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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비잔티움 연대기 (전 3권)

작성자나도사랑을했으면|작성시간07.05.13|조회수313 목록 댓글 0

쇠망한 로마 제국의 뒤를 이어 역사에 등장한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로에 위치해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며 1123년 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존재한 제국으로 자리 잡는다. 동방의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서유럽 세계를 지켜 준 방파제였으며,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과 예술을 천년 넘게 계승·발전시켜 온 제국. 하지만 서구의 주류 역사가들에 의해 왜곡과 침묵의 봉인에 갇히고 만다.

 

이 책은 원고지 7000매가 넘는 방대한 지면에 330년부터 1453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존재한 비잔티움 제국 1123년의 역사를 담았다. 『로마인 이야기』의 종간을 아쉬워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와 의의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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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nian I depicted on one of the famous mosaics of the St. Vitale church in Ravenna.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제국, 비잔티움의 위대한 탄생


비잔티움 제국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옮긴 330년 5월 11일 역사에 등장해 1123년 18일 동안 제국을 유지하다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존재한 제국이다. 로마 제국의 기운이 쇠퇴하던 시기 역사에 등장해 천 년 넘게 유럽 세계를 지배했으며, 동로마 제국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길목에 위치한 지금의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 자리 잡아, 지중해를 중심으로 동서양의 학문과 예술이 융합된 특유의 문명을 창조했다. 또한 페르시아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서유럽 세계를 지켜 온 방파제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적 유산을 간직하고 발전시킨 중세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중세가 끝날 무렵까지 서유럽 세계는 동방의 이슬람 세계에 비하면 촌구석에 가까웠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이 전해지지도 않았고, 통일된 세력이 없어 군사적으로도 취약했다. 비잔티움 제국이 없었다면 서유럽 세계는 호시탐탐 유럽으로의 진출을 노린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했을 것이고, 중세 유럽의 학문과 예술 또한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세 학문을 집대성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14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역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사의 중대한 계기들의 기폭제가 되었던 비잔티움 제국. 오늘날의 문명은 비잔티움 제국에 큰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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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453 Siege of Constantinople (painted 1499)

 

 

왜곡과 침묵의 음모를 넘어 세계사의 지도를 완성한다.


하지만 서구의 주류 역사가들은 악의적인 왜곡과 침묵으로 비잔티움 제국을 역사의 공백으로 만들어 버렸다.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간직했던 모든 미덕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했다. 또한 W. E. H. 레키(『유럽 도덕의 역사』)는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성직자, 환관, 여인들의 음모와 독살, 반역, 배신과 친족 살해 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문명 세계에서 가장 경멸스러운 역사”라는 혹평을 퍼부었다. 그들은 동방적 색채가 강했던 비잔티움 제국이 로마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20세기의 독자들은 서유럽 세계만을 다룬 반쪽짜리 역사를 배우면서 그것을 서양사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였고,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모호하거나 왜곡된 인식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에 이르는 최근까지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존 줄리어스 노리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로마 제국 쇠망사』에 필적할 만한 동로마사를 저술하기로 결심했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천년의 역사를 되찾는 것이며, 지금까지 배워 온 반쪽짜리 역사를 벗어나 비로소 세계사의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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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Julius Norwich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역사가인 존 노리치가 전하는 비잔티움 제국의 모든 것!

 

학술적인 무게를 벗어던지고 역사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역사의 인디애나 존스’를 자처하는 저자 존 노리치는 천년제국 비잔티움을 다스린 88명의 황제뿐 아니라 수십 개의 이민족을 다스린 성군과 폭군,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를 특유의 호쾌한 필치로 펼쳐 나간다. 외교관 출신다운 노련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서술, 능수능란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보다 생생하고 나관중의 『삼국지』보다 흥미로운 인물 열전과 정사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어판에는 170여 장의 도판 자료와 30여 장의 지도 자료를 수록하여 비잔티움의 뛰어난 문화·예술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주요 인물’과 ‘주요 사건’, ‘연대표’, ‘왕조 가계도’ 등은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역사서를 더욱 친절하고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비잔티움이라는 낯선 바다를 항해하는 독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다수의 인문서 저술과 번역에 힘써 온 『개념어 사전』의 저자 남경태의 명쾌하고 힘 있는 번역은 이 책에 제2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옮긴이는 생소한 용어와 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는 풍부한 주석, 그 자체로 동서양의 역사를 한번에 꿰뚫는 명쾌한 후기를 통해 저자와 독자의 적극적인 대화를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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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과 혼란- 천년제국 비잔티움, 그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다.


『비잔티움 연대기』 3부작의 제1권인 “창건과 혼란”은 쓰러져 가는 로마 제국을 되살리기 위해 293년에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나눈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결정은 하나의 로마를 죽이고 다른 로마를 살리는 결과를 낳았으니, 그의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아예 제국의 중심을 동방으로 옮겨 고대 도시 비잔티움의 터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이것이 바로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의 기원이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어느 야만족 출신 용병대장의 손에 허망하게 멸망하면서 비잔티움 제국은 유일한 정통 로마 제국으로 남는다.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동방과 서방으로 나뉜 로마를 다시 통일하려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로마 황제였으나,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종교적으로도 교리 해석을 둘러싼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이 시작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레오 3세의 성상 파괴론을 두고 제국은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800년 크리스마스에 샤를마뉴가 서로마의 황제에 즉위하며 비잔티움의 정통성을 위협하게 되는 사건으로 1권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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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과 절정- 절정의 시대를 맞은 비잔티움 그 화려하고도 잔혹한 역사!


『비잔티움 연대기』 제2권 “번영과 절정”에서는 전성기를 맞은 비잔티움 제국의 9세기부터 11세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9세기에 이르러 비잔티움 제국은 건국 초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 지역을 장악한다. 로마의 몸과 그리스의 정신, 동방의 영혼이 어우러져 절정에 오른 비잔티움 제국. 서양의 모든 정치권력과 문화의 중심은 동방의 비잔티움 제국으로 옮겨진다. 콘스탄티노플은 문화와 예술, 물질적 부가 하나로 모이는 지중해의 보석이 되었고, 문맹의 황제 바실리우스 1세는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라 불리는 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비잔티움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비잔티움 제국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과 외교적 역할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시기였으며, 제국의 법령집을 직접 집필하고 다양한 문학 작품을 남긴 현제 레오 6세, 불가리아를 정복하고 동유럽 속국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바실리우스 2세 등 위대한 황제들의 면면이 드러난 황제 열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민족과 문화, 종교가 뒤섞여 있었던 제국의 전성기는 두 세기를 넘지 못한다. 교리 해석의 차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서방 교회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파문하면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갈등은 심화되었고, 1071년 이슬람 세력을 통일한 셀주크투르크와의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대패하며 소아시아를 잃은 제국의 운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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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퇴와 멸망- 피의 그믐달이 뜬 그날, 비잔티움의 역사는 신화가 된다!


『비잔티움 연대기』 3부작의 마지막인 “쇠퇴와 멸망”은 동유럽과 서유럽의 관계가 역전되는 과정으로 시작해 비잔티움 제국의 비장한 최후를 다룬다. 비잔티움 제국은 창건 이후 줄곧 동방의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서유럽 세계를 보호해 주었고, 그러는 동안 서유럽은 외부의 침략 없이 안전하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힘을 비축한 서유럽은 12세기부터 십자군을 조직하면서 성지와 성묘를 탈환하는 것을 목표로 대규모의 원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서유럽 교회들이 주도하여 조직된 십자군은 점차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하는 야만스러운 폭도 무리로 변하고 만다.

 

급기야 제4차 십자군은 무방비의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여 학살과 파괴를 자행하고 라틴 황제를 제위에 앉힌다. 십자가의 기치를 내건 군대에 동방의 그리스도교 제국이 몰락하게 된 역사의 아이러니. 비잔티움 제국은 결국 이때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채 1453년 오스만투르크의 대대적인 공격 앞에 멸망한다. 7천 명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오스만투르크의 10만 대군을 맞아 45일 동안 필사적으로 항전한 비잔티움 제국. 마침내 피의 그믐달이 뜬 그날, 무너지는 콘스탄티노플 성벽과 함께 제국의 역사는 이제 신화가 된다.

 

 

출처: http://blog.daum.net/badabooks/11731419

그림: 로마인 광장

* 관련 게시물: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노리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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