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 2341 글쓴이 : 천산
조회 : 126 스크랩 : 0 날짜 : 2007.03.2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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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년 거란에 의한 발해 멸망
거란은 발해를 멸하고 발해의 중심부에 동단국을 세웁니다.
하지만 동단국이 2년 만에 요양지역으로 이동해 갑니다.
그만큼 발해 유민의 저항이 심하였던 것이죠.
발해 부흥운동과 부흥국가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929년 서경압록부를 중심으로 대씨의 후발해 건국
열씨정권의 정안국 교체
오씨정권의 정안국 교체
정권교체기에 후발해 백성 일부 고려 및 인접국 망명
986년 거란에 의한 정안국 오씨 정권 멸망
990년대 대씨(태씨) 정안국 부흥 활동
정안국은 송사의 동이열전 정안국편에 전해 지는 약간의 기록으로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이에 따르면
송화강의 부여부(연파 봉기)와 상경(발해중심부, 오사국), 두만강, 압록강 일원을
장악한 것으로 자처했습니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발해 후국들이 송화강,두만강,압록강 일원을 장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금나라가 건국되기까지 많은 발해의 부흥국가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다 뿐이지 발해의 후인이 소리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정안국은 여러차례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지만
대씨의 후발해에서 출발하여 마지막까지 대씨가 부흥운동을 펼쳤습니다.
990년대에도 대씨가 압록강 일원에서 정안국의 주도자임을 자처했는데
990년대 초반에 고려는 압록강 일원을 공략하죠.
서여진 축출이라고 하죠..서희의 담판이 있던 시기죠..
우리는 그들을 오랑케로 취급하여 우리의 역사에서 제외시켰지만
그분들은 틀림없는 발해의 후인들이셨죠.
정안국이 무너진 후 송화강 일원의 오사국은
국제정세를 주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랬동안 버티었죠.
1114년 오사국 멸망
1115년 금나라 건국
1126년 요나라 멸망
발해의 후국과, 금나라, 청나라에 대한 한민족의 역사인식은
재 검증 받아 볼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좀 더 고민을 많이 하시고 더욱 여물어 지시어서
한민족의 역사가 바르게 정립될 수 있도록 부탁드려봅니다.
열심히 공부하세요.
노땅이 생각하는 만주사와 한민족사의 개요도 입니다.
만주사
금
요 동
금유민
고려인
청
고조선
부여,옥저
발해
후발해
고구려,동예
백제
대신라
후삼국
고 려
조선
신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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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천산님. 발해 후국들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저에게 메일이나 추천 좀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제가 이쪽에 관심이 많아서요. 물론, 야사나 전설, 민담 등도 같이 수집하고 있습니다. 07.03.29 21:59
답글 jo-jo 저도요 그렇게 해주세여 07.04.0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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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후국에 대한 자료라..
번호 : 2343 글쓴이 : 천산
조회 : 35 스크랩 : 1 날짜 : 2007.03.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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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후국에 대한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송사, 요사, 금사, 고려사등을 통해 발해 후국에 대한 정세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럴만한 능력이 안됩니다.
단, 주의하실 점은 여진인이라고 기록된 내용들도
등장위치와 주변의 역학관계를 통해서 흑수말갈인인가 아닌가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여진인의 상당수가 발해의 후인이기 때문입니다.
발해사와 관련된 내용은 한규철 교수님의 연구성과가 유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발해후국과 관련된 한규철 교수님의 강의를 올려 봅니다.
http://www.ktv.go.kr/w2k/vod/vod.asp?pro=spelec/spelec_0170_20041221.asf
발해부흥국은 대략 5개국 정도로 파악하는데 본인은 금나라도 발해 부흥국의 하나이라고 생각합니다.
1. 후발해국
발해 멸망직후 부터 대씨들의 발해 부흥운동이 전개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란의 동단국이 발해 중심부에서 요양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추측되는 지역은 송화강 유역의 장령부와 압록부 유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후 부여부의 연파가 봉기를 하고 오사국이 연합하여 흑수말갈의 일파인 철려국을 공략한 것을 보면
북쪽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하지만 대씨정권이 대거 고려로 내투한 것을 보면 내분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후 정안국이 발해 부흥국을 주도하였는데 대씨정권을 몰아내고 정안국이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2. 정안국
정안국은 압록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발해 유민국입니다.
처음에는 열씨정권이 정안국을 주도하였다가 이후에는 오씨정권이 정안국을 주도 합니다.
980년대 후반에 정안국의 오씨정권은 거란에 의해 무너집니다.
하지만 송사에 의하면 대씨(태씨)가 990년대 초반에도 정안국을 주도 하고 있음을 자처했습니다.
3. 오사국
오사국은 발해중심지역에 가까이 있었던것으로 파악됩니다.
후발해국의 대씨정권이 무너지자 압록강 일원의 정안국이 발해 후국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고
송화강 유역은 오사국이 건제하여 상호 연합전선이 형성된 듯 합니다.
오사국은 부여부에서 봉기한 연파와 연합하여 흑수말갈 세력의 남하를 제어한 흔적이 있습니다.
오사국과 정안국은 발해 왕조의 대성이었던 오씨가 정권을 주도하였습니다.
오씨는 만주일원과 인연이 깊은 발음인 것 같습니다.
삼족오는 생긴 모양이 세발 달린 까마귀 입니다. 까마귀 오자가 맞을려나..
고구려가 숙신을 제어하고 새롭게 정착하게 한 지역이 오천지역입니다.
본인은 말갈을 부여의 일원으로 파악하기에 오천지역의 오자도 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오사국은 올야국이라고 합니다. 오사국이 중심부는 발해의 중심부인 상경용천부의 홀한성인데
올야성으로 불리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오랑케의 어원이 올량합이라고 하는데 안양사랑님이 예전에 혹시나 올야이 발음과 올량의 발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올량합도 여러지역에서 등장하지만 두만강 북쪽이 주류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오사국이 두만강 북류지역을 주도하지 못하고 완안부에게 제압당했지만 비슷한 지역 같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자를 늘려 보았습니다.
4. 흥요국, 5. 대발해국
거란에 협조하였던 발해의 지배층들이 거란 내지에서 발해가 멸망하고 100년이 지난후에도
발해의 후인임을 자처했습니다.
대씨가 흥요국을 세웠으나 오래 가지 못했고
고씨의 고욕이 봉기하였으나 나라까지는 세우지 못했고
고씨의 고영창이 대발해국을 세워서 황제를 행사하였으나 완안부에게 멸국되었습니다.
6. 금나라
발해가 멸망되고 200년 정도가 지난후에 금나라가 건국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발해 부흥운동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금나라가 자리를 잡자 더이상 발해 부흥운동은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금나라는 두만강 일대의 지역주민입니다. 당연히 발해사람들입니다.
흑수말갈의 남하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흑수말갈이 남하하여 두만강 지역주민의 족속이 교체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금나라의 주류를 흑수말갈에서 찾고 있는듯 합니다.
삼강평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송화강, 흑룡강, 우수리강의 합류지역입니다.
삼강평원 북류지역에는 사람을 잉태하는 모태지역입니다.
첫번째는 삼강평원 북류지역의 말갈이 남하하여 부여인을 송화강 유역에서 몰아냈습니다.
두번째는 삼강평원 북류지역의 흑수말갈이 남하하여 두만강 유역의 금나라 원류가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삼강평원의 건주여진이 백두산 유역으로 남하하여 청나라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백두산이 모태지역이라고 하는데
역사는 이들의 모태지역을 삼강평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본인은 금나라의 주류인 동여진은 두만강 유역의 원주민이라 생각됩니다.
옥저와 동부여의 백성이었다가 고구려와 발해의 백성이 되었던 변두리 지역주민이라 생각됩니다.
예전에 고려사 같은데 정확한 출처는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윤관이 동북여진을 정벌하자
동북여진이 정벌지역을 돌려달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대장은 고려사람이고, 고려에 대항하였던 동북지역의 족속은 우리족속이 아니고 다른 족속이라고
했던것 같습니다.
정안국이 무너지고 오사국이 국제정세를 주도하지 못하자 두만강의 지역주민은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동여진은 성장과정에서 거란을 주적으로 삼지 않고
고려, 송나라, 거란과의 국제정세를 잘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금나라의 주류족속은 틀림없는 발해의 백성들이었씁니다.
그래서 금나라 또한 발해의 연장선에서 새롭게 인식해볼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발해후국에 대한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혹시나 관심이 있으면 송사의 동이전이라는 페이지가 있지 않나 기억됩니다.
그속에 있는 정안국과 여진의 관련기록과
고려사, 절요등에 있는 여진과의 관계사를 고민하다 보면 발해후국의 정체가 좀더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의하신 자료를 제시해줄 수 없는 무지함이 미안합니다.
열공하시고 좋은 글을 쓰시어 무지한 저를 깨우쳐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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