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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관등을 정리 / 국상이 대대로로 바뀐 시점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7.04.05|조회수574 목록 댓글 0
 

고구려 관등을 정리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확인 부탁드립니다. 

번호 : 4597   글쓴이 : 황수철

 조회 : 138   스크랩 : 1   날짜 : 2007.03.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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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신분은 크게 왕족 귀족 평민 노비로 구분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특별히 신분 상의 구애는 없었으며 1년에 한번 3월 3일을 기해

열리는 대 사냥대회에서는 일반 평민도 참가할 수 있었으며(노비도 가능?)

두각을 나타낼 경우 무관 직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혼인하기 이전의 지방 평민층 자제들은 경당(扃堂)에 입문하여 경서와

사서를 배우고 유학을 익혔으며 무예로는 필수 과목으로 활 쏘기 등을 익혔다.

상류계급의 자녀들의 경우 남녀를 불문하고 국립학교인 태학(太學)에 입문하였으며

담당한 교수는 소형(小兄) 이상의 관등을 가진 사람이 태학박사로 임명되었는데

고구려에서 최고의 학식을 가진 인물이 선별되어 경학(經學), 문학(文學), 무예(武藝)

등을 가르쳤다.


관등은 말 그대로 관직의 순위의 높고 낮음을 정한 것이며 직위나 직책과는 다른 것이다.

고구려의 관등의 경우 시대나 그 경우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5세기 이후인

고구려 후기의 경우 사서에 따라 다르나 대개 13관등 내지 14관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수직위(特殊職位). -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설치한 직위인

대막리지(大莫離支) 보다도 높은 관직으로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생(淵男生)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확고하게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신설한 직위이다.

내전이 시작되자 동생인 연남건(淵男健)도 이 직위에 스스로 올랐다.


1관등(一官等). 대대로(大對盧) 혹은 토졸(吐卒): 귀족회의인 대로회의를 주관하는 역할로

임기는 3년 정원 1명이며 재임도 가능하였다. 왕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들의

선출에 의해 임명 되었다. 현 국회의장 내지 국무총리에 정도로 추정된다.


직위 1.- 대막리지(大莫離支): 1관등(一官等)에 견줄 수 있는 최고관직으로서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최초로 설치한 특수직위(特殊職位)이다.

대대로(大對盧)가 자율적인 병권이 없는 반면 대막리지(大莫離支)는 자율적인

병권을 가진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정권(政權)과

병권(兵權)을 일시에 잡은 것이다. 현 북한의 주석이나 일본의 수상과 같은

개념일 것이다.


2관등(二官等). 태대형(太大兄) 혹은 막하하라지(莫何何羅支): 귀족회의인 대로회의의

최고 대표자로 보이며 현재 국회의 당 총수 정도로 추정된다.


직위 1. - 막리지(莫離支): 대인(大人) 또는 대수장(大首長)의 뜻을 가진 말로

여러 명이 있었으며 3년 임기에 세습도 가능하였으나, 그 권한은 국사(國事)에만

한정되어 있어 군사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집권하면서 정권과 병권을 장악하게 되자 국정을 전담하는 최고 관직이 되었다.

이때부터 이 관직을 종신 보유하게 된 연개소문은 기존의 막리지와 구별하기

위해 대막리지(大莫離支)를 신설하고 자신이 대막리지가 되었다.


3관등(三官等). 울절(鬱折) 혹은 오졸(烏拙)이나 주부(主簿): 국가의 기밀, 법의 개정,

군사 징발(徵發), 관작(官爵)의 수여 등을 맡아보던 왕의 직속관료였다.

이 직은 고구려 최고 관등인 대대로, 태대형, 태대사자, 조의두대형과 함께

고구려 최고의 신분과 계급을 이루었다. 주부 직은 고구려 10관등 중 5위에서

3위로 부상되는 등 왕권강화에 따라 그 지위가 변화될 만큼 왕과 밀착된 관직이었다.

이 직을 통해 고구려 사회의 고위 귀족관료에 의한 합좌제도(合坐制度)가 시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 비서실장 겸 대통령 보좌관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4관등(四官等). 태대사자(太大使者) 혹은 알사(謁奢)나 대상(大相): 실재 정무를 관장하던

직위로 현 각부 장관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형(兄)’이 군사 관련직의 원형이라면 ‘사자(使者)’는 정무와 관련된 전문관료의

원형으로 보인다. 이 사자(使者)는 원래 지방 귀족의 관료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앙에서는 태대사자(太大使者), 대사자(大使者), 발위사자(拔位使者), 상위사자(上位使者)

등으로 분화 된 것으로 추정된다.


직위1. - 발고추가(拔古雛加): 중앙에서 외교사절을 접대하던 책임자로 4관등인 태대사자

이상이 임명되었다.


직위1. - 을상(乙相) 혹은 을사(乙奢): 국외로 나가는 사신단의 별개의 사자계(使者系)로

관등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5관등(五官等). 위두대형(位頭大兄) 혹은 중리위두대형(中裏位頭大兄): 보통 5관등인

위두대형 이상을 대로(對盧)라고 부른다. 《한원(翰苑)》에서는 조의두대형(皁衣頭大兄)이

조의두태형(皁衣頭太兄) 혹은 중리조의위두대형(中裏皁衣位頭大兄)이라 하여 14관등 중에

5관등으로 되어있다. 위두대형(位頭大兄)은 본래 두대형(頭大兄)으로 ‘대형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중앙에 어떠한 직위(職位)를 수행함에 따라 앞에 ‘위(位)’가 붙어서

‘위두대형(位頭大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 군대의 1군 사령관이나 군단장의 혹은

특정부서의 참모장 등의 고위 장성(將星) 급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직위1. - 대모달(大模達): 고구려 최고의 무관 관직으로 조의두대형(早衣頭大兄) 이상의

관등을 가진 사람만이 오를 수 있다. 막하라수지(莫何邏繡支)라고도 부른 것으로

보아 문관 직인 막리지(莫離支)와 동일한 위치의 관직으로 추정된다.

또 대당주(大幢主)라고도 불렸는데 당주(幢主)에 해당하는 말객(末客)을 거느리는

최고의 무관 지휘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언제부터 대모달이라는 관직이

생겨났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수도의 방위와 중앙군을

지휘할 직위가 필요했던 것 같다. 또 통일신라 말기에 '대모달(大毛達)'이라고

자청하는 지방 호족이 있었는데 그때는 성주나 장군의 의미로 쓰여진 듯하다.

당의 위장군(衛將軍)에 해당하며 10000명 이상 통솔하였으며 현 방위사령관으로

군단장 급이다. 이 명칭은 고려 이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직위2. - 중리위두대형(中裏位頭大兄): ‘중리(中裏)’는 기관명으로 초기에는 왕명을 출납하던

현 비서실 겸 국정원 정도로 보이나 연개소문 집권 이후 중앙의 인사, 첩보,

그리고 일부 군사력까지 보유하여 수도의 경비, 국왕의 시위 등 국가의 중추

업무를 담당한 매우 강력한 부서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 국정원 겸 합참본부

정도에 해당하고 중리위두대형은 현 참모총장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중리(中裏) 내의 직위의 순서는 높은 순서대로 중리위두대형(中裏位頭大兄),

중리대활(中裏大活), 중리대형(中裏大兄), 중리소형(中裏小兄) 등이 있었다.


직위3. – 조의두대형(皁衣頭大兄): 국가의 기밀, 법 개정, 병사의 징발, 관작(官爵)의 수여

등의 일을 맡아보았다. 겸 사법원장 겸 합참본부장 정도에 해당할 듯하다.

보통 13관등 중에서는 4관등의 직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원(翰苑)》에는 조의두태형(皁衣頭太兄)으로 기록되고 14관등 중에

5관등으로 되어 있다.


직위4. - 욕살(褥薩): 군주(軍主)라고도 한다. 당의 도독(都督)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고구려 후기에 들어와 영토가 확장되자 효율적인 통치체제를 갖추기 위하여

설치하였으며 5관등인 위두대형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를 임명하였다.

고구려는 지방조직을 대성(大城), 성(城), 소성(小城)의 3단계로 나누고 중앙에서

관리를 보내어 다스렸는데, 이 가운데 대성의 장관을 욕살이라고 하였다.

대성은 지금의 시, 군, 구 중 군(郡) 규모의 여러 성을 통할하는 광역행정단위로서,

동 서 남 북 내(內)의 5부(部)가 있었고 각 부마다 욕살이 파견되었다. 이들은

담당 지역의 행정권뿐만 아니라 군사권도 지니고 있었다. 대모달 등과 겸임도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고구려 후기에는 3경에도 모두 5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에 따르면 욕살은 5명이 아니라 20명 정도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중앙 5부의 욕살의 경우 '대인(大人)'이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군사상으로는

현 군대의 군사령관 내지 군단장 급으로 보인다.


6관등(六官等). 대사자(大使者) 혹은 대사(大奢)나 종대상(從大相): 태대사자(太大使者)와는

다르게 이 관등은 실제로 일에 손을 대는 가장 높은 벼슬로 실재 정무를 담당하던

전문직 관료로 추정된다. 조세, 공물을 담당하였다. 현 각부 차관 정도에 비유 할 수

있을 듯하다.


7관등(七官等). 대형(大兄) 혹은 대형(大兄加)나 힐지(纈支): 실재 행정과 군사를 관장하던

직책이다. 비상 시 큰 성을 맡는 욕살(褥薩)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현 장성(將星) 급

지휘관에 비유 할 수 있을 듯하다.


직위1. - 중리대활(中裏大活): 중리(中裏)에 속한 직위이다. 대형(大兄) 관등에서는

중리대형(中裏大兄)의 직위도 보이지만 이 중리대형 중에서도 중리대활은

이보다는 좀 더 높은 직위였거나 혹은 왕이나 실권자의 군부에 대한 명령

직접을 직접 출납하던 실권이 있던 직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 국정원 겸 합참본부의 참모장 겸 참모총장의 보좌관 정도에 해당할 듯 하다.


직위2. - 중리대형(中裏大兄): 중리(中裏)에 속한 직위이다. 대형(大兄) 관등에서는

중리대형(中裏大兄)의 직위도 보이지만 중리대활(中裏大活)이라는 직위도 보이는데

이보다는 좀 더 높은 직위였거나 실권이 있던 직위로 추정된다.

현 청와대 경호실장 겸 군대의 사단장 정도에 비유 할 수 있을 듯하다.


직위3. - 대활(大活): 말객(末客)에 비견되는 중앙군 무관 직으로 추정된다.

실제 군령을 출납하던 실권이 있던 직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 군단장 예하 참모장 정도에 비유 할 수 있을 듯하다.

중리(中裏)에 속한 직위로 중리대활(中裏大活)이 있다.


직위4. - 말객(末客): 고구려는 각 지방의 성(城)을 중심으로 군단(軍團)이 편성되어

무관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말객은 그 중에서 대모달(大模達) 다음가는 벼슬이다.

대형(大兄) 이상이어야 임명될 수 있는 무관 직으로 대모달은 당의 위장군(衛將軍),

말객은 중랑장(中郞將)에 해당한다. 현 사단장 급으로 1000명 이상을 통솔 하였다.


직위2. - 처려근지(處閭近支) 혹은 도사(道使)나 자사(刺史): 지방의 실재 행정과 군사를

맡았던 성주(城主)이다. 고구려는 지방조직을 대성(大城), 성(城), 소성(小城)의

3단계로 나누었는데 이중 성(城)을 맡아 관장하였다. 현 사단장 급으로 보이며

대형(大兄) 이상이 임명 되었다.


8관등(八官等). 발위사자(拔位使者) 혹은 유사(儒奢)나 소상(小相): 왕실 혹은 중앙 부처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교역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다. 현재 각부 비서관 급으로 보인다.


직위1. - 사인(舍人): 중앙의 외교사절을 직접 접대하던 직위라고도 하며 혹은 궁중의

일을 관장하는 근시 직으로도 추정된다.


9관등(九官等). 상위사자(上位使者) 혹은 계달사(契達奢)나 적상(狄相): 중앙 부처나

귀족들의 심부름을 맡던 직위로 현재 각부 장관의 보좌관 급으로 보인다.


*조의(皁衣): ‘조의’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9관등에 해당하는 관리였으나

고구려 후기에는 관등 상에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부의 장들이 거느렸던 토착 무사들

혹은 전문전투집단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며 삭발을 하고 전투기술을 수련한 ‘수련인’ 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특전사 정도로 보면 무방할 듯 하다.

조의의 지휘자가 형이 되며, 이들 형이 분화되어 태대형, 위두대형, 대형, 소형 등의

관등으로 분화된 것으로 추정한다.

선인(先人)의 경우 ‘선인(仙人)’으로 해석해서 ‘산에서 수련하는 사람’의 의미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직위1. - 달상(達相) 혹은 계달사(契達奢): 국외로 나가는 사신단의 별개의 사자계(使者系)로

관등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0관등(十官等). 소형(小兄) 혹은 실지(失之): 행정과 군사를 관장하던 직위이다.

부역이나 축성의 책임지는 실무 직위에 많이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현 령관(領官) 급

지휘관에 비유 할 수 있을 듯하다.


직위1. - 중리소형(中裏小兄): 중리(中裏)에 속한 직위이다. 현 합참본부 예하

연대장 내지 여단장 급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직위2. - 통사(通事): 중앙의 외교사절을 접대하던 하급직으로 소형 이상이 담당하였다.


직위3. - 전객(典客): 중앙의 외교사절을 접대하던 하급직으로 소형 이상이 담당하였다.


직위4. - 장사(長史): 군부(軍府)의 상층부를 구성하던 벼슬로 그 임무는 외교 사절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한다. 소형(小兄) 이상이 임명되었다.


직위5. - 사마(司馬): 군부(軍府)에 속하는 관직으로서 군사문제를 전담했던 부관 직으로

보인다. 소형(小兄) 이상이 임명되었다.


직위6. - 참군(參軍): 군부(軍府)의 참모 역할 내지 지원업무를 담당하던 부관 직으로

보인다. 소형(小兄) 이상이 임명되었다.


직위7. - 가라달(可邏達): 고구려는 지방조직을 대성(大城), 성(城), 소성(小城)의 3단계로

나누었는데 이중 소성(小城)의 관리로 군사상으로는 현 연대장 급으로 보인다.

소형(小兄) 이상이 임명되었다.


11관등(十一官等). 제형(諸兄) 혹은 예속(翳屬), 혹은 하소환(河紹還)이나 이소(伊紹): 행정과

군사를 관장하던 하급 직위로 추정된다. 특히 《한원(翰苑)》에서는 제형(諸兄)에서

‘예속(翳屬)’을 따로 구분하여 예속(翳屬)을 11관등으로 보고 제형(諸兄)을 12관등으로

한 관등 높게 구분해 놓기도 하였다. 제형이 현지에서 뽑힌 관리라면 예속(翳屬)은

‘새 깃털을 단 관모를 착용한 관리’로 중앙에서 파견되어 제형을 대신하다가 다시 중앙으로

돌아가는 관리 정도로 추정된다. 즉 현 군대의 위관(尉官) 급 지휘관에 비유 할 수

있을 듯하다. 현 군대에서 같은 사관 중에서도 육군사관학교 출신과 3사관학교 출신

학군단 출신이 나뉘어 지듯이 제형(諸兄) 중에서도 예속(翳屬)은 육사 출신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2관등(十二官等). 과절(過節): 제형을 보좌하여 행정과 군사를 담당하던 하급관리로

추정된다. 《한원(翰苑)》에서는 13관등으로 나온다. 현 부사관 급으로 보인다.


13관등(十三官等). 선인(先人)이나 선원(先元), 혹은 서인(庶人): 선인(先人)은 관리라기

보다는 본래의 ‘선배(先輩)’나 ‘가부장(家父長)’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고을의 이장에 비유 할 수 있을 듯하다.

당주(幢主): 혹은 백두(百頭)라고도 하며 무관 직으로 전쟁 시 아주 작은 성(城)이나

진(鎭), 보루(堡壘) 등을 지키던 하급 지휘관으로 100명 이상을 통솔 하였다.

선인(先人) 이상의 관등에서 선발되었으며 현 군대의 중대장 급으로 보인다.

루소(婁肖): 문관 직으로 소성(小城)보다도 작은 성에 임명된 하급 관리로 현 동 사무소장에

비유 할 수 있을 듯하다. 선인(先人) 이상의 관등에서 선발된 것으로 보인다.


14관등(十四官等). 자위(自位): 최하급 관등으로 실무적으로 심부름, 호위를 하기도 했다.

《한원(翰苑)》에서는 관등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 일반 공무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PS: 고구려 인물중'담구(聃求)'라는 인물이 실존인물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천남생 묘지명에 등장하는 '염유(冉有)'라는 인물이 한자가 비슷해서 천남생 묘지명

슬라이드를 보았는데 확실히 눈이 나빠도 분명 '염유(冉有)'라는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실존인물'이라고 표시해 놓고 왜 실존인물인지 모르니 참 황망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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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고구려 관등을 정리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확인 부탁드립니다. 

번호 : 4598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98   스크랩 : 0   날짜 : 2007.03.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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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태대막리지라든지 태대대로와 같은 경우는 단순히 기록하는 과정상의 미칭정도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연개소문이 특별히 설치한 관직이라고 볼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대막리지의 경우도 호칭상의 문제일뿐, 막리지와 다른 실체를 가진 관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본래의 막리지와 대막리지를 구분하여, 병권유무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문의 조부인 무는 2품 막리지임에도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병권을 가진 막리지 고무가 대대로에


선출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대형과 막리지에 대해서, 관등을 설명하는 기록에는 태대형을 말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용례를 보면 대부분 막리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관등을 막리지로


보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형이 세분화되는 과정에서


태대형, 조의두대형, 대형, 소형으로 잠시 사용되었으나 태대형과 조의두대형이 독자적인


관명으로 각각 막리지, 위두대형으로 확정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본다면, 조의두대형(조의들의 가장 머리큰 형님)은 관직명이 아니라 세분화되는


과정에서 잠시 사용된 관등명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리위두대형도 관직명이 아닌 관등명이라 생각합니다.


중리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면,


유주자사진의 무덤에 중리도독이란 관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독이란 '고량의 3품


책성도독'에서도 나타나듯이 후기의 욕살과 비견되는 관직입니다. 아무래도 진의 경우


한족출신이라 생각되는 만큼 그들의 관점에서 욕살에 해당하는 고구려관직명(당시는


아마도 고추가나 패자 정도?)을 도독으로 기록했었던 것이라고 생각되며, 고자묘지명의


책성도독또한 기록당시의 당나라관점에서 그렇게 기록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욕살이란 각 행정구역의 우두머리였으니, 그와 비슷한 지위를 가진 자가 중리부의


우두머리로 있었다는 것은, 고구려가 중리부를 독립적인 하나의 부로서 운용했던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후기의 중리부 최고관직은 '중리부 도독(욕살?)'이며 독자적으로 운용되었던


만큼 중리부소속의 관등을 따로이 두었을 것입니다. 결국 중리위두대형은 중리부의


최고관등인 것이고 뒤이어 중리대활 - 중리대형 - 중리소형의 관등을 따로이 두었던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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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상이 대대로로 바뀐 시점 

번호 : 4599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67   스크랩 : 0   날짜 : 2007.03.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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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수왕의 평양천도 이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국상을 맡았던 인물들이 國事와 軍事를 모두 겸했던 것을 보아 어찌보면 귀족의 힘을


왕도 무시할 수 없는 정치체제입니다.


반면에 대대로의 경우 軍事를 분리하여 막리지와 권력을 나눈만큼 귀족의 힘도 한곳으로


집중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왕의 귀족들을 견제하기가 쉬운 정치제제입니다.




.일단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죽였을 때에 대로 제우가 등장하는 것을 보아 - 물론 상위


5관등 중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없으나 - 이미 대로회의로 대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은 업적을 남겼던 광개토태왕이 관제를 개혁하였다고 볼 순 없습니다. 태왕의


주도하에 군권을 집중시켜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과 귀족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그들을


억제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런 결과물은 분명 귀족들을 일정부분 제거하는


등의 과정이 수반되기 마련인데 광개토태왕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장수왕 초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평양천도의 주목적을 구신들의 힘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볼 때에, 평양천도의


성공이 바로 그러한 과정이었음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백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고구려 상황은 수많은 귀족들이 숙청당해


평양에 시체가 즐비했다고 할 만큼 위의 근거로서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장수왕은 평양천도를 통해 귀족들의 힘을 줄이고 철퇴로 내리쳐 많은 귀족들을


제거한 후에 관등을 개혁하여 세분화시킴으로서 귀족들의 힘을 분산시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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