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하나님의 뜻과 세계 - 14.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14.12.09|조회수248 목록 댓글 3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1973.10.21
미국 워싱턴 리스너 강당

오늘 저녁에도 이와 같이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에는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나라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진정 사랑하는 하나님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나라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내용과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오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수많은 지도자와 선각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의 나라들은 하나님이 이상(理想)하는 나라들이 아닙니다. 또 이 세상은 하나님이 이상하는 세상이 아니고 악한 세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악한 세상에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중심적인 사명을 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 시대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는 방향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아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다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를 살펴보더라도 그는 그 시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볼 수 없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령하시기를 배를 짓되 산에다 지으라고 했습니다. 배를 지으려면 바닷가에 짓든지 강가에 지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산에다 지으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인물들을 고난의 길로 인도하신 이유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 가운데 만일 하나님께서 산정에 올라가 배를 지으라고 명령한다면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혼자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120년 동안 방주를 짓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노아가 계시를 받았는 지 안 받았는 지 모릅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방주를 지으러 혼자 도구를 짊어지고 산정을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만일 여기 오신 부인들께서 노아 할아버지의 부인이 되셨더라면 그러한 노아를 환영하지 않았을 성싶습니다. 매일같이 산에 오르내리면 점심을 싸가지고 다녀야 되니, 그 치다꺼리를 틀림없이 해야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못이겨서 며칠 해 줄는 지 모르지만 한 달도 못 가서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또 그와 같은 생활을 1년도 아니고 12년도 아닌 120년간 해야 된다는 말을 듣는 다면, 틀림없이 노아 할아버지에게 미쳤다고 공격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와 같이 정상적인 환경을 따라서 자기의 뜻길을 갈 수 있도록 명령하지 못 하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같은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사탄과는 반대방향으로 가야 됩니다. 사탄세계 사람들이 믿어주는 것조차 싫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탄과 짝했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인정하는 것까지 부정(不淨)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도 그런 점이 있습니다.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가 자기가 하는 일을 보는 것까지도 싫어합니다. 절대적인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사탄편, 즉 악한 세상에서 좋다고 찬양하는 것을 좋다고 하시며 기뻐하시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예 믿지 못하게끔, 바라보지도 못하게끔 역사하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노아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미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우상장사, 즉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장사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불러냈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네가 요렇게 해 주면 내가 이렇게 해 주마’라는 어떤 보장을 약속하고 떠나도록 한 것도 아닙니다. 무턱대고 떠나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했으면 미쳤다고 했을 것입니다. 떠난다고 해서 몇십 리 몇백 리가 아닙니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국경을 넘나들면서 애급까지 왔다갔다 했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자기 부모, 자기 고향, 자기 친척,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환경을 헤치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명령밖에는 그 무엇도 염두에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아무도 모르게 몰래 도망했을 겁니다. 그리고 집을 나온 후 정처없이 흘러가는 집시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단연히 끊고 나선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을 기초로 하고 출발한 사람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가 선조로부터 축복을 받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형 에서보다도,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형님인 에서로부터 간교하게 떡과 팥죽으로 장자의 기업을 사서 빼앗은 것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에서한테 쫓겨나고 벼락이 날 것을 알면서 그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각오하고 나선 야곱을 하나님은 축복(祝福)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에서보다 쓸만하다고 인정했습니다. 야곱은 하란 땅에서 21년 동안 청춘세월을 다 보내는 고용살이를 하면서도 그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어 줄 것을 틀림없이 믿었던 것입니다. 그 외삼촌 라반이 얼마나 속였습니까? 열번씩이나 속임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하나님이 나와 같이한다고 꿋꿋이 믿고 나간 야곱의 믿음은 정말 훌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에 얍복강에 이르러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됐는 데 야곱은 지독하게 천사를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는 죽더라도 양보할 수 없다는 각오로 싸웠습니다. 천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야곱이 놓아 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네가 이겼다’고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는 그렇게 지독한 사람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바로궁중에서 왕자의 권한을 가지고 자라던 그였지만 하나님의 뜻과 조국을 위하는 마음에서 모든 권한을 일시에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광야노정을 출발할 수 있었던 용기 있는 사나이라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몰려 미디안광야 40년의 고생길을 떠나더라도 그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같이할 것을 믿으며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랐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찬란하고 호화스러운 영광의 자리에서 성장한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서 형편없는 가난뱅이 목자생활을 하더라도 도리어 그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 것이 모세의 생활이었습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성경을 보면 약대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으니까 잘살았는 줄 알았지요? 주님이 오신다고 준비한다면서 광야에 나가 혼자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가 우리 아들은 위대한 선지자라고 칭찬했겠어요? 만일 여러분의 아들 중에 세례 요한과 같이 30평생 그런 생활을 하는 아들이 있다면 우리 아들은 훌륭한 선지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에 가보면 메뚜기와 석청이 많지는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필시 빌어먹었을 거예요. 약대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세례 요한을 보고 동네 아이들은 따라다니면서 얼마나 조롱을 했겠어요? 

오늘 저녁 레버런 문이 그러한 차림으로 약대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맨발로 나와서 ‘내가 하나님의 말을 한다’고 하면 여러분은 미쳤다고 할 겁니다. 세례 요한은 그만두고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 잘 믿는 목사님들이나 기독교의 열렬한 신도가 있을는 지 모르지만 나도 예수를 잘 믿는 열렬한 기독교의 신도입니다. 사실은 사실로서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됐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려웠던 생애 

예수가 30년 생애에 제대로 공부를 해봤습니까? 학교에 다녔다는 말이 있어요? 아무런 교육과정도 거치지 않은 더벅머리 총각으로 목수의 조수노릇 하기에 세월을 다 보낸 사람입니다. 그 배후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놀랄 만한 사실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서 그런 이야기 한 마디만 하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저 이단 왔다고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그런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에게 직접 물어보면 아는 것입니다. 제가 다 듣고 다 알아보고 가르쳐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으면 옛날에 노아의 말을 듣지 않고 아브라함의 말을 듣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예수는 세상적으로 본다면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 않다고만 믿지 말고 그렇게도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번 해 봅시다. 레버런 문의 말이 그럴 성싶은가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처녀 마리아가 잉태를 했을 때, 그때 모세의 오경(五經)에 의하면 반드시 잡혀가서 돌에 맞아죽게 됐을 겁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이 의인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를 데려왔지만, 만약 ‘꿈따위? 그런 게 뭐 별스러운 것이냐’고 거부했더라면 마리아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 부모한테 ‘꿈에 천사가 나타나 정혼(定婚)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를 했으니 집에 데려다 두라고 하는 데 승락하시겠소? ’ 하고 말했겠습니까? 여기 시어머니 시아버지 연령된 부처끼리 오신 분들이 계시지만 자기 아들이 그렇게 됐다면 그 며느리를 환영할 부모가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자기 집에 데려오지 못하고 동네 어느 옆방에 몰래 숨겨뒀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를 데려온 요셉은 대관절 그 하나님이 어떻게 잉태시켰는 지 궁금해서라도 마리아에게 물어봤을 것입니다. 요셉은 죽을 지경에 처한 마리아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런 요셉이 ‘여보! 나는 당신의 생명을 구해줬으니 나한테는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을 말해 보시오. 애기 아버지가 누구요? ’라고 물어봤겠어요, 안 물어봤겠어요? 여기 점잖은 분들이 오셨는 데 자기 아내가 그런 입장에 있으면 물어보겠어요, 안 물어보겠어요? 여기 목사님이 오셨다면 물어보겠어요, 안 물어보겠어요? 남자라면 틀림없이 물어볼 것입니다. 

자, 이렇게 마리아에게 물어보니 ‘하나님이 성령으로 잉태시켰소’라고 대답을 했다면 요셉이 믿었겠어요? 믿을 수 있는 남자가 있습니까? 생명의 은인인 남편에게까지도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는 다고 하면서 틀림없이 트러블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런 관념을 가지고 성경을 쭉 훑어보면 갈릴리 가나의 잔치에 마리아가 나타나서 ‘예수야! 포도주가 떨어졌다’ 할 때, 예수가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박을 한 것이나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이 와서 만나자고 할 때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 모친과 동생이 누구뇨?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모친이요 동생이라’고 한 것에는 헤쳐놓지 못할 비밀의 내용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도 자기의 이종사촌뻘 되는 사람의 집에서 예수가 태어났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30년 사생애노정(私生涯路程)에 대한 내용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훌륭하고 후세에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왜 기록을 안 했겠습니까? 부활한 예수는 누구든지 믿을 수 있지만 몰려다니고 조롱받는 예수를 믿을 수 있겠어요? 여기 오신 목사님들이나 기독교 신도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보다 못해서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예수를 잡아 죽였습니까?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는 데 유대교 지도자 가운데서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지금의 기독교인들만 못하다고 봅니까? 나이 많은 노총각 예수가 과부 막달라 마리아의 집을 드나들고, 여인이 와서 향수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했는 데 그것을 보고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 계신 목사님들. 그런 예수님을 보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반대하는 환경이 아무리 강하게 부딪쳐와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는 체면과 위신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산 3년 공생애노정(公生涯路程)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역사적인 인물들은 하나님만을 절대시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설 수 있는 용사들이었습니다. 자기 가정이나 고향산천 등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살아 나왔습니다. 그러한 대표로서의 한 개인을 하나님은 원했을 겁니다. 그 다음엔 가정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람을 원했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람을 하나님은 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개인 구원을 넘어선 세계 구원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느냐? 물론 한 개인을 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겠지만,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어떤 개인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되, 하나님에겐 세계를 위해서 하늘을 믿고 구원받겠다는 개인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대표자를 원하되 세계를 구하기 위한 가정의 대표자로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민족의 대표자를 세우되 그 단일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대표자를 세우고, 국가의 대표자를 세우되 세계의 모든 국가를 구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하는 국가적 대표자를 원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대교 신자나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가 오면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올 줄 알았기 때문에, 이들은 메시아를 맞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메시아가 자기들을 하나로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온다는 사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이스라엘 민족의 생각과는 이렇게 완전히 상치(相馳)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야곱 같은 사람은 가정적 대표자이며 모세는 민족적 대표자입니다. 국가와 세계의 대표자로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중심적인 사명을 이어받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한 교파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교파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천당 가겠다’는 기독교인들, 예수 믿고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관(攝理觀)과 일치하지 않는 다고 봐야 됩니다. 우리는 세계를 생각할 줄 몰랐습니다. 우리 가정과 민족과 나라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런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자리에서 보게 되면 내가 개인적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구하기 위해 구원받아야 되고, 가정적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구하기 위해 구원받겠다는 그러한 가정과 개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 성도들을 약 5억으로 잡는 다면 이것은 세계 인구 35억의 7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거기서도 형식적으로 신앙하는 사람들을 골라낸다면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몇십 만도 안 된다고 봅니다. 그 중에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믿는 사람들이 있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들만 구원해 주고 나머지 30억 인류는 죽이시겠어요? 그런 허황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 용납이 안 된다고 봅니다. 이건 레버런 문이 지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를 만나 알아 보고 하나님 앞에 알아 보니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종자를 남겨놓고 굶어 죽어간 퓨리탄 정신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그 교회를 구하는 목적도 있지만 교회를 넘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한 근본적인 목적이 있는 것을 유대교인과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습니다. 

그러면 미국 국민이나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성경 속에 나오는 이 대표적인 조상들이 걸어간 전통적인 노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예외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미국이 복을 받게 됐느냐? 이제부터 그걸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중세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때는 이미 부패해서 그들은 교권(敎權)과 교조(敎條)에 얽매여 하나님의 뜻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세계는 다 집어치우고 자기들의 권력, 자기들이 닦아놓은 기반이 무너질까봐 눈이 둥그래서 거기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잘라 버렸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희생을 더 치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했는 데 자기들의 위치와 영광을 취하기 위해 그 자리를 옹호하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구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면 이걸 그냥 두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러니 깨뜨려버리든가 다시 세워 일으켜야 됩니다. 즉 신교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같은 사람이 나와서 정면으로 충돌했던 것입니다. 너희들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너희들이 사랑하는 그 이상 우리는 세계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자유롭게 지도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청교도 운동을 중심삼고 의회까지 움직여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나라를 구성한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전체주의적 교구를 그냥 유지해 가지고 추방운동과 압제를 강요하니 할 수 없이 자유신앙을 추구하는 무리는 구라파 전역에서 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신앙 즉, 하나님을 자유로이 모시고 세계적인 뜻으로서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신앙을 추구하는 운동이 불가피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중세 로마 교황청을 넘어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보다 크게 세계로 갈 수 있는 교회를 꿈꾸었던 무리들이 신교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대륙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구라파적이요, 교조적이요, 전체주의적인 교단보다 더 훌륭한 자유의 나라, 신앙의 자유세계를 꿈꾸고 나선 사람들이 이 미국대륙에 처음으로 건너와 살게 된 ‘필그림 파더 (Pilgrim Fathers)’들이 아닙니까? 이들은 그러한 나라가 있는 것을 알고 자유스러운 대륙에 가서 하나님이 원하는 자유의 천국을 만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에서 보다 자유스러운 신앙생활을 해보겠다고 나선 무리들인 것입니다. 

대서양을 건넌다는 것은 그 때에는 생명을 걸고 나선 모험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 자기의 사랑하는 부모와도 이별을 하고, 사랑하는 고향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까지 버리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며 나섰던 모험의 길이었습니다. 

이들은 길고 험한 항해 노정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를 출발시켜 놓고 이렇게 고생시키고 다 죽어가도록 버려둘 것이냐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태풍이 불어와도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이 원하는 자유신앙의 나라를 건설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모시겠다는 각오와 결의를 가지고 전진한 무리들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오는 일행은 병들면 하나님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을 중심하고 완전히 한 마음이 됐었습니다. 수난의 길을 극복하면서 끝까지 참고 하나님을 위하는 그런 장면을 바라 볼 때에 하나님편에서도 결심했을 것입니다. 

‘역사 이래 이와 같이 나를 위해 모험한 사람들은 너희들이 처음이고, 가정을 버리고 민족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나섰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이 버린 것보다 더 좋은 나라와 민족과 종족과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결심을 했으리라고 봅니다. 

여러분은 메이 플라워호가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겨울에 도착했지요? 11월에 도착했으니 춥기는 하고 식량은 떨어지고 전부 다 굶어죽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들이 훌륭했던 것은 먹을 것이 없었는데도 명년에 뿌릴 씨앗을 남겨놓고 굶어죽어 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미래를 위해 갈 길을 열어주고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이 소망하던 축복의 나라와 자유천국을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후손들을 위해 그 종자를 남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죽음의 길도 기꺼이 갔다고 봅니다. 이러한 수고의 길을 취해 가면서 후대를 위해 복을 빌 수 있었던 그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들 중 나머지 41명이 협정서를 쓰게 될 때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서한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믿음을 사수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초기 미국 개척자들의 생활 

신앙에 의한 출발이 아니었다면, 거의가 죽어가는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의 조상들은 떠나면서 자나깨나 어디에 머물든가 일체를 하나님을 모신 가운데 행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볼 때 이 세상에서 이러한 무리는 처음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로마교황청이 부패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조상에 대하여 축복을 안 해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고향을 떠나게 된 동기가 다른 이민의 경우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 하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나라와 자유신앙의 조국을 추구하면서 떠났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로마교황청을 넘어서 세계를 구하겠다는 이 사상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상과 일치했기 때문에 축복을 안 해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그 메이 플라워호에 타고 온 사람들 중 최후까지 살아남은 41명을 인디언이 환영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디언이 휩쓸어서 공격했더라면 하나도 안 남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들을 환영했느냐 하는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 죽여버렸으면 ‘필그림 파더’라는 말이 안 나왔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은 이들을 살려서 뜻을 이루기 위한 세계적인 기반을 이 나라에서 닦으려 하셨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점점 이민이 늘어남으로 말미암아 인디언 지역을 침입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그들을 잘살고 있는 인디언들의 지역에 가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즉, 이 이민이라는 것은 일종의 침략인데, 하나님은 왜 인디언들을 전부 몰살케 하고 이 침략자들을 수호했느냐는 겁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서 축복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집과 나라를 버리면서도 오로지 세계적인 자유천국을 꿈꾸고 나온 그들에게 너희들이 가는 길을 내가 백 배 천 배 축복해 주겠다고 약속을 해주시고 그 길을 열어 주려는 입장에 있는 데, 인디언들이 막으니 그냥 두었다간 뜻을 못 이루겠기 때문에 그들을 제거시킨 것으로 압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청교도들은 인디언들과 싸우게 될 때 그저 총대를 붙들고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개척을 하면서도 나무통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자나깨나 언제 습격을 받을지 모르니까 항상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맡기고, 하나님을 중심삼아서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농사를 짓고 사는 부부라 하더라도 우리가 여기서 잘살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왔다고 맹세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추수하여 수확이 있어도 자기의 수고로 거두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도와 주신 수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몽땅 바쳐서 교회짓기에 열심이었을 것이 아닙니까? 교회에 가는 것을 제일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나깨나 하나님을 위하는 데 전심전력한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구라파에서 쫓겨나 자유 신앙의 나라를 위해서 왔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필코 구교가 지배하는 구라파 이상의 환경을 만들고 구라파 이상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맹세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생이 막심하면 막심할수록 그것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 구라파 이상의 하나님의 나라를 꿈꿀 수 있는 동기가 됐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엔 학교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구라파를 능가할 수 있는 아들 딸로 교육시키겠다고 결심했고, 그 다음엔 자기 집을 짓는 데도 이건 하나님 앞에 바칠 집이라고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자나깨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 일체가 하나님을 위주한 생활을 해온 게 아니었습니까? 

여러분! 이제 미국이 독립한 지 2백년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1776년 당시 독립을 주도하던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 봅시다. 독립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영국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반역자입니다. 그런데 이 반역자들이 어떻게 이 큰 나라를 독립시켜 세계 일등국가로 만들어 놨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반역자들을 축복했겠습니까? 

독립을 주도하던 워싱턴장군이 처음에는 각처에서 패전했습니다. 최후의 밸리 훠지(Valley Forge) 전투에서 결전에 임하는 순간이 임박했을 때 틀림없이 워싱턴장군은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자유신앙을 위해 미국까지 오게 한 이 백성을 다시 영국의 손아귀에, 구교와 마찬가지의 전체주의 교권 내에 집어넣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유신앙의 나라, 하나님이 원하는 이상세계를 건국할 수 있게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영국은 국권과 군사력을 자랑했습니다. 조지 워싱턴 장군은 아무것도 없지만 군사력보다 더욱 강한 하나님을 믿고 마치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다윗이 던진 돌 하나가 골리앗의 이마를 때려 쓰러뜨릴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의 생각 전체는 하나님을 위주하여 전투에 임했을 것입니다. 군기를 나르면서도 기도하고 또 싸움에 임해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또한 선두에 선 그들과 더불어 후방의 국민도 전부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것입니다. 

신앙세계의 지도자들은 자기의 본고향에서 뜻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늘 하나님은 고향을 떠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축복해 주신 것이 전통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영국을 떠나온 이들을 하나님이 보호하여 축복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 국회가 개원될 때는 기도로 시작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유신앙의 세계로 가는 이들의 마음과 신앙국가를 바라던 하나님의 마음이 일치했기 때문에 독립군을 세워서 미국을 이기게 했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협조했으니 키워서 승리해 가지고 미국을 건국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영국은 왕과 국민이 합해서 싸웠지만 여기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딸이 함께 싸웠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자유신앙의 새로운 기독교 국가가 성립된 것이 아닙니까? 박해받는 환경 속에서 나라를 세우고는 하나님 덕분에 이겼다고 국회의원으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이 하나님을 존중하고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미국 국회가 개원될 때는 기도로 시작하지요? 여러분 미국은 하나님이 축복해 준 나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돈에는 ‘인 갓 위 트러스트(In God We Trust)’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국에서는 구교가 아닌 신교를 신봉하는 나라, 즉 새로운 자유신앙을 가진 세계적인 하나의 형태를 지닌 나라가 비로소 태어난 것입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한 것은 미국 사람들만 잘 먹고 잘살라고 하는 뜻에서 축복해 준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 축복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미국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세계적인 미국을 중심삼고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의 조상이 만약 자기들만 잘살기 위해서 이민을 간다고 생각했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이런 축복을 안 해줍니다. 북미에 이민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오로지 자유신앙의 길만을 찾아서 상륙하였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고 자유를 찾고 돈도 찾았던 것입니다. 남미로 간 사람들은 반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돈 때문에 갔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입장에서 이민 갔지만 그들은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자유와 돈도 없이 저개발민족, 후진국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2백년 동안에 이렇게 세계적인 일등국가가 됐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축복하셔서 뜻을 이룰 수 있는 대열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국민은 자각해야겠다고 저는 보고 싶습니다. 축복받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등한시하게 되면 벌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적인 결실국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까? 끝날이 됐기 때문에 이렇게 안 될 수 없어요. 이와 같은 입장을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를 재현하는 오늘의 현상 

예수님은 진리의 본체입니다. 즉 진리의 씨입니다. 그런데 이 씨는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심어졌습니다. 그 때에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죽을 입장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난 바라바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갔다가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로 갔으니 십자가로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그때 환경이 그대로 세계적인 현상으로서 열매맺어지는 때가 되면 주님이 올 때가 된 것으로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공산당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민주세계는 하나님이 있다고 합니다. 민주세계를 우익이라 하고 공산세계를 좌익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을 때에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심었으니 주님이 올 때가 되면 거두어야 됩니다. 왼편 강도는 예수님에 대해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얼마나 참소했어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죽는 데 하나님의 아들일 게 뭐냐고…. 예수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때 오른편 강도가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꾸짖었습니다. 

역사 이래 죽어가면서도 예수의 편이 됐던 사람은 오른편 강도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천국을 개문(開門)하는 선봉이 됐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공산세계는 좌익입니다. 왼쪽편이에요. 사실 그 이름은 일찍이 예수때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우익입니다. 오른편 강도와 마찬가지로 그 오른편을 지도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러면 미국은 오른편 강도의 사명을 해야 됩니다. 

공산당이 나와서 하나님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른편 강도와 같은 민주세계는 하나님이 엄연히 존재함을 증거하며 생명을 다 바쳐서 공산주의와 대항하여 싸워야 됩니다. 미국 국민은 자각해야 됩니다. 민주세계를 지도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미국 한 나라의 보호만을 위해 다 버리고 있고 하나님도 몰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이 외국을 원조하고 민주세계의 주도적인 국가로 자처할 때는 전성시대였습니다. 공산세계와 완전히 부딪칠 때입니다. 여기서 후퇴해서는 안 됩니다. 그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하면 지도자들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곳에나 하나님이 계셔야 할 터인데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 초 케네디 대통령이라든가 함마슐드 유엔 사무총장이 비참하게 사라진 것이 우연지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사롭지 않게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거기서부터 내려갑니다. 레버런 문의 말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백악관에서는 천지가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나가면 얻어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바라바와 같은 나라는 어떤 나라냐 하면 회회교 국가입니다. 한 손엔 코란을, 한 손엔 칼을 잡고 믿으면 놔 두고 안 믿으면 칼을 들어 위협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과는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공산주의와 안팎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끝날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인데도 민주세계가 못하게 되면 아무라도 공산당과 대결해서 오른편 강도의 입장에 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해야 할 기독교의 책임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파를 붙들고 있다가 세계가 망해도 좋습니까? 

그러면 그 주님을 모시기 위한 세계적인 발판국가는 누가 돼야 하느냐? 미국이 돼야 되는 데 이 미국이 병들었어요, 죽을 병이…. 

나는 뉴욕시 5번가에 가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니 월드 트레이드 센터니 하는 고층 빌딩을 짓고 야단이지만 그거 해서 뭐합니까? 거기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날에는 사고입니다. 이 나라를 축복한 것은…. 그런 고층 건물을 지을 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해야 하는 데 도리어 반대경향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썩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러시아워가 되어서 길을 쳐다보게 되면 그 가운데 머뭇거리는 젊은이들이 전부 다 윤락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라고 축복해 주었습니까? 세계로 가는 새로운 퓨리턴 운동을 일으켜서 세계를 구하겠다고 각오하는 청년들이 있어야 할 터인데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없더라도 하나의 바위를 놓고 그 바위에 청년들이 모여서 이것이 미래의 세계를 구할 제단이라고 하면서 울며 기도한다면 도리어 그것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뉴욕에서는 하나님이 떠나고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뉴욕은 악마의 도성이라고 세계에 소문나고 있어요. 백주에 살인사건이 빈번하고 백주에 강간이 성행하는 이 도시를 만들어 놓으라고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망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내포하고 있어요. 

청소년들이 지금 타락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드러그 문제가 골칫거리인 것을 지금 알고 있지요? 가정은 파탄되지요, 흑백문제는 앞으로 더 큰 문제로 번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공산주의의 위협과 경제 공황이 찾아올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왜 그렇게 되느냐면 하나님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미국 어느 곳이든 하나님이 계셔야 할 터인데 어디에서든지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떠났어요.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정부에서 하나님이 떠나고 있어요. 

미국이 외국에 대하여 원조하는 법을 뜯어고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레버런 문이 미국에서 왜 피땀을 흘리며 이런 활동을 해야 됩니까? 이 나라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것을 누가 책임질 수 있느냐는 겁니다. 교회의 위신은 최근 십년 동안에 땅에 떨어졌습니다. 늙은이들만 모이고 젊은 사람들은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지금까지의 자유 행동, 모든 것도 믿을 수 없어요. 교회를 혁신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는 것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여러분의 개인주의 사상을 타파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 미국 대통령이 하겠습니까? 미국의 재벌이나 대학가의 교수들이 하겠습니까? 다 실패입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미국에 살고 싶어서 온 사람이 아니예요. 

1천 년 동안 미국에 있기 위해서 찾아왔던 하나님이 보따리 싸가지고 떠나면 어디로 가실 거예요? 한국에 가시겠습니까? 모스크바에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저개발국가에 가시겠습니까? 어디로 가실 것인지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내가 미국에 와가지고 반대받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청년들이 다 모여서 세계로 가는 새로운 퓨리턴운동을 거국적으로 제기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나는 한국을 떠날 때 한국 교인들이 통곡하는 것을 뒤에 남기고 왔습니다. 한국에는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 가지고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까? 한국 가지고는 안 되겠기에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향 산천을 버리고 조국을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런 길을 가야 된다고 천명하고 왔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사상을 받아서 세계로 갈 수 있는 미국의 후손들이 있을 것이라고…. 

여러분,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우리 집에서 떠난 하나님을 어디 가서든 찾아와야 되겠습니다. 집이 문제가 아닙니다. 차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여러분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다시 모셔야 됩니다. 

나는 그래서 미국에 와 가지고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별별 사람들이 레버런 문이 뭣하러 왔느냐고 의심을 하고 있어요. 내가 돈이 필요해서 온 사람이 아닙니다. 쓸 돈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여기서도 남의 돈을 쓰는 게 아닙니다. 내 재산을 투입하고 내 가정을 투입하여, 일족이 망하더라도 미국을 살려서 세계를 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울며 떠나셨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무리 많으면 뭘합니까? 떠나는 하나님을 붙들고 당신이 계실 수 있게끔 만들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 땅 위에서 우리라도 그러한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떠나는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서라도 다시 되돌아 보실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그런 무리들을 빨리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세웠던 본의(本意)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새로운 청교도운동을 거국적으로 전개해야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은 교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보다 나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 그리고 나라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미국을 위해서 있는 미국이 아니라 전세계를 위해서 있는 미국을 만들면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취지 밑에 여러분에게 이러한 통고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이 하나님을 위해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고 여러분이 그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게 되면, 미국은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런 일을 위해서 여러분을 인도한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이 염치와 체면을 불구하고 한번, 두번, 세번, 계속적으로 찾아다니는 것은 미국의 장래를 위해서, 미국을 살리기 위해서 그러는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85%가 대학 출신입니다. 그 학사 출신들이 2달러 받겠다고 표를 판매하러 다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슬픈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 망할 수밖에 없는 미국과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거국적인 운동을 일으켜서 공산세계와 아프리카 그 어디라도 갈 수 있는 , 새로운 청교도적 정신을 가진 청년들을 모아 워싱턴에서 대통령과 장관들로부터 국민 전체가 그들을 환송해서 세계로 보내는 미국이 되면 미국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섭리역사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이 불가피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나라에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청교도 운동, 필그림 파더들이 한 것과 같은 운동이 벌어지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캠페인이 벌어져야 하겠습니다. 대학가에서 총장으로부터, 교수들로부터 축복을 받은 학생들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뻗어나가게 되면 미국은 영원히 축복을 받아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중심국가로 남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국과 국민에게 이와 같이 해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나와 우리 젊은이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만큼 자진하여 나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당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모신다면 가정문제, 윤리문제, 청소년문제, 인종문제, 공산당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가중해서 내리실 것이니 경제적인 파탄도 해결될 것입니다. 이것만이 미국이 살 수 있는 길이요, 미국을 위해 하나님께서 다시 바라는 소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부디 그렇게 돼 주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저녁 여러분들에게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빌면서 오늘 제 말씀을 끝마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참사랑 | 작성시간 14.12.09 감사합니다.
  • 작성자심경 | 작성시간 15.11.23 아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주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작성자최호덕 | 작성시간 19.02.01 천지인 참부모님 진심으로 사랑 합니다 아주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