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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펌] 직필과 곡필 ----삼국지와 후한서를 예로 들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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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필과 곡필에 대해(정사 삼국지와 후한서를 예로 들어) | 역사토론방 2007.02.13 11:15
kimsw0520 시민 http://cafe.naver.com/sam10/126753
옛날 훌륭한 역사가들의 역사 기술의 태도는 대단히 엄정했습니다. 물론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텔레비전 뉴스의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고 문장을 오해할 만하게 사용하여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곡해에 비한다면 그 실수는 그리 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직필이란 무엇인가?
사실을 사실대로 적는 것이 직필입니다.
곡필이란 사실을 돌려 말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을 사실대로 적는다는 말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동호직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을 그대로 인용하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조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춘추시대 진(晉)의 영공(靈公)은 사치하고 잔인하며 방탕한 폭군이었다. 당시 정경(正卿)으로 있던 조순(趙盾)이 이를 자주 간하자, 귀찮게 여긴 영공은 오히려 자객을 보내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조순의 집에 숨어든 자객은 그의 인품에 반해 나무에 머리를 찧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술자리로 유인해 그를 죽이려 했는데, 병사들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조순을 이끌고 도망하였다. 조순은 국경을 넘으려는 순간, 영공이 조천(趙穿)이라는 사람에게 도원(桃園)에서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태사(太史)로 있던 동호(董狐)가 국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다. ‘조순, 군주를 시해하다.’ 조순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호는 이렇게 말하였다. “물론 대감께서 직접 영공을 시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대감은 정경으로서 국내에 있었고, 또 조정에 돌아와서는 범인을 처벌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께서 공식적으로 시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조순은 자기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동호의 뜻에 따랐다. 훗날 공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다. 법을 따라 굽힘이 없이 썼다. 조순은 옛날의 훌륭한 대부이다. 법에 따라 부끄러운 이름을 뒤집어썼다. 아깝도다. 국경을 넘었더라면 악명을 면했을텐데(孔子曰 董狐古之良史也 書法不隱 趙宣子古之良大夫也 爲法受惡 惜也 越境乃免).”
동호직필이란, 이와 같이 권세에 아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을 가리킨다. 줄여서 직필이라고도 쓴다.
위의 고사에서 군주를 시해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조천이지요. 그러나 '조천, 군주를 시해하다'라고 쓴다면 이는 곡필이 되는 것이고 '조순, 군주를 시해하다'라고 써야 직필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기 세가에 따르면 조천은 조순의 아우이고 정황상으로 볼 때 영공은 조순세력에 의해 시해된 셈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조순은 조천을 벌하지도 않았으니 조천의 행동을 인정한 셈이 됩니다. 그러니 이를 조천이 시해한다고 쓴다면 이는 후대의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니 조순이 시해했다고 써서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옛날 역사가들의 필법의 엄정함입니다. 모든 역사가들이 이대로 쓸 수는 없었지만 이것이 모범이고 이러한 태도를 따르지 않으면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진수의 삼국지를 거론해 보겠습니다. 고려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신승하씨가 지은 중국 사학사라는 책에 보면 범엽의 후한서가
진수의 삼국지보다 후대에 씌여진 책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조조가 관직을 받은 사실에 대한 기술을 거론했습니
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삼국지 무제기의 기술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196년 7월에)천자가 태조에게 절월을 내리고 녹상서사로 삼았다.
이런 기술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후한서 효헌제기에서는
(196년 8월 신해일)진동장군 조조가 스스로 사례교위, 녹상서사를 겸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사실은 이렇겠지요. 천자가 조조를 녹상서사로 삼은 것입니다. 하지만 '천자가 조조를 녹상서사로 삼았다.'라고 쓴다면 이는 곡필이지요. 왜냐하면 이렇게 쓰게 되면 사건의 진상이 감춰지기 때문입니다. 천자가 조조를 녹상서사로 임명하기는 했지만 조조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천자 자신의 의사대로 조조를 녹상서사로 임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어 사실을 사실대로 쓴다면 '조조가 스스로 녹상서사가 되었다.'라고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옛날 역사가들의 필법입니다.
조조가 승진할 때마다 두 기록은 대비를 이루는데
진수가 '천자가 공을 사공, 행 거기장군에 임명했다.'(196년)라고 기술하면
범엽은 '조조가 사공에 오르고 거기장군의 사무를 대행하며 백관을 총괄했다.'라고 쓰고
진수가 '공을 승상으로 임명했다.'(208년)라고 쓰면
범엽은 '계사일, 조조가 승상이 되었다.'라고 썼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범엽의 기술이 직필이고 진수의 기록은 곡필이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진수가 자신의 목을 내놓을 작정이 아닌 이상 이 정도 곡필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겠지요. 아니 진수에게 범엽정도의 직필을 요구한다면 그게 오히려 말도 안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진수의 삼국지는 믿을 수 있는 사서입니다. 그러나 다소 곡필이 있는 것은 그의 입장상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이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기술한 면이 있고 이런 점은 인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