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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렌 르 샤토의 보물 전설과 예수, 그리고 메로빙거 왕조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7.01.14|조회수599 목록 댓글 0

'렌 르 샤토의 보물 전설'. 그것은 벼락 부자가 된 한 사제의 이야기로 그 보물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았다.

 

  

1885년 6월 젊은 신임 사제가 프랑스의 남부 피레네 산록 렌 르 샤토라는 작은 마을에 부임해 왔다, 이름은 베랑제 소니엘.

 

6년 후 어느 날 소니엘이 망가진 교회 제단을 보수하려 무거운 제단석을 들어올려 촛불로 돌 아래를 들여다보니 흙에 묻힌 두 개의 낡은 원주가 나타났다. 둘 중 하나는 속이 비어있었는데 그 안의 나무통에서 두 장의 양피지 문서가 나왔다. 그것은 열어보니 뜻 모를 문장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러나 소니엘은 그 한 장에 구두점 하나 없이 적혀있는 문장이 왠지 마음에 걸려 일종의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밤새 양피지 문서와 씨름해 드디어 그 암호를 풀어냈다. 빼곡이 드어찬 문장 가운데 여기저기 의미가 드러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발췌하여 연결시키자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A Dagobertroi et a Sion set tresor et ilest la mort.'

-이 보물은 왕 다고베르트 2세와 시온의 것이다. 그가 여기 묻혀 있다.


그리고 마지막 어구 'et ilest la mort'는 '이곳을 범하는 자에게 죽음 있으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고베르트 2세는 7세기 메로빙거 왕조(481년 클로비스 1세에서 751년 카롤링거로 바뀔 때까지의 왕조)의 프랑스 왕이다.


사제 소니엘은 아무래도 이건 어떤 보물과 관련있는 것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소니엘은 파리로 가서 암호 전문가와 의논하기로 하고 파리의 슈리피스 회의 책임자 비에유 신부를 찾아가 그의 조카인 오페 신부를 소개받았다. 그 오페의 도움으로 그는 시인 말라르메, 극작가 마테를링크, 작곡가 드뷔시 등 예술인들을 알게 되었다.

 

소니엘과 그들 사이에 어떤 정보가 교환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소니엘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길로 루브르 미술관을 찾아가 몇장의 복제화를 구입했다. 그 중 한장은 16세기 프랑스 풍경화가 니콜라 푸생 작 <아르카디아의 목자>였다.

 

그림 속에는 세 사람의 양치기가 묘비석 옆에 서 있고 묘석에는 'Et in Arcadia Ego -나 (죽음)은 아르카디아에도 있나니'라는 유명한 구절이 새겨져있다.

 

이렇게 렌 르 샤토로 돌아온 소니엘은 본격적으로 '보물' 수색을 시작해 세명의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 제단 앞 마루 판자를 들어올렸고 판자 뒷면에 7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말탄 기사상이 새겨져있는 것과 더 파내려가 두 개의 해골과 항아리 하나를 건졌다. 그 후 소니엘은 혼자 방문을 잠그고 밤을 새우다 며칠 후 마리 도나르노라는 시녀를 데리고 교회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저녁이 되자 돌이 가득 든 부대를 어깨에 이고 돌아와 그 돌로 교회 정원에 돌집을 만들었다.(-_-);;;

 

다음으로 소니엘은 교회 부지 내의 마리 드 브랑슈폴 후작 부인의 묘비석에 새겨진 문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선 묘비석 양측에 세로로 새겨진 문자는 그리스와 로마 문자가 섞여 'ET IN ARCADIA EGO'라고 적혀있었다. 푸생의 그림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중앙에 새겨진 문자 'REDDIS REGIS CELLIS ARCIS'는 '왕의 땅 레디스, 그 성채의 동굴 속'이라 해석할 수 있다. 레디스는 렌 르 샤토의 옛 이름이다.

 

한편 비석 문자에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우선 'CIGIT(여기에 잠들다)'의 'I'가 'T'로 되있고 'MARIE'의 'M'이 원래 둘째 행에 있어야 하는데도 첫째 해 끝에 가있다. 'NOBLE'의 'E'가 와야 하는데 'B'가 'R'로 되어있다.

 

모두 8군데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는데 그 대문자만을 모으면 'TMRO'. 소문자만 모으면 'eeep'이다.

 

다음에 이 대문자의 네 문자를 이리저리 배열하다보면 'MORT(죽음)'라는 말이 되고 마찬가지로 소문자도 배열하다 보면 'epee(검)'라는 말이 된다.

 

아무래도 이 두 단어가 나무통 속에 있던 양피지 문서를 해독하는 열쇠인 듯 했다. 소니엘이 혼자 힘으로 이것을 해독한 것인지 아니면 파리 식자들로부터 힌트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그 직후 그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소니엘은 파리 은행과 거래를 시작했고 은행은 그를 최고 고객으로 대접해 렌 르 샤토 마을에 연락관을 파견했다. 다음에 소니엘은 자택 앞 진흙탕 길을 포장도로로 바꾸고 수도관을 깔고 정원이 넓은 호화 별장, 장서를 진열한 고딕풍 탑을 세우고 비싼 골동품이나 도자기 등을 끌어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럽의 왕후 귀족과 정치가, 문화인 등을 별장으로 초대했는데 손님 가운데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형제도 있었고 그 사촌인 요한 폰 합스부르크 대공도 초대되었다.

 

눈이 튀어나오게 호화 생활을 하던 소니엘은 1917년 64세에 뇌졸중을 일으켜 자리에 누웠고 그의 베개 맡에서 고해를 듣던 사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방을 나가는 바람에 곁에 있던 사람이 이유를 물었지만 사제는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후 그 사제의 웃는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사제를 그렇게 충격으로 몰아넣은 소니엘의 고백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묘하게도 소니엘을 모시던 시녀 마리 도나르노도 그 후 갑자기 부자가 되어 제 2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 국내에서 새 통화가 발행되자 정원에 10프랑짜리 지폐를 산처럼 쌓아놓고 불을 질렀고 소니엘의 별장을 매각한 돈으로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냈지만 소니엘이 발견한 보물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 하나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소니엘이 양피지 문서에 적힌 보물을 발견해 그것을 어떻게든 돈으로 바꾸었다는 사실로 그는 수수께끼의 양피지 문서에서 무슨 방법으로 숨겨진 보물의 단서를 발견한 것일까.

 

이 문제에 매료된 헨리 링컨이라는 역사 연구가는 연구 중 어떤 비밀 조직의 존재를 발견해냈다. 그 조직은 'Priory of sion(시온 수도원)'이라는 혈맹 기사단이었다.

 

링컨은 국립도서관에서 발견한 고문서를 통해 이 기사단의 주요 인물에는 연금술사 니콜라스 플라멜(헉 해리 포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소니엘 시대에는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소니엘이 파리에서 드뷔시를 만났을 때 그는 이 비밀 조직과 접촉해 암호 해독에 관한 중요 정보를 얻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 잠깐 앞에서 말한 묘비석을 보면 중앙 위쪽에 'P-S'라는 문자가 있고 양피지 문서의 짧은 문장을 보면 'P-S'라고 끝난다. 이것은'Priory of sion'의 첫 글자임이 분명하다.

 

아마 소니엘이 발견한 보물은 이 시온 수도원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링컨의 조사에 의해면 시온 수도원의 결성은 메로빙거 왕조의 멸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목적은 메로빙거 왕조를 프랑스 왕좌로 복귀시키는 일이었다.

 

메로빙거 왕조는 현재 프랑스에 5세기 말 클로비스 왕이 연 왕조로 후일 힐데리히 3세라는 병약한 왕이 즉위하자 751년 반역자의 손에 폐위되었고 그 반역자의 가문이 카롤링거 왕조를 열었다.

 

단 메로빙거의 혈통이 끝난 것이 아니라 링컨에 의하면 이 때 다고베르트 2세의 아들 시지스페르는 남부 랑그도크로 도망쳐 숙부의 뒤를 이어 라제 공과 레대 백작의 칭호를 계승했다고 한다. (그는

다고베르트 2세의 두번째 아내 지젤 드 레데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외숙부의 지위를 계승했다)

 

레대는 렌 르 샤트의 다른 옛 이름이고 라제는 렌 르 샤토가 있는 군의 이름이다. 아무래도 렌 르 샤토와 메로빙거 왕조는 인연이 깊은 것 같다.

 

더욱 조사한 링컨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렌 르 샤토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아르크 성 가까이에 흐생 그림에 나오는 그 묘지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림속의 묘와 똑같았고 배경에는 렌 르 샤토까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드 브랑슈폴 후작 부인의 묘에 새겨진 문자의 첫 행은 'ET UN ARC(아르크에서)'라고 읽을 수 있다. 중앙의 문자는 말했듯 '왕의 땅 레디스, 그 성채의 동굴 속'이다.

 

그리고 타원형의 선이 문자 'P-S'의 위를 둘러싸고 있고 그 선은 'P'앞에서 시작해 'S'앞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알파벳 순으로 보면(아씨 알파벳 계속 나오니까 진짜 귀찮네-_-;;;) 'P'앞은 'O', 그리고 'S'앞은 'R'이다. 'O'와 'R'을 연결하면 'or'이 된다. 프랑스어로 황금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는 황금이 왕의 땅 레디스의 성채 동굴 속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시온 수도원과 메로빙거 왕조 사이에는 무언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다.

 

링컨은 조사를 하면서 보물이 시온 수도원의 계통을 이은 템플 기사단의 보물이라는 추론에 도달했다. 탬플 기사단이란 12-13세기에 걸쳐 거대한 부를 축적한 무장 수도사 집단이다.

 

제 1차 십자군이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 손에서 탈환한 후 1118년 드 파얭이라는 기사가 기사단을 만들어 성지로 이어지는 위험한 길을 지키자는 제안을 했다.

 

기사단은 교황에게 정식 인정받아 예루살렘 시온 산의 솔로몬 신전 유적 근처에 본부를 설치할 수 있게 허락받았다. 기사단 전성기에는 유럽 지역에 9만 군데 영지를 소유한 성지의 지배자로 부상했다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2세기 후 그들의 권위를 질투한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재위 1285~1314)는 1307년 10월 13일 갑자기 템플 기사단 전원을 체포했고 기사단원들은 가혹한 고문 끝에 처형, 기사단 자체도 괴멸해버렸다.

 

이 때 필리프 4세는 템플 기사단의 가장 큰 거점의 하나인 '베즈'의 재물을 놓친 것같다. 그리고 이 베즈가 바로 렌 르 샤토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링컨은 이 필리프 4세가 약탈하지 못한 베즈의 재무이야마로 바로 렌 르 샤토의 보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이 테마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어느 영국 교회 수도사로부터 기묘한 편지를 받았는데 수도사는 렌 르 샤트의

보물에는 황금과 보석이 없었고 템플 기사다느이 보물이란 예수의 성배를 말하는 것이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도사가 예수는 A.D. 30년 경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게 아니라 적어도 45년까지 살아있었음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링컨은 수도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바로 시온 수도원의 '중대한 비밀'임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시온 수도원 회원들의 주장으로는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클로비스 왕

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온 수도원의 야망, 즉 메로빙거

왕조를 프랑스 왕좌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근거였다.

 

성배는 십자가에 박힌 에수의 피를 받은 잔을 말한다. 성배가 막다라 마리아에 의해 남프랑스로 옮

겨졌다는 설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성배는 템플 기사단이 은밀히 보관하고 있더라는 전설도 있

다.

 

덧붙여 부물 발견 후 소니엘이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탑을 세웠는데 그는 그 탑 이름을 '막달라

탑'이라 했고 자신의 별장을 '비이라 베타니아'라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비이라 베타니아는 예수

가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탈 당나귀를 두 제자가 끌고 갔던 장소이다. 이런 사실도 '보물-성배' 사실

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닐까.

 

그러나 죽어야 했던 예수가 어떻게 살아서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가 될 수 있었을까.

 

링컨은 놀라운 말을 하고 있다.

 

'지금가지 전해온 것처럼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았다. 십자가 처형법으로 사람이 죽으려면

보통 며칠에서 몇 주일 걸리는데 예수는 몇 시간만에 '죽었다'.(고 전해지지 않냐)'

 

지금까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힌 다음 형 집행자의 자비로 발목의 못이 풀린 것으로 추측되고 있

다. 그렇게 하면 두 팔로 자신의 체중을 떠받쳐야 하므로 빨리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계획한 대로 어떤 약물을 복용하고 가사 상태가 되어 구출되었다는 것이다.

 

그후 예수는 막다라 마리아와 결혼하고(어디서 이 둘이 썸씽이 있었다는 얘기를 분명히 들었는데

어디였더라...;;) 팔레스타인에서 남프랑스의 랑그도크로 향하는데 그후 74년 마사다 성채 공략 때

세상을 떠났다. 즉 푸생이 그린 언덕위의 묘는 예수 자신의 묘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연출한 것은 예수 자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기적을 연출

해 자신을 초인-신의 아들-로 민중들 가슴에 새긴것이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주장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시온 수도원과 소니엘의 굳은 신념임

에는 변함없다.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를 지고 죽었다는 로마 카톨릭의 근본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로마 교황청은 메로빙거 왕조 최후의 왕 다고베르트 2세가 암살당하

자 반역자가 카롤링거 왕조를 세우는 것 자체를 묵인했던 것이다.

즉 이 때부터 메로빙거 왕조의 후예와 로마 교황청은 원수 사이가 되었다.(업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교황청은 나중에 다고베르트 2세를 성인의 대열에 올려주었다. 이것도 이 설을 뒷받침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대립을 배경으로 시온 수도원과 같은 비밀 결사가 결성되고 그들은 메로빙거 왕조를 프랑스

왕위로 복귀시키려는 암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때 시온 수도원은 메로빙거 왕조가 예수의 직계임을 나타내는 확실한 물증이 될  수 있는 무엇인

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예수의 '성배'였던 것이다.

 

암호문에 적히 'ET IN ARCADIA EGO(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느니)'라는 말은 이 비밀 결사의 암호

문이었을지도 모른다. 12세기가 되면 이 비미 결사의 군사 조직으로 템플 기사단이 설립되고 앞에

서 말한 십자군 시대에는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그들은로마 교회에도 당시 프랑스 왕가에도 결코 바람직한 존재가 아니었다.

 

또 이 링컨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도 있다.

 

프랑스 역사가 앙리 마르탱에 의하면 중세 스페인 국경 가까운 피레네 산 중에 '성배 교단'이라는

일종의 비밀 교단이 있었다 한다.

 

성배교단에 대해서는 12세기 독일의 볼프람 폰 에셴바흐라는 시인의 장시 <티투렐>에 나오고 있다.

 

그 내용은 스페인 국경 가까운 산위에 티투렐이라는 영웅이 성당을 세우고 성배를 안치했다. 솔로

몬의 신전을 본떠 설계한 일종의 '성배 신전'이다.

 

그 후 성배 교단은 성배에 봉사하기 위해 외부에서 신자를 모아 비밀 의식을 거행하고 때가 되면 뛰

어난 다원을 외부로 보내 국왕을 폐위시키고 다른 왕을 그 자리에 앉혔다. '성배'는 그런 위력을 가

지고 있던 것이다.

 

성배 교단원은 신앙심이 두터운 기사들과 행실 바른 처녀들로 구성되었고 기사들은 뛰어난 석조 건

축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 후 저 유명한 프리메이슨이 되거나 템플 기사단이 되었다.

 

이것이 장시 <티투렐>의 내용이다.

 

당시 교황 클레멘스 5세와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힘을 모아 템플 기사단의 파멸을 꾀한 이유도

알만하다. 그러나 그후에도 템플 기사단의 생존자나 메로빙거 왕조의 신봉자들은 시대를 넘어 불사

조처럼 끊임없이 왕위 찬탈을 꾀했다.

 

소니엘이 파리에서 접촉한 드뷔시나 말라르메, 마테를링크 등의 그룹도 당연히 시온 수도원의 잔당

이 결성한 비밀 결사로 추측된다.

 

화가 푸생도 시온 수도원의 비밀 회원으로 수도원의 비밀을 <아르카디아의 모자>라는 그림에 암호

로 봉인해 두었던 것은 아닐까.

 

이 그림은 산과 언덕과 지명을 비밀스럽게 드러내고 있고 그 가운데 오망성 하나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그런데 난 모르겠다;;)

 

아마 암호문의 발견자 소니엘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남프랑스로 왕서 왕조를 수립했다는

가설을 듣고 시온 수도원의 비밀 회원이 되어 드뷔시로부터 힌트를 얻고 '보물' 수색에 착수했을 것

이다. 그리고 그 보물을 찾아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죽을 때가 된 소니엘은 이웃 구역 사제에 그 비

밀을 고백했을 것이다.

 

이 보물의 수수께끼가 소니엘이 발견한 양피지 문서의 글 속에 적혔음이 틀림없고 일설에 의하면

이 양피지 문서는 현재 런던의 모 은행 금고에 보관되었지만 누가 그 문서를 발견해 암호를 해독해

도 이미 그 보물을 사라지고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보물은 과연 성배였을까? 만일 성배라면

소니엘은 그것을 누구에게 팔았을까? 그리고 시온 수도원이라는 비밀 결사는 아직도 로마 카톨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암약하고 있는가?

 

 

이 아래 글은 이 미스터리에 관해 퍼온 것들임다...

 

 

주소만 퍼왔으니 주소창에 붙여보세요.

http://www.ghost25.com/mistery/west/03.htm

 

---메로빙거 왕조의 탄생 설화

 

메로빙거의 기원은 어느 기묘한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클로비스의 아내이자 메로베(혹은 메로베

치, 메로베크?)의 어머니는 임신 중의 몸으로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바닷물고기의 유혹을 받았고 그

에 의해 다시 한번 잉태되어 뱃속의 태아는 바다 생물의 피가 섞이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메로베

의 몸에는 프랑크 왕족의 피와 해신 넵튠과 같은 수생 동물의 피가 흐르게 되었고, 그는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메로빙거라는 이름을 가졌다. 메로베라는 말도 라틴어로

'바다'라는 말과 관련이 있으며 메로빙거라는 이름은 프랑스어의 '어머니'와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바다'를 의미한다.

 

이 우화적인 설화는 메로베의 몸에 두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과 메로베의 출생을 통해 하나

로 합쳐졌음을 뜻한다. 프랑크 족의 한 갈래인 지캄브리아 족 출신인 메로베의 몸에 두 아비의 피,

즉 프랑크 족 통치자와 바다를 건너온 이생물의 피가 함께 흘렀다는 이 설화는 바다를 건너온 다른

혈통과의 교혼으로 태어난 세대가 메로베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메로베에게는 신적

인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승에 따르면 메로빙거 왕가의 군주들은 대대로 같은 시대 어느 군주들과도 다른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술적 비법에 정통했고 비약 만드는 법을 주관했고 비법시술

자들이 그 뒤를 따라 다녔다.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았고 투시나 영감을 통해 동물

이나 자연세계와 대화하는 등 기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었다.(후대의 왕들이 의식으로

서 문둥병자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 낫는다는 등의 믿음은 여기서 유래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것으로 믿어 하나같이 구

약의 삼손과 같은 장발(나실인?)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왕인 힐데리히 3세는 폐위당한

후 블론드의 긴 머리카락을 잘린 채(박박 깎였다고) 수도원에 유폐되었다. 메로빙거의 왕

들은 태어날 때는 가슴과 어깨 사이에 특이한 태점을 타고났다. 그 모양은 템플 기사단의 장

미 십자가 모양과 비슷했다. 이 점은 가슴 위나 어깨 뼈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이 메로베와 그의 후손들은 이러한 초인적인 능력과 당시 유래없는 긴 수명으로 유명했다. (오늘날

제작된 어느 유명 영화 때문에 메로빙거 인을 뜻하는 '메로뱅지언'이라는 단어도 친숙한 용어가 되

었다.)이로 인해 메로빙거 왕조는 신비한 혈통과 힘,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왕조로 유명했으며 '사

제왕' 혹은 '긴 머리의 왕'이라 불리웠다.

 

메로빙거 왕조가 지녔다는 치유력은 메로빙거 왕조의 예복에 달린 장식 술에까지 확대되어 사람들

은 예복에 달린 장식 술이 특별한 치유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베랑제 소니엘이 죽었을 때 사

람들은 그가 입고 있던 예복에서 장식 술을 하나씩 떼어가져갔다고 한다.

 

 

이러한 메로빙거 왕가를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야심에 불타고 있던 카롤링거 가의 피핀은 메

로빙거 왕조에 대한 세간의 인식 때문에 쉽게 그것을 실행하지 못 했기에 교황과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었다.  왕의 혈통을 상징하는 그 장발 속에는 초자연적인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누구든 장발의 왕을 폐한다면 신의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힘으로 왕을 폐한다면 심각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했다. 이를

를 수 있는 신성한 사도의 권위, 즉 메로빙거 왕가의 신비한 힘과 전통에 대한 세간의 인식

을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이 교황이라고 생각한 피핀은 메로빙거의 전복을 위해 교황과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이렇게 신비스럽게 여겨지던 메로빙거 왕조에 매혹된 사람들은 후세에도 있었다. 훗날 메로빙거

 왕인 힐데리히 1세의 묘가 발견되었을 때 부장품으로 쏟아져나온 것 중에는 잘린 말 머리와 황금

 만든 황소 마스크, 그리고 수정구 등 주술적 의미를 띤 것들이 섞여있었다. 그리고 메로빙거

조의 상징 중 하나인 황금으로 만든 꿀벌 모형이 수백만 개나 발견되었다. 나폴레옹은 이 메로빙

왕가에 매료되어 황금으로 만든 꿀벌을 예복에 달고 즉위했으며 메로빙거 왕가의 자손들이 살아

는지 보기 위해 메로빙거의 가계도를 자료집으로 만들게 했다.

 

(메로빙거 왕조에는 이름에서부터 유대적인 요소를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유대인들에게 관용

적이었지만 뒤를 이은 카롤링거 가는 국내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박해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무

어인들이 침략해왔을 때 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메로빙거 왕조 군주들은 권위와 지위도 특이하여 태어나 열두번째 생일이 되면 자동적으로 왕으로

여겨졌다. 왕위는 신성하고 거룩한 권리로 자연스럽게 주어졌지만 지상적인 권력자로 제식적 인물

인 왕은 존재할 뿐 행정은 궁재에게 맡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후대에 무능하고 허약한 왕들

로 알려졌고 그들의 난잡하고 혈족 간에 죽고 죽이는 불미스러운 가족관계로 인해 그러한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다고베르트 2세 때 궁재의 자리를 이어받은 '난쟁이 피핀'은 숲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왕의 눈을

창으로 찔러 살해했는데 교황청은 이러한 반역행위를 묵인하고 왕조의 교체를 시인했다. 그리고 그

냥 넘어가기가 찔렸는지 무능한 왕 다고베르트 2세를 석연치 않게 성자의 반열에까지 올려준 것이

다.

 

모든 신화와 설화에는 역사적인 진실이 숨어있다. 바닷물고기는 무엇인가? 바로 예수의 초

기 상징이었다. 그리고 만일 정말로 메로빙거 가문이 예수의 자손이었다면 교회와 교황이 그 살해

에 침묵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상속권'이었다. 당시의 관습으로 교회는 예수에게 속한

것이었고, 마땅히 그의 자손들에게 돌아가야했던 것이다. 만일 예수에게 자손이 있었다면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지고 죽었다는 기독교의 근본 사상을 부정하고 예수가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는 것 뿐 아니라 신의 지상대리인을 자처하는 교황과 교회는

예수의 피와 예루살렘의 왕권을 이어받게 될 그 자손의 발 앞에 엎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성지 예루살렘의 왕, 그것은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당시 사회에서는 전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고 왕을 즉위시킬 권한을 가지고 군림하던 교회로서는 그들의 권력을 잃

는다는 것을 뜻했다. 훗날 교황 실베르테르 때 실제로 예수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교회에 대한 권를

주장한 가문이 있었지만 교회는 이를 묵살해 버렸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믿고 왕실과 귀족들을 짓누르며 권력을 휘두르던 교회와 예수를 조상으로 해

서 내려오는 메로빙거 왕조는 결코 공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반역자 피핀은 카롤링거 왕조의 최초

의 왕으로 인정받았고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대관식 때는 프랑크 족 최초로 성

서의 기름부음 의식을 넣어 자신이 교회로부터 정당한 왕임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과시했다. 그러나

부패하고 무능한 왕조였지만 메로빙거 왕조의 전통에 따른 세간의 충성심을 쉽게 제거할 수는 없었

다. 결국 카롤링거 왕가는 메로빙거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공주들과의 혼인으로 메로빙거의 피를

자신들에게 섞어 넣은 것이다.

 

 

이것은 신전 기사단과 관계된 이야기입니다.

 

---- 전략 ----

시온기사단

 

비밀문서에 의하면 템플러스 기사라는 '무장 신부단'의 내부 조직이라고 한다. 1118년 제1차 십자군

이 성지 예루살렘을 그리스도교도 순례자들에게 개방한 후, 위그 드 페이앙이라는 한 기사가 어처

구니 없는 일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소수의 기사단에서 성지의 위험한 도로를 경호하는 것이었는데

주위의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예루살렘 시온산의 솔로몬 신전 옆에 본부를 설치하는 것도

허가되었다. 순례자들은 감사하며 그들에게 많은 헌금을 한다. 이윽고 기사단은 막대한 부를 축적

했고 성지의 실질적인 금융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세기 후에 그들에게 몰락이 찾아온다. 프랑스의 필립 4세(1268~1314)는 1307년

10월 13일에 전격적인 검거를 시작했다. 그들 전원을 신에 대한 모독과 외설행위의 죄상으로 규탄

했으며 수십 명이 고문에 처해졌고 처형되었다. 1312년에 이르러서는 신전 기사단은 마침내 괴멸한

다. 필립 4세는 그의 최대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그들의 부를 무너뜨린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들의 최대의 거점의 하나인 '베즈'에 있는 보물을 압수하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 베즈라는

지방이 렌 르 샤토 근방이라고 한다.

 

시온산은 예루살렘의 교외이며 문서에는 예루살렘에 대해 단순히 시온이라고 표현된 경우가 많다.

비밀문서에 의하면 시온기사단(처음에는 이 명칭이었던 것 같다.)이 신전 기사단의 모체가 되는 조

직으로 후자가 1307년에 괴멸했어도 그 모체는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온수도원이라는 조

직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메로빙거왕조를 프랑스의 왕좌로 부활시키

는 일이었다.

 

 메로빙거 왕조란 6세기 초에 클로비스왕에 의해서 수립된 왕조로 후에 이 왕조는 역대로 병약한 왕

이 계승한다. 고문서에도 '병약의 왕'으로 등장하며 그래서 국사의 대부분을 중신들이 맡아 했다.

678년, 중신의 한 사람이 다고베르 2세의 암살을 기도하여 창으로 잠을 자고 있던 왕의 눈을 찌른

다. 이 중신의 계열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카롤링거왕조이다. (카롤링거왕조는 정식으

로는 751년 피핀에서 시작하여 프랑스에서 98년, 독일에서는 752년에서 911년, 이탈리아에서는 774

년에서 961년까지 계속된다.) 다시 비밀문서에 따르면, 다고베르 2세의 아들 시지스베르는 남 랑그

독까지 도망해서, 그의 숙부에게서 라제공과 레데백작의 칭호를 계승하는데, 레데는 당시 큰 지방

이었던 렌 르 샤토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라제는 렌이 포함되어 있는 군의 이름이었다. 이로부

터 300년 후 다고베르의 자손 고드프레이 드 블리옹이 1차 십자군을 인솔하고 진군하여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러나 '병약의 왕'이라고 알려진 왕조를 왜 프랑스의 왕좌로 부활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누

가, 왜 그런 일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을까? 튜더왕조(1485년부터 1603년까지 이어진 영국의

왕가) 또는 스튜어트 왕조(1603년부터 1714년까지 이어진 영국의 왕가)를 영국의 왕좌로 부활시킨

다고 하면 영국인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떠난 야망과 소니에르를 갑부로 만든 보물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링컨은 조사를 확대함에 따라 미스테리의 미로에 말려든다.

 

---- 중략 ----

 

이 지역을 둘러싼 보물에 대한 전설을 또 하나 소개해보겠다. 서고트족의 보물이라는 것이 그것이

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쇠퇴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게르만계의 야만인이었다. 다고베르의 시대에 렌

르 샤토는 서고트족의 유일한 거점이었다. 다고베르는 서고트족의 공주와 결혼했으며 서고트족은

전유럽을 공략하여 많은 보물을 축적했다. 여기에는 로마황제 티투스(40?~81)가 69년에 예루살렘

을 점령한 후 가지고 간 예루살렘 신전 보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 중략 ----

 

예수는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

 

이윽고 이것이 시온수도원의 위대한 비밀인 것 같다는 사실이 점차 알려졌다. 메로빙거왕조의 진짜

시조는 전설의 왕 메로베크(또는 메로베)가 아니라,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이것이 메로빙거왕조의

후손들이 프랑스의 왕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근거였다. 조사 과정에서 링커는 성배 또는 상그

레알과 반복해서 만난다. 어느 전설에서는 신전 기사단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한편 몽세

귀의 4명의 카타르파 신도가 짊어지고 산을 탈출한 것이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나 상그레알이라는 프랑스어는 왕의 피를 의미하며 성배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 그리스도가 포

도주를 마신 술잔이라고 한다. 영국 남서부 서머싯 주의 옛 도시 글래스톤베리의 전설로는 아르마

티아의 요셉이 이것을 그 고장에 가지고 왔다고 한다. 복음서에는 예수는 다비드 왕의 후예로서 왕

의 혈통이라는 기술도 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는 유다의 왕이라고 되어 있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는 신랄한 풍자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예수의 가까운 친구에 의한 현시적인 주장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링컨이 이 놀라운 설을 명확히 한 것은 1982년에 출판된 '성혈과 성배'라는 저서로 이것은 마이클

베이젠트와 리처드 리의 공저이다. 이 책에서는 어디까지가 증거에 입각한 설이며 어디까지가 가설

인지 알 수 없다. 가설은 전술한 제라르 드 세드와 피에르 플랑타르 드 생클레이다. 후자는 다고베

르 2세의 직계 자손이라고 하며 메로빙거왕조의 왕정 복고설 자체는 명쾌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

수는 십자가 위에서는 죽지 않았으며 그에게 제공된 스펀지에는 약제가 들어 있었다. 이 형벌로 보

통 인간이 죽기까지는 며칠 또는 몇 주일이 걸리는데 예수는 금방 사망한 듯 하다. 그는 두 다리를

기둥에서 내리기 전에 죽었다. 이것은 자비의 행위로 이렇게 하면 처형되는 죄인이 못이 박힌 다리

로 자신의 체중을 지탱할 필요가 없이 양팔에 체중이 걸리기 쉽기 때문에 죽음이 빨리 온다. 스펀지

는 순식간에 예수에게 주어졌다.

 

이 설에서 예수는 그후 결혼을 하는데 아내는 막달라의 마리아이다. 이 마리아는 마르타와 라다르

의 자매인 마리아(통칭 베타니아의 마리아. 누가복음에 나온다. 예수의 말에 자주 귀를 기울인다.)

와 같은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링컨의 설에 따르면 예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랑그독으로 온다. 그

는 서기 74년에 마사다의 성채 공격 때 그의 생애를 마친 것 같다. 푸생이 그린 언덕 중간의 무덤을

예수의 진짜 무덤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설을 역사적으로 논증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별도로 하고 분명한 것은 이것이 시온수도원과 소

니에르 자신의 굳은 신념이었다는 점이다. 소니에르는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탑과 같은 건물을 세

우고 이것을 '막달라의 탑'이라고 칭하고 있다. 또 자기의 집을 '빌라 베타니아'라고 칭했다. 베타니

아란, 마리아의 또 하나의 출신지로 예수가 탄 적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노새를 두 제자가 데리고 온 장소이다. 링컨에 따르면 노새를 제공한 인물은 라자로로 이것도 거짓 처형을 포함하는

교묘한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된다.

 

 

---- 중략 ----

 

 

전설이나 사실이 여러 가지로 얽혀 있으나 이것을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예수는 스스로의 처형과 그 후의 부활을 연출한다. 그 목적은 '신앙의 확보, 강화'와 그리스도교단

의 확립이었다. 이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메로빙거 왕조가 예수를 시조로 믿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왕조 부활의 야망과 장미십자단

 

다고베르가 암살되자 교황측은 국왕 살해와 왕조의 교체를 시인한다. 카롤링거왕조의 창시자 '난쟁

이 페펭'은 교황의 이 죄에 보복하기 위해 군대를 이탈리아로 파견해서 당시 교회에 반발하고 있던

롱바르인을 격파하고 탈취한 토지를 교황 쪽에 건네준다. 이것이 그후의 교황령의 기초가 된다. 따

 

라서 메로빙거왕조는 당연히 자신들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적으로 생각한다.

 

 

시온수도원이라는 비밀단체가 메로빙거왕조를 프랑스의 왕좌로 부활시키려는 목적으로 결성되었

다. 시온수도원은 신성한 무기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성배거나 혹은 메로

빙거왕조가 예수의 직계라는 것을 시사하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물이다. 어쩌면 앞에서 언급한

'Et in Arcadia Ego'(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느니라)가 비밀 단체의 공동 구호였는지도 모른다. 12

세기가 되자 신전 기사단이 이 비밀결사의 군사력이 된다.

 

 

이것은 예수 처형의 전설과 관련하여 그들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것은 공포의 인식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 사람들을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

서 속죄했다는 것을 대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인식은 이 교단의 기초를 뿌리째 뽑겠다는 것

이다. 십자가 위의 예수의 처형은 없었으며 속죄도 없었고 따라서 로마 가톨릭교회 그 자체의 존재

이유도 없다.

 

신전 기사단 붕괴의 가장 이상한 측면은 신에 대한 모독과 악마 신앙이라는 규탄이다. 그러나 신전

기사단이 이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교회에 대해서나 국가(곧 프랑스 역대의 왕)에

대해서 더 없이 위험한 존재였을 것이다. 신전 기사단과 카타르파와의 밀접한 동맹관계를 시사하는

역사적 증거도 많이 볼 수 있다. 카타르파는 광대한 토지를 신전기사단에게 주고 있다. 신전기사단

의 제4대 수령인 베르트랑 드 블랑슈포르는 카타르파 출신이다. 베르트랑의 후예는 카타르파의 말

살 때문에 교황에 의해 파견된 침략자에 대해 랑그독의 카타르파와 협력하여 저항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16세기에 이르면 메로빙거왕조는 로렌왕가(로렌은 프랑스 북동부의 중세 왕국)가 대표

하기에 이른다(이것은 합스부르크 로렌왕조로 발전한다. 따라서 합스부르크왕가도 메로빙거왕조계

가 된다.). 그들은 당시의 지배 왕조였던 발루아왕가(1328~1589, 필립 6세에서 앙리 3세까지 이어

지는 프랑스의 왕가)의 추격에 전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발루아왕가는 멸망하게 되지만 로렌왕가

도 기진맥진하여 다음 왕조를 이어갈 유력한 후보가 결핍되는 상태에 이른다. 루이 13세가 사망했

을 때, 루이 14세의 즉위를 방해하는 강력한 책동이 있었으나 이것도 실패한다.

 

---- 후략 ----

 내용출처: 세계 불가사의 백과 中 렌 르 샤토의 보물인 성배 발견, 콜린 윌슨, 하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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