의 변방의 태수로 중앙귀족과는 천지차이의 신분을 가진 직급인데 부여에게 행패를 부리고 마구 그랬을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더군다나 시기가 전성기 때의 한무제 때도 아니고 다 쓰러져가는 한나라의 현토군 태수가 말입니다. 06.11.30 17:40
 소요자 현토군의 인구로부터 가용병력을 추론하신 님의 논리대로라면 당시 5만의 가용병력을 가진 부여는 대략 100만명정도가 되는군요. 님은 당시 부여의 인구가 대략 백만명 정도였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나라가 부여에 옥갑을 보냈다는 것은 오히려 한나라가 부여에 확실한 종주권을 행사했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부여 역시 한나라가 하사하는 옥갑을 순순히 가져간 것을 보면 드라마에서 보듯 한나라에 적대적인 시각을 가진게 아니라 한나라의 종주권을 부여도 인정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요. 해석은 다양할 수 있는데 님의 관점은 좀 편향적이라 보여지는군요. 06.11.30 18:35
 ★明治好太王★ 100만이라는 인구 안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삼국지에는 부여의 인구가 8만호(40만)이라 하였지만, 이 8만호라는 것은 부여의 특정지역만 말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옥갑 같은 경우는 한나라가 부여를 확실히 예속시킨 증거가 아니라 되려 한나라가 부여를 달래주는 것 처럼 보입니다. 쳐들어오지 말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부여는 한나라에게 사신을 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도 한의 군현에 종종 쳐들어간 기록이 있습니다. 반면 한나라가 부여에 이렇다 할 반격을 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06.11.30 19:06
 ★明治好太王★ 이것은 한나라가 부여를 압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쇠약해진 한나라를 부여가 압박하여 한나라 측에서 쳐들어오지 말라는 식의 제스쳐로 옥갑등의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06.11.30 19:07
 소요자 부여의 인구가 8만호란 기록을 부여의 특정지역만을 말하는것일 거란 님의 말씀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구의 5%가 가용병력이므로 현토군의 병력은 단지 1만이란 자신의 추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님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사료를 짜맞추고 있다고밖엔 말 못하겠군요. 또 부여가 한의 군을 쳐들어간 기록은 아마 후한서나 삼국지의 동이전을 말하시는거 같은데 낙랑을 처음 침공한것이 영초5년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111년인거 같은데 드라마상의 연대는 아직 기원전이란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06.11.30 19:50
 소요자 백수십년후의 국가간 역학관계를 가지고 드라마상의 당시 상황을 설명하려 하시는건 설득력이 떨어지는것 같습니다. 06.11.30 19:52
 ★明治好太王★ 피씨방에서 집으로 오는 사이에 벌써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시간상 수정 못한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결국 그 부분이...ㅠㅠ 예, 소요자님 말씀대로 부여가 한 군현을 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실수한 부분으로 더 거론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상의 당시 상황이더라도 현토군 태수는 여전히 부여에 행패 부를 처지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계속 말씀드리건대 전한은 분명 한무제 이후로는 쇠락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부여에 이래라저래라 신경쓸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후한 시대라면 몰라도 전한시대에는 부여와 전한이 마찰을 일으킬 만한 이유 따위는 없었습니다. 06.11.30 20:14
 ★明治好太王★ 오히려 급한 쪽은 내부사정이 긴박한 전한이었겠지요. 분명 무제 이후로는 지는 해였으니까요. 타국이 개긴다고 칠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부여에 옥갑을 주었을 때 그 시기 조차 전한인지 후한인지 분명치 않습니다만, 그 시기가 전한이건 후한이건간에 부여와 한나라와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전한 때 부터 옥갑을 주었다면 그 이유는 강압과 종속이 아니라 단순 화평관계였을 것입니다. 시기를 후한으로 본다면 부여를 달래는 제스쳐로 볼 수 있습니다. 06.11.30 20:22
 ★明治好太王★ 과거에는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불신한다는 전제하에 부여의 5만군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으나 요즘에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신용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인 만큼 상대적으로 삼국지의 기록은 조심스레 의심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여 군대의 최대동원 숫자가 5만군이 아무런 근거 없이 기록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여에 호의적인 중원인이 쓴 삼국지의 8만호 기록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8만호라는 수는 부여의 특정지역(혹은 중심지)로 보는 것입니다. 소요자님께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신용할 수 없으시다면 저는 달리 할 말 없습니다. 06.11.30 21:57
 소요자 뭔가 오해하신거 같습니다. 난 삼국사기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가 문제삼는건 부여가 5만군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아니라 인구 5%가 가용병력이므로 현토의 병력은 1만정도로 부여에 큰소리칠 수 없다는 님의 추론 그 부분입니다. 즉 5%이론이 맞다 하더라도 그게 절대적인건 아닙니다. 더 동원할 수도 있으며 또 그것만으로 현토태수와 부여왕의 권한을 비교하는것도 무리라는 겁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관계로 설명하는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겁니다. 제가 님의 글을 보면서 느낀것은 님이 이미 어떤 결론을 내려놓고 사료를 그 결론에 맞추어 해석하는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06.11.30 22:37
 ★明治好太王★ 물론 단순히 군사력만 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옥갑을 얘기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면 옥갑은 한나라에서 중앙귀족을 의미합니다. 부여의 왕은 곧 중앙귀족에 해당하는 대우를 한황실에서 받았고 반면에 현토군 태수는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는 최변방의 지방 태수입니다. 요즘도 중앙관료들과 지방관료의 차이가 큰데 신분제가 엄격했던 고대야 더 말할 것도 없을 듯 합니다. 지방태수와 중앙귀족(부여의 왕을 낮투는 것이 아니라 비교차원에서 씀.)의 권한은 비할 수 없습니다. 즉 현토군 태수가 부여의 국왕을 이래라 저래라 압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소립니다. 06.11.30 23:16
 소요자 부여를 한나라와 대등하거나 더 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로 묘사하고 한나라는 형편없는 오합지졸로 맨날 부여한테 깨지는 그런 나라로 묘사하고 주몽은 어려서부터 신동에 엄청난 재주를 지닌 그런 인물로 묘사해야만 자존심이 채워지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타파하는 그런 역사적인 드라마가 되는 것일까요? 난 별로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한나라가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고 부여는 한나라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중국과는 다른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독립국이며 잃어버린 옛 조선의 땅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한나라와 맞서 싸우는 해모수와 주몽이란 설정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갑니다. 물론 픽션이지만... 06.11.30 17:16
 ★明治好太王★ 원래 주몽이라는 소재는 국제관계를 다루기 보다는 한 영웅의 일생을 다루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더불어 꼭 철기군은 물론 한나라가 등장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즉 주몽은 초반 부터 여러가지 설정이 매우 이상합니다. 작가진(정확히 최완규)이 말하길 드라마에서의 한나라와 부여의 관계는 현 미국과 한국의 관계와 같다라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여와 한의 관계는 오늘 날 미국과 한국의 관계하고는 판이하게 다른데 말입니다. 무리하게 대입을 시키려니 억지왜곡 설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른 전쟁까지 그리려니 엑스트라수도 부족하고요. 한나라와의 전쟁이 꼭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킬까요? 06.11.30 17:57
 ★明治好太王★ 다른 식으로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습니다. 주몽이 고구려건국을 선포한 후 흩어진 옛 조선의 후예들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즉 통일전쟁으로 말입니다. 주변 세력을 통합할 수 있는 배경도 같이 묘사하면 좋겠지요. 조선을 멸망 시킨 한나라가 쇠약해져서 동방을 빠른 속도로 통합해가는 고구려를 견제할 수 없는 현실 말입니다. 그리고 자존심 채우자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개연성 있게 쓰자는 것입니다. 06.11.30 21:30
 한단인 음,,제가 꼭 여기서 끼어들 일은 아닌것 같습니다만 뱀다리 하나 달고 갑니다. 부여의 병력 동원 능력이 5만이 된 건 삼국사기에서 대소가 대무신왕을 상대할 적에 끌고온 병력이니 맞는 얘기입니다. 단, 이때 인구대비가 5%가 될지 안될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당시 부여의 경제구조는 반농반목입니다. 중앙집권국가 이전단계이기 때문에 이때의 군사는 엄밀한 의미의 징집병이라기 보다 전사집단일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럴 경우 인구 5% 정도가 아니라 더 나올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실지 인구 100만 정도의 몽고족이 10만 이상의 병력을 끌어낸 것이 한 예가 되겠죠. 06.11.30 21:56
 한단인 그리고 뱀다리 하나 더,,,삼국지 부여전에 나오는 호구 수 8만은 정확히 어느 때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거니와 명치호태왕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명치호태왕님의 추측이고 저도 그냥 심증만 가는 것일 뿐 그것을 판단할 어떤 근거나 기준은 없습니다. 06.11.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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