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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세계

한국의 명시 감상 (17)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작성자천일국 경전|작성시간14.05.19|조회수249 목록 댓글 2

한국의 명시 감상 (17)

 

<나의 침실로>                         -이상화(李相和:1901-1943)-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 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용어풀이] *마돈나: 잃어버린 조국(구원의 여인상).

                       *목거지: “모꼬지”의 변형어. 놀이나 잔치로 여러 사람이 모임.

                       *수밀도: 껍질이 얇고 살과 과즙이 많으며 맛이 단 복숭아.

                       *수밀도 네 가슴: 젊은 여인의 관능적 아름다움.

                       *달려오너라: 만남에 대한 갈구.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덴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용어풀이]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 눈물을 강요하던 인습(因習)의 굴레(낡은 가치관)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 발각되어서는 안 되는 꿈을 추구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용어풀이]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 암담하고 절망적인 시대 상황.

 

마돈나! 지난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용어풀이] *침실: 안식처(새로운 희망이 잉태되는 곳)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촉(燭)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 도다.

     ♣[용어풀이] *더우잡고: ‘더위잡다’의 방언(끌어잡고)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 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용어풀이] *그리매: 그림자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용어풀이] *오랜 나라: 침실(영원한 안식처)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용어풀이]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안식과 평화의 공간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용어풀이] *마음과 목이 타려는 도다: 기다림에 지쳐 피폐해진 화자의 모습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復活)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용어풀이] *부활의 동굴: 피폐해진 정신에 안식과 활력을 주는 공간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물결도 잦아지려는 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 이상화의 작품 활동은 그가 동향 친구인 현진건(玄鎭健:1900-1943)의 소개로 가담한 <백조>의 창간호에 <말세의 회탄>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작가소개 및 작품 감상

 

본명은 상화(相和)이고 호는 상화(尙火)이다. 대구출생으로 경성 중앙중학 3년을 졸업하고(1919), 그해에 강원도 일대를 방랑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운동에 참여하고 백기만(白基萬:1902-1967)과 함께 거사(擧事)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잠시 서울에 피신하였다. 1922년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도쿄[東京]로 건너가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다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다.

 

그의 작품 활동은 대략 초기에는 <백조>그룹 등과 함께 하면서 <나의 침실로>와 같은 탐미적(耽美的)인 경향(傾向)의 시를 썼으나, 1924년경을 고비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식민지하의 민족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상승시킨 암흑기의 민족 시인이자 민중시인, 저항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일제 강점기(强占期)에 독립 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여러 차례 감옥 생활을 하였다.

 

백기만이 엮은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대표작에는 1926년 6월 <개벽>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가상(街相)>등이 있다.

 

                                    ♣           ♣          ♣  

 

                          <해설: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이상화 시인의 “나의 침실로는 그의 나이 18세에 발표한 시이다. '백조파' 시인들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이상화 시인의 <나의 침실로>라는 제목의 시는 '불행한 현실을 버리고 미지(未知)의 아름다운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오지 않는 애인' <마돈나>를 혼자 기다리는 마음을 여러 상징들을 동원(動員)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신비롭고 관능적(官能的)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 작품은 기법상 (技法上) 미숙(未熟)하다는 평가도 있으나 동시에 시상(詩想)이 풍부하다는 칭찬도 듣는다. 여기서의 '마돈나'는 '아씨'도 되고 '마리아'도 된다. 

 

흔히 서사시(敍事詩)는 '3인칭의 객관적 예술'이고, 서정시(抒情詩)는 '1인칭의 주관적 예술'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상화 시인은 '2인칭'으로 기술하고 있다. 주술적(呪術的)인 말이나 글들은 모두 "2인칭"으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천지신명께 아뢰옵니다"라고 빌 때나 또는 "이것 먹고 어서 물러나가거라"하고 무당이 귀신을 쫓을 때 쓰는 말은 모두 '2인칭'으로 구성된다. 그 주술적인 효과를 시에서 사용하게 되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신비한 시적 대상물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1인칭의 시'가 <서정과 고백의 시>이고, '3인칭의 시'가 <묘사의 시>라면, '2인칭의 시'는 <부름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의 원형(原形)을 주술(呪術)로 보면 시는 '1인칭'보다도 오히려 '2인칭'이 기본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히 시에서의 '인칭분석'은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를 읽는데 아주 유효하게 작용한다. 이 시가 워낙 동어반복(同語反復)이 많고 그 감정도 자유분방(自由奔放)하여 갈피를 잡기 힘들었던 탓도 있다. 그러나 그의 시를 통사(統辭)와 어형(語形)으로 텍스트를 분석해보면 산만해 보였던 구조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그 시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 "마돈나, 밤이 새기 전에 나의 침실로 오라"는 말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텍스트의 건축물은 "마돈나"라는 대상과 ""이라는 시간과 "침실"이라는 장소, 그리고 "오라"라고 부르는 행위의 네 가지 기둥으로 세워져 있는 언어의 건축물(建築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네 기둥(축)으로 세워진 집의 양식(樣式)은 앞서 말한 대로 '2인칭' 곧 <부름의 시>라고 보는 것이다.

 

우선 '2인칭적 대상'인 "마돈나"의 '인물'을 살펴보자. 이상화의 시 전체가 <부름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은 그 시를 구성하고 있는 12연 모두가 "마돈나"를 부르는 말로 시작되어 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의 첫 연에서 끝 연의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의 마지막 연까지 이상화는 '마돈나'라는 말을 열두 번이나 되풀이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연(聯: stanza)의 구분조차 느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홍수가 "마돈나''라는 그 호명작용(呼名作用)에 의해서 구심점(求心點)을 갖게 되고 지남철 같은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게 된다.

 

'마돈나'라는 한 대상(對象)을 때로는 '마리아'와 나의 '아씨'라고 바꿔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라는 인칭대명사(人稱代名詞)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한 호칭(呼稱)의 변화는 '산만성(散漫性)' 때문이 아니라 <부름의 시>의 특성을 나타내는 감정의 '다양성(多樣性)'의 표현인 것이다. 똑같은 하나의 대상을 이렇게 여러 개의 호칭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 대상이 다양한 "기호체계(記號體系)"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보통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이를 "철아!, 아가야! 내 새끼! 얘야! 잘난이! 귀여운 것!" 등등의 여러 가지 다른 애칭으로 부르는 것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마돈나'는 ''라고 부르는 가장 가까운 육신의 연인(戀人)에서부터 '성모마리아'나 '나의 아씨'와 같은 존경과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영적인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2인칭" 시에서는 '이름 만들기'와 '이름 부르기'가 시적(또는 주술적)효과를 창조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을 뜻하는 한자의 '이름 명자(名字)'는 '저녁 석(夕)자' 밑에 '입 구(口)'를 덧붙여 놓은 것이다[夕+口=名].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낮에는 손짓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땅거미가 지는 저녁에는 "입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입으로 부르는 것이 바로 이름[名]이다. 시인은 이름을 짓고 그것을 부르는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름으로서의 시>는 필연적으로 '밤의 심연' 속에서 이루어진다. 부른다는 것은 신처럼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찾는 행위이고, 그 행위를 끝없이 지속해 가는 과정이 바로 시(詩)이다.

 

첫 연부터 '마리아'와 ''은 동시적(同時的)인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먼동이 트기 전에 달려오라'고 밤이 지닌 시한성(時限性)이 강조된다. '날이 새기 전에 빨리 오라'는 마리아의 부름은 거의 매 연마다 강박관념(强迫觀念)처럼 등장한다.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어느 덧 첫닭이 울고…'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날이 새련다. 사원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등의 표현들이 모두 동일한 의미의 패러다임을 이룬다. 장소축도 마찬가지이다. 밤 자체가 모든 주위의 모든 사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는다. 이때의 침실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의 장소로서가 아니라 '낮'과 밤이라 할지라도 '목거지'(향연)처럼 사교(社交)의 장소와 반대되는 '나만의 밀실 공간'을 의미한다.

 

나를 비호하는 마지막 남은 존재의 극한… 이를테면 침실은 '몸만 오너라'의 그 '몸'(신체성)의 실존공간인 것이다. 이 시에는 인체의 모든 기관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진주와 이슬로 은유된 '눈물' '땀,' 그리고 '내 몸에 피란 피…'라고 말한 그 피에 이르기까지 인체의 3대 액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동원된다. 그리고 수밀도의 가슴에서 내 귀가 듣는 발자국, 그리고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의 구절처럼 손과 목, 그리고 그 전체의 신체기관을 나타내는 '몸만 오너라'의 그 '몸'을 뜻한다.

 

그리고 '부활의 동굴'이라고 한 '침실'은 그 '육체를 담는 관(棺)'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침실'은 '잠자는 곳'이며, '잠'이란 '작은 죽음'이다. 그리고 그 '작은 죽음 속'에는 '꿈'이 있고, 정지된 '오랜 시간'과 '영원'이 있다.

 

행위(行爲)와 관련하여, <돌아가려는 도다>로 시작하여 <오라>와 <가자>의 세 가지 행위소로 축약되어 있다. '돌아옴'은 낮에서 밤으로, 목거지에서 침실로 돌아오는 나의 행위이고, '오라'는 것은 마돈나를 부르는 행위이며, '가자'라는 것은 '나'와 '너' 즉 '우리'가 함께 하는 행위이다. <나> <너> <우리>의 세 행위소(行爲素)의 연결에 의해서 시의 '통사축(統辭軸)'이 결정된다.

 

그리고 나를 '주체'로 해서 볼 때 '오라'는 말은 '기다린다'는 뜻이고, '가자'라는 말은 '아름답고 오랜 것을 상징하는 꿈의 세계로 함께 가자'라는 것으로 함께 '자자'라는 이야기이다. 표면적인 행위축(行爲軸)으로 보면 누구나가 다 되풀이하는 '밤이 되면 나의 여인과 침실로 돌아가 잠을 잔다'라는 극히 일상적인 행동의 질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용운의 시가 눈에 보이지 않는 <님>을 창조한 것처럼 이상화는 <부름의 시>의 양식으로 <마돈나>라는 시적 대상을 만들어냈다. '님'이 무엇을 가리킨 것인지, '마돈나'가 누구인지 시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한마디 말로 풀이해 달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산문적 언어로 뚜렷하게 기술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그렇게 시인 자신이 애타게 불렀겠는가? 마돈나는 먼동이 트면 사라지는 별처럼 일상적인 논리나 관습으로 옮겨놓으면 금세 증발되고 마는 '유령 같은 존재'이다. 오직 이상화 시인처럼 네 기둥으로 세운 언어의 집을 지어놓고 우리가 애타게 부를 때만이 그 대상은 나의 침실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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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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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靑山임흥윤 | 작성시간 14.05.19 밤이 깊어가는시간 짬내여 잘읽 갑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천일국 경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5.21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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