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會者의 길
第5章 牧會者와 食口指導
第2節 主體 對象과 가인 아벨
1. 주체와 대상
1) 통일교회의 주체사상이란
오늘날 통일교회 주체사상이 뭐라구요? 사랑을 중심 삼은 주체사상인데, 사랑의 내용이 무엇이라구요? 하나님. 그다음엔? 「참부모」 참부모입니다.
이 세계가 한 나라가 되면 참부모 사상을 전부 다 부모를 대신해서 세우는 거예요. 참부모는 영계에 가는 거예요. 그 대신 인간들은 참부모 대신 지상에서 부모와 하나되고 처자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 이걸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금이 가서는 큰일이 벌어집니다. 여기에 금이 가게 되면 전부 다 어떻게 되느냐? 우주의 힘의 세계에서 추방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포괄적인 힘의 권내에서 이탈되게 될 때는 옥살박살이 벌어집니다. 어디 가서 존속할 수 있는, 환영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사회에서도 그렇잖아요? 불효한 자식이 됩니다. 이런 걸 보게 되면, 서구사회는 전부 다 반대입니다. 동양에 예속시키려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기독교문화권을 중심 삼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인데, 끝날에 가서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오늘날 동양을 중심 삼고 예속시키려니, 동양이 주체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내용인지?
우리 주체사상이 뭐라구요? 「사랑」 사랑이 무엇이냐? 그 가운데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에 참부모가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에 자기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 이상적 부부가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에 이상적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이상적 가정이 여기에서 벌어집니다.
이 가정을 중심 삼고 그 가정이 핵이 되어 가지고 무한히 발전시켜 세계까지 확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그냥 그대로 축입니다.
그 가정은 어디 가든지 하나님의 참사랑에 포괄된 환경의 세계에서는 전부 다 배척을 받지 않습니다. 보호하게 됩니다. 거기에 불합격이 되면 몰아내는 것입니다. 우주력이 반발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없게 되면 슬픈 것입니다.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슬퍼하는 거예요. 우주력이 보호 하지를 않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왜 슬픔을 느끼느냐? 결여됐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길에 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 사랑이상완성권에 부합될 수 있는 요소가 결핍되니, 결핍된 비례에 해당해서 이 자체에 우주운세가 몰아내는 거라구요. 그런 사람들은 겉으로 간다구요.
인과법칙에 있어서 자기 부모로부터, 자기 선조로부터 잘못된 모든 것이 있으면 그건 반드시 외부로 갖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용은 폐가 작용하는 것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자연히 외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주체사상이 뭐라구요? 「사랑」 사랑. 여러분 그 내용을 알죠? 「예.」 여러분들이 어디를 가든지 딱 서 있으면 거기서부터 세계적으로 확대돼요.
이런 주체사상 밑에서 사랑을 중심 삼고 가정적 하나의 확정내용을 전체에 적응하는 입장에서 생애를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생활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오늘날까지 살아온 생애 자체가 무엇 때문에? 돈 때문에 싸우지요? 경제문제 때문에 싸우고, 그다음에 지식 때문에 싸워요.
'아이구, 우리 여편네는 학교도 못 나왔으니 이혼해야 되겠다.' 하는 그놈의 자식들은 앞으로 전부 다 오체를 찢어 죽여야 돼요. 하늘의 사랑법에는 용서가 없어요.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사랑은 이상적 내용을 갖춘 가정과 사회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이상적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이 출발과 동시에 끝까지 가게 되면, 확장되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집약되어 있다구요. 집약 됐다가 또 확산되고 이러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에 이런 개념을 심고 그런 생활적인 환경에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게 될 때는,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 자신의 생활 배경에 이뤄져 발전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 살아 볼 거예요? 「예」(164-95)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지요? 주체사상이 도대체 뭐냐 이거예요? 전체를 책임지고, 전체 앞에 주고, 전체의 갈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 주체사상입니다. 이게 원리관이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은 주체자가 되고 싶은가요, 대상이 되고 싶은가요? 어떤 거 되고 싶어요? 군에 있으면 군 책임자는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책임자들이잖아요?
그러면 이 동서남북 구역을 중심 삼아 가지고 새벽길을 눈물과 더불어 몇 번 걸어 봤으며, 그 동네, 그 마을 산에 올라가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누가 이 사람들을 지켜 주겠느냐고 얼마나 기도해 봤느냐? 문제는 거기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눈물을 흘릴 때, 영계 조상들이 눈물을 흘려 주고, 성현 현철들이 눈물을 흘려 주고, 그러면 하나님도 눈물을 흘려 주시는 거라구요.
그렇게만 되는 날에 여러분들이 가는 길에는 산 역사, 증거적인 역사가 얼마든지 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불철주야 3년을 계속해서 한 마을이든가 한 군, 한 도시에 영향을 못 미치면, 그 사람은 가짜라고 보고 있어요. (81-315)
2) 종적 주체란
종적 주체가 누구냐? 하나님을 빼놓고는 종적 주체가 안 나와요. 양심의 본향의 터가 하나님이예요.
양심을 근거로 한, 개인의 양심을 중심 삼고 하나님을 근거로 한 가정, 하나님을 중심 삼은 종족, 하나님을 중심 삼은 민족, 하나님을 중심 삼은 국가·세계 ·천주, 이렇게 돼야 종적 기준에 일치가 될 수 있어 가지고 하나님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종적 기준도 주고받는 운동을 해야지요? 상하로 돌아야 된다구요. 이것이 돌아야 구형이 이루어집니다.
학교에 가게 되면 학교의 종적 대표자가 누구예요? 종적 대표는 자기 교실에 나타난 선생이예요. 그 시간에 있어서는 학생들은 그 선생님의 말을 절대 들어야 됩니다.
옆에서 속닥속닥하는 놈들은 전부 다 파탄분자예요. 그런 사람은 낙제감이예요, 낙제감.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이 간판을 한번 알았으니 분석을 해봐요. 내가 어떤 기준에 패스할 수 있는 자격자냐?
종횡의 원칙을 일치화시킨 자리의 가주(家主)로서, 혹은 종장으로서, 민족의 대표로서, 세계의 대표로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은 우주의 대표로서 왔다갔다하지 않는다구요.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왔다갔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변하는 게 없는 거예요. (148-25)
나 개인이 양심을 중심 삼고 양심을 거느려야 됩니다. 통일이라는 이 통(統) 자가 무슨 통 자예요? 「거느릴 통」 통일할 통 자지요, 간단하게. 어떻게 통하는 거예요? 「거느려 가지고」 거느려 가지고…. 거느린다는 것은 자기가 절대적인 종(縱)의 자리에서 거느리는 거라구요. 종의 기준이 없어 가지고, 종적 기준이 없어 가지고 어떻게 통일을 해요?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교인이지요? 통일교회 교인 손들어 봐요. 여기에 통일교회 교인이 아닌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구요, 내 눈에는. 이거 철딱서니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이들이나 그저 막 들지, 왼손인지 바른 손인지도 모르고.
거느려야 됩니다. 거느린다는 것은 뭐냐? 절대적으로 변치 않는 종적 기준에 서 가지고 봄에 거느린 것이나, 여름에 거느린 것이나, 가을에 거느린 것이나, 겨울에 거느린 것이나, 춘하추동은 변하지만 거느리는 건 변하면 안 됩니다.
'아이고, 봄이 돼서 종적 자리가 지루해. 아이고, 횡의 자리가 얼마나 좋겠나. 종적 자리는 싫어. 횡적 자리에 가겠다.' 한다면 안 되는 거예요. 책임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148-22)
3) 주체자의 책임
주체라는 것은 생명의 힘이 강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체가 못 되는 것입니다. 또, 주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랑을 내포해야 합니다. 사랑을 내포하지 않으면 주체가 못 됩니다. 상대를 못 거느린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센터가 되기 위해서도 진리와 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센터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또, 그다음에 책임자라는 것은 발전시키고 영원을 끌고 갈 수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참된 생명과 참된 사랑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책임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거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모든 전부를 한꺼번에 선별할 줄 모르지만, 이 길을 무난히 직행할 수 있는 길을 가려니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위해 살게 될 때에는, 내가 플러스를 위해 살겠다면 말이예요, 마이너스 자리에 따라갈 수도 있고, 또, 플러스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까지. 얼마든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133-31)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사랑하기에 미치자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보장을 받은 자리에서 여자를 사랑하라, 세계의 보장을 받은 자리에서 여자를 사랑하라 이겁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의 처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반성해 보라구요. 나는 사랑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교인도 사랑받기 위한 패가 아니라구요. 사랑하기 위한 패입니다. 알겠어요?
사랑하기 위한 패이니까. 세상 사람들은 사랑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환영한다, 안 한다? 어느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사랑받겠다는 패이고 우리는 사랑하려는 패이니 세상 사람들이 환영하기 마련입니다. 거기에서 우수한 사람은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가는 대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59-58)
오늘날 여러분들을 두고 볼 때 뜻을 대신하여 그럴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지고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한 인격을 갖기 위해서 여러분은 다시 한 번 희생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이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전부가 걸리게 됩니다. (17-51)
여러분들은 책임자로서 자주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목자로서 심정적인 주체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동원하면서 활동하는 거기에 발전이 없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한국을 도와줬지만, 미국에 가서도 한국을 도와줬지만…. 이런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68-112)
내가 어디에 가더라도, 공장에 가더라도 나는 공장장이 되어 일한다구요. 이런 신념이 얼마나 위대하냐 이거예요. 모든 것을 내가 대할 수 있다 하는 신념은 위대한 사상이예요. 위대한 사상이다 이거예요.
'이것 틀렸고 저것 틀렸다.'는 걸 알고, 대번에 사장 만나 가지고 '당신의 회사는 이렇소!' 하게 되면 '어, 그거 어떻게 알아.' 한다구요. '어떻게 알기는? 해봤으니까 알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우리 워싱턴 타임즈가 신문 올림픽 대회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그때에 내가 책임자 입장에서 전부 다 '이것 고쳐라. 저것 고쳐라.' 하면서 코치했습니다. 요런 원칙을 알고 여러분들이 생활에 적용하게 될 때에 얼마만큼 방대한 힘의 세계를 자유환경에서 가질 수 있느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약자가 될 수 없다 이거예요.
이걸 생각할 때, 선생님이 여러분들한테 '야야, 교회 앉아 있지 말고 그 지방 책임자를 만나고, 기성 교회 책임자를 만나라.' 하는 것은 제2인자가 되라는 거예요, 제2인자. 그것도 안 하고 떡 앉아 가지고, 무니라고 하면서 일도 안 하고 책임자라고 하는데 상대 앞에 주체격도 못 되어 가지고 주체라고 하니 망하는 거라구요. 망하는 거예요.
주체 자리에 있어 가지고 대상 앞에 주체의 책임도 못 하는 입장에서 주체라고 했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플러스가 없어서 발전 못 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들은 식구들보다 더 노력하고 더 활동해야 되는 것이 원리예요. 알겠어요? 그렇지 않고는 사기예요. 도둑놈 된다 이거예요. 사기꾼이예요. 사기꾼. (131-223)
선생님은 팔도강산을 많이 돌아다녔지요. 미국에도 가자마자, 앞으로 내가 10년 후에는 반드시 이 땅을 밟고…. 국경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저 40일을 중심 삼아 가지고 48개 주를 '달려라. 달려라. 내 발길이 가야 되겠다.
산천초목아, 그리웠지? 나 여기 왔다.' 하고 전부 골짝골짝에 가서, 될 수 있으면 높은 데 가서 기도를 하고….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어디 척 문을 열고 나가게 되면, 뜰이 나를 반겨 주는 것을 느끼면서 '오냐! 내 한번 나가 보자. 나 갈께. 산에도 갈께' 그런 마음이 쑥 듭니다.
만물도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렇잖아요? 개가 있다면 그 개가 추운 겨울, 혹은 더운 여름에 지루한 밤을 지내면서 주인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겠느냐?
그렇게 자던 개도 주인이 쓱 문을 열고 나오면 어느새 와서 꼬리를 젓고 막 달려드는 것입니다. 아침에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얼마나 반가운 표정을 하는지…. 그런거 알지요?
마찬가지라구요. 모든 산야를 거닐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저 골짜기를 내가 한번 가 봐야 할 텐데. 연기 나는 저 골짜기에 동네가 있다면 저 동네에 한번 가 봐야 될 텐데. 언제 한번 가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가게 되면, 벌써 영계의 선조들이 하늘의 귀빈이 온다고 그 집 청소를 시킵니다.
그런다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꿈 가운데 다 보고, 뭣인지 모르게 '아! 사람이 없나? 누가 오는 것 같다' 하는 거예요.
인심이라는 것은 천심과 통하는 거예요. 본연의 심정세계에는 교량이 필요 없는 거라구요. 전령자가 필요 없는 거라구요. 그 무엇인지 모르게 '야 ! 사람이 오는 것 같다.' 하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러는 거예요.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 찾아올 사람이 있다.' 이런걸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마음 먹고 있으면 말입니다. 매일같이 자기도 모르게 먼산을 바라보고, 저 아득한 오솔길, 골짜기 돌아 나오는 길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기다리게 그거 그럴 것 같아, 안 그럴 것 같아?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는 자식이 있는 곳의 땅도 사랑합니다. 마찬가지라구요.
자, 주인의 책임은? 주체자의 책임은? '아이고 나 배고파. 밥 밥…' 이런 생각이 들 때, 반드시 그 동네에 밥 굶는 사람이 없느냐? 밥 굶는 사람이 있거들랑 내가 점심 한 끼라도 안 먹고 몰래 그 집에 가서 그 집 애들에게라도 보태 줘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라구요. 그런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은 밥 굶겠다고 해도 안 굶는다는 거예요. 밥 굶으려고 해도 자꾸 누가 먹여 준다는 거예요. 천지 이치가 그렇다는 거예요. 이 우주는 하나의 중심을 찾아 헤매는 거예요. (81-297)
4) 원리적 생활관에 있어서의 책임자의 입장
책임자라는 사람은, 주체자라는 것은 전체를 책임져야 됩니다. 전체를 책임져 가지고, 그 상대물들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야 됩니다.
길을 닦아 줘 가지고, 탄탄대로를 닦아 줘 가지고 상대가 그저 하이웨이를 달릴 수 있도록 해주면 해줄수록 그는 위대한 주체자입니다. 간단합니다. 이치는 간단한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집에 돌아갔을 때 여편네가 암만 누워서 잠을 쿨쿨 자더라도 '내가 오늘 책임 못 했기 때문에 여편네가 이렇구나!' 이래야 되는 거라구요.
'내가 책임 못 했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밥도 안 하고 낮잠만 자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대인관계도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처음 대하는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고, 무엇을 투입했나 생각해야 돼요. 그래야 실수해도 용서해 주는 천리를 거기서 발견할 수가 있다구요.
내가 주체자로서 반갑게 대해 주고 반색 하기를 바라야지 그렇지도 않고 반색하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이예요. 도둑놈이 별거예요? 남이 공들인 밭에 가서 공 안 들이고 갖다 먹는 게 도둑놈이지. 악이 거기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생활관에 있어서 여러분 책임자의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았어요?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알았다는 사람, 손들어 보자. 내리라구. (81-305)
책임자, 주체자는 어떤 사람이냐?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그 동네에 가서 '내가 이 동네, 이 읍의 책임자로 왔다. 하늘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천국실현을 위한 하나님이 보내 준 특공대로 왔다.
특공대로 와서 나는 뭘했느냐? 이 동네에 와서 무엇을 주었느냐? 주체자가 됐느냐? 대상자가 됐느냐?' 주체자가 못 되고 대상자가 못 됐으면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벼락에 맞아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이 마을이 내 마을 이상의 마을이요, 내가 바라던 소망의 고향 같아서 나가 보고 싶고, 동네 사람을 만나고 싶고, 아침에 만나면 헤어지고 싶지 않고, 저녁에 집에 찾아오면 그저 무엇을 더 주고 싶고, 밤을 새워서라도 같이 얘기하고 싶고, 안 갔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마음이 그래야 된다구요.
왜 그래야 되느냐? 몇천 년 전에 갈라졌던 형제들이기 때문에. 부모는 죽었지만 몇천 년 만에, 몇십 년, 몇백 년 만에 만난 형제이기에 그 정이 심성을 통하여 직선으로 통할 수 있게 될 때는 그 외 모든 것이 다 통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책임자로서 사람이 오는 것을 오지 말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며칠 안 있다 가지만, 본부에 사람이 와서 기다리는 것 사실 귀찮다구요.
이번에도 일본에서부터 잠을 못 자고, 어제 저녁에는 일어서서 다니는지 앉아 있는지 모르게 다 지나왔다구요. 시간이 딱 반대 아니예요? 여기 잘 때는 거기가 깰 때이고, 여기 깰 때는 거기가 잘 때거든요.
내가 눈을 뜨고 있는데, 자꾸 눈이 감기는 거예요. 한 눈을 떠 놓으면 한 눈이 감기고 자꾸 감긴다구요. 며칠 동안 안 잤으니까 그래요. 그렇다고 자야 되겠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거예요.
밤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한 시간에 어떻게 하나님과 심정적 유대를 맺게 해주느냐!'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게 필요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세상에 그 이상 무서운 벌이 없는 거예요. 형무소에 들어가서 쇠고랑을 차고 앉아 있는 것보다도 무서운 걸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책임 못 하고 어떻게 단에 서고, 책임 못 하고 어떻게 그 동네 사람에게 가서 뻔뻔스럽게 얘기하겠어요?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심정에 동(動)해 보라구요. 거기서부터 본성적 인연이 출발할 것입니다. (81-312)
5) 중심존재로서의 주체의 사명
주체는 뭘해야 되느냐? 주체는 보호의 책임이 있습니다. 또, 그 환경에서 위치와 방향을 설정해 줍니다. 그리고 결정하고 방어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1978. 3. 19)
중심존재는 어떠한 자냐? ①보호의 책임과, ②보호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못생긴 남자가 잘생긴 여자 앞에 섰을 때, 위험한 일이 닥치면 그 잘생긴 여자 겨드랑이에 싹 숨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아, 잘생기고 키도 큰 여자가 위험한 일이 닥치면 못생긴 남자 겨드랑이에 숨어요? 어떤 거예요, 여자들? 여자가 암만 크고 미인이라 해도 남자 뒤에 숨습니다. 그건 보호받겠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자연적 표현이요, 순리적 표현입니다. 중심존재는 책임을 져야 되고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중심존재는 ③ 움직이는 데 있어서 리드하게 되어 있습니다. 길을 가려 주게 되어 있어요. 그렇지요? 아는 사람이 길잡이를 하지 모르는 사람이 길잡이를 하나요? 안 그래요?
자, 여자는 박사이고 남자는 국민학교 밖에 안 나왔어요. 그런데 산을 올라갈 때 박사인 여자가 앞장서겠다고 해요, 국민학교밖에 안 나온 남자가 앞장서겠다고 해요? 보편적으로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박사인 여자를 무시하고 남자가 앞장 서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되잖아요? 중심존재는 리드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어디를 향하여? 올바른 곳을 향하여.
통일교회의 중심존재는 누구예요? 「참부모님」 참부모일 게 뭐야, 선생님이지.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통일교회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집니다. 좋든 나쁘든 말이예요.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나보다 나이 많고 잘난 사람이 많습니다.
나도 못나진 않았지만 말이지. 아, 그래야 졸지 않는다구요. 사람이 많으니까 졸음이 오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당장 누구한테나 이야기를 해야 돼요? 어떤 사람이 책임자라고 해서 혼자 낑낑하면 그거 가짜입니다.
사지백체의 중심은 머리이기 때문에 머리를 전부 통과해야 돼요. 통과 안 하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존재 가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심존재는 ① 책임을 져야 되고, ② 보호할 줄 알아야 되고, 그다음에 ③ 지도할 줄 알아야 됩니다. (173-246)
중심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중심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줄 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중심은 책임을 져야 되고, 보호해줄 줄을 알아야 됩니다. (134-317)
여자와 남자를 중심 삼고 볼 때도 남편과 아내는 마찬가지예요. 둘이 좋다 할 때는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나 횡적 기준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의 선에 서지만 종적 기준에 있어서는 누가 평행기준을 맞춰야 되느냐? 여자가 아닙니다. 남자예요, 남자.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바른쪽에 서는 것이고 여자는 왼쪽에 서는 것입니다.
주체는 부체(副體 ; 대상)를 보호해야 됩니다.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도해야 됩니다. 바로갈 수 있게 방향성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래 아내는 남편의 말을 안 들어야 되겠어요, 들어야 되겠어요? 「들어야 됩니다」 남편이 똥개같이 되어 가지고 도대체 횡적 기준밖에 모르고, 자기의 배통만 하나님 이상으로 믿고 절대시한다면 그따위 남편은 믿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양심을 운운하고, 가정을 염려하고, 사회를 염려하고,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 남편이라면 그의 아내는 그 남편과 보조를 맞춰 줘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따라가야 됩니다. (148-17)
6) 주체를 중심한 대상권의 창조
보라구요. 통일교회 들어왔던 어떤 사람이 '나는 무슨 대학을 나오고 지식 계급이고 영리하고 현명하기 때문에 통일교회 레버런 문처럼 우직스럽게 고생 절대 안 해, 요렇게 살살살 가지. 레버런 문은 우직한 사람이야!'라고 했지만 누가 영리하고 누가 지식이 있고 누가 현명한 사람이냐 말이예요.
지금 와 보니 그들은 다 굴러서 떨어져 가지고 저 낙엽이 되었지만, 굴러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레버런 문은 저 꼭대기에 열매를 맺힌 가지가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들은 굴러 떨어졌지만 레버런 문은 세계가 흠모할 수 있는 레버런 문이 돼 있다구요.
어떻게 그렇게 됐느냐? 환경에는 주체 대상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주체 대상에게 플러스할 수 있는 발전적인 변화과정을 거쳐 나가기 때문이예요.
이런 철학적인 생활관, 우주 작용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망하는 거 같지만 발전한다 이거예요. 발전 안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내 이론이 틀리지 않는 한 발전한다 이거예요.
자, 그래서 본심은 안다는 거예요. 강력한 플러스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중간 매개체로 레버런 문을 세웠으면, 그 양심은 자연히 레버런 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자꾸 간다구요, 자꾸. 몸뚱이는 이렇게 자꾸 간다는 거예요. 그런 작용 한다 이거예요. (131-222)
선생님 같은 종교 지도자가 술집에 가더라도 반대 안 하는 거예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요리하려면 거기의 주체를 요리해야 합니다. 또는 주체가 필요한 것은 대상이니까 그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그 가운데서 제일가는 사람 이상의 놀음을 하게 되면 자연히 끌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적 철학관이라고 할까,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서 발전하느냐? 이러한 원리의 적용을 통해서 발전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다구요.
하나님이 재창조역사를 통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연결시켜 나가기 때문에, 내가 주체적인 한 남성으로서 하나님을 대표한 자리에 섰다할 때는 재창조해야 됩니다. 이와 같은 원칙을 통해서 재창조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의 상대권을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 가지고 있는 정성을 다 퍼부어서 자기 분야에 해당하는 환경의 대상권을 만들면, 그것은 영존할 수 있는 이론적 터전상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 과정에 있어서 무엇을 중심하느냐? 레버런 문을 중심하는 것이 아니예요. 창조하던 하나님의 심정, 사랑의 이상을 완성시키고 사랑의 목적을 완성시키는 심정적 기준을 중심 삼고 주체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타락했을망정 본성의 존재들은 그 마음이 주체의 심정권에 흡수될 수 있는 자연적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결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환경에서 그런 대상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24시간 모든 주력 (主力)을 퍼붓는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개인 상대권을 만들고, 그다음에 가정 상대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가정이라는 환경 하게 되면 세계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타락권의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 삼고 창조하려던 가정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 삼은 기준의 자리에 주체로 서면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 삼은 가정기반 위에 대상권, 환경권이 조성되어 종족권을 편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135-177)
통일전선 수호의 방법은 나를 넘어서 하늘이 협조할 수 있는, 즉 나에게 하늘이 힘을 가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상대에게 힘을 투입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내가 처해 있는 그 환경은 수호권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하고 하나돼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러 가도 하나님하고 같이 가고, 말을 해도 하나님과 같이 한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밥을 먹으나 자나 전부 다 하나님하고 같이 사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하라는 거라구요.
그런 사람은 그런 생활을 해보게 되면, 벌써 슬픈 사람을 만나면 슬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체휼입니다. 그 체휼권에 들어가야 돼요. 체휼권에 들어가야 된다구요.
그래, 어떤 도시를 가든가 부락을 가게 되면 그 부락이 어떻다는 것을 대번에 안다구요. 그런 부락에 가 가지고 어떤 높은 데 올라가서 정성 들여 기도하면서 노래 부르면 그 부락 사람이 찾아 올라온다구요, 뜻 있는 사람들은.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야 된다. 그게 원칙이라구요.
여러분이 여기서 장사를 하든가 꽃팔이를 하든가 뭘하든가 전도를 하든가간에 기도하고 정성들이고 가게 되면 벌써 보여 준다구요.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다 보여 주는 겁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척 나서게 되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 자꾸 가고 싶다구요. 그곳에 가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구요. 그런 체험을 하는데 '하나님이 없다? 있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9-288)
2. 가인과 아벨
1) 섭리사에 나타난 가인 아벨
여러분은 가인과 아벨이 다같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을 때,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의 입장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하나님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가인에게 하늘의 입장을 대신했던 아벨을 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인의 제물을 취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적인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공평한 입장에서 그들을 대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3-205)
가인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든 말든 관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분하고 원통했던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정성에 아벨의 정성이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기 위해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아벨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대등한 자리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겠어요? 같은 입장에서 같은 내용을 가지고 제물을 드렸더라도 자기 것을 먼저 받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응당히 받아 줄 만한 입장에서 아벨 것을 받았다면 그것은 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교가 되는데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대등한 자리에서 정성을 들였는데 받아 주지 않는다면 불평하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도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보다 나아야 됩니다. 제물은 보다 나은 정성의 인연을 갖추어서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을 중심 삼고 볼 때 아벨도 가인과 같은 정성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하나님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으셨다 하더라도 그저 '고맙습니다.' 하면서 온유겸손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가인이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만을 받으시니 가인이 배알이 뒤틀리도록 지나치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쁘더라도 혼자만 좋아하고 가만히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형님에게 자랑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쁜 일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자랑하고 싶지요? 마찬가지로 아벨도 형님에게 그것을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랑이 지나쳐서 '형님의 제물은 안 받고 내 제물은 받았어. 그러니 형님보다 내가 더 낫지!' 이렇게까지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인의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고, 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기쁘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은사를 받았으면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형님, 미안 합니다.' 했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가인이 때려죽였겠어요? 안 죽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의 실수입니다. (34-51)
여러분은 아벨을 좋아해요, 가인을 좋아해요? 「아벨입니다.」 나는 가인도 좋아하지 않고 아벨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아벨이 가인, 즉 형님과 함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제물만 받고 형님의 제물을 안 받으셨더라도 형님을 순하게 대해야 했습니다. 형님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아버지, 왜 내 제물만 받았습니까? 하면서 울고 불고, 형님에게 가서 '나의 제물만 받은 하나님은 싫습니다.'라고 했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틀림없이 가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제물을 똑같이 준비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쳤을 것입니다. 가인은 곡식을, 아벨은 양을 1년 동안 정성들여 가지고 바쳤을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것은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누가 정성을 더 들였나 하는 문제를 떠나서 제물을 받고 안 받고 하는 문제를 놓고 볼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에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물만을 받으시니 자기가 잘나고 하나님이 자기만을 좋아하셔서 받은 줄 알고 '형님, 보소. 내 제물은 받으셨어!' 그렇게 자랑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랬을 겁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가만히 있는 가인의 얼굴이 왜 홍당무처럼 시뻘개졌겠어요? 아벨이 가만히 있었는데도 그랬겠습니까? 틀림없이 아벨은 가인 앞에 가서 '형님이 뭐야. 내 제물을 받았지!' 하며 쌀랑거리고 깐족거렸을 것입니다.
아벨은 교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아 죽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맞아 죽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인은 아벨이 되어야 하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아벨이 됐어요, 안 됐어요? 돼 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쳐들고 '기성교회 목사가 뭐야? 타락이 어떻게 됐다고? 뭐 선악과 따먹고 됐다고? 목사인 당신들도 우리 아니면 이런 문제는 모르지 않느냐?' 하면서 교만하게 구는 것은 맞아 죽은 아벨의 행동과 꼭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통일교회는 어려워집니다. 여러분이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선생님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여러분은 밖에 나가서 그렇게 하고 다녔다는 겁니다. (34-272)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린 후 아벨의 제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을 안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여 때려죽였지만 여기에는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리기 위해 준비할 때부터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가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니까 순간적으로 아벨에 대한 미움이 생겨 그를 때린 것이 아니고, 그 일에 부딪치기 전부터 아벨이 미워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인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타락성의 혈통을 이어받은 오늘날 여러분들이 우주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 불신과 싸움의 조건을 성립시키는 제단을 쌓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을 소개하고 아버지께 기쁨과 영광을 안겨 드릴 수 있는 승리적인 아벨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은 그저 여러분 개인에 국한되는 생활이 아닙니다. 전체를 대신한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아버지 앞에 엎드린 그 시간이면 그 시간, 뜻을 중심 삼고 사는 생활이면 그 생활이 바로 그 시간과 생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가인의 입장이냐 아니면 아벨의 입장이냐 하는 두 갈래 길이 결정 되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여러분은 자칫하면 아벨이 되고, 자칫하면 가인이 될 수 있는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의 고빗길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 이제 여러분은 교회를 중심 삼아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한 사람은 아벨이요 한 사람은 가인이라는 것, 세 사람이 있으면 두 사람은 아벨도 될 수 있고 가인도 될 수 있는데, 가장 중심적인 아벨과 가인이 있다는 것,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분별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한편은 바른손이고 한편은 왼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 하나님인 동시에 네 하나님이시요, 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아벨적인 존재를 찾아모시며 가인적인 입장을 피하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여러분은 어느 때든지 한 번은 하늘의 심판에 걸리고 만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중심 삼고 보게 될 때에도 여기에는 반드시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통하여 말씀을 나타내며, 모든 사람이 아벨과 하나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벨과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자가 있으니 그가 누구냐 하면 바로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바른 신앙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보다 아벨적인 존재와 하나되기 위해 그분과 자신의 모든 것을 의논할 줄 알아야 합니다. (3-206)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인 아벨의 문제를 제시한다는 것은 예수님 시대가 지나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부모 앞에 설 수 있는 가인 아벨이란 복귀된 아담가정, 즉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형제의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벨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가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찾으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느냐?
예수님을 아벨적인 입장에 세워 가지고 예수님을 통하여 가인적인 존재를 찾기 위해 국가적인 섭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적인 국가가 있고, 가인적인 교파가 있고, 가인적인 종족이 있고, 가인적인 가정이 있고, 가인적인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34-54)
2) 아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벨은 복귀노정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명을 해야 합니다. 아벨이라는 존재가 뜻 앞에 설정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만일 타락이 없어더라면 아벨이라는 존재가 뜻 앞에 설정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벨이 설정되려면 아벨 혼자 있어 가지고는 설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벨이 있기 전에 가인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벨로서 갖추어야 할 첫째 요건은 가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아벨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아벨이 진정한 아벨로서 택정받는 자리에 설 때까지는 준비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편에 서느냐 못 서느냐 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것을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기간이라고 하는데, 그 기간은 제물을 드리는 기간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갈라졌던 것을 다시 심정적으로 유대를 맺게 하고, 또 외적으로도 유대를 맺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이루어 놓지 못하면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은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은 반드시 제물을 받는 사람과 바치는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물노정을 따라온 것이 지금까지의 구약역사요, 신약역사요, 앞으로 성약역사로 연장되어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6-74)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아벨 혼자서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가인에는 하늘편 가인과 사탄편 가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 삼고 볼 때, 세례 요한은 하늘편적 가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늘편적 가인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복귀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사탄편적 가인은 물어뜯고 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이요, 사탄의 본성입니다.
여러분이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야 되고, 그다음에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가인은 누구냐? 여러분의 가인은 누구냐?
가인이 가인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를 거쳐 아들의 자리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아들은 참소받지 않는 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거쳐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가인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 자신이 혼자서는 그러한 자리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 끌어올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끌어올려 주어야 되느냐? 끌어올리는 사람은 메시아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누굴 대신해서 끌어올리느냐? 아버지를 대신하여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끌어올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찾아야 됩니다. 가인을 찾기 전에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 대신의 입장에서 종의 종 자리와 종의 자리를 거치고 양자의 자리를 거쳐 아들의 자리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인 아벨 중심 삼고 굴복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아들의 책임이 끝나는 것이며, 그 자리에서 가인이 협조하는 입장에 서면 부모의 자리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전도하는 것은 첫째 가인을 만들기 위한 것이요, 둘째 아벨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벨적인 입장에서 전도하는 여러분은 하나님 대신의 입장인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 삼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종의 입장을 복귀하는 시대에 조상들이 하지 못하였던 것을 대신해서 복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담 시대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예수 시대에 와야 가인 아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전에는 전부 다 양자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34-53)
자, 아벨 선정법이…. 아벨을 선정하는 데 있어 첫째 누구라구? 「하나님 아버지요.」 그다음엔? 「선한 영인들요.」 그리고는? 「천사.」 그다음? 「사탄.」 (웃으심) 그런 말 처음 들어 보지요?
왜 그러냐? 사탄이 '그는 아벨 될 자격이 없소!' 할 때는 안 되는 거예요. 사탄이 아벨은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래야 된다는 조건을 다 알아요. 사탄이 '이렇고 이래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조건이 안 돼 있소!'
그럴 때 하나님이 할 수 있나요? '야 이놈, 사탄아! 내가 한다는데 뭐야?' 이럴 수 있어요, 없어요? 「그럴 수 없습니다.」 판사 앞에서 검사가 '아 저 사람에게는 이러한 죄가 있습니다.' 이러는데 판사가 '야 이놈! 내가 하는 데 뭐야? 이럴 수 있나? 「없습니다.」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은 재판장이고 사탄은 조건을 거는 검사라구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럼 변호사와 같은 책임은 누가 하느냐? 그건 선한 선조와 천사장들이, 우리와 같이 복귀된 선한 조상들과 천사장들이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결정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어, 하나님 내가 아벨로 결정했으니 하나님이여! 선조들이여! 천사여! 사탄아! 공인해라' 그게 돼요?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아니요.」
아벨 편은 될 수 있지요. 아벨 편에는 설 수 있지만 아벨은 안 된다는 걸 알아야 돼요. 아벨 편이예요.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자, 아벨이 선정되려면 말이예요.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야 돼요, '야 아무개야, 너 이런 책임을 해야 되겠다.' 할 때 '예.' 이래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면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선한 선조들이 좋아하겠나, 안 좋아하겠나? 반대하겠나? 「좋아합니다.」 (89-121)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되고, 둘째는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사탄인 천사장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틀림없는 상속자입니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에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가인이요, 아담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벨입니까, 가인입니까? 「아벨입니다.」 아벨이 되었어요? 아벨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받는다고 보고 있어요?
자기의 손을 보며 '아, 이 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손이다. 아이고 예쁘다.' 그래 봤어요? '내 사지백체는 하나님이 사랑을 받는 손이다. 아이고 예쁘다.' 그래 봤어요? '내 사지백체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몸뚱이로구나' 그렇게 느껴 봤어요?
'내 피와 살에는 하나님의 피와 살이 있고, 내 사랑에는 하나님의 생령요소가 약동하고 있다.' 하는 것을 느껴 봤어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전부 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첫째는 뭘해야 된다구요? 이걸 확실히 모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둘째는 천사장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서 거짓 부모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로 분립해서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즉, 아담 대신 아벨, 천사장 대신 가인을 세워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정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심정이 일치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에 '야, 너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하라.'는 식으로 생활적인 것을 지시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시한 대로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합니다.」
지시대로 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심정적 일치가 외적인 일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원리를 확실히 알고 나가야 합니다. (34-85)
가인과 아벨은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되느냐? 이것이 문제됩니다. 가인과 아벨은 편안하고 좋은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이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탕감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34-91)
하나님은 아벨을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하느냐?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란 어떠한 자리냐? 하나님과 일체된 자리인데,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기쁜 자리가 아니라 가장 슬픈 자리, 가장 어려운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고자 하는 자리,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4-51)
원리적인 입장에서 아벨은 무엇이냐? 중심입니다. 이 중심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왜 못 되었어요?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다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다 하지 못하면 아벨이 되지 못합니다. 아흔 아홉 가지를 다 했더라도 한 가지를 못 하면 아벨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34-46)
여러분에게 '너는 개인적인 아벨이 되었느냐?' 할 때 여러분 자신이 아벨이 되려면 세 사람의 가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인이 누구냐?' 할 때, '내 가인은 아무개 아무개요'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개인은 그 가인을 중심 삼아 가지고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적 기준에 있어서 그 개인이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되면 한 사람으로서 횡적으로 탕감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개인이 안 되게 될 때에는 3시대, 즉 3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가인이 누구냐?'할 때 '누구누구요' 하고 하늘 앞에 방패로 내세우는 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믿음의 세 자녀입니다. 세 자녀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 세 아들로 말미암아 가정기반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가지면 언제든지 천국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56-98)
자, 그러면 지금 여러분! 통일교회에서는 말하는 가인 아벨 할 때,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다.' 그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안 맞아요.」 도리어 그게 사탄이 돼요. 도리어 그게 가인이 될 수 있다구요. 까딱 잘못하면 사탄편에 앞장서기 쉬운 것이 통일교회에 먼저 들어온 패들입니다.
그러면 단지 아벨 될 수 있는 자격자는 뭐냐 하면, 아벨된 승리적 기반이 있어야 됩니다. 자, 여기서 통일교회로 보게 되면 먼저 난 것이 가인이예요. 나중 나온 것이 아벨이 되더라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천사에게 명령할 수 있어 가지고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같이 하나될 수 있으면 언제나 아벨이 되지만, 만약에 자기를 세우고 하나님 뜻을 대해서 모범이 못 된 사람은 전부 다 가인이 된다 이거예요.
이건 통일교회에서도 그렇게 관계되지만, 통일교회를 중심 삼고 뚝 갈라 가지고 세상을 보게 된다면 이 세상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가인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우린 아벨편이 될 수 있다구요, 아벨편이.
자, 그러면 이 외적 세상을 두고 본다면 여기에도 가인 아벨이 있다 하는 것 알아야 됩니다. 악한 사람 중에 더 악한 사람, 덜 악한 사람, 가인 아벨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적 세상에서도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싸우고, 내적 세계에서도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싸우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기성교회가 형님이고 우리가 동생이라구요. 그럼 먼저 나온 기독교는 형님인데 가인적 입장이고, 우리는 동생인데 아벨 입장이니까 동생한테 굴복해야 되는데 안 하면 자르는 것입니다. (76-329)
3)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어, 내가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아벨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이니, 나를 섬겨라! ' 하는 이런 미치광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미치광이들이 많다구요.
아벨은 어떠한 것이 아벨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보다 공적인 사람이 아벨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가인은 무엇이냐? 사탄편입니다. 사탄은 무엇이냐?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아벨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먼저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자기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자기 생각이 앞서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그런 녀석은 추방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원칙에서 사람을 대합니다.
아무리 오래 된 식구라도 그 심통이 자기를 위하게 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지금은 할 수 없이 내가 그냥 두지만 때가 되면 보따리를 싸게 해서 쫓아낼 겁니다.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아벨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사적인 기준이 앞서는 것은 가인이요, 자기보다도 공적인 문제, 하늘을 더 생각하는 것이 아벨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58-68)
여기 통일교인들 끼리끼리 형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아벨의 입장인 동시에 가인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의 입장인 동시에 아벨입니다. (24-348)
가인 아벨 문제를 중심 삼아 가지고…. '나는 아 본부에서 발령한 지구장이요, 혹은 교역장이요, 혹은 교구장인데, 내 말을 듣는 것이다.' 천만에요.
이쪽은 하나님편이고 저쪽은 사탄편이기 때문에 사탄편이 자기 말 듣게 돼 있어요? 가인은 사탄편인데, 사탄편이 자기 말 듣게 돼 있어요? 안 돼 있다구요. 자기의 말 듣게 하기 위해서는 세 배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세 배 노력해야 한 가지 돌아오는 거라구요.
그건 왜? 소생, 장성을 넘어 완성수가 하늘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노정에서 가인을 구원하려면 3배 노력해 가지고 하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런데 이건 덮어놓고 명령만 할 줄 알지, 명령을 받을 줄 몰라. 자세가 틀렸다는 거예요.
가인 아벨 원칙은 그렇지 않다구요. 아벨은 피를 흘려 가지고…. 가인의 살 길을 닦기 위해서 피를 흘렸다는 데, 거기에 가치가 있는 거예요. 거기에 귀한 것이, 거기에 승리의 기준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 자신들이 전부 다 식구들을 위해서 얼마만큼 아벨적인 책임을 다 했느냐? 희생시켜 가지고 그 하나의 생명을…. 내가 전부 다 인생살이의 최고의 목적과 같이 그 한 사람을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얼마나 길러 봤느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자문자답해 봐야 된다구요. (70-149)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서도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전부 다 가인입니다. 먼저 난 것이 가인이지요? 먼저 난 것이 아벨이 아니라구요.
먼저 난 것이 가인이기 때문에 교회에 먼저 들어왔다고 자기를 높이 생각하고 늦게 들어온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가인족속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영계에 가서 재차 수련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두고 보라구요.
자기가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선생님은 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쓰면 틀림없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탄의 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존경해라,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수택리에 오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늦잠을 자는 것들은 앞으로 전부 다 쫓겨나는 거예요. 그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인 가운데에서 어떤사람이 가인이냐? 머리를 치켜들고 남을 시켜 먹으려고하는 사람들이 가인입니다. 그럼 아벨은 누구냐? 책임 다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알겠어요? 「예.」
본래는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가인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먼저 들어온 녀석들이 아벨 노릇을 하려고 꺼떡거립니다. 그것은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별의별 놀음을 다 해도 원리원칙대로 안 하면 선생님이 안 써 주는 거라구요.(49-214)
아벨이란 존재는 어떠한 존재이고 가인이란 존재는 어떠한 존재냐? 우리 원리로 보아서 가인 아벨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가인이란 존재는 자기에게 걱정이 있으면 그 걱정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사람이요,
아벨이란 존재는 자기 걱정도 있지만 남의 걱정까지도 맡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 차이라구요, 그 차이. (62-189)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고, 그 사랑에 비례된 뜻을 품고, 그 뜻을 사랑받는 만큼 행하여 뜻을 세워 놓은 사람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의 뜻을 가기 위해서는 희생하면서라도 가야 됩니다.
뜻의 터전만큼 사랑 받을 수 있는 상대적 권을 죽어서라도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계는 상응적 세계가 아니라 타락권 내의 상충적 세계입니다. 그 상충적 세계를 제거시켜 버리고 상응적 세계권을 바라 나오기 때문에 그 세계는 지금의 이 세계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51-82)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환경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데 누가 먼저 좋아하느냐? 하나님이 먼저 좋아하고 그 환경에서 좋아해야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두고 볼 때, 아담 해와의 가정에서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원수와 같은 감정을 갖고 참을 수 없어서 대결하는 입장이라 하였을 때 어떠한 사람이 남아지느냐? 여기에서는 복수를 하는 것이 철칙이 아닙니다.
그 복수의 이면에 하나의 조건, 즉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이 있다면 복수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보다 나은 것 앞에는 보다 덜한 것이 흡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것이 주체고 어느 것이 대상이냐? 보다 나은 것이 주체요, 보다 덜한 것이 대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 절대적 기준에는 세계도 포함되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회의 모든 제도와 이념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절대적인 환경을 갖추어야 됩니다. 어떠한 사회, 어떠한 제도권 내에서도 나 자신이 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34-233)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하나님과 사탄의 작전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맞고 빼앗아 나오는 길이 아벨이 가는 길입니다. 사탄은 먼저 치기에 이긴 것 같지만 나중에는 가지고 있는 자기의 선한 것까지 플러스시켜 가지고 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악한 편이라는 것은 상대를 쳐서 점령했더라도 점령한 그것이 흥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가운데 있는 선한 것까지 빼앗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찰떡을 쳐 가지고 넘겨 주었다가 그것을 찾아올 때는 찰떡에 보숭이(고물)가루를 묻혀 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때에는 악이 성해 가지고 선을 치는 자리에 서지만 그런다고 해서 하늘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을 어떻게 구별하느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들 가운데도 두 사람이 있으면 그 가운데에 가인 아벨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아벨이고 어떠한 사람이 가인이냐 하면, 침해를 받는 사람이 아벨이고, 가해를 하는 사람이 가인입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가서 괜히 '이 자식아!' 이렇게 말 한마디라도 하게 되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 앞에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나이가 많고 작은아들은 나이가 적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부모의 의논 상대라든가 모든 면에 있어서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은 맏아들 뿐이라 하더라도, 이 맏아들이 작은아들이 아무 실수도 하지 않고 아무 잘못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아들에게 손을 대면 대번에 그 부모는 큰아들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작은아들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에서 적용되는 선악의 비판기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를 입히는 사람이 반드시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정성을 드리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남달리 유난하게 저게 뭐야’ 하며 흉을 보면 벌써 그는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가인 아벨은 그렇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리에서 비판받는 사람,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벨이 되는 것이요, 비판하는 사람, 가해를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의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벨이 되는 것이요,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남에게 이익을 끼친다는 것은 가해가 아니라 이익을 주는 것이지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남에게 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이익이 되게 하기 위한 자리는 공적인 자리요, 자기의 이익을 위한 자리는 사적인 자리입니다. 이렇듯 공과 사를 중심 삼고 아벨과 가인, 선과 악은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56-85)
보다 공적인 존재가 아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먼저 들어왔어도 공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틀림없이 가인입니다.
가인도 자기가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아벨보다 공적인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아벨을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통일교인 가운데에도 먼저 들어왔다고 떡 버티고 앉아서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들어온 사람보다 공적인 자리에 서지 못하면 무엇이라구요? 「가인입니다.」 가인이예요. 아벨이라고 하는 것은 도적이예요. 아벨적인 존재는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선 사람입니다. (31-165)
통일교회 내에서 여러분은 서로 가인 아벨의 관계로 엇갈려 있습니다. 원리적으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를 해야 하는데 평면적으로 관계를 맺으려면 여러분끼리 부딪쳐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무자비한 곳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를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통일교회는 냉정한 곳입니다. 냉정해야 돼요. 그러면서도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남을 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서로가 무관심주의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아벨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암만 먼저 들어왔다고 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마음대로 변경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종적인 역사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횡적인 역사도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정하는 대로 이 기간을 연장시킬 수도 있고 단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49-217)
선생님이 한 생애를 다 바쳐 가지고 자기의 이익보다도 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희생했고, 그런 재료면 재료, 양이면 양을 많이 투입한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연히 추앙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게 원리라구요. 그게 천운이라구요.
여러분이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여러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벨의 뜻은 반항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고 위하는 인연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아벨의 완성의 터전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완성은 개인적 아벨의 완성, 가정적 아벨의 완성, 종족적 혹은 민족, 국가, 세계적 아벨의 완성의 터전을 이어 나가지 않고는 세계 천국복귀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우리들은 밤이나 낮이나 찾아오는 그날 그날들을 중심 삼고 이 원칙을 적용시키고, 이 원칙의 발전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쉬지 않고 달려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왈 하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알겠어? (64-81)
4) 식구간에 있어서의 가인 아벨 관계
통일교인 가운데에도 가인 아벨이 있나니, 먼저 나온 사람이 가인이기 때문에 먼저 나온 사람이 중요하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이 누구예요?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이 선생님이지요? 선생님보다 빨리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 선생님이 가인이지요. 하나님한테 물어 봐도 그렇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 모셔라. 이리 와라 이놈들' 하고,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강제로 나를 모시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다만 바르게 가르쳐 줄 뿐입니다. 추풍(秋風)이 불기 전에 만나게 될 하풍(夏風)이 무섭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중심 삼고 볼 때 가인 아벨이 누구냐 하면, 횡적으로는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아벨이고, 종적으로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아벨입니다. 종횡관계를 두고 볼 때, 횡이 종을 중요시해야지 종이 횡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두고 볼 때에도, 하나님이 인간을 중요시하는 것보다도 인간이 하나님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이 전통을 중요시해야 할 섭리역사는 본보기노정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36가정에게 고생을 시키는 것은 이 법도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그냥 가만히 놔 두었지만 축복받은 가정들은 전부 다 고생길로 보낸 것입니다. 그것은 아벨로서 해야 될 책임을 하라고 그런 것입니다.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아벨로서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방을 갖추어야 됩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하는 대로 따라 하라, 선생님이 가는 대로 따라가라는 겁니다. 선생님이 달리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으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하는 대로 여러분이 하라는 거예요. 선생님도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이 길을 걸어 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알겠지요? 여러분은 순종하며 가야 됩니다.
아벨이 되는 비결이 뭐냐?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면서도 반발하지 않는 사람이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를 어린양이라고 했지요? 그러니 설사 찔림을 당하더라도 반발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49-214)
자, 여러분 책임자들은 가인이예요, 아벨이예요? 선생님 앞에서는 가인이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선생님에 대해서 '선생님은 나보다 형님 돼도 좋소!' 하지요?
선생님이 선생님 되려면 여러분들을 선생님 자신보다도 더 위하고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예요. 그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횡적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앞서야 된다는 거예요. 사탄세계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앞에 섰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횡적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사탄세계에 앞선다는 거예요. 먼저 난 것 같은 자리에 선다는 거예요.
그러나 종적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내 아래에 선 아벨입니다. 나중 난 자리에 선다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하나님하고 절대 하나되어야 돼요. 절대 하나되어 가지고 가인 아벨하고 하나되어야 돼요.
이건 원리적이예요. 이건 종적이고 원리적이예요. 하나님이 먼저 있으니 장자고 나는 차자예요. 또, 통일교회로 보면 내가 장자고 통일교회에 들어온 모두는 차자의 자리에 있어요. 이건, 종적인 기준은 원리형이예요.
그렇지만 횡적 기준은 사탄이 된다 이거예요. 반대되는 거예요.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구요. 종적인 기준이 원리형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종적으로 보면 선생님이 장자의 자리에 있고 여러분들은 차자의 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또, 횡적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장자의 자리에 있고 선생님이 차자의 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복귀시키려면 선생님은 봉사해야 된다 이거예요. 논리가 그런 거예요. 반대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횡적으로 책임하고야 여기 들어온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선생님과 완전히 종적 횡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야 아벨 자리에 들어서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적인 때에는 여러분들이 형님의 자리가 되고, 횡적인 때에는 동생의 자리가 되는 거예요. 식구가 형님의 자리가 된다는 거예요. 사탄편이니까. 그걸 확실히 안 하면 전부 틀려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강의할 때…. 알겠어요?「예」
다시 말하면 선생님과 여러분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여러분과 식구의 관계에 있어서도 종적으로는 여러분이 형님의 자리에 있고 식구들을 동생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구요.
지배할 수 있는데, 외적인 세상에서 횡적으로 대할 때에는 지배 못 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아벨의 자리에 있고 식구들이 가인의 자리에 있다 이거예요. 거꾸로 된다구요.
그러니까 그들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책임자가 아벨의 탕감노정을 대신 거쳐야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복귀 못 된다 이거예요. 마찬가지 이치예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절대 믿기를 맹세하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주관해도 괜찮되,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탕감복귀 역사를 거쳐야 된다는 말이라구요.
종적인 입장에 서는 형님의 자리에서 동생으로 취급하듯이 해도 되지만 횡적인 입장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 안 될 때는 가인 아벨의 탕감복귀역사를 해주지 않으면 저들이 돌아올 길이 없다는 말이라구요. 마찬가지 이치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것을, 내 물질과 몸뚱이와 마음을 다 아벨한테 주고, '사랑까지도 당신 앞에 줍니다' 해야 비로소 하나되는 거예요. 그게 쉬운 일이예요?
여러분들이 하나님하고 완전히 하나되고, 선생님하고 완전히 하나되기 전에는 아들이 될 수 없어요. 아들 자리에 못 선다 이거예요. 완전히 하나되기 전에는 아벨 자리가 없다구요. 설 자리가 없다 이거예요.
자, 그래서 내가 서 가지고 동서남북으로 사람을 만들어야 돼요. 열두 지파가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열두 달이 있으니 열두 지파를 만들어 놓아야 돼요. 나한테 절대 굴복하고, 횡적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주고받을 수 있게 말이예요.
그래서 땅에도 열두 달이 있어 가지고 일년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영계에도 그런 열두 진주문이 있어요. 열두 지파는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열두 방수(方數)를 못 맞추겠으면 사방(四方) 사위기대를 형성해야 된다구요. 그것은 사방의 입체성을 표시하는 각도가 아니라 열두 방수, 열두 달을 대신한다는 거예요. 사위기대를 완성해서 사방을 갖추어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를 중심 삼고 세 제자를 세워 사방이 된 거라구요. 이걸 중심삼아 가지고 12제자를 만들어 나간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가 축복할 때 세 사람을 전도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4수 기반을 못 갖는 것이 되기 때문에 설 수가 없다는 거예요. 평면적 기준에서 가인 아벨의 탕감조건권을 못 가진 자리가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어휴! 이것들이 그런 것도 모르누만! 그런데 뭐 탕감복귀니 복귀역사니 했으니 전부 다 헛수고했다구요. 여러분들의 신앙은 전부 다 사탄의 자리에 있었다 그 말이라구요. (116-266)
5) 아벨의 사명
우리는 원리에서 가인 아벨의 문제에 관해서 배웠습니다. 아벨은 사탄 혹은 가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과 형의 슬픔을 느끼고 체휼함으로써, 그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했고, 생명을 걸고,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형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아벨은 가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통일 식구들은 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아벨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선 사탄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어야 하고, 사탄세계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과 사탄세계에 묶여 있는 형제자매의 슬픈 심정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희생을 대가로 사탄세계에서 그들을 기꺼이 구해 내려고 해야 합니다. 아벨이 희생하는 데서부터 복귀섭리는 진전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공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섭리의 한 단위가 됩니다. (52-52)
이제 아벨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아벨은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가인을 찾아야 됩니다. 그 가정이면 가정에서 제일 대표되는 가인이 누구냐? 이 가인 하나만 굴복시키면 다 굴복한다구요.
가인 중에 제일 악한 가인을 굴복시켜야 되겠나, 덜 악한 가인을 굴복시켜야 되겠나, 「제일 악한 가인이요.」 허허허. 왜? 왜? 악한 것일수록 그 악한 상대를 많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자 그거 굴복시키는 게 쉽겠어요, 어렵겠어요? 「어렵습니다.」 (76-333)
아벨이 누구를 사랑해야 된다구요? 「가인요.」 아벨은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자연굴복시켜야 합니다. 피눈물로써 그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누구보다 더 높은 사랑을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굴복시킬 수 없으니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기성교회를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북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이북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34-283)
아벨을 사랑하기 전에 천사장을 사랑해야 되고, 가인을 사랑하고 나서 아벨을 사랑해야 돼요. 이게 원리예요.
천사장이 사탄이 되었는데 사탄이 형님이예요. 그러니까 아벨은 사탄을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사랑해야 돼요. 그게 중요합니다. 여기에 걸려 있는 거예요, 여기에.
사랑하지 않고는 사탄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구요. 사탄분립, 사탄 세계를 언제 분립하느냐 하는 문제를 오늘날 기성교회는 꿈도 안 꾸고 있다구요.
'뭐 믿음으로, 십자가의 도움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왜 기독교가 망해요? 사탄을 분립해야 되고 가인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아벨이 이 2대 사건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이거예요.
아벨 책임이 뭐라구요? 사탄을 굴복시키는 거예요. 굴복하지 않으면 분립 안 된다구요. 사탄을 굴복시켜야 되고 가인을 굴복시켜야 돼요. 사랑으로,
형님을 동생의 자리에 세워 가지고 동생이 형님이 되어야 된다는 원리를 알아야 돼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 해와를 중심 삼고 개인완성, 가정완성, 종족완성, 민족완성, 국가완성, 세계완성, 천주완성 기반, 하나님의 사랑권이 형성되는 거예요, 한꺼번에. 거기에는 사탄도 없다구요. 타락도 없어요.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는 사랑의 파문이….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에도 울타리가 생겼고, 가정에도 울타리가 생겼고, 전부 다 울타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담과 해와도 원수예요.
아담 해와 아들딸, 가인 아벨도 원수예요. 또 어머니 아버지 전부 다 원수가 되었다구요. 사탄을 중심 삼으면 파탄이예요.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면 전부 다 파탄이예요. 전부 다 분립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정에서는 개인적인 싸움, 형제의 싸움, 종족적인 싸움, 민족적인 싸움, 국가적인 싸움. 세계적인 싸움, 지옥 싸움까지, 전체 영계 하나님 보좌 밑까지 싸움 판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걸 누가 수습해야 되느냐? 아벨이 수습해야 돼요. 다시 말하면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아벨이 아담 자리에서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개인으로부터 이 세계 40억 인류가 번식해 놓은 것을 한꺼번에 수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레벨을 중심 삼고 개인 레벨, 가정 레벨, 종족 레벨 전부 다 탕감복귀해서 연결시켜 가지고 이어 나가는 운동을 하는 거예요, 지금.
첫째 레벨에 뭐가 있느냐 하면 사탄이 있고 가인이 있다구요. 요걸 알아야 돼요. 사탄은 아버지이고 요것은 아들이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러면 언제 굴복하느냐? 하나님의 사랑 내용을 중심 삼고 우리들한테 생명을 바쳐 죽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갈 수 있는 자리에서 분립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사탄세계에 아벨이 들어가야 돼요. 자기 고향을 떠나 사탄세계에 들어가서 이 사탄 부부를 굴복시켜야 본연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거예요. 나가야 돼요. 집을 떠나야 돼요. (129-216)
아벨은 가인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생명을 다 바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가인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벨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요, 가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구하려면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가인을 구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또, 가인이 아벨을 따라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따라갈 수 있어요? 없습니다.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34-99)
아벨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3대 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첫번은 가인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그다음에는 부모를 해방시켜 줘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무슨 사명이 있느냐?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3대 사명이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를 해방시켜 주지 않고는 부모가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부모를 해방시켜 드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해방을 못 받습니다. 이 3대 해방권의 책임을 해야 할 것이 아벨의 사명입니다. (58-68)
아벨은 자녀 입장이고 가인은 양자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아벨 앞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벨이 가인으로부터 배반당했습니다. 아벨은 가인을 다시 찾아가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도 부활하여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벨도 가인에게 죽음을 당하였지만 찾아가야 합니다. 배반한 가인의 후손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을 대신한 것이 노아 시대의 함과 셈이었습니다. (24-331)
6) 아벨로서의 목회자의 사명
앞으로 탕감복귀를 해줘야 돼요. 탕감복귀가 아니면 안 된다구요. 탕감길은 누가 가야 되느냐? 아벨이 가는 거예요, 아벨이. 그러면 교회 책임자하고 새로 들어온 사람하고 볼 때 누가 아벨이예요? 「교회 책임자요.」
자, 가인이 탕감길을 갈 수 있어요, 없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그거 있어요, 없어요? 없다구요. 탕감길은 아벨이 가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책임자들이 이걸 몰라요. 잊어버렸다구요. 요걸 알아야 된다구요. 여기 지금 각 나라의 대표라는 사람들도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탕감길은 누가 가느냐? 가인이 가는 게 아니예요. 아벨이 가야 돼요, 아벨이. 눈물을 흘려도 먼저 흘려야 되고, 배가 고파도 먼저 고파야 되고, 욕을 먹어도 먼저 먹어야 되고, 매를 맞아도 먼저 맞아야 되는 거예요. 그게 탕감길을 가 주는 거예요.
벌써 한 사람이 들어왔다 하면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지난 일을 전부 다 들어 주고,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의논해 주고 눈물을 흘려 주고 기도해 주고, 그런 놀음을 해야 돼요.
여러분과 가까운 사람이 가게 되면 안심이 안 되어서 그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또 아침이 되면 안심이 안 되어서 그 집 앞에 가서 기다렸다가 또 만나고, 이럴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결국은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구요. 가인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구요.
거기에서 탕감길이…. 그래야 그 사람이 내 뒤를 정상적으로 따르는 거예요. 탕감길을 따라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탕감길을 가야 된다는 거예요, 탕감길.
자, 누가 하나되게 만들어야 된다구요? 「책임자요.」 그게 아벨 아니예요? 가인이 아니예요. 가인은 그저 물어뜯고 찢어 버리려고 하고 자꾸 방해 놓고, 이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하고 그래야 돼요. 병자 중의 병자요, 근심을 품은 자 중의 근심을 품은 자가 돼 가지고 하늘 앞에 사연을 통고하는 그 길이 탕감의 길이라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은 그저 무엇인지 모르게 포위돼 가지고 질식되는 것을 느껴야 된다구요. 마음이 편하지 않아야 돼요, 마음이. (88-263)
가인 아벨 탕감은 누가 해야 되느냐? 가인이 해야 하느냐, 아벨이 해야 하느냐? 아벨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제사장이 앉아 가지고 벌어먹을 게 아니라구요.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재창조의 힘을 투입하는 사람이라야 앉아 가지고 먹게 돼 있다구요. 그게 원리라구요. 재창조역사라구요. 그래 보라구요.
가인, 나가 전도해서 들어온 사람은 전부 다 흙덩이예요. 흙덩이라구요. 돌덩이라구요. 사탄이예요. 그것은 제멋대로 돼 있다구요.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침으로 이기고 물을 퍼붓고 반죽을 만들어 가지고, 진흙을 만들어 가지고 그저 노력을 들여 가지고 마음대로 빚을 수 있게끔 돼 가지고야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들잖아요? 그렇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재창조예요. 재창조 역사라는 거예요. (75-167)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가자마자 '에헴, 선생님이 무슨 교구장, 무슨 교역장을 시켰기 때문에 나는 아벨이다.' 한다는 거예요. 아벨이 되지 않았다구요. 아벨의 사명을 하라고 보낸 거예요.
그런데 아벨 사명은 다 못 하고 '나를 섬겨라. 내 명령을 들어라.'고 한다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에게 일을 시킬 때, 자기는 앉아 가지고 시키는 부모는 그건 의붓부모예요. 알겠어요? 의붓 부모라구요. 진짜 부모는 데리고 나가서 일합니다. 가르쳐 주면서 일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렇지요? 「예.」 그게 진짜 부모라구요. (75-168)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통일교회 가인 아벨 사랑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자는 무조건 아벨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예요. 아벨은 가인을 구해 줘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가인하고 하나돼야 어머니한테 가는 거예요. 책임자하고 하나되지 못했어도 여러분끼리 하나되어 있으면 그 자리에는 책임자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기도하는 데는 언제나 하나님이 같이한다는 말은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도 두세 사람 모아 가지고 기도하게 되면…. 여러분이 살을 베어 피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동지가 있어요?
오늘부터는 지금까지의 책임자 위주한 생각을 버리고 식구 위주한 사상을 가져야 돼요. 왜 그래야 되느냐? 가정에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은 가정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식구를 위주로 하는 관(觀)을 세워야 돼요. 그렇지 않고는 가정천국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선생님을 위주로 하던 것을 통일교회 여러분을 위주로 하여 집중적으로 사랑의 무리를 횡적으로 엮어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환경 천국이 이룩됩니다. 종적으로 먼저 해 가지고는 안 돼요. 종적으로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부모님을 사랑해야 되고, 부모님을 사랑하듯이 세계 만민을 사랑해야 됩니다. 세계 만민과 하나되어라 이거예요.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발냄새가 나고, 입냄새가 나고, 몸냄새가 나는 싫은 환경을 소화해야 합니다. 발을 씻겨 주라구요. 옷이 없으면 자기 옷을 갖다 입히라구요. (박수) (1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