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려면
아담 해와는 도대체 누구냐? 우리 인간의 종지조상입니다. 그 조상이 뿌리가 되어 줄기가 뻗고 가지가 뻗고 잎이 나와 오늘날 인류가 형성되었습니다. 한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인간이 기뻐서 “오,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천지 합덕이 이루어지는 기준이 벌어지면 거기에서부터 줄기가 뻗어나고 가지가 뻗어 잎이 무성해집니다. 인류는 그런 하나의 나무와 같은 사랑이상을 중심으로 연관성을 가진 공동생명체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랑과 화합합니다. 그의 행동도 사랑을 추구한 행동이고, 그가 하는 말도 사랑을 추구한 말입니다. 웃고 즐기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일체가 사랑을 승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통일교회에서 이상하는 유토피아의 지상천국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세계에서 종교를 세워 찾아나온 것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과 연결될 수 있을 때 권력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기준이 서지 않을 때는 그런 것들은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그런 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을 통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시 같은 문학작품이 필요한 것은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이상적인 자극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자극을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강한 사랑이어야 하겠느냐? 오늘날 인간세계의 그릇된 사랑은 천사장급 이하의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사랑은 사탄이 침입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권에서 태어나 살면서 사랑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면서 야단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질서도 없고 방향도 없이 돌고 도는 소용돌이입니다. 소용돌이에는 더러운 것만 전부 모입니다. 소용돌이가 치면 강물에 뜬 더러운 것들이 전부 모입니다.
오늘날 사된 사랑을 가지고도 그렇게 죽느냐 사느냐 야단인데,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느냐? 지남철의 플러스(N극)와 마이너스(S극)가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이너스가 아이구! 난 플러스 싫어. 떨어질래 하더라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플러스도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코도 달라붙고, 눈도 달라붙고, 귀도 달라붙고, 마음도 달라붙고, 전부 달라붙습니다. 발을 움직이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그리로 갑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과 관계맺으면 그 사랑의 방향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갑니다. 까마귀 새끼도 자기 어미를 따라다닙니다. 자기 어미보다 예쁜 꾀꼬리가 와서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습니다. 또 참새와 멧새를 한 새장에 집어넣으면 참새는 참새끼리 좋아하고 멧새는 멧새끼리 좋아하지, 멧새하고 참새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끼리끼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