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시선집, 산호장, 1955>
◘ 작품 개관
이 작품은 1950년대 후기 모더니즘 문학의 단면을 보여 준다. 6.25 전쟁이 가져다 준 삶에 대한 절망과 도시적 센티멘털리즘을 서정성 짙게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젊은 시인의 서정이 모든 것이 떠나버린 허무의 광장에서 어떤 모습의 우수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가는 발견할 수 있다.
◘ 작가
▰박인환(1926~1956) : 시인. 1947년 ≪신천지≫에 ‘남풍’을 발표하면서 등단. <자유신문>과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1949년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모더니즘 시 운동의 주역이 됨. 시의 경향은 전후의 허무주의와 도시적 서정을 담아 보여 줌. 작품으로는 시집으로 ≪박인환 선시집≫(1955)이 있음.
▰버지니아 울프(1882~1941) : 영국의 여류 소설가, 비평가. 전후(2차 대전)의 허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불안과 강박 관념에 시달리다가 결국 템즈 강에 투신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친 인물. 대표작으로 ‘세월’, ‘등대로’ 등이 있음
◘ 시어 및 시구의 함축적(상징적) 의미
▰목마 : 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② 전후의 불안과 절망으로 얼룩진 시대적 슬픔(허무의식)을 표상함으로써 ③ 인간의 삶과 정신을 황폐화시켜 버린 현실에서 이미 모두 떠나가 찾을 수 없는 지난 시대를 상징한다.
▰숙녀 : 모든 떠나가는 것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별이 떨어진다. : 꿈을 버려야 하는 세월의 안타까움을 표현함
▰문학이 죽고~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모든 가치 있는 것이 소멸된 전후(戰後)의 절망적인 상황 또는 인간 상호간의 무관심을 암시함
▰…… 등대(燈臺)에 …… / 불이 보이지 않아도 : 삶의 지향성과 목표를 상실한 시대의 불안과 허무 의식
▰페시미즘의 미래 : 비관이나 염세주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작자의 체념이 드러남
▰인생은~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수동적인 삶, 인생에 대한 시인의 애상적, 체념적 통찰이 보임
◘ 이해와 감상 1
6․25 직후의 상실감(喪失感)과 허무주의를 짙게 띤 작품이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퇴색하며 떠나가는 데 대한 절망감과 애상(哀傷)이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박인환은 김수영, 김경린, 조향 등과 더불어 1950년대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도시적 감수성과 현대 의식을 중시하고 전위적 기법을 실험하며 문명 비판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따라서 그들의 시는 지적(知的)인 요소와 서구적 기풍이 많다. 그런 가운데서 박인환은 가장 주정적(主情的)인 기질을 가진 인물로서 비애, 절망의 감정을 노래하는 데 치중했고, 흔히 센티멘탈리즘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기질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로서 의식의 흐름에 중점을 둔 내면 묘사의 소설을 주로 썼는데 세계 2차 세계 대전기의 허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강박 관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한 인물이다. 이러한 비극적 생애의 인물을 비롯하여 목마, 보이지 않는 별, 늙어 버리는 소녀, 불빛이 보이지 않는 등대, 술병, 상심, 작별 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작품 전체는 ‘퇴색하고 부서지며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비탄(悲嘆)의 노래’가 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다는 구절은 이러한 절망감 속에서 나오는 쓰라린 독백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인생이 실제로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들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황량한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어딘가에 호소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역설이다. 이러한 흐름을 거쳐 마침내 작품은 ‘내 쓰러진 술병’으로 끝을 맺는데, 이 마지막 행은 삶의 의미에 대한 그의 비관적 태도가 집약된 귀착점이라 하겠다.
◘ 이해와 감상 2
김수영, 김경린 등과 함께 5인 공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한 박인환은 30년대의 김기림, 김광균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을 계승한 50년대 후기 모더니즘의 대표적 시인이다. 후기 모더니즘은 김수영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이념적 중심이나 이론 체계가 없어 30년대 모더니즘의 발전적 계승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50년대라는 전후(戰後)의 황폐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청록파적 경향에 반발하여 전통적 서정 세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모색을 꾀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시는 시어나 시구가 지니는 각각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그것들의 의미 상황을 추적하면 무엇을 뜻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데, 그것은 초현실주의적 방법인 우연성에 의한 시어의 자유 분방한 표현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인환의 이러한 언어 감각이 이 작품을 ‘분위기’로 느끼게 하는 주된 요인이며, 허무적이고 감상적인 정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후문학은 6․25의 비극적 체험과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 가치의 전도(顚倒)와 혼란, 문명화, 도시화에 따른 비인간화 현상의 심화 등으로 인해 개인주의적, 감상적, 허무적 경향을 띠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 나타난 허무 의식과 센티멘탈리즘 역시 전후의 정신적 황폐함과 불안 의식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哀想)을 노래하고 있다. 1행에서 11행까지 계속 ‘떠났다’․‘떨어진다’․‘부서진다’․‘죽고’․‘버릴 때’․‘보이지 않는다’가 연속되는 것에서 시적 자아가 마주선 허무와 절망을 읽을 수 있다. ‘목마’는 내면 세계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법으로 철저히 추구한 영국 여류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와 불안과 절망의 시대적 슬픔을 표상하는 것이며, ‘숙녀’는 바로 ‘버지니아 울프’를 가리킨다.
12행부터 25행까지 서정적 자아는 작별해야 한다는 등 무엇을 ‘해야 한다’고 반복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단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절망적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에 가깝다.
26행에서 끝 행까지는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임으로써 체념적 상황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지만, 그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애상적 태도를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 안주함으로써 삶의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허무주의자의 나약한 모습일 뿐이다.
‘정원 옆에서 자라던 소녀’에서 ‘목마를 탄 숙녀’로, 다시 ‘늙은 여류 작가’로 변모하면서 허무와 불안 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템즈강’에 투신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처럼 인생 항로의 좌표를 잃고 살아가던 박인환은 ‘상심(傷心)한 별’과 ‘불이 보이지 않는 등대’와 같은 절망과 비애 속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며’ 고통을 극복하려 했지만, 결국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비극적 정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를 통해 문학과 술을 벗하며 끈기있게 현대 문명의 위기와 불안 의식을 세련된 감각과 높은 지성으로 노래한 그는 ‘우수(憂愁)의 시인’으로 불리우며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이해와 감상 3
이 시는 6․25 직후의 지식인이 겪는 상실감과 허무감을 짙게 깔고 있는 작품이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퇴색된 데 대한 절망감과 애상감이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박인환은 정적인 기질을 가진 시인으로 비애, 절망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치중했고 흔히 센티멘탈리즘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 작품 역시 그의 이러한 기질과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기의 허무주의 분위기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강박 관념에 시달리다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영국의 여류 소설가)와 같은 비극적인 인물을 비롯하여 ‘목마’, ‘보이지 않는 별’, ‘늙어 버리는 소녀’ ‘불빛이 보이지 않는 등대’, ‘술병’, ‘상심’, ‘작별’ 등의 시어를 구사함으로써 작품 전체가 ‘퇴색하고 부서지며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비탄’이라는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구절은 이러한 절망감에서 오는 독백이다. 이는 인셍이 실제로 외롭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들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 무엇을 어디에 호소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역설이다. 이러한 흐름을 거쳐 시는 마침내 ‘내 쓰러진 술병’을 끝을 맺게 되는데, 이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가 집약적으로 나타난 구절이다.
◘ 작품 구성
전 32행으로 된 자유시로,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시어나 구절 하나 하나의 의미나 그것의 연결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로 감상자에게 다가오는 시이다.
▰ 1~11행: 작품의 첫부분은 시의 도입부로서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서정적 자아의 슬픔같은 것이 드러나 있다. ‘목마를 타고 떠난’, ‘주인을 버리고’, ‘가을 속으로 떠났다’, ‘떨어진다’, ‘부숴진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그림자를 버릴 때’, ‘보이지 않는다’, 등 주로 서술어를 연속적으로 동원하여 감상적 분위기를 높인다. 여기서 자아가 느끼는 허무와 절망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화자의 슬픔)
▰12~25행 : 어떤 지향성을 잃은 현대인의 절망적인 삶을 위로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별하여야 한다’, ‘바라보아야 한다’, ‘기억하여야 한다’, ‘들어야 한다’ 등과 같이 무엇을 하여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아의 결단이나 극복의 의지가 아니다. 오히려 절망적인 현실을 수용하고 지친 삶을 위로받고자 하는 서정적 자아의 수동적인 체념이라 할 수 있다.
(절망적 현실의 체념적 수용)
▰26~32행 : 인생이라는 것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인생에 대해 공포를 느끼거나 한탄하거나 고뇌하는가 라는 인생에 대한 감상적인 통찰로 끝맺고 있다.
(인생에 대한 감상적 통찰)
전체적으로 보아 인생에 대한 허무의 단상들이 서로 의미 상관을 가지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성에 의해 자유분방하게 결합되어 있다.
◘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
(1) 경쾌한 리듬, (2) 애상을 주지적․감각적․상징적으로 노래 : 이 시는 가볍고 고우면서도 애수(哀愁)가 서린 한 곡의 멜로디를 듣는 듯한 ‘경쾌한 리듬’이 특징이다. 산문체이면서도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떠나간 것들에 대한 애상을 주지적이고 감각적이면서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한 잔의 술, 버지니아 울프, 목마, 숙녀, 방울 소리, 가을, 술병, 별, 가슴, 소녀, 정원, 초목, 문학, 인생, 사랑, 진리, 애증의 그림자, 세월, 고립, 작별, 바람, 여류 작가, 등대, 불, 페시미즘, 희미한 의식, 바위, 청춘을 찾는 뱀, 잡지의 표지, 가을 바람 소리’ 등과 같은 감상적(感傷的)인 시어들은 독자의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효과를 갖는다.
▰ 시적 정조와 주제
☞시적 정조 : 6.25 직후의 허무주의, 실존주의적 고뇌, 도시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함. 따라서 감상적, 허무적, 체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시어의 선택에서도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 ‘목마’, ‘별’, ‘소녀’, ‘술병’, ‘늙은 여류작가’, ‘등대’, ‘페시미즘’, ‘술병’ 등을 동원하여 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러나 이 시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절망감이나 도시적 감상성은 퇴폐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미로운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박인환의 언어에 대한 탁월한 감수성에서 연유한다.
☞주제 : ①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
② 일상적 삶의 허무와 비애
③ 허무와 고독으로서의 인간 실존 등. 특히 주요 제재인 ‘목마’가 표상하는 바는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와 불안과 절망의 시대적 슬픔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허무주의는 위의 시어에서 그대로 발견된다.
◘ 50년대 모더니즘과 <후반기> 동인의 문학사적 의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 간행된 것은 1949년이고, <후반기> 동인이 결성된 것은 전쟁 중인 1951년 부산에서였다. 후자의 동인은 전자의 시인들 중 박인환, 김경림에 의해 주도되고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이 참여하였다. 이 <후반기> 동인의 의미에 대해 김흥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후반기> 동인들은 당시 한국 시단의 주류였던 청록파 및 서정주 등에 대한 반발과 함께 그들의 길을 찾았다. 그리하여 도시적 감수성, 현대의식, 전위적 기법의 추구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그들은 50년대 혼란스런 면모를 노래하면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그들에게는 뚜렷한 이념적 핵심이나 체계가 없었다. 그러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 한때나마 그들을 묶을 수 있었던 공통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론의 전개 과정에서 그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50년대의 문학적 사회적 기후 속에 시와 삶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부여하려는 참담한 노력을 이들이 개시했기 때문이다. 모더니스트들은 별로 확실한 시론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시에 대한 당시의 통념에 회의를 던짐으로써 50년대의 성과를 예비하는 값진 계기를 마련하였다.
▰ 이 시가 의미를 나타내기보다는 분위기로 느껴지는 이유.
이 시는 시어나 시구가 지니는 각각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그것들의 의미 상황을 추적해 보면 무엇을 말하는지 선뜻 이해가 안된다. 그것은 초현실주의적 방법, 즉 우연성에 의한 시어의 분망한 표현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인환의 독특한 언어 감각이 시 전체를 분위기로 느끼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게다가 허무적이고 감상적인 정조가 분위기를 한결 강화시키고 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의 의미
절망감 속에서 나오는 쓰라린 독백이다. 인생이 실제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들이 허망하게 떠가가 버린 황량한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어딘가에 호소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역설이다.
인생이란 것은 통속 잡지의 표지와 같이 별반 의미도 없고 특별히 외롭다거나 슬프다거나 애를 태우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는, 그저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면 된다는 의미로, 시인의 인생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그저 그 통찰은 반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체념적인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 30년대의 모더니즘과 50년대의 후기 모더니즘
| 1930년대 | 1950년대 |
등장 배경 | KAPF의 편내용 주의 및 20년대 감상적 낭만주의 비판 부정 | 청록파 등 전통적 서정의 세계 부정, 전후의 황폐한 사회적 분위기 반영 |
시인 | 김기림, 정지용, 김관균, 이상 등 | 박인환, 김경린, 임호권, 김수영 등 |
서구 문화와의 관계 | 1차 세계 대전 후의 서구의 정신적 황폐함 반영, 세계와의 동시성을 관념적으로 인식 | 6.25를 통한 전쟁 체험과 미국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세계와의 동시성 확보코자 함. |
시론 | 이미지(특히 시각적 이미지) 강조, 명랑한 감성, 문명 비판, 도시적 감각, 지성, 기교 중시 | 30년 시론의 심화 발전 |
▰ 이 시의 문학적 의의
인생에 대한 허무의 단상(斷想)들이 자유롭게 결합되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이루며, 전후의 폐허, 정신적 황폐함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 일반적인 전후 문학(戰後文學)의 특징
전쟁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실감과 아울러 인간의 선의와 인생, 문명 등의 가치에 대한 부정 및 허무 의식을 표현한 것이 많다.
▰ 전후 모더니즘 시의 성격
6․25를 거친 시문학에서 새롭게 대두된 모더니즘은 단순히 문명에 대한 감각과 도시적 서정의 세계만을 추구하지 않고, 실존적이며 내면화된 부정적 사유를 통해 전후 사회의 인간 조건을 탐구하고 현대적인 서정성을 회복하려는 이념을 추구했다.
▰ 이 시에 나타난 전후 모더니즘의 성격
이 시는 전후의 허무주의, 실존적 고뇌, 도시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감상적, 허무적, 체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시어의 선택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 목마, 별, 소녀, 늙은 여류 작가, 등대, 페시미즘, 술병’ 등을 동원하여 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주요 제재인 ‘목마’가 표상하는 바는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와 불안, 절망의 시대적 슬픔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절망감이나 도시적 감상성은 퇴폐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미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이것은 박인환의 언어에 대한 탁월한 감수성에 연유된다.
▰ 50년대 모더니즘을 30년대 모더니즘과 비교해 보았을 때,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공통점 : 객체보다는 주체를,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경험을, 집단 의식보다는 개인 의식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50년대 모더니즘의 차이점 : 6․25전쟁이 가져다 준 충격으로 인해 허무주의적, 감상적, 체념적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30년대 모더니즘 - 밝고 건강한 ‘오전의 시’)
▰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시어의 ‘우연성’
전체적으로 인생에 대한 허무의 단상들이 서로 의미에 상관을 가지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성’(※초현실주의적 방법)에 의해 자유 분방하게 결합되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그래서 이 시는 독자에게 어떤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보다 독자를 감상적(感傷的) 분위기에 젖어들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정적 자아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애상(哀傷)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참고 자료≫ 이 시의 시상 전개
이 시는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을 주지적으로 노래한 시이다.
비교적 단순하게 이루어진 서두(1~11행)는 ‘떠났다, 떨어진다, 부서진다, 죽고, 버릴 때, 보이지 않다’ 등의 동사적 서술어의 반복에서, 있어야 할 것들을 상실한 화자의 절망과 허무를 읽을 수 있다. 시적 상징으로서의 ‘목마’는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와 불안한 시대의 절망과 상실의 시대적 슬픔을 표상한다.
12행부터 25행까지의 두 번째 부분은, ‘~해야 한다’는 당위적 요건들을 부여하면서 현실에 직면한다. 그러나 그것은 화자의 결단의 모습이나 극복 의지가 아닌, 절망적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에 가깝다.
26행~32행은 마지막 부분으로, 화자는 체념적 상황에 대한 반문을 제기함으로써 인생에 대한 통찰의 가능성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이 어떠한 특별한 의미도 없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공포를 느끼거나 한탄하거나 고뇌하는가라는 감상에 머무르고 만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는 인생에 대한 허무의 단상들을 제시하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의미 상관을 지니도록 연결되기보다는 하나의 서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 시인에게 인생이란 분위기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닐지도 모르며, 여기에 이 시인의 허무주의가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