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해야 할 인간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그는 후아담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후해와가 있어야 할 텐데 후해와는 누구냐? 기독교에선 성신을 상징적으로 말해 왔는데, 성신은 바로 어머니신입니다. 즉 후해와입니다. 인류의 어머니인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후해와로 어머니신인 성신을 보낸 것입니다. 구멍이 뚫렸으면 뚫린 그 구멍을 때워야 하고, 잃어버린 것이 있으면 잃어버린 곳에 가서 찾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해와로 인해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전부 다 사망세계에 있으니, 성신이 와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됩니다.
성경에 여인이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딤전 2:15). 이것은 오늘날 땅에 사는 부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해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인류의 참조상이 되었다면 이 땅 위에 선한 아들딸을 낳았을 텐데 타락하여 사탄의 자식을 낳았으니, 해와가 다시 해산하지 않으면 인간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신은 이 사명을 짊어지고 오늘날 만인류를 붙들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해산이 다 끝나야만 해와가 구원되고, 성신의 사명이 끝납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이 무엇이냐? 다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중생은 무엇이냐?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아버지요 신랑이며, 성신은 인류의 어머니요 신부입니다. 인류가 신부의 인연을 받아 신랑 되는 예수님을 사모하여 예수님 없이는 못 살고 성신 없이는 못 산다고 하게 될 때, 예수님과 성신이 영적으로 상봉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씨가 인간에게 주입되면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 아들딸을 낳는 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구멍이 생겼으면 땜질을 해야 합니다. 갖다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아담이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그 사명을 수행키 위해 실체를 쓰고 아버지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구주인 동시에 인간으로 아버지입니다. 실체의 참아버지입니다. 인류가 잃어버린 그 참아버지를 다시 세워놓아야만 천지이치의 원칙적인 궤도를 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원리원칙을 중심으로 법도를 세우고, 인간은 그 법도를 통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야만 모든 일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땅 위에서 살고 있지만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참부모가 없습니다. 성경에도 고아와 과부 같은 너희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가 없습니까? 부모가 없습니까? 신랑이 없습니까? 다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볼 때 참부모와 인연을 못 맺었으니 고아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렸으니 고아입니다. 왜 과부냐? 참된 신랑 되는 예수님과 인연을 맺지 못했으니 과부입니다.
문제를 수습하려면 그 원인에서부터 수습해야 합니다. 세상 일도 그렇습니다. 끄트머리에서 아무리 해봐야 수습되지 않습니다. 모든 근원을 밝히려면 맨 꼭대기, 아담 해와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아담 해와의 곡절부터 풀어야 합니다. 타락 전 아담 해와를 대하던 하나님의 심정과 타락하는 아담 해와를 대하던 하나님의 심정, 타락 후의 아담 해와를 대하던 하나님의 애달펐던 심정의 관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병이 났으면 그 병의 근원을 찾아서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 근원만 바로잡아 놓으면 모든 것은 자연히 수습됩니다. 한 나라도 그렇습니다. 근원 되는 중심존재가 잘못하면 다 망합니다. 아무리 백성이 훌륭하더라도 그가 잘못하면 다 망합니다.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은 다 망합니다. 그러니 중심이 문제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원래 예수님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 조상이 타락한 이후의 기록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이 된 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타락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중심이 아니라 아담이 중심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구주니 기도니 종교니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을 아느니 모르느니, 무신론이니 유신론이니 하는 논란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못나고 미흡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피조물을 대해 ‘야!’ 하면 그 피조물이 ‘예!’ 할 수 있게끔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무슨 하나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