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감상 (15) 충북보은(忠北報恩)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正二品松)>으로 현재는 아랫부분의 가지 여러 개가 비바람에 부러져 전체적인 균형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이 사진은 약 25년 전의 모습으로 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정이품송>이다.
탄로가(嘆老歌) -우탁(禹倬:1262-1342)-
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 작가소개 및 작품 감상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時調)로 알려진 우탁(禹倬)의 작품을 감상하고자 한다. 우탁은 고려후기 학자로서 호는 백운(白雲) 또는 단암(丹巖). 열일곱 살 때(1278년:충렬왕 4년)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영해사록(寧海司錄)으로 부임했을 때 영해지방의 사람들이 팔령신(八鈴神)을 극진히 섬기는 등 폐해(弊害)가 심하자 신사(神祠)를 철폐했다.
그는 마흔 일곱 살(1308년: 충선왕 즉위)때, 감찰규정(監察糾正)에 올랐다. 이 관직(官職)은 정치를 비판(批判)하고 모든 관리(官吏)들을 자세히 관찰(觀察)하여 억울(抑鬱)한 것을 바로잡아 주는 일을 맡아하는 직책인데 이 관직은 곧고 정직한 성품에 높은 학문을 갖춘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통례(通例)였다.
마침 이때 충선왕이 부왕(父王)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와 밀통(密通)하자 감찰규정, 우탁은 죽음을 무릅쓰고 극간(極諫:극력으로 끝까지 간함)했다. 그때의 상황을 묘사하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우탁이 백의(白衣) 차림으로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짊어지고 결연(決然)히 대궐(大闕)로 들어가 극력(極力)으로 간(諫)하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며 상소(上疏)를 읽어 올리는 신하가 상소를 펴 들고는 감히 읽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걸 보자 우탁(禹倬)이 낯빛을 엄(嚴)히 보이며, '경(卿)이 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臣下)로서 왕의 그릇된 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악(惡)으로 인도하여 이에 이르니 경은 그 죄를 아느냐?' 하고 소리를 질러 꾸짖으니 좌우에 있던 대신들이 크게 놀라고 왕도 부끄러워하는 빛을 보였다."
그 뒤,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인 예안에서 학문에 전념했으나 충숙왕이 여러 차례 부르자 다시 벼슬길에 올라 성균제주(成均祭酒)를 끝으로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했다. 우탁이 명(明)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간 일이 있었는데 명나라에 주역(周易)이라는 책이 있어 읽어보니 매우 탐나는 책이라 구(求)하여 본국에 가지고 오려 했으나 내어주지 않으므로 탐독(耽讀)하여 머리에 외워서 귀국했다고 한다. 그 까다롭고 방대(尨大)한 분량을 외우다니 실로 수긍이 가지 않을 일이다. 그가 "주역(周易)을 동쪽으로 옮겼다"는 뜻으로 '역동선생(易東先生)'이라는 별명(別名)이 붙었고 오늘까지 그를 가리켜 '우역동(禹易東)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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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로가(嘆老歌)'라는 말은 글자그대로 '늙어 감을 한탄하는 노래'이다. 이 시조는 우탁이 남긴 2편의 탄로가 중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시조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시조문학(時調文學)의 백미(白眉)로 꼽히고 있다.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 것을 '막대기'와 '가시덩굴'로 막으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읊고 있다. '백발'과 '늙음'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직접 사람 자신의 힘으로 막으려는 방법의 구상(構想)이 생동감(生動感)있게 표현되어 있고, 초장(初章)의 '막대'와 '가시'는 중장(中章)의 '늙는 길,' '백발'과 적절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늙어간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 그 자연의 섭리를 '막대'와 '가시'로 막으려는 모습이 무척 익살스럽고 시적 표현이 매우 참신(斬新)하여 감각적(感覺的)이다. 작자의 늙음을 한탄하는 소박한 표현이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制御)할 수 없는 천리(天理)를 달관(達觀)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 시조는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것인데 서글픔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미소(微笑)를 그치지 않게 하는 재치(才致)가 있어 재미가 있다. 이것은 인생 달관에서나 우러날 수 있는 도인(道人)다운 여유(餘裕)일 것이다. '늙음' 이라는 추상적인 인생길을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길로 전환시키고, 세월의 흐름을 가시와 막대기로 막으려는 발상이 재미있지만,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고 인간이 세월을 거역하려는 것에 대한 익살스런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인간의 한계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세월(늙는 길)과 늙음(백발)을 구상화한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늙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간결(簡潔)하고도 선명(鮮明)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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