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신니면(薪尼面)의 마을이름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년), 필사본 조선지지자료(1914년) 등.
작성자달여울작성시간26.06.08조회수16 목록 댓글 0
薪尼面 (一四(14))
新淸里 申尼面 本里, 水淸洞, 新冊里, 德面 石隅里各一部
---> 맨 앞 新淸里는 1914년 정한 법정리(法定里)를 가리킨다. 신니면(申尼面)은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 속했던 면(面)을 가리킨다. 본리, 수청동, 신책리, 덕면 석우리각일부는 행정리(行政里)를 가리킨다. 그리고 수청동과 신책리의 빨간 글자 한 자씩 따서 법정리 신청리가 되었음을 표시했다. 이하(以下) 같다.
化石里 申尼面 化岳里, 楸洞, 支石里
新丹里, 內浦里各一部
文崇里 申尼面 上崇里, 中崇里, 上寺里, 店村
文內里, 內浦里一部
--->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지도에 숭선동(崇善洞)이 보인다. 상숭리, 하숭리는 상숭선리, 하숭선리이다.
文樂里 申尼面 回文里, 同樂里, 南岳里一部
毛南里 申尼面 毛陶院洞, 南岳里, 薪石面 水越里各一部
廣越里 薪石面 廣伐里, 炭峴, 水越里一部
大花里 薪石面 桐花里, 大化里
松岩里 薪石面 黑岩里, 八松里一部
仙堂里 薪石面 鳳凰里, 仙洞
八松里, 龍堂里, 廣坪里各一部
院坪里 薪石面 堂谷里, 院垈里 龍堂里, 廣坪里各一部
▲龍院里 薪石面 外龍洞, 內龍洞, 申尼面 內浦里各一部
---> 삼각형 표시는 용원리에 면사무소가 있음을 표시한다.
馬水里 薪石面 溫水里, 內龍洞, 馬蹄洞, 鶴城里各一部
見鶴里 薪石面 不見里, 鶴城里, 馬蹄洞,周柳面 倉田一里各一部
花顔里 薪石面 山直里, 顔巷洞, 花山洞, 石浦里
馬蹄洞一部
---> 용원리(龍院里)를 빼고 이웃한 마을에서 한 자씩 따서 새로운 법정리(法定里)를 만들었다. 이를 합성지명(合成地名)이라 하는데 행정지명(行政地名)은 이를 알고 해석해야 한다. 용원리가 외룡동, 내룡동으로 분동(分洞)될 만큼 컸기 때문에 용원(龍院)이란 이름이 남았다.
[【역원】 연원역(連原驛) 주 북쪽 5리에 있다. 찰방(察訪)하는 본도(本道)의 속역(屬驛)이 14개인데, 단월(丹月)ㆍ인산(仁山)ㆍ감원(坎原)ㆍ신풍(新豐)ㆍ안부(安富)ㆍ가흥(嘉興)ㆍ용안(用安)ㆍ황강(黃江)ㆍ수산(壽山)ㆍ장림(長林)ㆍ영천(靈泉)ㆍ오사(吾賜)ㆍ천남(泉南)ㆍ안음(安陰)이다. ○ 찰방 한 사람이다.
용안역(用安驛) 주 서쪽 45리에 있다. 예전에는 음성(陰城)에 속했는데, 성종(成宗) 9년에 본 주로 옮겨 붙였다.
-생략-
용두원(龍頭院) 주 서쪽 15리에 있다. 경제원(敬濟院) 일명 대조(大棗)라고도 한다. 주 서쪽 30리에 있다. 우원(隅院) 주 서쪽 65리에 있다. 미륵원(彌勒院) 주 서쪽 50리에 있다. 일명 광수(廣修)라고도 한다. 부구이원(釜拘伊院) 주 서쪽 55리에 있다.(驛院: 連原驛 在州北五里。察訪。本道屬驛十四:丹月,仁山,坎原,新豐,安富,嘉興,用安,黃江,壽山,長林,靈泉,吾賜,泉南,安陰。○察訪一人。*用安驛。在州西四十五里。舊屬陰城。成宗九年移屬于州驛。
龍頭院。在州西十五里。敬濟院。一名大棗。在州西三十里。隅院。在州西六十五里。彌勒院。在州西五十里。一名廣修。釜拘伊院。在州西五十五里。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중종 26)]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용안역(用安驛)으로 나온다. 미륵원(彌勒院)은 원평리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곳을 말한다.
호서읍지(1871년, 고종8년) 충주목 역원(驛院) 항목에 보면 용안역 연원소속 재주서사십오리 노일백삼명 비팔십일명 대마이필 기마칠필 복마오필(龍安驛 連原所屬 在州西四十五里 奴一百三名 婢八十一名 大馬二匹 騎馬七匹 卜馬五匹)라고 나온다.
<채색필사본 동여도(1856~ 1859)>
신니면 일대.
이안(利安), 용안(用安), 숭선참(崇善站), 요도천(夭桃川), 마산(馬山), 덕서(德西), 신곡(薪谷), 난초사(蘭草寺), 신니곡(申尼谷), 가섭산(迦葉山), 모로원(毛老院), 차의산(車儀山), 성곡(省谷), 탄티(炭峙)가 보인다. 지금은 夭桃川은 堯渡川으로, 모로원(毛老院)은 모도원(毛陶院)으로, 신곡(薪谷)은 신석곡(薪石谷), 炭峙는 炭峴으로 표기한다. 德西는 德面西를 차의산은 수레산, 수레의산인데 儀는 우리말 조사 <의>에 해당한다. 수레산이라고 불러도 된다.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 충주군 신니면. 1917년>
---> 1917년 출판되었지만 1914년 조선에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석면(薪石面)
화산동, 안항동, 산직리, 마제동, 온수리, 불견리, 내용원동, 외용원동, 원대리, 당곡리, 용당리, 선동, 팔송리, 흑산석리, 대화리, 동화리 (16)
신니면(申尼面)
수청동, 본리, 신단리, 화악리, 추동, 지석리, 내포리, 문내리, 중숭리, 상숭리, 상사리, 점촌, 회문리, 동락리, 남악리, 모도원동 (16)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명치 45년(1912년) 조선총독부 발행>
다른 이름으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이다.
이 자료와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 1917년>을 비교하면 신니면(申尼面) 지역이 통폐합되어 5개의 법정리로 줄었고 신석면(薪石面) 지역은 9개의 법정리가 되었다.
<필사본 조선지지자료 1914년> 이하 같음.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리동명은 법정리(法定里)를 말한다. 1914년 정한 것이다.
신니면(申尼面)에 속했던 신청리, 화석리, 문숭리, 문락리가 있고,
신석면(薪石面)에 속했던 용원리, 모남리, 광월리, 대화리, 송암리, 선당리, 원평리, 마수리, 화안리, 견학리가 있다.
신니면(薪尼面)은 신석면(薪石面)과 신니면(申尼面)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다. 신석(薪石)은 섶 신(薪)과 돌 석(石)으로 땔나무와 돌의 뜻으로 우리말 버덩을 연상케 한다. 버덩은 잡목이 우거진 바위투성이 땅을 말한다. 버덩은 버던, 번던, 펀던이라고도 한다.
신니(申尼)는 한자(漢字) 그대로는 말이 안되므로 음(音)이 같은 글자를 찾아야 한다. 신니(伸泥)일 것이다. 니(泥)는 진흙, 수렁의 뜻이 있는데 신니면(薪尼面)에는 요도천(堯渡川)이 흐르고 있고 상류(上流)가 된다. 요도천(堯渡川)을 생각한다면 진흙뻘이 펼쳐진 땅이란 뜻이 된다. 지금은 신덕저수지가 생겨 수몰이 되었지만 문내(文內) 뭇터와 바로 아래 내포(內浦) 속개 마을이 있었다. 신니면에서 발원(發源)한 요도천은 주덕읍과 대소원면을 거쳐 달천(達川)에 합류한다.
<국가기록원, 충주군도(1: 50,000)> 신니면 부분.
요도천을 경계로 북쪽이 신니면(申尼面), 남쪽이 신석면(薪石面)이다. 신니면엔 수레의산(679m), 신석면에는 가섭산(770m)이 큰산이다.
추동(楸洞) 가래울은 엄정면에도 있는데 흔한 마을이름이다. 가래나무(楸木)가 많은 데서 유래한다.
방축동(芳築洞) 방죽골. 방죽은 한자(漢字) 방축(防築)에서 온 말이다.
내포리(內浦里) 속개, 문내리(文內里) 뭇터가 보인다. 文은 흔히 물(水)을 한자로 음(音)옮김하는 글자로 쓰인다. 지금은 수몰되었지만 살미면 문화리 문지(文旨)마을은 문지, 문마루이다. 흔히 문지갱변이라 하는데 남한강가에 있는 마을이다. 지(旨)는 지명에서는 마을의 뜻인 <마루>가 된다. 조선시대 한자 학습서 신증유합(新增類合, 1576년)에 (ㅁㆍㄹㆍ㫖)로 나온다. 한자로 된 마을이름 끝에 지(㫖)가 나오면 마루로 읽어야 한다. 제주시 한경면에 <닥몰, 닥모루>을 한자로 옮긴 저지(楮旨)마을이 있다.
뭇터는 지금 신덕저수지에 잠긴 마을이다. 아래 3차지도에 나온다. 화계산 안마을이다.회문(回文)은 2차지도에 회문(回門)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고 긴골짜기를 나가야 바깥마을과 통한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 2차지도. 서창도폭. 1911년 측도, 1913년 제판>
수몰된 살미면 문화리 문지마을. 문지리(文池里)라 써 있다. 일본어 가타카나로 문츠니이라 써있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지도. 황강리도폭. 1915년 측도, 1916년 제판>
수몰된 살미면 문화리 문지마을. 문지(文旨)라 써 있다. 일본어 가타카나로 문치이라고 써있다. 남한강변에 있는 마을로 오른쪽 달천(達川)은 월악산에서 발원하여 한수면을 흐르는 월천(月川)이다.
수월리(水越里) 물너무리. 동량면에 무너미고개가 있는데 수월(水越)에도 무너미고개가 있다. 수월은 무너미마을을 말한다. 지형이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넘치는 마을이란 뜻이다.
광벌(廣伐) 너븐벌을 보면 벌판, 벌을 한자(漢字) 벌(伐)자를 썼다. 뜻과 무관하게 음(音)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탄현(炭峴)은 고개이름이면서 마을이름이다.
동화리(同花里) 동화실은 동화곡(桐花谷)으로 2차지도에 나온다. 桐은 오동나무란 뜻이다.
안항(顔巷) 안항. 항(巷)은 조선시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굴헝 항으로 나온다. 안항(安巷)으로 보면 <골짜기 안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아래 2차지도를 보면 마제(馬蹄), 산직촌(山直村)을 지나 골짜기에 안항리(顔巷里)가 보인다.
필사본 조선지지자료 음성군 삼성면 대사리에 장항평(長巷坪) 진구렁들이 보인다. 구렁, 굴헝은 깊은 골짜기를 말한다.
불견리(不見里) 못보기는 아래 2차지도에 보면 용원(龍院)에서 조금 떨어진 곳 요도천 옆에 있는 마을이다. 보이지 않는 마을이 아니라 <못(池) 근처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못보기란 말 자체가 마을이름이자 명사(名辭)로 현대 문법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아득한 과거에는 요도천 주변에 늪이나 못(池)이 많았다고 보면 된다.
<신니면 견학리 못보기 마을>
사리들 위 집들이 보이는 곳이 못보기이다. 가섭산에서 흘러내리는 내(川)가 마제를 지나 요도천에 합류하는 지점 옆에 있다.
신평리(新坪里) 새늘이라 써 있으나 새들이 맞는 표기이다. 수청동(水淸洞) 수청골은 호암동(虎岩洞)에도 있는데 <물이 맑다>고 새기지 말고 <물이 많다>고 뜻을 새겨야 한다. 둘다 마사토(磨沙土)가 많은 곳이다.
덕현(德峴)은 큰고개란 뜻이다.
보명(洑名)으로 강마보(江馬洑), 적지실보(赤支實洑), 중평보(中坪洑), 내포보(內浦洑), 화개산보(花盖山洑), 삼중보(森中洑), 안전보(案前洑), 화점보(花店洑), 장내보(墻內洑) 담안보가 나온다. 요도천을 따라 보(洑)가 여럿 보인다. 이 중 적지실보(赤支實洑)는 붉으실보의 한자(漢字) 표기로 여겨진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 2차지도. 1910년 측도, 1913년 제판>
추동(楸洞)은 가래울, 이포(裏浦)는 3차지도에 내포(內浦)로 나오며 속개의 한자(漢字)표기다. 구교(龜橋), 원대(院垈) 원터, 방축(防築) 방죽골, 신단리(新丹里), 화악동(花岳洞), 심방리(尋芳里), 본리(本里), 한천리(寒泉里), 수청동(水淸洞)이 보인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 2차지도. 1910년 측도, 1913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2차지도. 1910년 측도, 1913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2차지도. 1910년 측도, 1913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2차지도. 1910년 측도, 1913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2차지도. 1910년 측도, 1913년 제판>
학성리(鶴城里)를 학(鶴)의 속자(俗字) 학(䳽)을 줄여 썼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지도. 1915년 측도, 1916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지도. 1915년 측도, 1916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지도. 1915년 측도, 1916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지도. 1915년 측도, 1916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지도. 1915년 측도, 1916년 제판>
<조선오만분일지형도 3차지도. 1915년 측도, 1916년 제판>
견학리에 파랗게 표시된 것은 학성지(鶴城池)이다. 필사본 조선지지자료에 나온다.
<신니면 주변지도, 인터넷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