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하나님의 성전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0.11.13|조회수153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성전


인간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사랑, 창조성, 영원의 갈구 등 신성한 품성을 부여하는 특별한 성령을 붙어넣었다. 하나님은 인간 속에 자신의 거처를 짓고자 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과 공명하여, 마치 하나님이 보는 것처럼 우리의 몸은 보고 듣고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함께 움직임으로써 인간은 신성을 지니게 되고,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신성하게 할 수 있다.

힌두교나 여타의 동양 종교들에서 이러한 궁극적 실재의 내재를 참된 자아 또는 아트만이란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된 자아를 모르고 살아가며, 전적으로 이기적인 동기로 삶을 영위한다. 문선명 선생에 의하면 우리는 인간 타락의 비극 때문에 더럽혀진 성전과 같다. 하나님의 영은 타락한 인간 속에 거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유형적 몸이 되어 이 세계를 아름다운 에덴동산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인격 속에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총과 복귀를 위한 인간의 노력으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성전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다.  

 

말씀 선집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마음과 같고 아담 해와는 보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몸뚱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본래 영계에 가게 되면 사람의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되게 됩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체를 가진 부모의 자리에 선 그분이 아담 해와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몸과 같이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과 같은 입장에 있는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내 마음에 하나님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큰 하나님이 나를 중심삼은 조그만 마음의 하나님으로서 마음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작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107.127-173, 1980.04.27)

아내는 남편이 하나님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서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면, 하나님이 마음의 근원에서 대답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362.190, 2001.12.12)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얼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주인이 없으면 모든 외적인 물건들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아담 해와가 아무리 못났어도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계셔서 그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와 다른 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분들의 얼굴은 순수한 하나님의 기쁨을 표상할 수 있는 얼굴임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눈으로 보는 것도 자기들의 눈을 통해 보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봤을 것이고, 그들이 듣는 것, 느끼는 것, 말하는 것 등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타낼 수 있는 표시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95.247, 1977.12.04)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그 날부터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으로 완성한 사람, 하나님과 일치되는 심정과 심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3.298-299, 1958.01.26)

예수님의 마음과 몸은 무엇이었던가?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마음이었느냐 하면 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자기의 몸이 아니라 아버지의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천리 법도요, 만 인간이 지니고 싶은 소망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한 실체적인 하늘의 성전으로서 또는 실체적인 하나님의 보좌를 대신한 존재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3.264, 1958.01.120)

개성을 완성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는 몸과 마음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몸은 마음이 거하는 하나의 전(殿)으로서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므로, 결국 그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일체를 이루는 것과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20절에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 말씀하셨다. (원리강론, 인류역사종말론 1.1)

밥 먹는 것은 누구를 위해 먹습니까? 잠자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잡니까? 여러분이 베개를 베고 누울 때, '아! 하나님하고 같이 잔다' 이런 생각 해 봤습니까? '가슴을 휘어잡아 기분이 좋다. 하나님이 주무신다!" 이렇게 해봤습니까? 그리고 또 썩 일어나게 되면 내가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일어났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일어난 것입니다. (92.153, 1977.04.01)

 

사람 가운데 세계가 다 들어가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들어가 낮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 놓고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자유스럽습니까. 아무리 발로 차도 걸리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데도 걸리는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같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더욱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모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25.101-102, 1983.03.13)

우리는 인간의 형상을 보기 바랍니다. 체(體)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체를 입지 않고는, 체를 갖지 않고는 영계나 지상세계를 치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할 텐데, 그 체를 입는 대표가 누구냐 하면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는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천지를 주재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실체를 가진 하나님, 즉 영원한 무형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 입고 나타난 자리, 부모의 자리에서 세계를 통치할 책임이 아담 해와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133.91-92, 1984.07.10)

하나님은 무형입니다. 영계에 가도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왜 그렇게 사랑을 중심삼고 만들었느냐 하면 이 피조세계는 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를 가진 아버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체를 가진 아버지가 됨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무형과 유형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가 하나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를 입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체를 입는 데는 무엇이 결정하느냐? 사랑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런 체를 갖출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의 모습과 해와의 모습이 하늘나라의 왕궁에, 왕좌에 오르게 되어 그 왕과 왕후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셔서 지상세계와 무형세계를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만드는 것입니다. 왕국이 어떤 왕국입니까? 사랑의 왕국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영과 육이 합하게 되어 있지, 다른 것 가지고 합할 수 없습니다.  
(143.93, 1986.03.16)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