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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계경전 Ⅱ

[059] 세계경전 - 생명 존중 - 1. 생명체에 대한 외경과 보살핌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0.11.10|조회수729 목록 댓글 3

세계경전 Ⅱ

제1부 하나님과 창조

제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2) 생명 존중

이 절의 구절들은 생명 존중에 부합되는 윤리를 규정한다. 도교와 불교의 경전은 인간세계의 인위성에 대해 지적하며, 자연의 순수와 무위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 어둡고 불결한 도시환경과 비교할 때 자연 속의 삶은 곧 정화이며 영적 삶에 도움이 된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떤 사람에게 자연세계에 대한 존중과 그 속의 피조물들에 관한 공경은 강제된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랑이 충만한 심정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래서 아힘사, 즉 인도 아대륙에서 일어난 비폭력 불살생 교의가 있다.

 

채식주의는 흔히 이 교의의 윤리관에 따라 출현된다. 더욱이 자연의 피조물들 중에서 암소보다 더 아낌없이, 아무런 불평 없이 주는 동물은 없으며, 따라서 암소는 힌두교인들과 다수의 원주민들에 의해서 마땅히 공경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은 위에서 언급한 측면들과 여러 가지로 부합하지만, 특히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그것은 환경윤리를 위한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는 하위체계의 피조물은 상위체계의 피조물에 의해 먹히고 흡수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개념에 입각하여 채식주의에 대한 흥미로운 이의를 제기한다.

 

하위체계의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므로 피조물들의 정상에 선 인간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를 당연히 원할 것이다. 그러나 참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음식을 섭취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다.

 
1. 생명체에 대한 외경과 보살핌
 
종교 경전
 

어머니가 자기의 목숨을 바쳐 아들의 목숨을 지키듯이, 일체중생에 대한 지극한 자비심이 그대 가슴에 가득하라.

쿳다카 파타, 멧타 숫타 (불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완전한 무해나, 불가피한 경우에 이의 극소화로 이루어지는 삶은 덕행 중의 덕행이다.

마하바라타, 샨티 파르바 262.5-6 (힌두교)

 

어떤 동물이나 생물, 유기체 또는 의식적인 존재를 상하게 하거나 예속시키거나 고통을 주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비폭력 교의는 청정하고 불변이며 영원하다. 고통이 그대에게 아픔을 주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것은 모든 동물, 생물, 유기체, 의식적인 존재들에게 아픔을 주고 불안하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아차랑가 수트라 4.25-26 (자이나교)

 

사도가 이르기를, ‘이슬람에는 해도 없거니와 해에 대한 근거도 없느니라’ 하였다.

마즈마 알 자와드 4.6536 (이슬람)

 

어떤 사제가 뱀에 물려 죽자 그들이 세존께 이를 알렸다. “오, 사제들이여! 놀랍도다. 저 사제는 결코 뱀들의 네 왕족들에 호의를 보인 적이 없도다. 왜냐하면 만일 저 사제가 뱀들의 네 왕족들에 호의를 보였더라면, 그는 뱀에게 물려 죽는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발 없는 중생에게 내 사랑이 머물고, 두 발 지닌 짐승에게 또한 그러하며, 네 발 지닌 짐승을 내가 사랑하며, 많은 발 달린 중생도 또한 그러하리라.

비나야 피타카, 출라박가 5.6 (불교)

 

낳았으되 소유하지 않고, 해주었으되 믿지 않고, 길렀으되 지배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윽한 덕[元德]이라 말한다.

도덕경 51 (도교)

 

소나 말이 네 개의 발을 가지고 태어 난 것, 이것을 일러 자연(天)이라 하고, 말 머리에 고삐를 두르고 쇠코에 구멍을 뚫는 일, 이것을 일러 인위(人)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위로 자연적 본성을 망치지 말고 조작으로 천성[性命]을 파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장자 17 (도교)

 

야마토의 땅에는 많은 산들이 있다. 카구산의 천계에 올라, 나는 그 나라를 내려다보네. 땅 위에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연기와, 바다 위 여기저기 떠다니는 갈매기들을 보네. 참으로 좋은 나라가 여기, 잠자리들의 섬, 야마토의 이 땅이로다.

만요수Ⅰ(신도)

 

전 세계의 중심 수미산의 동편에, 가파르고 완만한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는 푸른 시냇물, 희고 푸른 온갖 나뭇잎들, 향기로운 백합화, 천계 위 나무들이 제각기 아름답고, 이름 모를 온갖 수풀과 넝쿨이 울창하며 고행승과 구도자들이 거두는 거위, 오리, 백조들의 울음소리가 평화로워라.

자타카 (불교)

 

오, 호랑이들이여, 다시 숲으로 돌아와서, 숲이 평지나 다름없게 되지 않게 하라. 그대들이 없다면 도끼가 숲을 무참히 도륙하리라. 숲이 없다면 그대들은 영원히 집 없이 떠돌아다니리라.

쿳다카 파타 (불교)

 

도덕적 인간은 다음과 같은 것을 선한 것으로 인정한다. 즉, 생명을 보전하는 것, 생명을 촉진하는 것, 발달 가능한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악한 것으로 인정한다. 즉, 생명을 파괴하는 것, 생명을 손상하는 것, 발달 가능한 생명을 억압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이것이 도덕의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원리이다.

 

인간은 다만 그의 동료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의 생명을 그 자체로 신성시할 때,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모든 생명에게 유용하도록 자기 자신을 바쳤을 때 윤리적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문화와 윤리

 

말씀 선집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존재요, 인간은 실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70-182, 1974.02.09)

 

자연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연의 주인 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자기 이상 사랑하고 또 사람들을 자기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375-20, 2002.04.13)
 
아내를 사랑하는 데도 아내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영양소를 보급하는 모든 공기와 태양 빛과 물과 풀을 먼저 사랑해야 됩니다. 물과 태양이 없어서는 초목이 자랄 수 없지요. 자연을 사랑하고 나서야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마음대로 잡아먹으면서 사랑 못 하며, 잡아먹으면 병이 납니다. 사랑하면 병이 안 납니다.

(385-200~201, 2002.07.11)

 

우리의 몸과 제일 가까운 것이 자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탄식하는 자연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산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높은 것을 추앙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 석가, 예수님은 모두 산을 사랑한 분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명승지에 가게 되면, 그것이 하늘의 운세를 중심하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의 운세와 연결하게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초창기에는 산으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한 나라의 산과 땅과 물을 보면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물은 어디에 가서 마셔도 옥수(玉水)입니다.

 

외국에 나가기 전에 우리나라의 자연을 깊이 사랑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몸도 사랑할 줄 압니다. 또 자기의 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하늘도 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자기가 태어난 이 땅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14-102, 1964.06.20)
 
바다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바다에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 많습니까? 미지의 사실이 많습니다. 그것을 파고 들어가고 더 사랑하겠다고 해야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산도 위험한 곳이 많습니다. 그것도 더 체험하고 자기가 더 개발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 가슴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391-218, 2002.08.26)

 

미국의 뉴욕이라든가 워싱턴의 일부 지역은 지옥 중의 지옥입니다. 제일 어두운 곳이에요. 섬나라처럼 사람들을 한 10리 정도 가야 한 사람씩 만나고, 하루 종일 만나야 열 사람 만날지 말지 한 데 가서 살면 거기서는 본심이 눈을 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자연 환경이 80퍼센트 되고 사람 환경이 20퍼센트 되어 가지고도 균형을 취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시골로 쫓아내서 공해문제와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인류가 3백년, 3세기를 어떻게 남아지느냐 이거예요. 그러니 내쫓아야 됩니다. 특히 선진 국가들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도시가 문제입니다. 마약, 범죄, 에이즈 등 복잡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듣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들이 전부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어떻게 도망을 갈 것이냐? 그러므로 시골로 흩어져야 됩니다. 지금은 시골에 가서도 문화생활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있지, 이메일과 전화가 있지, 어디 가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 산꼭대기, 로키산맥 같은 7천 미터 이상 되는 곳에서도 말이에요,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버런 문은 남미 시골로 가는 것입니다. 모기가 많지만 공기가 좋고, 물이 좋고, 태양 빛이 좋습니다. 바다를 보라고요. 태평양 섬에 가더라도 공기 좋고 물이 좋습니다. 공해가 없지, 환경은 더 좋지…. 자연과 더불어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연에 가까운 것입니다.

(339-163~164, 200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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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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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호덕 | 작성시간 20.11.10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대태양/김현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10 감사합니다 아주
  • 작성자최상덕 | 작성시간 23.12.11 감사합니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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