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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충주시 금가면 모현정기

작성자달여울|작성시간26.06.20|조회수36 목록 댓글 0

慕賢亭記

 

中原之北 牧湖之上 有洞 曰荷潭 後有細麓 屈曲圍繞環匝 前有群山 羅列高岡遠秀 足以致靈運之淸標 左有太古煙霞之痼癖擬作堯天之乾坤 南有玉湖 大江之瀯聲喚起自然底律侶其泓崢幽絶可以爲愛林泉之奇勝 噫 此地有翼然丹雘而輪煥暎輝者 乃十一代祖 慕堂文敬先生 以國朝名臣立朝事業之善德遺風垂之 後世遠近士林設院享祀曁 于高宗朝令廢撤之後 子孫之痛志士恨 無地可雪矣 丁丑春 吾宗有志 諸彦殫誠竭力建亭 於院右楣其堂 曰慕賢 盖取追慕尊賢之義也 幸賁先生當曰 仁智之眞趣顧名思義一念于賢 而勿忘其赫赫志業 或接物而不忘 或臨機而追慕哉 鳴呼 於焉光陰已過 數十年之門爲風雨之所 頹破而寥寥未遑者 至今 曰而與僉宗議㝎始加重修儘吾宗光紫而所謂灵芝醴泉之有源者非耶 自今以後 登斯亭而逍遙乎 千沠萬流朝海之上盤桓乎 風淸月朗灑落爽快之時隨時而感發繼述之心應物而激勵无忝之志以盡事一不忘之誠則 豈非慕賢報本之義哉 日日所望者如此盖相勉旃

 

歲甲寅 槐月 上澣

 

十一代孫 承箕 謹書

 

<번역>

 

중원(中原)의 북쪽, 목호(牧湖, 목계(牧溪)를 말한다.) 위에 하담(荷潭)이라는 마을이 있다.

뒤로는 낮은 산줄기가 굽이굽이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여러 산과 높은 언덕이 늘어서 멀리까지 빼어난 경치를 이루니, 혼령을 모시고 옮겨 고결하게 표하기족하다. (足以致靈運之淸標,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충주에는 충렬사만 남고 하강서원 등 나머지 서원은 훼철되었다. 1907년 하강단소(荷江壇所)가 설치되고 모현정이 처음 세워진 것은 1937년이다. 1974년에 모현정을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말한다. 자세한 것은 [하강서원지(荷江書院誌), 1977년]에 나와 있다.)

왼편에는 태고적부터 내려온 안개와 노을의 그윽한 정취가 있어 마치 요순(堯舜)의 태평성대를 이룬 하늘과 땅을 연상하게 하며, 남쪽으로는 옥호(玉湖)가 있어 큰 강물의 물소리가 자연의 아름다운 가락을 일깨워 준다.

그윽하고 수려하며 절경을 이룬 이곳은 참으로 산림과 샘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아낄 만한 뛰어난 명승지이다.

아, 이곳에 단청을 곱게 칠한 정자가 날개를 편 듯 우뚝 서서 빛을 발하고 있으니, 이는 곧 11대조이신 모당(慕堂) 문경선생(文敬先生)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선생께서는 조선 왕조의 명신으로서 조정에 나아가 훌륭한 업적과 아름다운 덕행을 남기셨고, 그 유풍이 후세에 전해졌다. 이에 원근의 유림들이 서원을 세워 향사를 올렸으나, 고종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고 말았다.

그 뒤 자손들의 통한과 뜻있는 선비들의 한은 풀 길이 없었다.

정축년(丁丑年, 1937년) 봄에 종중의 뜻있는 여러 어른들이 정성을 다하고 힘을 모아 옛 서원 오른편에 정자를 세우고 그 이름을 「모현정(慕賢亭)」이라 하였다.

이는 '어진 이(慕堂 洪履祥)를 추모하고 존경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더욱 다행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幸賁先生當曰, 幸賁은 더욱 다행히란 뜻이다.)

“어진 이를 생각하고 그 뜻을 헤아리며, 인(仁)과 지(智)의 참된 즐거움을 깨닫고, 선현의 빛나는 업적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잊지 말고, 일을 당할 때에도 늘 추모해야 한다.”

고 하셨다.

아, 그 뒤로 세월이 수십 년 흘러 정자는 비바람에 시달려 무너지고 훼손되었으나, 오랫동안 이를 수리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에 이르러 여러 종친들과 의논하여 마침내 중수를 하게 되었으니, 이는 우리 종문의 큰 영광이다.

이른바 영지(靈芝)와 예천(醴泉)이 근원이 있듯이, 오늘의 일이 또한 조상께서 남기신 덕의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는 이 정자에 올라 거닐며, 수많은 물줄기가 바다로 모여드는 광경을 바라보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비치는 상쾌한 때를 만나거든,

그때마다 선조의 뜻을 계승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사물에 접할 때마다 부끄러움 없는 뜻을 굳게 다져,

조상을 섬기는 정성과 선현을 잊지 않는 마음을 다한다면,

어찌 이것이 바로 현인을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하는 뜻이 아니겠는가.

날마다 바라는 바가 이와 같으니, 모두 함께 힘써 실천하기를 바란다.

 

갑인년(甲寅年, 1974년) 4월 상순

11대손 승기(承箕, 雲山 洪承箕이며 이 분의 묘는 연수동 금릉초등학교 뒷편 뒷목골산에 있다.) 삼가 쓰다.

 

<槐山郡守豊山洪公承箕之墓>

음기(陰記)

 

운산풍산홍공승기 기적비(雲山 豊山 洪公承箕紀蹟碑) --- 금가면 하담리 하강서원 앞에 있다.

 

<全文>

滄桑이 無常한 轉變의 渦中을 살면서도 그 世態時流에 휩쓸리지 안기란 壯히 어려운 일이언만 그러한 激變의 混濁속에서도 浩然히 獨也靑의 氣稟을 잃지 않으시고 오히려 傳統禮度의 典範이 되시며 鄕黨風節의 支柱되시는 선비로 그 孤高의 빛이 江湖에 비낀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雲山 洪公이시다 公의 諱는 承箕요 號는 雲山으로 豊山人이니 高麗朝 國學直學 諱之 慶公의 後裔로서 朝鮮朝의 名臣 慕堂 文敬公의 十一代孫이시다 公은 檀紀四二四二年 己酉 二月 九日 그 아버님 號 華世 祐寅公과 海州崔氏를 어머님으로 世上에 나시니 天資非凡하시고 才氣過人하시어 일찍부터 遠近의 尊崇을 받으시었다 그리하여 成家하시면서는 더욱 溫故의 學風과 傳統儒家의 凡節을 남달리 崇尙하시며 篤實히 선비의 길에 힘쓰시더니 槐山郡守를 끝으로 일체의 官職에서도 물러나시었다. 그리고는 公의 愛鄕인 이 곳 中原 땅으로 還鄕하시니 그로부터 더한층 鄕人들의 도타운 信望을 받으시며 忠州 鄕校典校와 本道鄕校財團理事長과 中央儒道會總本部 副會長등의 莫重한 責務를 지시고 實로 값진 그 末境을 보람속에 東奔西走하시었다 뿐만 아니라 公의 先祖로 宣廟朝의 重臣이며 壬亂收拾에도 功이 크셨던 慕堂 諱 履祥公의 그 높으신 學德을 기리어 일찌기 이 곳 南漢江 淸流畔에 荷江이라 이름하여 받들던 書院이 朝鮮朝末期의 紛紛했던 世流속에 分別없이 毁撤되어 차마 송구스러운채 許多年光을  恨스러이 虛虛롭더니 이를 민망히 여긴 公의 獻身的인 周族의 힘이 中心이 되어 鄕郡儒林들의 格別한 誠熱과 遠近族親들의 誠孝를 일깨워 모아 이곳 由緖어린 옛터전에 다시 荷江書院을 重建하고 이로써 나아가 社會敎化에도 크게 이바지하시었다 이같이 重厚한 德望의 선비로 推仰을 받으시면서 時代에 符合되는 儒道의 宣揚과 鄕土文化 창달에 앞장서 힘쓰시다가 辛酉年 六月 二十九日 그 크신 뜻 다 펴지 못하신채 이로써 그 高邁하신 風敎의 章을 닫으시니 春草는 年年綠인데 人傑은 歸不歸라 公이 가신지 於焉 三個餘星霜 이에 새삼 公의 높으신 資稟을 思慕하고 끼치신 德을 기리어 公과의 특별히 因緣 깊은 이 자리에 鄕儒들에 曲盡한 配慮로 이에 여기 一偏石을 새기노니 公의 그 높으신 遺德이야 길이 永世에 빛되오리

 

甲子年 三月 荷江書院 春享日

族人 達山 起薫 謹識

牙城 李鎬昌   書

檀紀 四千三百十七年 甲子 三月 日   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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