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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과 세계 - 26. 재회의 심정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14.12.11|조회수275 목록 댓글 1

재회의 심정


때 : 1977. 9. 11.
곳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여러분과 이렇게 재회할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내가 여기를 출발한 것이 7월 3일이었으므로 꼭 70일이 됩니다. 이 70일 동안에 여러분이 선생님을 애모하는 심정으로 기다려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재회의 감격은 서로가 사모하는 정과 그리워하는 정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으며, 또 공통의 목적과 목표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만남의 의의

나는 한국인으로서 아시아에서 왔습니다만, 여러분은 미국인입니다. 한 쪽은 동방 한 쪽은 서방이라는 , 문화 전통이 전혀 다른 양극의 세계를 이어서 결합시키려는 배후에는 무엇인가 깊은 섭리적(攝理的)인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이렇게 아시아에서 온 어느 한 인물을 사모하며 기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는 바와 같이 바다에는 난류(暖流)와 한류(寒流)가 있습니다. 바다는 마치 가만히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멈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두 가지의 해류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해류는 각기 저쪽 방향, 이쪽 방향으로 격심하게 움직이면서 항상 서로 부딪치고 마주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방대한 바다가 움직이지 않고 정지되어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넓디 넓은 대양에 큰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흐르고, 달리고, 부딪치고, 서로 소용돌이치는 등의 많은 움직임을 해양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양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사람은 하루에 적어도 두 번은 바다물이 부풀어 오르거나 감소하거나 하면서 조수가 드나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의 움직임은 그뿐만은 아닙니다. 조수가 흘러 서로 격돌하여 움직이는 속에 전지구의 움직임이 관련지어져 있는 것입니다. 

바다 속에는 이 조수의 흐름에 따라서 다종 다양한 물고기들이 밀치락거리며 헤엄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의 수많은 물고기의 대부분이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어장, 예를 들면 보스톤 북부와 유럽 북부의 어장 등은 예외없이 난류와 한류가 교류하고 있는 곳입니다. 

물고기의 종류는 민물고기와 바다 물고기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산란할 때에는 흔히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장소를 찾는 것입니다. 산란의 목적을 위해 그들이 특정한 교합점(交合點)에 모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처럼 만남이라는 것,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고대 문화의 근원을 살펴볼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 발상지는 예외없이 어디나 다 물과 육지가 교차하는 장소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육지도 항구도 강도 모두 하나로 집합합니다. 그런 지형적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인류의 문명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문명이나 이탈리아 문명과 같이 반도 혹은 항구와 강이 합치하고 있는 특별한 지역에서 싹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역은 인류 문명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지역이라 하겠습니다. 

극적인 만남

만남과 재회는 그 거리나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감격은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양극(兩極)이 만나게 되면, 그 감격은 극적인 감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은 지구의 반대쪽 가장 먼 곳에서 미국에 왔다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라고 하면 멀리 떨어진 나라, 어쩌면 달보다도 먼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인의 마음 속에는 한국은 전쟁을 치른 나라, 전쟁의 참사로 무참하게 상처입은 폐허화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한국이란, 미국에서 그다지 빛이 선명한 나라로는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미국 사람들은 여러분들과 선생님의 관계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근대 문화의 정점에 있다고 자처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으로부터 온 한 인물에게 끌리다니, 그에게 도대체 어떠한 힘과 매력이 있기 때문일까? 이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라고 의아해 하면서 사람들은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광대한 바다는 표면에서 보면 모르지만 거기에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며 큰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레버런 문과 여러분들이 대양의 조류와 같이 하나가 될 때, 보통이 아닌 위대한 사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대체 누구의 의지일까요? 

레버런 문의 의지일까요, 여러분의 의지일까요?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무엇인가 그렇게 되게 하는 섭리적인 의지라거나 뜻이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두 가지의 극을 서로 밀어붙여 하나의 위대한 것으로 결합시키는 어떤 우주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는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에 있어서 무엇인가 모르게 흥미를 끄는 곡은 높은 음에서부터 낮은 음, 혹은 강한 음에서부터 약한 음으로 급격한 변화가 있는 소리와 리듬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드럼을 치는 사람을 보면 그는 다만 드럼을 위 아래로 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드럼을 두드리기 위해서 그의 움직임은 폭 넓게 뛰어 오르거나 내리거나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움직임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것입니다. 흥미를 돋구는 소리를 내는 것은 드럼 자체가 아니라 드럼을 두드리는 인간입니다. 그의 모든 동작, 표정, 그밖의 모든 움직임이 종합되어 그와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소리가 청중들의 가슴을 메아리 치게 하고, 공감을 가져다 주고 흥분의 분위기로 이끄는 것입니다. 

바이올린은 가느다란 현(絃)을 사용하는 악기입니다. 그것은 매우 여성적이고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이 바이올린에도 높은 음과 낮은 음이 있어, 음의 변화가 대단히 심한 악기입니다. 굵은 현은 낮은 음을, 가느다란 현은 높은 음의 소리를 냅니다. 이 현에 의해서 바이올린은 아름다운 음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조화에 따른 아름다움

인류 역사에 있어 동서양의 융합을 생각하면 바이올린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이올린의 낮은 음의 현과 같은 것입니다. 아시아의 문화는 마치 높은 음과 같아서 진동(vibration)이 지극히 높아 꿰뚫는 듯한 소리를 냅니다. 걸음을 걷는 방법도 동양과 서양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타잔이나 킹콩과 같이 걷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의 걸음 걷는 방법은 종종걸음입니다. 댄스를 보더라도 조화를 이룬 좋은 댄스를 연출하려고 하면 여기서도 일본인과 같은 작은 움직임과 미국인과 같은 큰 움직임의 양극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움직임이 종합적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조화된 움직임으로 나타날 때, 거기에서 위대한 예술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조화라는 말을 쓸 때, 그 말은 단순히 같은 것을 결합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화의 상태가 아름다움을 낳을 때는 양극단의 다른 것이 융합하여 하나의 아름다움을 창출할 때입니다. 조화의 가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것이 결합하여 한 가지 의미를 빚어냄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종류의 꽃을 좋아합니까? 빨간 꽃입니까 혹은 노란 꽃입니까? 

인간은 저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황색만을 좋아한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그 세계는 곧 황색으로 화하게 됩니다. 황색의 의복, 황색의 입술 연지, 심지어는 얼굴까지 황색의 화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세계는 참으로 황색 빛의 지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신이 돌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계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주의 신비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조화입니다. 모든 빛을 융합한 때의 조화입니다. 어떤 때는 황색, 적색, 청색, 그것이 뒤섞인 것, 얼룩 무늬가 있는 것 등 여러 가지 색의 세계입니다. 여러 가지 빛이 있으므로 우리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심정을 여러 가지로 반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우리들은 그 아름다움에 결코 싫증 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조화

박보희(朴普熙) 총재를 보십시오. 오늘 아침 박총재는 갖가지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검은 머리카락과 조금 그을린 이마와 입술, 게다가 회색 바지 등을 차려 입었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이처럼 많은 다른 빛깔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무엇인가 한 가지 악세사리로 장식합니다. 목걸이라거나 반지라거나 장식품을 몸에 걸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같은 것을 몸에 장식합니까? 하나하나 다르기 마련입니다. 빨간 빛의 옷을 입었을 때, 그것에 대칭되는 것을 몸에 장식하기 마련입니다. 대칭된다는 것이 결국 조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푸른 눈을 가지기 바랍니까? 나의 눈이 검정 색과 갈색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노(No)’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마음 속으로는 푸른 눈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다 푸른 눈, 푸른 이, 푸른 혀를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거기다가 푸른 얼굴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왜 하나님은 거기에 푸른 눈을 준 것일까요? 흰 피부와 큰 코, 게다가 노란 머리털, 그 속에 꼭 알맞게 대조적으로 조화되도록 끼워진 두 점, 그것이 푸른 눈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두 개의 작은 연못과 같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푸른 눈을 여러분께 주었습니다. 

특히, 미국인의 코는 높고, 눈은 깊으므로 안을 들여다보는 데에 몇 마일이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여 보십시오. 눈우물의 깊숙한 곳이 흑색이라고 하면 웬일인지 두렵고 어떤 면에서는 공포감까지 느끼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검은 눈망울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푸른 눈을 주어서 극적인 아름다움과 완전한 조화를 자아낸 것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어느 정도 공감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검은 이를 가지런히 갖춘 사람을 상상하여 보십시오. 비록 그 사람이 웃더라도 무서운 얼굴로 나타날 것이니까요, 그것은 조화가 아닙니다. 

피조물(被造物)을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훌륭한 예술가라고 느낍니다. 그것을 관찰하면 그보다 더 뛰어난 조화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동양인의 얼굴은, 특히 여성의 얼굴은 평평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에 맞추어서 눈의 빛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여 사물을 대치시킬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참으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창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극과 극이 만나서 융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이 만들어집니다. 암흑의 세계도 두 가지 것이 만날 때, 거기에는 언제나 무엇인가 번개와 같은 섬광이 있는 것입니다. 문화의 맨 끝, 즉 한국에서 온 아시아 문화, 그것을 대표하는 아시아인인 레버런 문에게 그 반대의 극지에 있는 미국의 젊은이가 왜 따르는 것입니까? 우리들은 여기에 동과 서의 양극을 합치시켜, 조화된 문명으로 통합하여 우주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부모의 대다수는 나에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강물이 흐를 때 언제나 어딘가에 어떤 방해물이 있습니다. 물이 바위에 부딪칠 때, 거기에는 술렁거림과 혼돈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개의 거대한 문명권이 하나로 융합되어 서로 사귈 때, 필연적으로 어디에서인지 생길 소동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혼란과 소동이 생기더라도 결국에는 그것들도 통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이 전부 다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한 주류로 최종적으로 휩쓸려 들어갑니다. 한 번 주류에 합해진 것은 주류의 앞을 초월하여 갈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주류와 함께 흘러가는 것입니다. 

현재 부모가 반대하여 부정적이었다 하더라도 때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투덜투덜 불평을 하면서도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 먼 흐름의 말단에 뒤따라 올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또 하나의 대규모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강물의 흐름은 여러 가지 종류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급류와 소용돌이, 혼돈과 격돌 속에서 어우러져서 주류로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폭포에 이르렀다고 합시다. 그 때는 모든 물의 움직임이 정면으로 향하고 마는 것입니다. 

조화란 각자 개성을 갖고 서로 관계 맺을 때 생기는 것

여러분이 산에 가면 많은 바위와 온갖 모양을 이룬 돌들과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무수한 암석과 나무뿌리 사이를 빠져나와 솟아올라오는 물은 참으로 신선하고 건강에 좋은 물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 물이 모든 종류의 물질로부터 많은 요소를 흡수하여 잘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따금 아름다운 산새가 왜 산에서만 사는 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물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피조물이 조화를 이루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산자락을 흐르는 강, 계곡 밑바닥에 널려 있는 돌멩이의 하나 하나에서부터 벼랑에 튀어나온 바위들, 산천 초목의 모든 빛과 모양과 종류는 전체를 아름답고 조화 있게 한데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 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어느 것도 쓸데없는 존재로는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한층 더 아름답게 비치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높은 산에 올라가 땅 속에서 솟아나는 물을 발견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산에서 솟아나는 물은 결코 사람을 해치는 이물질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산의 사슴과 토나카이(tonakai)를 보십시오. 언제나 맑은 물을 마시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해 없는 공기를 호흡하며, 그렇게 늠름하고 건강하게 빨리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하모니(harmony) 즉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화를 이룬 세계란 획일화하고 편중(偏重)된 세계가 아닙니다. 조화란 따로따로 각기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면서 서로 돌보고 관계지어져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산을 멋있게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높이 자란 소나무만이 산을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 종류의 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나무들, 거대한 나무, 구부러진 나무, 갖가지 그림자와 빛을 비춰낸 나무들이 그 산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만남의 이유

본래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왜 여기서 만나는 것입니까? 왜 하모니가 필요한 것입니까? 왜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야 하는 것입니까? 또 만남에는 어떠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재회의 심정’이라는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외적인 통일이나 일치뿐이면 그것은 천박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깊은 심정적인 사랑을 중심으로 한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만남의 그 어떤 이유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온갖 연구 분야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 분야는 조화에 대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느 대학이 조화과라는 학부를 설치했다 하면, 그 학부에서 연구한 학생이 결혼할 때 단순히 획일화된 동족, 문화 민족들끼리의 결혼을 원하리라고 생각합니까? 틀림없이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대적인 사람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백인에 대한 상대라 하면 그것은 흑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의미 깊은 것입니다. 

미국에는 백인과 흑인이 있습니다. 아주 정반대되는 사람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대체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는 완전한 조화가 보입니까? 조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대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요? 

솔직하게 말해서 조화를 방해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흑인입니까, 백인입니까? 

여기 미국에는 전혀 조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두 극(極)을 잘 맞추어 조화를 이루려고 미국을 축복하였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부조화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먼저 백인입니다. 하나님은 미국인이 세계 속에서도 가장 조화학부를 필요로 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조화학부의 학생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특별 과목을 잘 수료할 때에 처음으로 이 세계에 조화가 벌어질 것입니다. 

한낮은 밝고 방대한 태양 빛이 그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한밤중을 향해서 비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밤중을 통과하지 않으면 이튿날의 한낮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한밤중의 어둠을 통과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이튿날의 한낮에 나타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서양문화는 원칙적으로 백인문화입니다. 백인문화는 매우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백인문화는 그밖의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최고의 문화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밖의 원시적인 암흑의 문화라든지 황색인종의 문화를 배척하든지 하여 자기들만이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한밤중을 통과할 것을 거부하는 한낮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다음 낮을 맞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밖의 것을 배척하는 그러한 서양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저지하려고 해도 결국은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조화는 문화를 존속 번영시키는 열쇠

오늘날 서양문화는 한낮과 같은 가장 밝은 기간에 있으므로, 앞으로 서양문화의 방향성은 원시적이고 어두운 문화로 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문화에 그 밖의 어떤 것을 혼합하려고 노력하면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영광에 찬 번영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양문화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 쪽이 완전한 조화에 가까울까요? 높은 문명은 높은 문명에 그치고, 낮은 문명은 낮은 문명에 그치는 것과, 두 문명이 서로 그 위치를 교환하는 것과는 어느 쪽이 완전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옛날의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정화(精華)를 열락(悅樂)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문명이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강대한 힘을 자랑한 로마 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향락하고 있는 문명이 미래에도 영원히 존속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문명이 멸망하여 버리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거나 예감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그 어느 문명도 다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최고의 정점을 구가하고 있는 서구문명도 밤이라는 것을 탐구하여 통과해 가는 비젼이 없으면, 예전에 불멸을 자랑했던 모든 문화와 마찬가지로 이 문화도 또한 사라져 갈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보편적 법칙인 것입니다. 예외가 없는 ,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조화가 문화를 존속시키거나 번영을 약속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화합자가 있어야 합니다. 고무풀이나 접착제와 같이 중간에 작용할 만한 인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리적이고 규칙 바르고 엄정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극과 극인 백과 흑이 조화되기 위해서는 그 중간색인 황색이 이 두 가지의 중간에 서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왜 레버런 문을 아시아 인종 중에서 선택했는 지 명료하게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화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화합자와 매개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화합자에 의한 조화

하나님은 백인과 흑인이 험하게 격돌하고 있는 사태에 직면한 이 미국에 레버런 문을 데리고 왔습니다. 나는 한쪽 팔로 백인을 받치고 또 한쪽 팔로 흑인을 받치어 춤을 추면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두 인종을 싸움의 형국으로부터 미소의 형국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인이 나를 거절하는 데 비해, 흑인이 나에게 친애하는 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훌륭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흑인만을 좋아하거나 백인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중요한 진리인 것입니다. 

백인문화 즉 서양문화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위협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위협으로 인해 서양문화는 멸망의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공산주의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황색인종에 의해 야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양인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해서 그들은 대단히 신경질적이고 편집병적(偏執病的)이고 회의적입니다. 그들은 레버런 문에 대해서도 먼저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그는 황색인종세력(yellow power)의 중심적 인물이 아닌가? ’ 하고 서로 속삭이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옐로 파워(황색인종의 세력)와 공산주의의 힘이 하나가 되어, 경시하기 어려운 세력으로서 서양 세계에 대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공입니다. 미국은 이제 이 나라에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이 느끼고 있는 두 가지 위협

공산주의 국가인 중공은 거대한 황색인종의 힘(옐로 파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중공의 관심을 쟁취하기 위해 외교 사절을 보내거나 경제 문화 협력을 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공의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들은 진정한 친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제일의 친구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중공을 동료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입장입니다. 

왜 태양 아래에 있어서의 최강 최대의 국가인 미국은 중공에 위축되고 있는 것일까요? 왜 건국 30년 전후의 중공에게 미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서양문화를 이겨낼 그 무엇인가가 힘을 가지고 밀려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옐로 파워와 함께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해일이 미국을 향해 대결하여 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일종의 공포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적인 하나의 역사의 흐름인 것입니다. 

나는 같은 영역인 아시아에서 왔습니다만, 나의 길은 중공과는 전혀 반대의 입장입니다. 현실 문제로서 중공은 옐로 파워의 공산주의를 함께 가지고 현대의 아시아에 가공할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한편, 나는 공산주의와는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또 하나의 옐로 파워로서 등장하여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은 실재한다’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중공은 ‘우리들은 참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생을 겪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공산주의에 의해서 세계를 정복한다. 우리 황색인종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옐로우 파워인 레버런 문은 ‘아니, 우리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모든 인류가 하나의 공통의 어버이, 즉 하나님 아래 하나가 되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서양의 젊은 청년 여러분들과 결합하여 거대한 하나님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옐로우 파워는 현재 서로 얼굴을 맞대고, 또 격심한 싸움 속에 대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서양문화에 대한 옐로우 파워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서양문화에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거대한 용기인 콘테이너(container)로서, 이 용기를 채우려고 미국이라는 서양세계로 온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용기 속을 재료로 자꾸만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이윽고 이 용기가 가득 채워져서 넘쳐 흐르는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 거대한 조류를 거역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거대한 파워가 하나님의 소원대로 작용할 것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황색인종을 위한 것으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서양문화와 전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모든 인종은 흑인과 황인종 등의 구별 없이 큰 흐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더 거대한 흐름으로 성장하여 가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곳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통일교회는 이 조류를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하면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또 가장 낮은 곳에 있다고 하면 가장 정상으로 향해야 합니다. 현재 통일교회는 미국에 있어서 밑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나라를 하나님쪽으로 향하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제부터 이 일이 현실적인 문제로서 전개되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밑바닥으로부터 정상으로 향하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들은 공산권을 향하는 것입니다. 바다를 보면 열대지방의 물이 북극으로 향하고, 북극의 물이 온난 수역을 향해서 흐르고 있음은 일반적으로 주지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은 회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문화의 흐름도 이와 같이 회전하고 있습니다. 고대 문화는 열대 문화입니다. 인도 문명도 애급 문명도 그리스 문명도 다 열대거나 아열대 지역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현대 문명은 온대 문명권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서독, 일본, 영국 등의 나라는 모두 온대 지역 속에 있어서 세계적인 큰 세력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필연적으로 한대 문명으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의 소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한대 문명은 전세계에 휘몰아쳐서 폭풍설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역사를 보면, 원래 인류 문명은 봄절기와 같은 에덴의 온대문명으로 시작되어 여름절기 같은 열대문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양대(凉帶) 문명으로 이행되고, 나아가 현존 공산 제국이 존재하는 겨울절기의 문명인 한대 문명으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가을 문명권입니다. 공산주의가 이 가을의 문명권으로 불어닥치어 겨울이 이르렀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씨앗

모든 잎이 물들어 떨어져 갑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을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수확이란 새로운 세대를 약속하는 씨앗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떨어져서 나무는 앙상하게 되지만, 그 열매 속에 씨앗이 생명을 가지고 존재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이윽고 봄에, 해당하는 새로운 문명이 씨앗으로 뿌려져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새로운 인류의 씨앗이 되는 것일까요? 

나는 여러분에게 인류 문명의 흐름이 정확하게 복귀의 노정에 꼭 들어맞는 다는 것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복귀에는 어떤 기본적인 골격, 조리가 있는 것입니다. 중심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씨앗인 것입니다. 씨앗은 외피(外皮) 속에 숨겨진 요소인데, 이떠한 기후에도 썩지 않는 어떠한 것보다도 더 굳은 것입니다. 새로운 날이 오기까지 잠자코 견디어 자기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씨앗은 어떤 의미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내부에는 강력한 생명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엄습하여 오더라도 그런 씨앗만이 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한 겨울이 씨앗을 단련시키는 유일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원칙이며, 내가 지어낸 특별한 이론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 새로운 생명의 길, 신앙의 길은 공산주의에 의해서 침범될 만한 약한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도 서양문화도 그 밖의 어떠한 사상, 종교, 이데올로기도 이 삶의 방법에 대하여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씨앗은 사계절의 어떠한 온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고 몇십 년 몇백 년이고 생명을 계속하여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 씨앗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이 어떠한 혹한 속에서도 살아남고,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씨앗이 되어 있다고 실감하고 계십니까? 이와 같은 개념을 이제 비로소 알아내어 의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가운데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생명의 위대함과 섭리를 깨달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리라 믿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틀림없이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절대적 확신을 가졌다고 하면,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중대한 문제이며, 여러분에게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겨울을 통과하는 씨앗

오늘 아침 나의 설교를 요약하면, 하나의 황색 세력(옐로 파워)이 또 하나의 황색세력 즉, 하나님을 부정하는 중공이라는 세력을 상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구상의 모든 인종을 하나님이라는 공통의 부모 아래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만이 아니라 실천에 옮길 확실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열매맺게 하기 위해, 거대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갖가지 시련을 극복하며 몇 번이고 겨울과 같은 혹독한 고난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서양문화는 가을의 문화에 해당합니다. 가을은 빨리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 앞에 겨울이 문을 두드려서 방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한 알의 씨앗이 되기 위해서는 겨울의 차가운 기후에 견딜 수 있는 굳은 껍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러분은 규칙 바르고 엄격하게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여름이 오면 시원한 곳으로 피서를 가고, 겨울이 오면 따뜻한 마이애미비치로 떠나갑니다. 통일교회는 반대입니다. 우리들은 차가운 기후에도 싸워 이겨내야 합니다. 또 더운 기후 속에서 견디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환경과 만나면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인들의 삶의 방법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견고한 씨앗이 되었습니까? 공산주의와 같은 차가운 기후에 시련을 받을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까? 그들로부터 고문을 당하면서 신앙의 포기를 강요당하는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의 미국의 현실에 있어서 여러분은 상당한 문제아로 되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을 바르게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역사의 필연적인 흐름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운 겨울 동안에도 우리들은 원기 발랄해지는 것입니다. 이윽고 봄이 와서 씨앗이 싹이트는 것처럼 우리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희망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중화문화(中和文化)의 도래

이제 우리들은 인종과 문화가 다른 환경으로부터 모였으며 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이루어가고 있는 일은 맑고 허물어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서로 계속하여 교환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견고한 씨앗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로부터 에너지와 성분을 흡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흙과 물, 비료와 태양 광선 등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씨앗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백인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마음 속에서 ‘나는 흑인도 황색인종도 좋아하지 않는 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인종 편견에서 완전히 탈피했습니까? 흑인 여성들은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도 ‘백인에게는 참을 수 없다. 비록 원리를 들어 알고 있지만 백인은 싫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는 틀림없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 아래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불멸의 아름다운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멸의 씨앗을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윽고 봄은 찾아올 것입니다. 새로운 날의 이상세계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봄의 문화이며, 나는 그것을 중화문화(中和文化)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중화란 중심적 조화 혹은 중심적 평화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 중심적 조화의 요소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제 인류 역사는 봄의 문화를 향해서 이동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에덴 동산, 즉 지상천국인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씨앗

한 알의 씨앗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레버런 문으로부터입니까? 그 씨앗의 원인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뿌리이고 여러분이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과정을 통하여 이 씨앗을 창조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야만 씨앗이 굳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류애(人類愛)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의 사랑은 한 가지 사랑 속에서 조화되어야 합니다. 

원은 어떤 점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습니다. 이 원운동(圓運動)이 중심점으로 오면 다시 중심점 밖으로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로이 안과 밖을 움직이는 것은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이 원운동의 중심점은 운동의 중심,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메시아가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메시아에 의해서 천적(天的) 사랑이 중심으로부터 초래되어 우리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인간과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하게 조화된 이상사회는 단순히 이상으로서, 혹은 꿈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메시아는 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온 현실을 실제적인 것이 되게 하는 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레버런 문의 최대의 공헌은 인류와 인류역사에 대하여 하나의 공동 목표 아래 인류를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하나의 조화적 이상을 실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언제나 북과 남의 사이에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남부와 북부가 서로 적이 되어 남북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동양과 서양도 서로 싸워 왔습니다. 이 사실은 국가간의 문제 뿐만이 아닙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단체들끼리도 언제나 서로 싸웠던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내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툼의 원인을 통일시킴으로써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한반도에서마저 남북 사람들은 각기 다른 정치적 체제 아래서 서로 적의를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서로 증오해 왔습니다. 

다툼의 원인을 통일해야

그러나 통일교회의 결혼에는 남북의 일치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남부의 신랑과 북부의 신부가 서로 적으로 상대하여, 마치 두 사람의 기사(騎士)가 결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두 사람은 서로 미소를 보내고 사랑에 열중하게 되어 결국에는 최고의 행복을 안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두 사람이 적과 같은 사이였으니, 양가의 가족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원수같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어느 사이엔지도 모르게 신랑과 신부의 기쁨에 싸이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제 수많은 청년들이 ‘이번 합동 결혼식은 언제입니까. 저도 참가하고 싶습니다’ 하고 외부 사람까지도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마치 작은 파도가 해일과 같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이제는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행복한 한 쌍의 부부를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집니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색안경으로 보면서 ‘다음 결혼식은 언제인가? 미국 청년들의 반응은 어떤가? ’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인가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전세계의 인종이 하나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국제결혼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문화권과 환경으로부터 선택된 남녀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사이좋게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조화와 통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들은 거대한 사랑의 힘을 찾아야 합니다. 다만 최고의 사랑의 힘에 의해서만 그와 같은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움직임과 환경에 따라서 번롱(飜弄)될 만한 사랑은 아닙니다. 최고의 사랑만이 국경을 넘고, 인종의 경계를 넘고, 문화의 경계를 넘고, 지식의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심정의 재회에 관한 중심진리

인류역사를 통하여 전개되어 온 인류애는 이와 같은 벽을 초월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하고 존재합니다. 통일교회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는 최초의 종교 단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한 번 느끼면 아침 태양과 같이 퍼져서,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습니다. 더욱 더 그 반짝이는 아침 빛이 온 세계를 골고루 비추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의 중심인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기준에 연결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점에 그칠 수는 없습니다. 편재적(遍在的)이며 온 땅에 골고루 퍼져 내외로 출입하여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 가령 여러분이 그것을 중심으로 회전할 때, 여러분의 의도는 하나님의 심정과 만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중심점과 만나면 너무나도 아름답게 압도되는 체험으로 인해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만나 밖을 향해서 튕겨 나올 때, 가족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껴안고 싶을 만큼의 감격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들은 모든 세계를 통과하면서 지상천국 실현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쁨의 재회, 심정의 재회에 관한 중심적 진리입니다. 

동양과 서양이 함께 만나 기뻐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중축(中軸), 핵심이 하나님의 심정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말로써 하나님의 심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공허함을 느낌은 잘못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 중심축인 하나님의 심정의 움직임이 없다면 비록 통일교인이라 하더라도 내면에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전부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마음 속에 들어와서 살아 있게 되면, 홀로 있어도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충실해져 옵니다. 완전하게 채워진 사람은 완전하게 행복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밖에서 돌아왔을 때, 형이나 누나가 반갑게 말하고 웃어 주어도, 만약 어머니가 없다면 그 아이는 ‘집에 아무도 없어요? ’ 하고 묻습니다. 실제로는 즐겁고 다정한 형과 누나가 있어도 말입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어머니가 사랑의 주체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중심, 중심축이 거기에 있으므로 모두 충족해져서 무심히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주체의 위치에 서서 그 사랑을 넓혀야 합니다. 그 사랑을 충분히 다 바쳤을 때, 이상이 배가되어 실현될 것입니다. 사랑은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속도에 대하여 빛의 속도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장 빠르고 가장 밝고 가장 흡족한 것입니다. 사랑은 가장 달콤합니다. 온 우주 속에서 사랑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지루하고 따분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여성이 이 사랑의 가능성을 알았을 때, 갑자기 그녀는 몸 전체가 현저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적은 다만 사랑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협박이나 총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인의 바른 생활 태도

나는 여러분이 통일교인의 삶의 태도를 알아 주셨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철학, 원리의 핵심은 우주의 중심, 하나님의 심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나 자신이 통일교회에 있어서 최고의 것, 가장 광택이 있는 것, 가장 감미로움으로 가득찬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왜 아침 일찍부터 여기에 모여 오는 것입니까? 왜 그다지 미남도 아닌 나를 보러 오는 것입니까? 나는 아무 선물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사랑의 특별한 힘을 발산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자신이 사랑을 넓혀 나갈 수 있게 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사랑은 모양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없는 가정에는 재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존재하지 않는 통일교회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나는 인간으로서는 여러분과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나는 한 평생을 하나님의 심정을 받는 일에 다 바쳐 왔습니다. 그 누구도 나만큼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마음에 느끼어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빛을 발하는 사랑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태양이 될 수는 없지만, 등대가 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길거리에 나오면 무니라는 것을 알고 경멸당하거나 침뱉음을 당하거나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이 있지 않게 되면 ‘그 쾌활한 청년은 어디에 갔을까? ’ 하고 말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미 여러분은 등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등대라는 자신을 갖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등대는 태풍이 불어와도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똑바로 서서 더욱 힘차게 반짝여야 합니다. 역경 속이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반짝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등대의 사명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운 전통

나는 전에 그로스터 항구에 70일간 체재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나는 전설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내가 바다에서 닻을 내리자 여러 척의 배가 모여 멀리에서 쌍안경으로 나를 관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반대파 사람들은 ‘물고기야, 도망쳐 버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나에게 순종하듯 잡힙니다. 너무나도 빠른 시간에 많은 물고기를 잡으므로 모두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는 무엇인가 붙임성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 나쁜 말은 하지 말자’라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가장 빨리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숙련된 어부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잡은 물고기를 팔아서 모두 술을 사 마십니다. 그러나 나와 경쟁하여 나를 이기기 위해서는 술도 마시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곧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 쇠퇴하여 가는 어항을 구원할 사람은 레버런 문 외에는 없다’고 말합니다. 시장도 경찰서장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빠짐없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났습니다. 3시30분에는 이미 밖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달그림자 아래 배가 출항하므로, 레버런 문을 중심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습니까? 보트의 멤버는 나에게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졸리다는 따위의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이번 여름, 나는 금전적으로 벌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통을 세웠다는 점에서 몇 천억 달러 이상의 가치있는 일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 전통 위에서 여러분이 나아갈 것입니다. 전통을 세운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중노동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후손을 위해서도 전통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70일 여정이었습니다. 

내가 전통을 위해 얼마만큼 심혈을 기울였는 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7년간 나는 매일 2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날마다 원리를 계속하여 말했습니다. 어느 식구에게 졸음이 몹시 엄습해 왔을 때, 갑자기 그 졸음이 달아날 만큼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천사가 그 사람에게 출현하여 ‘무엇을 하고 있소! 선생님을 보시오. 선생님은 매일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계속하여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꾸짖은 것입니다. 

미국의 대표로서의 자각

미국식구 여러분들은, 나의 이와 같은 이야기는 아마 이제까지 들은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원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옛날 나 자신이 체험하여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한 평생은 그와 같은 경험과 에너지와 영적 힘의 풍부한 축적인 것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재산을 전부 미국으로 가지고 와서 모든 것을 미국에 뿌리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가를 비롯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이 나라에 오면 무엇인가 자신들의 나라로 가지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대통령은, 비록 작은 나라의 원수라 하더라도 국빈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또 그밖의 누가 오더라도 이 나라는 손님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레버런 문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왔지만, 그 어느누구도 맞이하는 사람도 없고 반대하며 거절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없었더라면, 만약 여러분이 나를 사모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미국에 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나의 힘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2억 4천만의 미국인의 대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의 희망입니다. 이 나라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없이는 미국은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통일의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운동은 번개와 같이, 혹은 우레소리와 같이, 나라 안의 구석구석까지 퍼질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들은 이것을 이루기 위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심정입니다. 격렬한 힘을 지니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러한 잠재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회는 목적이 있어야

오늘은 재회의 날입니다. 70일 만에 다시 나와 여러분과 재회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늘과 땅이 재회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의 재회를 기하여 에너지와 심정을 가지기 바라는 것입니다. 뉴욕은 우리들의 활동 무대로서는 너무 좁은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기 바랍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문화를 연결하는 중심이며, 화합자(和合者)입니다. ‘나’는 사랑의 초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전달자입니다. ‘나’는 이 나라에 봄의 계절을 초래하는 사상을 넓히는 무한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각하기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날, 재회의 날인 것입니다. 심정의 재회의 날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재회의 심정, 애모(愛慕)하는 심정, 부모의 심정을 가지게 되면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는 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세계문화를 창조하는 발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재회가 있는 곳에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없으면 아무도 또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목적을 달성했을 때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최종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다시 전진합시다. 여러분들은 오늘 아침부터 달라진 모습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다짐을 한 사람은 손을 들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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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호덕 | 작성시간 21.04.0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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