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에 취해서 살아 가야 하느냐
우리는 자극적인 영화를 좋아합니다. 더 재미있고 더 자극적인 것에는 가지 말라고 해도 자꾸 마음이 끌립니다.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에는 모든 것이 모입니다. 그러니 우주의 중심적인 변화무쌍한 자극적인 모체가 있다면 그 모체 앞에는 모든 만물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소들도 전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작용을 하면서 높은 것과 합하려고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우주 창조가 가능했습니다. 그 높은 데에서의 자극적인 길이 뭐냐? 그것은 주고받음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길입니다. 거기에서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소면 원소 자체들로서 운동하고 있다는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래서 더 차원 높은 데로 가려고 합니다. 그 자극은 모든 것을 완전 동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개구리에 전기를 통하게 하면 네 발을 떡 벌리고 눈은 반쯤 감고 쭉 늘어져 죽듯이 하나님도 그런 모양으로 취해서 아뜩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힘입니다. 하나님도 아뜩하길 바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으니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취해서 멍하고, 동서남북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취합니다. 술에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취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술이라는 말이 나와서 안됐지만, 그 취한 맛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에 취해서 살아 가야 하느냐? 술에 취하면 자꾸 보급해야 됩니다. 자연적이 아닙니다. 춘하추동은 자연적이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자연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보급로를 통해서 공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급될 수 있는 길만 끊어지면 그만입니다. 슬프게 됩니다. 슬프게 되었다가는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히 보급되는 이 춘하추동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봄이 갔더라도 또 찾아옵니다.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히 사랑의 길은 찾아옵니다. 누가 오지 말라고 해도 옵니다. 그리고 빨리 오라고 해도 빨리 오지 않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의 길이여, 빨리 와라고 아무리 큰소리로 외친다 해도 완전한 사랑의 길은 자기 때가 되어야 옵니다. 오기는 오는데 자기 때에 맞춰서 옵니다. 막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때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때를 맞출 줄 모르고 제멋대로 사랑하는 마구잡이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게 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때를 맞춘 사람이 되면 그때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중앙에 와서 사랑의 주체가 됩니다. (14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