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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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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설명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건국되었다고 전해지나 이때의 개국이 고대국가의 성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를 위시한 여러 자료에 보이는 신라의 건국연대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이른 것으로 되어 있어 학계에서 말하는 국가 성립의 연대순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면 어떠한 연유에서 그렇게 되었으며 신라의 가장 이른 개국의 역사가 어떻게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을까?
신라는 다른 두 나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일찍 정착하고 있던 토착족이 보다 강고한 기반을 잡고 있는 중에 다른 주민들이 유입하여 연합하였기에 이같은 일이 있을 수 있었다고 보인다. 토착세력의 기반이 해체되지 않고 유이민을 받아들임으로써, 일시 유이민들이 선진문물 경험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잡는 듯하였으나 상대적으로 강고하고 광범한 토착세력의 저력앞에 유이민들의 위세가 약화되어 결국은 토착 김씨들이 왕권을 장악하는 과정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에서 신라의 초기사는 오히려 고구려, 백제의 건국주체가 되었던 유이민들의 유입 이전 토착세력들의 성장과정을 볼 수 있는 간접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박혁거세의 뒤를 이은 이는 남해차차웅이었다. 차차웅이란 지배자의 호칭은 소위 제정일치(祭政一致)의 단계를 보여주는 명칭인 것이다. 제 3대 왕은 유리니사금이었다고 전해진다. 니사금(尼師今)은 연장자를 나타내는 용어인데, 이도 고대의 지도자 또는 지배자 유형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후에는 이같은 단계의 읍락국가가 이웃세력들과 연합하거나 혹은 정복해가는 성장의 역사를 엮어갔다. 그러다가 고대국가의 지배자로 볼수 있는 마립간(麻立干)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단계가 나타났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19대 눌지왕으로부터, 『삼국유사』에는 눌지왕의 아버지인 17대 내물왕부터 마립간이라 하였다고 한다.
눌지마립간은 확실히 고대국가 단계에 진입한 왕으로 볼 만하다. 신라는 그 이후로 김씨의 왕위 독점세습이 확립되었다. 또 왕위는 부자상속 그 중에서도 장자상속이 되었다. 이는 왕권이 확립되고 안정되어 다른 귀족들과는 위상이 다른 왕실의 권위가 확보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라는 마립간의 칭호가 사용되는 내물왕이나 늦어도 눌지왕 때부터는 그 위의 역사까지를 참조해 보건데 고대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인다. 이같은 고대국가 단계에 진입한 신라는 5세기 후반 다수의 성을 쌓는 등 영역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소지왕때에는 자방통제의 핵심적 시설을 마련했으며 지증왕때에는 농업기술사의 큰 진전이 있었다. 그리고 지증왕 4년에는 비로소 '신라'라는 국호를 정식으로 갖게되며 국왕의 명칭도 갖게 된다. 법흥왕에 이르러 율령이 반포되고 공복제가 제정되며 불교를 공인하여 고대국가체제가 완성되었다.
※ 보충설명
시조 혁거세(赫居世)로부터 경순왕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하였다. 국호는 신라·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徐那伐)·서야(徐耶:徐耶伐)·서라(徐羅:徐羅伐) ·서벌(徐伐) 등으로 불렀는데, 모두 마을[邑里]을 뜻하는 사로(斯盧)로 해석된다.
신라는 《삼국사기》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3기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① 상대(上代:시조∼28대 진덕여왕, BC 57∼AD 654)는 원시부족국가 ·씨족국가를 거쳐 고대국가로 발전하여 골품제도가 확립된 시기이다. ② 중대(中代:29대 무열왕∼36대 혜공왕, 654∼780)는 삼국을 통일하고 전제왕권(專制王權)이 확립되어 문화의 황금기를 이룬 시기이다. ③ 하대(下代 :37대 선덕왕∼56대 경순왕, 780∼935)는 골품제도의 붕괴, 족당(族黨)의 형성 및 왕권의 쇠퇴로 호족(豪族) ·해상세력이 등장하고 멸망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밖에 29대 무열왕 이전을 삼국시대, 그 이후를 통일신라시대로 크게 구분한다.
※ 본문출처 : http://mahan.wonkwang.ac.kr/source/ko17.htm ※ 보충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이미지출처 : http://blog.empas.com/dwban22/192806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