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界經典Ⅱ
제1부 하나님과 창조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3) 영생을 위한 준비
4. 죽음의 종착지
종교 경전
너는 산에 올라갈 수 있고 다시 내려갈 수도 있다. 계곡 주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되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신에게는 갈 수도 돌아올 수도 없다. 누페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믿지 못할 죽음의 신은 일의 완성이나 미완성을 가려 기다리지 않으며, 내가 병상에 누웠거나 혹은 건강한 중에도 언제고 도망치듯 사라질 이 목숨은 예측할 길 없어라. 모든 것, 모든 이를 남기고 홀로 떠나야 하리.
내가 이를 낱낱이 깨닫지 못하였던 까닭에 벗을 위한다는 죄악은 얼마였으며 적을 위한다는 죄악은 또 얼마였던가. 결국 나의 적들이 허망하고 나의 벗들이 무상하며 나 또한 덧없으리니 일체만유가 헛되고 무상하여라.
마치 꿈속의 일처럼 내 즐거웠던 모든 일들이 마침내 기억이라 불리리니 흘러간 것은 다시 보이지 않으리.
이 짧은 한 토막 생에도 수많은 벗과 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은 나의 죄악은 나를 앞세워 몰아가리. 내가 침상에 누워 있고 나의 벗들과 친척들이 둘러서 있지만 호된 생의 체험들은 마침내 홀로 삭여내야 하리.
죽음의 사자가 내 옷깃을 잡아 끌 때, 내 형제 내 친척들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 공덕만이 나를 막아 지키리, 그러나 나는 이를 믿지 못하였느니.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2.33-41 (불교)
말씀 선집
이 길은 친구도 없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형제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부부, 사랑하는 자녀도 없는 길입니다. 오로지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다. 다시 가볼 수도 없고, 갔다가 올 수도 없는 길,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길을 가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갈 것인가. 여러분이 죽음에 봉착하는 그 순간에 그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이 없다면 거기에서 마지막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죽음의 길 앞에서 후퇴한 자들이 아니라 죽음을 비웃고 죽음을 늠름히 넘어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의 길을 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각자가 죽음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넘고 나면 하늘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마음으로 동경하던 세계, 그 본향을 향해 기쁨으로 달음질 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야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6-53. 1959.03.22)
영계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은 막연히 영계의 실존만을 믿고 살라는 뜻이 아니고, 좋든 실든 영원히 살아야 할 영계에서의 생을 위해 우리가 지상계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알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중에서 문제가 있는 어린애는 태어나서도 잘못하면 평생을 불구자로 살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짧은 지상계의 삶 속에서 하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하면, 결국 인과응보의 우주 법칙에 따라 영계에 가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 들어간 영인체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탕감을 치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단 육신을 벗고 나면 늦습니다. 육신은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지만, 우리의 생명,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정, 그리고 우리의 소망까지 묻히고 마는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백년 일생은 하나님이 설치해 놓은 영인체라는 슈퍼컴퓨터에 어김없이 기록이 되고 촬영이 되어 자동적으로 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계에서는 누구나 생을 영위하는 동안 가는 걸음을 붙잡아 놓고, 움직이는 마음과 기울어진 심정을 부추기며 ‘너는 어디로 가느냐?’고 수없이 자문자답을 해 보는 것입니다.
(447-159~160, 200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