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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국 왕실 최대의 엽기 커플, 조지 4세와 캐럴라인 왕비(찰스나 다이애나는 유도 아님)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7.01.14|조회수458 목록 댓글 0
"나는 당신의 아내인 왕비예요. 나를 들여보내지 않을 작정이에요?"

이는 조지 4세의 대관식 당시 아내인 캐럴라인 왕비가 성당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외친 말입니다. 아내를 혐오했던 조지 4세는 대관식 날 캐럴라인을 따돌린 채 대관식을 치러버렸고 왕비는 왕비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한바탕 스캔들을 만들어냈죠.

1762년 영국의 호색가 조지 3세의 장남으로 태어난 조지 4세는 호색가의 혈통을 타고나서인지 유래없는 방탕아였습니다. 그는 23세때 6세 연상의 미망인 피츠하버트와 결혼했지만 한 번 손에 넣은 후로는 바로 다른 여성을 찾는 바람둥이의 전형처럼 33세때 피츠하버트와 이혼하고는 캐롤라인과 결혼했습니다.

이런 조지 4세의 성편력은 그 당시 유럽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으며, 도를 지나쳐 조지 4세 하면 사디즘이란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방탕은 극을 달려, 당시 런던은 세계에서도 가장 부도덕한 도시로 알려져 있을 정도였습니다. 예로 조지 3세의 아들 중 하나인 컴벌랜드 공작은 자기 친여동생의 아들의 아버지, 즉 조카의 친아버지였을 정도니 왕실부터 이러했던 영국에서 평민들의 생활은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시기입니다.

독일 영지의 공주로 태어난 캐럴라인은 어릴 때부터 별난 성격으로 유명했고, 16세 때 어머니가 무도회에 가는 걸 금지하자 그녀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아기가 나올 것 같다며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산파가 불려오고 온 집안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기절 직전의 어머니를 향해 "자, 이래도 나를 무도회에 보내주지 않을 작정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_-;;

조지 4세는 어머니인 샬롯 왕비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부감을 고를때가 되자 그에게 두 명의 신부후보가 제시되었습니다.

하나는 메클렌부르크-스트렐리츠 공작가의 루이즈. 바로, 왕비 샬럿의 오빠의 딸입니다. 왕비쪽 조카지요. 또 하나의 후보가 바로 엽기 왕비인 캐럴라인입니다. 조지3세의 누이로 영국의 맏공주였던 샬롯이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시집가서 낳은 딸이지요.

조지4세는 어머니를 너무 싫어했던 나머지 , 자신의 아버지쪽 조카를 고르고 맙니다. 그러나! 정작 조지가 싫어했던 어머니쪽 사촌인 루이즈는 매우 아름답고 품위있는 여자였다고 합니다. 캐럴라인과는 정반대로여.

원래 조지4세는 방탕한지라 많은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그를 그렇게 싫어한 것은 그가 사치로 세금을 낭비하는 것과, 거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던 때이니 부왕 조지 3세는 황태자의 행동이 반란을 부를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의회는 빚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유럽왕가의 개신교도 공주와 결혼하여 후계자를 낳는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이미 결혼한 마리아 피츠허버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국혼이 아닌 비밀결혼이었는데가, 여자가 가톨릭이어서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조지 4세는 의회에서 정식으로 자신은 피츠허버트 부인과 결혼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캐럴라인과 결혼했습니다. 결과는...

그녀가 영국 황태자 조지의 신부가 되어 영국에 도착했을 때 갈색 곱슬머리에 땅딸막한 키, 풍만한 가슴의 그녀를 처음 본 황태자는 충격으로 제대로 몸을 가눌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친구 맘즈버리 백작에게 "이봐, 브랜디 한잔만 줘. 저 아가씨를 보니 기분이 나빠지는군"이라고 속삭였지만 그 말을 들은 캐럴라인은 지지 않고 "어머, 저 분이 황태자라구요? 초상화와는 달리 미남도 아니고 뚱뚱하네요"라고 맞받아쳐서...당대 제일의 멋쟁이로 통하던 황태자의 자존심을 확 긁어버렸고 첫날밤에도 제대로 의무를 할 정신이 없어서 거의 비몽사몽으로 보내버렸습니다. 황태자는 결혼식 도중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고 부왕의 재촉으로 겨우 서약을 마칠수 있었죠. 황태자는 캐럴라인을 혐오해서 그 날 밤 벽난로 옆에서 코를 골며 밤을 샜고 캐럴라인은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렇게 첫 대면부터 으르렁거리던 그들 사이에는 곧 샬롯 공주가 태어났습니다.

처음 임신한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 캐럴라인 왕자비는 모두가 듣는 앞에서 "(임신시킬 능력이 있다니)믿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들으란 듯이 크게 외쳤고 황태자는 그런 오명을 뒤집어 씌워 자신의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깔아뭉갠 캐럴라인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캐럴라인이 딸을 낳았을 때 조지는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자리에 드러누워 아예 유서를 써서 자신은 절망 때문에 곧 죽을 것이고 딸의 양육은 모두 아버지인 조지 3세에게 맡길 것이며 아이의 어머니는 '지독한 부적격자'이므로 결코 딸의 양육에 간섭할 수 없다고 쓰기까지 했습니다. 유산은 피츠허버트에게 남기고요. 캐럴라인은 잘 씻지도 않고 내복이나 스타킹을 갈아신는 일도 좀처럼 없어서 늘 이상한 체취(?)를 풍기고 다녔는데 그녀는 그런 일에 묘하게 둔감했던 모양이고 반대로 깔끔하고 결벽증인 조지가 캐럴라인이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은 모두 사내아이를 바랬기 때문이었죠. 조지는 죽기는 커녕 미적미적 살아나서 아내와는 걸음을 끊었고 그는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신은 우리를 어울리지 않게 만드셨으니 관계가 좋아질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요. 딸이라도 후계자는 얻었으니 평온하고 기분좋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그만 별거합시다'
조지와 캐럴라인, 그리고 로얄 베이비인 샬롯은 수많은 유모들에게 둘러싸여 각각 궁 하나씩을 차지하고 따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피츠허버트는 그 후에도 자신이야말로 조지4세의 진정한 아내라고 생각하고 그의 정부로 남아있었습니다. 게다가 캐럴라인에게 정이 떨어진 태자는 피츠허버트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동거하던 브라이튼 주민들은 캐럴라인보다 피츠허버트야말로 태자비로 불릴만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합니다. 그러나, 조지 4세는 워낙 바람둥이였기 때문에 피츠허버트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들에게 손을 대고 다녔습니다. 피츠허버트의 친구가 죽자, 그 딸인 미니 시머는 피츠허버트에게 양육되게 되었는데, 태자는 자기 딸한테는 냉정하면서도 애인이 키우는 아이에게는 친부처럼 따뜻하게 대합니다.

마리아 피츠허버트는 훗날, 스스로 태자와 갈라서버립니다. 미니의 친척들이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고 나서자, 자기가 키우려고 했으나 태자는 도움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피츠허버트는 자신이 미니를 키우도록 도우라고 협박(?)합니다. 이제까지는 가만히 있었으나 정당한 아내로서의 권리를 찾겠다고 하져. 캐롤라인은 자기보다 나중에 결혼했으니까 그 결혼은 중혼이고 따라서 무효다. 그렇다면 당신의 유일한 후계자인 샬럿 공주는 사생아가 되버리는 셈인데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나는 이
미 교황에게 과연 그런 식으로 비밀리에 올린 결혼이 효력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교황은 합법적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당신의 진짜 아내는 나 하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고 나서면 영국이 시끄러워질 것은 물론. 결국 태자는 손을 들고 맙니다. 피츠허버트는 미니를 얻자 만족하고 태자와는 관계를 끊었습니다. 이미 그 때 태자는 레이디 저지(유부녀..- .-;;;)한테 추파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연애를 시작하지요.

남편만큼이나 캐럴라인 또한 방종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하루가 멀다고 자기 소유의 집에서 왁자지껄한 파티를 열어 가슴이 깊이 패인 드레스를 입고 귀족 남자들과 시시덕거렸습니다. 파티에는 남자들만 초대되어 캐럴라인은 그 중 마음에 드는 남자를 끌고 사라지며 "내겐 언제나 잠자리 할 사람이 있다"라고 공공히 말하고 다녔습니다. 조지는 알면서도 캐럴라인과 헤어질 구실만을 찾고 있었기에 내버려 두었고 부왕인 조지3세가 캐럴라인을 꾸짖으러 왔다가 오히려 그녀의 파티에서 소란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돌아갔다고 합니다.-_-;;;

그녀는 가끔 선의의 활동으로 남의 아이를 맡아 주기도 했는데 어느 날 그녀의 친구인 더글라스 부인이 그녀에게 자신이 임신한 것같다고 얘기하자 약이 오른 캐럴라인은 개인적 사정으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한 여자의 아들을 데려다가 리틀 위럼이라는 별명을 짓고(본명은 윌리엄 오스틴. 부두 노동자의 아들) 그 귀족 부인을 불러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라고 말해주고 부인의 놀라는 모습을 실컷 즐긴 다음 사실을 말하고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놀림당한데다 자신의 연인인 서 시드니 제독까지 빼앗겨(캐럴라인의 하인은 그녀와 서 시드니의 음란한 짓을 보고 실신함) 앙심을 품은 그 부인은 "오스틴이라는 사내 아이는 캐럴라인 황태자비가 부정을 저질러 낳은 사생아다"라는 소문을 사방으로 퍼뜨렸고 훗날 이 일은 법정으로까지 비화되어 오스틴의 생모가 증인으로 출두하는 등 소동으로 발전하게 되죠.

사람들이 단 하나 캐럴라인을 동정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조지가 딸의 양육권을 쥐고 어머니와 만나지 못 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물게 조지의 처사가 옳은 일이었음을 훗날 알게 되는데 그것은 샬롯 공주가 16세가 되어 사랑에 빠졌을 때였죠. 샬롯의 연인은 요크 공의 사생아인 18기병연대의 헷세 대위였는데 조지가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자 두 사람은 캐럴라인에게로 피신을 왔습니다.

의자에 앉을때 숙녀라면 다리를 얌전히 모으고 앉잖아요? 그런데, 캐럴라인은 다리를 양쪽으로 좍 벌리고 앉았습니다. 거기다가 양쪽 다리에 손을 하나씩 얹고 앉았다는군요.
참고로, 이 시대의 드레스는 엠파이어 라인....콜셋을 하지 않아서 잘못하면 속살이 비칠 수도 있었고 또 얇은 옷감을 잘 썼던 시대져....

그 때 캐럴라인은 여자아이도 16세쯤 되면 연애 경험이 있어야 한다며 침대가 있는 한 방에 이불까지 젖혀둔 채 두 사람을 그 방에 가둬버린 겁니다.ㅡ0ㅡ;;;샬롯은 아직 순진해서 헷세대위외에도 다른 몇 명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지만 자기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확실히 모르는 상태였져.

샬럿과 헷세대위에게 샬럿의 16세 생일 선물을 보여주겠다며 캐럴라인은 방으로 안내합니다. 그들이 들어가자, 캐럴라인은 뒤에서 문을 쾅 닫아버립니다.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캐럴라인의 멘트가 울려퍼졌습니다.
"Amuse yourselves!"(서로 즐기세요...?)
샬럿 공주보다 헷세대위가 더 놀랍니다. 잠겨진 방에 왕위 후계자와 단 둘이 갇혀있다...
이건 반역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샬롯과 헷세는 문을 두드리며 당장 열어달라고 외쳤고, 캐롤라인이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섭섭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자기가 준 선물을 두 사람이 받지 않은 것이....

나중에 샬럿은 아빠인 태자에게 그 때의 일을 말해버리고 태자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헷세대위에게 딸과 주고받은 편지며 여러 증거들을 없애버리게 하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조지의 행동을 납득하게 되죠.

캐럴라인은 남편이 이혼할 꼬투리를 잡고 있는 것을 알고 멋대로 유럽으로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고 다니며 그것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지 3세가 위독해지고 황태자가 섭정을 하게 되면서 그는 캐럴라인과 이혼하기 위해 사방에 스파이를 파견했습니다. 황태자가 애인 하트포드 때문에 토리 당을 중용하자 휘그 당은 캐럴라인에게 가서 붙었고 캐럴라인은 자기 편을 얻게 됩니다. 조지 3세가 죽고 황태자는 조지 4세로 등극하게 되자 캐럴라인은 드디어 영국의 왕비가 된다는 생각에 감격, 그러나 황태자가 아내 캐럴라인에게는 연락도 않은 채 대관식 날짜를 잡아버리고 이를 알게 된 캐럴라인은 오스틴까지 데리고 당장 영국으로 달려갑니다. 그녀가 영국에 도착하자 조지에게 질려있던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왕비를 환영하며 환호성을 울렸고 조지 4세는 군중의 배신 행위에 당황해서 윈저로 철수합니다. 대관식 날 호화찬란한 모습으로 거리를 지나 기세 등등하게 대관식 장소로 갔지만 그녀를 제외한 채 성당 안에서는 대관식이 열리고 있었죠. 캐럴라인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수행해 온 대신이 감히 왕비의 앞을 가로막을 셈이냐고 문을 지키는 호위병을 문책했지만 그들은 시큰둥하게 "왕명"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조지는 캐럴라인이 저지른 갖가지 부정을 폭로하고 왕비로서의 자격을 상실햇으므로 이혼을 요구하며 재판을 걸었지만 필사적으로 왕비를 변호한 대신 브룸 경의 노력(진짜 눈물 겨운 노력이었음 왕비를 변호하려는 사람이 없어 혼자 변호사 증인 다 하고)과 왕비를 지지하는 여론 덕분에 재판은 쉽게 끝나지 않고 연일 질질 끌게 되었습니다. 왕비가 이탈리아 인 정부의 국부에 손을 얹고 자고 잇었다는 하녀의 증언에 맞받아친 브룸 경의 말은 "그 사내는 남자 구실을 못 한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의 전투 때 가엾게도 국부를 손상당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가며(-_-);;; 갖가지 증언과 변호가 쏟아져 나오고 재판은 연일 최고의 뉴스 거리였습니다.

결국 11월 10일 108표 대 99표로 캐럴라인이 재판에서 이기고 왕비 지지 여론에 밀린 조지 4세는 기분이 상해 아예 자기 궁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나마 "자비로우신 왕비님,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 주세요, 그럴 수 없으면, 제발 떠나주세요"라는 내용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ㅋㅋ)

딸 샬롯이 마지막으로 캐럴라인을 찾아온 것은 1813년 7월,조지4세가 샬롯을 오렌지 공에게 시집보내려할 때였습니다 샬롯이 어머니 곁에 있고 싶다며 거부하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윈저 숲의 별장으로 딸을 몰아내려고 하여 이에 반항한 샬롯은 아버지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어머니에게 달려와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했지만 캐럴라인은 오히려 아버지 뜻에 따를 것을 권유합니다.실망한 샬롯은 결국 벨기에 레오폴드 왕과 결혼하지만 가엾게도 첫 아이 출산 도중 사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모녀의 마지막 만남이었죠.1821년 캐럴라인은 죽기 전에 브룸에게 "난 죽어가요, 하지만 별 거 아니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외동딸 샬롯 공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나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훨씬 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도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조지 4세의 애정행각은 장난이 아니더군요. 16세때, 이미 여자를 알만큼 안 나머지 동생에게 시녀들을 소개하며 남자가 되어보라고 권유하기까지도. 깜짝 놀란 국왕은 이미 물이 든 둘째아들 요크 공 프레데릭은 포기하고, 아직 순진했던 세째아들 클라렌스 공 윌리엄을 선원으로 만들어 바다로 보내버립니다. 해군이 된 윌리엄은 나중에 윌리엄 4세로 왕위에 오르고 조카 빅토리아 여왕에게 자리를 물려주지요.(그러나 이 인간도 도로시 조단과의 일화를 남깁니다) 조지 4세가 건드린 여자들을 보면 유부녀, 여배우, 미망인....골고루 했군요-_-;;

그러나, 그가 제일 사랑했고 어쩌면 진정으로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는 바로 마리아 피츠허버트입니다. 꽤 좋은 집안의 미망인인 그녀는 굉장히 정숙하고 품위있는 여자였습니다.

조지 4세는 당시 유럽의 첫번째 신사라고 할 만큼 잘생기고 세련된 멋쟁이었답니다. 그 유명한 보우 브람멜과 함께 당시 유행을 주도했을 정도.
'발가벗기는 역사'를 보면 조지 4세가 채찍질하는 집의 단골손님이었다는군여. 너무 상상이 안가는 이미지... 여동생도 만만찮아서(?) 아멜리아 공주는 왕실 측근인 어떤 대령의 아이를 임신해서 비밀리에 출산했고, 그 아이는 친부가 입양형식으로 데려갔다는 얘기가.... 이런 방탕아 왕자들의 아버지인 조지 3세는 결혼 후 한 번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던 범생남편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죠.

조지 3세는 샬롯 왕비와 결혼전에 퀘이커 교도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몇몇이 훗날 빅토리아 시대에 나타나서 친자 인지 소송을 벌입니다. 조지 3세가 퀘이커교도인 자기 할머니와 비밀결혼해서 자기들을 낳았으며, 따라서 왕위계승권을 요구한다는...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합법적인 결혼에서 낳은 그들에게 왕위계승권이 있으며 조지 4세를 비롯한 샬롯 왕비의 아이들은(15명..-_-) 왕위에서 밀려나는 거죠. 물론 재판에서 패했지만 조지 3세가 결혼 전 한나 라이트풋이라는 이 퀘이커 교도 여자와 깊은 관계였던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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