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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041~080권

文鮮明先生말씀選集 59 - 1. 우리의 처지 (1972.07.02)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1.10.16|조회수141 목록 댓글 0

우리의 처지

1972.07.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오늘은 1972년 7월 2일, 금년을 뜻 가운데서 맞이한 것이 어제 같사온데, 벌써 반년을 지내고 이해의 후반기 첫달이 되는 7월 이 아침 안식일을 맞이했습니다. 아버지 앞에 만민의 해방과 만민의 승리를 아버지와 더불어 요구해 왔던 수많은 안식일 가운데서, 오늘이 당신의 뜻 앞에 있어서나 저희들 앞에 있어서 기념될 수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역사적인 섭리를 앞에 놓고 최후의 승패의 결정을 가름하여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서 있는 금년 이 후반기를 당신이 지켜 주시옵소서. 한계내에서 태어나서 한계내에서 살다가 한계내에서 끝을 맺기 쉬운 것이 인생살이인 것을 저희들은 보아 알고 있나이다. 당신께서는 이 한계 선을 넘어서 출발하셨고, 한계선을 넘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여 승리의 목표를 다짐하고 나가는 자리에 계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늘과 우리 인간은 언제나 화합이 되고 일체가 되고 상응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서기가 어렵다는 것을 역사노정을 통해 배워 알고 있는 저희들이 무한한 아버지 앞에 부족한 자신을 드러내고 머리를 숙인 이 자리이오니, 아버지, 찾아 주시옵소서.

 

오고 가는 모든 역사시대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섭리의 뜻을 갈구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하늘 앞에 돌려 드리겠다고 때로는 맹세도 했고 때로는 싸우기도 했지만, 번번이 당신이 경륜하시는 섭리의 뜻에 승리보다도 슬픔의 흔적을 많이 남겨 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아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처해 있는 저희 자신들은 역사를 넘어선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와중에서 이것을 극복하고 최후에 하늘이 요구하는 정상을 넘기 위하여 출발한 무리였기 때문에, 가고 간다 하더라도 정상의 고개를 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이편 사람이요 저편 사람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똑똑히 아옵나이다.

 

어려움이 가중되는 험산준령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자체의 부족을 탄식 하는 자리에서 그 환경을 마다 할 때에는, 준엄한 그 환경은 우리 앞에 행복의 여건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지치고 아무리 부족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생명을 다하여서라도 극복에 극복을 하여 정상을 넘지 않으면 안 될 복귀의 운명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제한된 인간으로서는 한계선을 넘기 어려운 입장인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요, 잘 느끼고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악이 성한 모습을 바라보시고 이것을 방지하고 이것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역사적 싸움으로 밀고 나오시는 아버지께서는, 이것을 아버지 자체로서는 방지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과 더불어 합동작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시고 지금까지 역사시대와 더불어 같이 싸워 나오신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이 정상도 넘을 수 없는 것이요, 우리가 아니면 이 정상을 넘어 악의 분수령을 새로이 설정하여 이것을 제거시킬 수 있는 길도 바라볼 수 없기에, 아버님께서는 어떠한 수난길을 거쳐서라도 그것을 넘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으로 뜻의 길을 찾는 어떠한 개인의 도상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미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 한 개체를 두고 바라보는 것보다도 역사적인 섭리의 심정을 붙안고 오시는 아버지께서는 최후의 승리의 한 정상을 넘을 수 있는 모습이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을 가지고 그 누구에게도 소원을 두고 나오시는 아버지이심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제 부복한 저희 자신들을 살펴보게 될 때, 악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악하기가 일쑤인 저희들임을 너무나 잘 직시하고 있나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어떤 면으로 바라보더라도 하늘이 은은한 가운데 스며들 수 있는 자체의 본성이 되지 못하고, 환경을 아무리 헤치고 헤쳐 찾고 찾아 보더라도 당신의 형상적인 권한을 갖춘 아무런 내용이 없는 입장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는 부족한 자신을 탓하면서 아버지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을, 아버지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래도 이들이 아니고서는 당신은 갈 길을 넓힐 수 없사옵고 소망의 인연을 계승시킬 수 없다는, 딱하고도 비참한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슬프기 전에 아버지가 얼마나 슬펐던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고, 저희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는 자리만을 피하려 하는 마음이 더 간곡한 모습들임을 바라보게 될 때, 저희 개인의 몇천만배 되는 수난길을 넘어서기 위해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애달픈 길을 걸어오셨는가를 생각지 못하는 인간의 폐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나이다.

 

한 생명을 구도의 길로 인도하는 생애노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체험한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가름길이, 역사의 행로가 구부러지고 으스러진 것을 바로잡아 가지고 그 누구나 소망의 터전으로, 희망과 행복의 노정으로 그릴 수 있는 복귀의 길을 다짐해야 할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미처 몰랐나이다.

 

지난날의 역사를 통해서 많은 피와 눈물의 길을 가려 왔사옵고,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희생의 댓가를 치름에 있어서 피를 흘리는 순교의 흔적을 연결시키어 비참하고 처참한 슬픔의 역사를 오늘날 저희 개인개인들에게 계승시켰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각자에게 역사적인 줄이 쥐어져 있는 현재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길을 당겨 가지고 끌고 가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되겠습니다.

 

내 자체에는 내 한 개체만이 아니라 역사가 지워져 있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옵고, 현실적으로 모든 책임이 저희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과거,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선(善)을 설정시키지 않으면 안 될 싸움에서 승리한 모습을 갖고 아버지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우리의 행로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 저희가 현재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슬프고, 저희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조이고 있는가를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모인 당신의 자녀들, 굽어살피시옵소서. '나'라는 개체를 아버지 앞에 드러낼 수 없는 수치의 모습을 가리우고 아버지 앞에 엎드린 것을 저희들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제 얼굴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기에 부끄러운 얼굴인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제 사지백체가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 드러낼 수 없는 부족한 것임을 저희들이 자인하면서, 긍휼과 자비의 주인이신 아버지를 흠모하면서, 사랑의 아버지를 갈구하면서 저희 자체를 당신 앞에 맡기옵니다.

 

아버지 앞에 맡길 수 없는 부족한 자신이기에 주저하오나 저희를 바라고 계시는 아버지시기에, 이것이라도 뜻앞에 메움이 되고 뜻의 길 앞에 거름이라도 되게 하기 위해서 바치옵니다. 당신께 사용되는 면이 있거들랑 거름더미로 삼아서라도 하나의 생명이 자라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게 받아 주시옵소서. 받을 수 없는 것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불쌍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바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이 나타나게 될 때, 창조의 능력을 지니신 아버지께서는 그 마음을 따라 어떠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창조의 인연을 제시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족한 자아의 체면을 불구하고 엎드린 것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갖추지 못한 자신들이 살 수 있는 빛나는 영광의 날을 바라고 엎드렸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죽음의 자리를 누구라도 피해 가기를 고대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기 때문에, 벌거숭이면 벌거숭이라 할지라도 추한 모습을 가릴 수 없는 저희들이 그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온 것이오니, 품어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진정 마음 문을 여시옵고 찾아오시어서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뜻을 위해 나오는 자리에 섰지마는 어떠어떠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아시는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솔직해야 되겠습니다. 솔직할 뿐만 아니라 하늘 앞에 있어서는 자기도 모르게 자동적인 입장에서 주저함이 없이 직고할 줄 아는 그런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선(善) 앞에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본성이 폭발되는 발로의 심정이 각자의 마음에서 발발할수 있는 그 인연이 남아지지 않고는 아버지의 동정을 살 수 없는 타락의 후예인 것을 잘 아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부복한 이 모습들을 굽어살피시사 당신이 사랑스러워 품에 품을 수 있는 놀라우신 영광이 있을진대, 저희 자신이 그 자리에 안길 수 없으면 안기는 그 누가 있어서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라도 세워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갖고 부복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7월을 맞이하여 첫번 맞는 안식일 이 아침에 당신의 현현과 더불어 당신의 창조의 손길이 저희 개개인의 심령 위에 머무시옵소서. 내일의 새로운 계기를 삼을 수 있는 오늘의 빛난 자아를 발견하고, 자체 앞에 연결되어 있는 하늘의 인연을 드높이 자각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의 슬픈 운명을 가로막고 새로운 생명의 깃발을 드높이 들고 나선 소수의 무리, 초췌한 모습으로 일선 장병의 모습을 갖추고 하늘을 위하여 깃발을 들고 나선 무리가 있사오니, 이것이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기동대원인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이 같이하지 않는 곳에서는 성사를 바라지 않는 것이 저희 통일교회의 염원이 아니옵니까? 하늘을 제거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 저희들의 소신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그들이 남아 있는한 아버지의 뜻이 남아 있고, 그들이 존속하는 한 아버지의 현현하심이 존속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핍박과 슬픔과 고통과 비애의 자리에서 참아 나오시던 아버지여, 한스러운 절정을 밟고 넘어가 한을 풀 수 있는 때가 저희 목전에 다가오면 올수록 최후의 절박한 싸움이 저희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체가 이 싸움터로 총진군하여서 이것을 격파시켜 놓고 승리의 모습으로서 이 산정을 넘고 피안의 당신편에 뛰어들 수 있는 기쁨의 날을 기약하기 위해 모인 무리들이요 출동한 무리들이오니, 가는 길에 영광이 흡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싸우는 길에서 당신의 현현하신 모습을 대신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영광이 그들과 더불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국 만민 앞에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실권을 드러 낼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들이 나선 걸음은 하늘의 명령과 분부에 따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사명을 촉구하고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사명을 느끼고 아버지의 분부를 받고 가는 행렬이 세계 각처에서 움직이고 있사오니, 아버지, 지키시옵소서. 그들이 눈물 지을 자리에 있거든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제가 그럴 자리에 있을 때 찾아오시어 위로하시던 아버지는 살아 계시어 이 시간도 그들과 더불어 같이 있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을 중심삼고 승리를 바래야 되겠고, 자기 편의 욕망을 요구하여 나선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하늘의 뜻만을 위한 편에서 나선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갈보리 산정,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담판 기도하던 예수님의 입장,'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던 예수님의 간곡한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인연의 마음을 늘 갖고, 최후에는 아버지에게로 달려가고 아버지에게로 통합되고 아버지에게로 흡수될 수 있는 그 시간을 향하여 기뻐하는 마음을 갖고 부딪치고 전진하는 무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72년 후반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아버지, 이 기간을 누가 지키겠습니까? 이 기간의 주인이 이 땅 위에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 가운데도 없는 것이요, 이 세계 가운데도 없는 것이요, 저 하늘도 책임질 수 없는 것이옵니다.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 이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때, 저희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요동할 수 없는 확고한 터전 위에 서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쌍수를 들어 아버지를 부르는 절규의 모습에 천지가 진동할 뿐만 아니라 영계의 천천만 성도들과 모든 영인들이 협조할 수 있기를 바라옵고, 이 순간에 하늘이 협조할 수 있기를 간곡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천지가 화합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발동을 제시하여 새로운 출발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고, 아버지여, 가리시어 당신이 승리의 터전으로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 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마음은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알던 자식이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어머니를 알던 자식이 어머니를 잃어버린 그 슬픔이 얼마나 크겠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찾고 잃어버렸던 어머니를 찾은 그 기쁨은 또 얼마나 크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잃어버릴 때보다도 찾았을 때의 기쁨이 더 큰 것을 느껴야 할 것이 오늘날 저희들의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타락의 후예로 태어나 슬픔의 눈물로 출발한 역사를 맞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잃어버렸지만, 이제 상봉의 한날을 맞이하는 그 시간에 있어서는 감사의 눈물이 앞을 가릴 수 있는 기쁨의 한날이 되어야 되겠고, 기쁨을 증거하고 승리를 증거할 수 있는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자녀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영원한 축복과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가정 식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을, 아버지, 지켜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그 누구를 위한 저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위한 것이요, 저희의 민족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세계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싸워 남아야 되겠습니다. 이들은 기필코 이 땅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기필코 아버지를 대신해서 심정을 퍼붓는 효자 효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빛냄과 동시에 그 나라에 있어서 충신 열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새로이 깨닫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다고 탄할 것이 아니라 뜻 앞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탄해야 되겠습니다. 지친 모습을 이끌고 이 자리까지 당도하여 내일의 희망이 없이 절망한 자리에 서서 울부 짖는 마음을 가지고 당신을 부르는 것보다도 아무리 쓰러지더라도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아버지여. 참으소서' 위로하면서, 당신의 협조를 바라지 않고 현재의 입장을 극복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모든 것을 온전히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오니,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보고픈 그리움이, 사무치는 심정이 필요합니다. 당신을 만나거들랑 자기 사연보다도 당신의 사연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되겠습니다. 형제를 대표하여 자기가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이 사무치는 것이 신앙자의 본질의 노정이요, 당신이 찾고 있는 무리 가운데 선각자가 되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벌거벗었을지라도 그 수치는 거기에서 가리워질 것이고, 아무리 미급하고 부족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으신 아버지의 영광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모습 가운데서 저희를 보호할 수 있는 그 뜻 앞에 선 저희들은, 부족한 자가 아닌 자리에서 당신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아침 찾아온 이 무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가운데 이 시간 이곳을 흠모하고 간곡히 사모하며 눈물짓는 자들이 있거들랑, 아버지, 반드시 지나치지 마시옵시고 찾아가시어 위로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고 천만배의 복을 빌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남아진 모든 것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한달을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맡으시옵고, 이 해를 아버지 앞에 드리오니 맡으시옵소서. 기억될 수 있는 이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일원인 것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통일교회는 뜻을 대신한 단체라는 것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있는 이 한국은 뜻을 이어받을 나라라고 우리는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시대는 역사에 빛날 수 있는 시대라고 우리는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이러할 입장이 우리 통일교회, 혹은 우리 자신들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시대에 처할 수 있는 우리의 입장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고, 이 나라가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것도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되어진 것임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또, 통일교회가 이와 같은 기반을 갖춘 것도 통일교회 자체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서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통일교회의 일원으로서 처하게 된 것도 여러분 자신들이 그런 자리에 서고 싶어서 섰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있게 되고, 내가 인연된 이 자리라는 것은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있게 된 것도 통일교회 자체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국이 이와 같은 섭리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운세의 자리에 선 것도 한국이 원해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금세(今世)에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명을 해야 할 뜻의 때가 임하였다는 것도 이 시대가 요구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전부가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우리가 처해 있는 자리는 나로 말미암아 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내가 태어난 것도 나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예요?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예요? 그러한 모습을 가진 것은 상대적인 목적의 가치를 다짐짓기 위해서 오늘날 자기라는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를 위해 태어났느냐? 사람은 사람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동기가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렇게 태어날 수 있는 동기가 되는 어떤 주체가 있어서 그 주체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냐.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지백체에 있어서 눈을 두고 볼 때, 눈은 눈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몸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예요? 손이면 손은 손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보다 큰 자체를 위해서 모든 지체는 존속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통일교회가 생겨난 것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을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나라와 이 세계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혹은 이 세계가 그 자체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배후의 인연을 보다 가치 있게 연결시키기 위해서, 보다 가치 있게 하나 만들기 위해서, 보다 빛날 수 있는 가치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해서 그러한 요인의 주역을 맡게 하기 위한 그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거기에는 개인이 있을 것이고, 단체가 있을 것입니다. 그 단체는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 앞에 하나의 주도 역할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 주도 역할을 끝내 가지고 국가가 어떠한 하나의 목적 기준에 서게 될때, 그 목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세대의 세계적인 무대 앞에 새로운 주역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인간에게 보다 나을 수 있는 소망이 깃들 수 있지 않느냐.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처하고 있는 현재의 처지, 내가 존재하고 있는 현재의 입장이 나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50년이면 50년, 또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노정을 자기가 살아온 것처럼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산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 그렇게 살게 하는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산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배후를 망각하게 될 때에 인간은 고립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은 허무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에 있어서 어떠한 주체적인 책임을 추구하고, 자기 자체로 말미암아 새로운 길을 출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때는 언제나 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고독한 자리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고 내 배후에 크나큰 역사적인 동기, 섭리적인 동기, 혹은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가중된 동기가 투입된 자리에 서 있는 자기 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때는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필요하다구요. 이것이 무너지기 전에는 강한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아요? 뒤가 든든하면 강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악한 세계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 환경의 여건을 자기보다 큰 것으로 울타리를 삼고 혹은 터전을 삼고 나서는 사람은 강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혼자 덩그렇게 나서게 될 때는 위험천만입니다. 고독한 사람입니다. 일선에서 소수의 병력이 수만 대군을 맞아 접전하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 그야말로 생명이 경각에 놓여 있지만 내 뒤에 보다 강한 후원병이 진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입장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유지시키기 위한 작전을 모색할 것이고 어려운 격전 가운데에서 때를 연장시키는 작전을 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패자의 입장에서 전투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적인 승세자의 모습으로 전투에 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나만으로 출발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의 폐단이 아니예요? 자기 혼자 출발해서 이 모든 것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된 것, 나는 역사가 동원되어 가지고 여기에 증거물로 태어난 것입니다. 증거물로 제시된 자아를 발견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을 자각하고 나서게 될 때, 그 배후가 크면 클수록 약한 것이 아니라 크면 클수록 강하고 끈기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의 자각을 하기에 앞서서 역사적인 자각과 그 존재의 유래에 대한 배후의 자각을 느끼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그러한 자리에 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자각된 자리에 서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그러한 것을 느껴서 자기 스스로 자각하고 나설 때 이는 개인이 아닙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오늘 이 시점내에만 들어와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생활감정과 언제나 상대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존속해 나오는 하나님, 즉 역사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역사를 계승시켜 나오시면서 바라 나온 길은 어떤 길이냐 하면, 스스로 자각한 것에 취해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의 배후를 따라 나오시는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연결될 수 있는 역사의 방향이라는 것은 섭리의 내용을 먼저 깨닫고 그 역사를 빛낼 수 있는 시점에 선 자아를 중심삼고 자각된 입장에 선 사람이 그려 가는 생활터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섭리를 발전시켜 나올 것이고, 섭리의 뜻을 존속시켜 나올 것이 틀림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입니다. 공적인 자리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배후의 보증된 그 환경을 대신해서 나는 이러한 자격자로 섰다고 하게 될 때, 그 배후의 가치를 크게 느끼면 느낄수록 부딪쳐 오는 원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크게 느끼는 이하의 것이면 정복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자동적인 원칙입니다. 누구의 원조를 받아 가지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입장에서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념이 앞서지 못하면 무슨 일이든지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싸움에 있어서 벌써 패기가 빠져 가지고는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못 되어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패기와 자신감은 어디서 갖게 되느냐? 자기로부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 있는 국민, 민도가 높은 국민일수록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전통을 세워 왔다' 하는 자극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순간에 서 있다. 그 역사가 보다 빛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일격을 가하고, 하나의 행동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행동은 역사를 대신한다'는 신념에 사무친 결의 밑에서 나서는 무리는 강한 것입니다.

 

개인을 통해서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만히 보면 혼자 다니고 있습니다, 혼자. 혼자라고 생각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소우주다. 인간은 성상과 형상, 내성과 외형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을 통해서도 그렇고 외적인 모든 상징적 형상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 만유의 공통 요소를 전부 다 지닌 모체다'라고. 인간은 소우주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것은 아무개 아들딸로 덩그렇게 태어나 가지고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서 20년이면 20년 역사를 지나온 그 사람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것은 인간 창조 이후 역사 전체를 대표해 가지고 선 것이 아니냐? 그 한 사람의 움직임은 이 우주를 대표한 움직임이 아니냐? 그러한 배후와 더불어 자각된 자신을 갖고 나서는 사람은 당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라고 하셨는데, 그 생명은 오늘날 아무개의 30여년 생애권내에 있는 그런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를 주관하고 남을 수 있는 소망적인 생명을 말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 자각된 입장, 보다 큰 인연적인 배후와 더불어 자각된 자아를 들고 나서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강해야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힘의 균형에 있어서 열세자는 싸움에서 패하는 것이요, 강세자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열의 차이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우열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되느냐? 자기 몸뚱이가 뚱뚱하다고? 힘이 있다고? 아닙니다. 이어진 유래와 더불어 그 유래의 주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남겨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 하게 되면 그 교인은 통일교회의 전시품입니다. 박람회의 모든 출품작은 아무리 구석진 자리에 놓여 있더라도 그 나름대로 거쳐온 당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는, 자기 나름의 당당한 무엇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드러진 자리에 놓인 것이면 그 자리에 있을 만한 그 내적인 인연에서 평균적인 인연을 거친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의 출품작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통일교회 교인 그 자체로서의 교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대표한 전시품과 같은 입장에서의 통일교회 교인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그를 붙들고 헤쳐 보게 될 때, 그를 통해서 통일교회의 현재를 알 수 있어야 됩니다. 확실히 알 수 있어야 된다구요. 먹고 사는 그의 생활을 통해서 통일교회의 현재를 역력히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통일교회의 운명과 더불어 그는 길이길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를 또 헤쳐 보면 현재뿐만 아니라 통일교회 역사를 엿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보다 내적인 인연을 통해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통일교회 역사의 깊은 자리는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 하나님은…. 하나님까지도 동원되어 있는 것은 뭐냐? 사랑을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다가 세계를 위하는 자리에서 자기 자체를 투입해 나가자는 거예요. 이것이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개체가 자리잡아야 할 처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가면 선진국가, 미국이면 미국 국민과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게 뭐냐? 밥을 먹으면 우리가 더 많이 먹는다구요. 여러분, 뭐 미국은 자유의 나라고 무엇이고 그러지만 그 사회에 가 보라구요. 우리는 자유의 나라, 개방된 나라같이 생각하지만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구속되어 있다구요. 법을 어길 줄 모릅니다. 금을 딱 그어 놓고 어제 아침까지 서쪽으로 가던 길에 오늘 동쪽으로 가라는 푯말만 돌려 놓으면 서쪽으로 가던 사람들이 동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누가 있다고 가는 것이 아니고 없다고 안 가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있건 없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도가 높은 국민입니다. 선진국가 국민인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이것은 부자유입니다. 자유가 아닙니다.

그 자유라는 것을 거칠 수 있는 전통적인 인연을 어느때나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는 그러한 국민이기 때문에 그 국민은 역사를 보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자격자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증하지 못하는 사람은 파탄자요. 현재를 망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생활체제로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증하고 역사를 관리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결국 선진국가의 국민입니다. 그 한 사람을 봄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한 사람을 엿봄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전체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망하더라도 자기 개체와 더불어 망하지 않습니다. 그가 쓰러지더라도 그 개체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와 더불어 쓰러지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통일교회와 더불어 죽고, 살더라도 통일교회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냐? 자기와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그게 애국자입니다. 죽더라도 자기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더불어 죽고, 살더라도 나라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지 말라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은 언제나 자기 관념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자기 관념에. 이게 원수라구요. 타락의 동기가 뭐냐? 자기를 중심한 자각에서부터 타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해와는 좋은 것을 원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사탄은 미끼로 한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한 자각에서 자기 울타리를 공고화시켜서 이것을 넘지 못한 것이 악의 기원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자각심이 강한 사람은 언제나 고독하기 마련입니다. 고독해요. 어디 가든지 고독한 것입니다. 행동하면 할수록 넘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면 할수록 좁아 들어갑니다. 여러분, 소용돌이 알지요, 소용돌이? 그것은 맨 처음에는 빙글빙글 노라리 가락으로 돌지만 그것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넓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뒤 것이 앞이 되고, 또 뒤 것이 앞이 되고 이래서 점점 조여들어 가지고 소용 돌이가 되는 것입니다. 소용돌이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쑤시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딴 길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망의 소용돌이에서 해방받자 할 때, 사망의 소용돌이가 어떻게 생겨났느냐? 자기 중심한 자각에서부터 생겼습니다. 아담은 해와로부터, 해와는 천사장으로부터 돌기 시작해 가지고 한 굽이가 되어 중심 없이 돌다가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이것을 해탈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한 자각을 먼저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중심한 자각에서부터 출발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한 자각을 하는 자리에 서는 복귀니 구원섭리니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서 자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역사적인 자각을 촉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이다. 역사적이다' 할 때 결국 이것은 근본문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에 대한 자각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參禪)이란 뭐냐? 마음에 대한 자각입니다. 그러면 자각된 그 마음은 어디서 나느냐? 마음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본체의 유래된 기반에서 존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마음에 대한 근본을 자각하고 나서게 되면 자기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를 발견 하게 되면,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예요? 주체를 위해 있다는 자각된 자리에 들어가면 주체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면 여기에서 초월적인 능력이 비추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 같은 양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응당히 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전부 다 그 하나의 가치적인 존재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등장하게 되면 역사는 그로 말미암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독존이란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현재의 입장이 어떠한데…' 하는 것을 혁명해야 되는 거라구요. 혁명해야 돼요.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 그 자체를 철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작전을 하더라 이거예요. 여러분, 그래요. 조금이라도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는 사람은 그걸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전부 다 깨뜨려 버린다구요.

 

하나님의 섭리는 모르는 가운데 서서히 이루어진다

 

선생님 일생을 두고 볼 때도, 친구 중에서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제일 믿을 만한 친구도 다 잘라 버렸다 이거예요. 예외가 없습니다. 어떤 가정에 대해서 믿으면, 그 가정도 뜻 앞에 합당치 못하고 앞날에 도움이 못될 때는 전부 다 헤쳐 버립니다. 그러니까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단체도 합당치 않을 때는 헤쳐 버립니다. 어떠한 나라도 합당치 않을 때는 나라도 헤쳐 버립니다. 나라는 크니까 기간적으로 오래 걸릴 뿐이지, 그 공식원칙은 마찬가지입니다. 왜 헤쳐 버리느냐? 그게 있으면 장애가 되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을 없애 버리는 놀음을 해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기성교회가 그렇게 반대하더니 왜 기성교회가 저렇게 약화되었느냐? 통일교회 때문입니다. 반대하는 데에서는 반드시 하나는 흡수되고 하나는 흡수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보다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발전하는 것은 둘이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하나로 흡수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순 상충이 없이 자연적인 흡수를 계속하면 급속적인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연적인 환경에서 흡수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디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아, 현재의 내 입장. 이거, 침범받으면 큰일이다' 하면서, 그것이 자기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자기로 말미암아 끝날 줄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의 흐름 가운데 한 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 점에 불과한 거라구요.

산맥으로 말하면, 산맥이 아무리 뻗어 있더라도 거기에 큰 봉우리가 연결되어 있어야 그 산맥이 윤이 나고 빛이 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모르지만 하나님편에서 수많은 국가 혹은 국민들을 바라보면, 그것은 산맥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히말라야 산맥같이 장엄 하고 웅장하고 변화가 많은 그러한 형태를 갖춘 산맥은 세계에 추앙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운명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맨 처음 모양이 곱상한 평지는 맨 나중에는 시궁창에 가서 뿌리를 박고 만다구요. 그건 출발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라산을 가 보면 말이예요. 척 보면 이렇게 보이지 않는다구요.(행동으로 표현하심) 보게 되면 내 키보다 작아 보여요. 왜 그러냐? 서서히 경사가 커 나가기 때문에 높은 줄 모릅니다. 그런데 올라가 보면 진땀 빼는 거라구요. 가도가도 그 모양입니다. 그러나 계속 가다 보면 안올라온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 어휴, 많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그와 같은 길입니다. 지루하다구요. 지루합니다. 아이구, 뜻이고 무엇이고 와장창 병이 나든지 다리가 부러지든지 머리가 깨지든지 아주 따끔하면 좋겠는데, 그날도 이날 같고 이날도 저날 같고 이게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가 없지만 올라가는 걸음을 걷고 있으면 가고 난 후에는 틀림없이 어제의 자기와 오늘의 자기가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일시적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남모르게 서서히 이겨 나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도깨비식으로 말이예요. 여러분, 도깨비식이라는 말이 있지요? 붙잡자마자 승패를 결정하려는 것은 기습작전이니까 그것이 불가피합니다. 기습작전은 도깨비식 전법입니다. 그러나 정예군이 작전하는 것은 정상적인 작전이기 때문에 훈련부터, 벌써 작전하기 전부터 다 아는 것입니다. 출발할 때부터 다 안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지만 정규전입니다. 그렇지만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서서히. 서서히 이겨 나가야 망한 자리에도 폐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격전을 하게 되면 이겨서 노획물을 취하더라도 하나도 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서히 싸워서 이기면 노획된 물건은 완전히 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도깨비 전법을 쓰지 않습니다. 장기작전을 하십니다, 장기작전. 서서히 언제 이겼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자는 기간에 이겨 버리고, 쉬는 기간에 이겨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졌지만 진 줄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10년이면 10년을 지냈다면 '그 동안에 내가 통일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일했나? 통일교회 앞에 두드러지게 무슨 혹 같은 것을 보탠 적이 있는가? 할 때 아무것도 없습니다. 각자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통일교회는 발전해 나왔다 이겁니다.

높은 산의 산정이 되면 될수록 올라가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산정이 가까와 오면 올수록 따라 올라가는 사람의 수는 적어지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험악한 산정을 누가 넘느냐? 열 사람이 행렬을 지어서 '야, 오른다' 해가지고 한꺼번에 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 혼자 넘는 것입니다. 험한 산이면 산일수록 혼자 넘어가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 히말라야 최고의 산정을 정복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역사 이래 처음 가는 길이니만큼 처음 느끼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험길을 타개해 나가는 그 걸음걸이가 얼마나 정성스러워야 되겠어요? 한 발자국도 조심스러워야 되고,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자기의 모든 역사를 보증시킬 수 있는 그런 전진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때는 왕창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역사적인 자기가 되라

 

우리 통일교회 교인인 어떤 사람에게 '통일교회에 들어온지 얼마나 됐소?' 하면 '1년이요''당신 통일교회 교인이요' 하면 '교인입니다' 이렇게 당당합니다. 10년이 된 사람에게 '당신 통일교회 교인이요?' 하면 '교인입니다' 합니다. 지금 6개월이 된 사람이 통일교회 식구라고 하는데 '당신도 식구요?' 하면 '예. 식구입니다' 하고, 10년이 된 사람도 식구라고 하는데, 그러면 무엇이 다르냐? 나무는 같은 나무인데 잎도 나무요, 가지도 나무요, 순도 나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지 중에도 큰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예요? 바람이 불게 되면 큰 가지가 먼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잔가지가 먼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먼저 흔들리는 사람은 송사리 떼입니다. 큰 줄기가 먼저 흔들리는 법이 있어요? 다릅니다. 처해 있는 처지가 다릅니다.

나이 많은 사람하고 젊은 사람하고 다릅니다. '다르긴 뭐가 달라? 평면적으로 밥 먹기는 마찬가지 아니야? 아침 밥 먹는 것도 같은데 다르긴 뭐가 달라?' 할지 모르지만 지나온 역사의 유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좋은 물건, 나쁜 물건 무엇이 다르냐? 좋은 물건은 거쳐온 유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쁜 물건은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우주의 공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한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재 가지고 '나는 얼마짜리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금덩이가 나 얼마짜리다?' 하고 나가서 춤을 추었다가는 도둑놈이…. 거기에 상극이 벌어집니다. 이놈은 저놈 때려잡고 저놈은 또 이놈 때려잡는 것입니다. 가만히 박혀 있어도 그 진가를 알고 파고들어와서 구해 내고, 피와 땀과 노력을 통해서 그것을 얻은 사람일수록 보다 가치를 알아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비준해 가지고 '나는 얼마짜리다?' 자랑을 하고…. 여자분들은 그게 참 빠르지요? 왼손에 좋은 것을 하나 가졌으면 '야 이것 봐라. 이것 봐라. 네 것보다 낫지?' 이렇게, 자랑을 앞세우지 말라는 겁니다. 자랑은 역사와 더불어 해야 합니다. 역사와 더불어 자랑하기 위해서는 오늘 자기 자체가 역사적인 자기가 되어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자랑하는 사람보다 낫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를 연마하며 싸워 나오는 사람은 자기 혼자 뜨내기처럼 날뛴 사람과 역사의 시일이 길면 길수록, 연한이 많으면 많을수록 현격한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자기 혼자 달랑 가 가지고 '나 아무개요' 해 가지고는 소용없어요. '아침에 출발해 가지고 무슨 밥을 먹고, 무슨 옷을 입고서 어느 곳에서 어느 곳까지 거쳐온 아무개요' 그런 사람은 누구나 다 맞이 하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나는 가문을 통해서 볼 때, 집안을 통해서 볼 때, 이러한 충신의 도를 이어받은 그런 뜻 있는 실적을 가지고…. 또, 나로 말하면 지금 시대적인 사명을 이렇게 이렇게 지니고 그 사명을 빛내기 위해서 왔습니다' 할 때는,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무엇인지 모르게….

 

뭘 하든지 보장받을 수 있는 증거물이 필요하다

 

천도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권위가 있는 거예요. 명령을 해서, 주먹다짐을 해 가지고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고도 체제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척 가더라도 혼자예요? 사방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누구나 다 살고 있는 처지입니다. 즉, 우리의 처지입니다. 그 처지에는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의 '격(格)' 이라는 것은 반드시 갖추어진 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격이다 할 때 그 격이 무슨 격이냐? 아무개 아들딸로 태어난 그 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라는 것은 역사성을 띠고 있는 것이요, 시대성을 띠고 있는 것이요, 미래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인연의 주체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하나님이 아니예요? 그 하나님을 닮아야 된다,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어디 전도 나가 가지고 배고프면 '아이고, 배고파라! 선생님이 못 먹게 하나 누가 뭐 보기를 하나' 하면서 먹게 마련입니다. '나는 뜻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나온 사람인데, 내가 나라를 위해 간다는 이런 자리에서 배고플 때 먹는 것이 원칙이 아니냐?' 그 생각은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먹을 수 있는 나라의 보증을 받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나라의 보증을 받았다면 어디 가서든지 먹더라도 걸리지 않는다구요. 나라의 보증도 못 받은 자리에서 턱을 들이대고 먹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뭐냐면 비겁자입니다, 비겁자.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법이 없습니다.

세상에도 그렇잖아요? 인사도 안 하고 잔에 들어다 부어 먹어 보라구요. '이놈의 자식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 예(禮)가 있고 법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 예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안팎이, 전후 좌우 사방에 어울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울리게 되면 아무것도 안 갖추어도 '야 멋지다' 하는 겁니다. 멋진 사나이라는 것입니다. '야, 그 녀석, 한 잔 주고도 기분 좋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잃어버려도 기분 좋다. 야, 그 녀석 한번 쓸만하다'라고 하게 될 때 관심도 갖고 멋지다는 말도 나오지, '이것으로 그만이다' 할 때는 침 뱉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우리 자신들은 언제나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외국 같은 데에 나가 보게 되면 동양 사람은 말이예요. 동양 사람, 동양에서는 모릅니다. 다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눈이 새까맣기 때문에 모르지만, 서양에 가 보면 동양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판에 찍어 놓은 듯이 간판을 붙이고 다닙니다. 아무리 서양 사람처럼 별의별 것을 갖다 붙이고 지지고 고치고 하더라도 그건 감출 수 없습니다. 그것은 드러나기 마련 입니다. 그래서 거기서는 내가 서양을 자랑하려고 안 합니다. 동양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동양을 자랑하는데 자기 얼굴을 자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동양의 문화라든가 그런 것을 자랑해 가지고 자기 권위를 세우려고 합니다. 나도 그런 놀음 할 줄 안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 조상이라든가 옛날 문화라든가, 지금은 전부 다 볼장 다 봐 가지고 지나가는 사람도 바라보지 않는 그런 문화의 틀거지를 가지고 '아, 난 고대문화국의 국민이다' 이러지 않아요? 여기 여러분들도 그렇습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국민학교 어린애들 보면 '너희 엄마는 어떻고, 우리 엄마는 어떻다. 너희 엄마는 나이가 많지만 우리 엄마는 젊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 엄마 보다 우리 엄마가 낫다' 그러면 나이 많은 엄마를 가진 아이는 '우리 엄마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생각이 넓다' 이럽니다. 다 각기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랑하려고 할 때는 '나 봐라!' 전부 다 이렇게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먼저 울타리를, 자기 동네를 자랑하려고 하고 자기 부모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멀리 외국에 가서는 자기 나라를 자랑하려고 하지요? 벌써 습관적으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러냐? 그러한 유래를 수습해 가지고 그 보증자로 서 있는 것이 현재의 입장을 자증하는 것인 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확실히 관념적으로 수습해 가지고 생활 감정에 일치화시키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이러한 환경을 통하여 재인식할 수 있는 자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혼자가. 좋다는 것을 자랑하는 데는 혼자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 하나 하려면 증거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입증하려면 입증시킬 수 있는, 보장받을 수 있는 조건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통일교회 안의 교인이라고 생각 하지 말라구요.

 

열매를 통해서 새로운 봄날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두고 보면 섭리의 목적은 무엇을 이루려 하느냐? 나라를 이루려고 하고 세계를 이루려고 하는데, 세계와 나라를 다 이루고 난 후의 귀결점이 무엇이냐? 나라의 주권이라고 해서 보좌가 아닙니다. 결국은 사람입니다. 출발도 사람 때문에 했고 귀결도 사람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귀결체는 어떤 것이냐? 그 귀결체, 귀결된 그 자체는 역사적인 승리의 결실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는 역사의 빛이 빛나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의 빛이 납니다. 국민이면 국민의 빛이 납니다. 각 분야에 있어서 이것이 원만하게 비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갖게 될 때 결실이 되는 것이지, 그 인연을 완전히 수습하지 못하면 결실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을에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 그 감나무의 맨 끄트머리에 달려 있는 홍시가 있다면 말이예요. 지극히 외로울 것이예요. 그렇지만 그 모양은 다릅니다. 판이하게 다릅니다. 수십년 자란 나무라면 수십년 거쳐온 모든 인연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거기에는 전부 흡수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매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종합적으로 흡수된 그것이 치우치지 않게 될 때 역사시대를 거쳐 나가면서 자랑할 수 있고, 자기가 가치 있는 존재로 환영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치우치게 되면 다 찌그러집니다. 마찬가지로 결실이라는 것은 유래의 요건을 초월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6천년 섭리의 역사적 열매입니다'라고 당당하게 큰소리합니다. 거 맞습니다. 그렇다면 헤치고 보면 그 가운데는 종합된 역사의 빛이 나야 됩니다. 역사에 잃어버리고 찾지 못한 것을 새로운 가치로 수습될 수 있는 생명의 요인이 깃들어 있게될 때는, 자신이 어디에 가 있더라도 그 본색은 열매를 통해서 다음에 맞이할 수 있는 봄날의 새싹을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거기 뭐 특별히 고려니 생각이니 하는 것이 필요없습니다.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고 몰라주고 불평하고 좋아하고 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느냐? 금년이 무슨 해냐 할 때 72년이다. 이러지 않습니다. 길더라도 '일천 구백 칠십 이년이다'라고 합니다. 일천을 빼도 안 되고, 구백을 빼도 안 되고, 칠십을 빼도 안 됩니다. 1972년입니다. 그러면 오늘 맞이하는 이해는 1972년. 이것(2)의 연장이요, 이것(70)의 연장이요, 이것(1900)의 연장이요, 그 다음엔 이것(1900)의 계승이요, 보다 이것(1970)의 계승이요, 보다 이것(1972)의 계승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2년 오늘이라는 것은, 이해라는 것은 역사적인 결실의 날이고 역사적인 결실의 해입니다. 안 그래요? 결실이 못 되거든 역사의 결실을 향해서 전진하는 과정적인 한 토막의 해입니다. 이것이 길면 길수록 나쁜 것이냐?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우리 한국의 5천년 역사가 좋은 역사냐, 나쁜 역사냐? 거지 꼴이 되어 가지고는 5천년 아니라 5만년이라도 그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왜 가치가 없느냐? 한국 백성은 세계 문화사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비참한 백성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역사가 길더라도…. 원숭이 역사가 사람 역사보다 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거 가치가 없느냐? 세계 인류 문화사에 공헌될 수 있는 무엇이 없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몇 억만년이 되었어도 그것은 누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짧더라도, 단 5년이라도 역사 이래 찾을 수 없는 5년이 되었다면 여기서부터 새출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냉혹한 것입니다. 보다 나은 데서부터 보다 차원 높은 세계로 전진하려는 것이 역사적인 실정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은 종교에 있어서 마라톤 선수들로 등장한 패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듣고 들어와 가지고, 아이쿠 옛날에 통일교회가 우리 뒷집에 있었는데, 그때는 동네 방네 소문도 많고 잠도 안 자고 해서 원수 중의 원수였는데, 10년, 20년 지내 놓고 보니 이거 야단났구나. 반대할 때 태어난 외아들은 장가가 버렸는데, 뜻을 알고 보니 아이쿠 큰일났다. 내가 그때 들어와 가지고 아들이라도 축복받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뭐야' 이렇게 후회합니다. 후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역사의 열매가 어떤 모양으로 맺힐 것이냐? 통일교회 모양으로 열매 맺힐 것이냐? 붙들고 싸움하는 자리에서 맺힐 것이냐? 모른다구요. 알아요? 아버지 어머니를 붙들고…. 부자지간에 붙들고 싸움하는 데는 하나는 선하고 하나는 악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일지라도 선하지 않고 악한 때는 붙들고 싸워야 됩니다. 싸움하는 아들이 역사적인 대표자라면 하나님도 그 싸움을 진지하게 구경하실 것입니다. 만일 수염이 있다면 수염을 드리우고,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바라보실 것이 아니예요. '어서 싸움을 끝내라. 지지 말고' 하며 후원하실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구요. 안 그래요?

싸움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부부 싸움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싸움하라는 것입니다. 악착같은 사탄의 여왕 후계자와 같은 여편네, 그렇다고 여자를 사탄의 후계자라 했다고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또 하나님의 아들 될 수 있는 남자, 세계적인 남성을 대표하고 대왕이 될 수 있는 선한 아들, 이 둘이 결혼했으니 싸움하는 것이 일쑤지…. 그건 싸움 안하면 안 됩니다. 남자가 양보하면 하늘세계가 망하는 것이고, 또 여자가 양보하면 사탄세계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싸워야 됩니다. 싸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탄은 사탄편을 후원할 것이고, 하나님은 하나님편을 후원할 것입니다. 그런 싸움은 사탄의 관심거리요 하나님도 관심거리입니다.

그러면 그 싸움이 얼마나 계속될 것이냐? 하나님은 될 수 있는 대로 장기전을 하려고 하고, 사탄은 될 수 있는 대로 단기전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야 야, 싸움을 하지만 싸움하려고 하지 말고 남보다 노력을 더 해라. 다른 사람이 잠을 잘 때 너는 자지 말고 일을 더 해라. 담을 쌓더라도 남보다 더 높은 담을 쌓고, 성을 쌓더라도 두꺼운 성을 쌓아라' 이러는 거예요.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 있는 사람이라든가 희망적인 사람은 벌써 거동이 다릅니다. 급진적으로 돌격적으로…. 여러분 백 미터 선수가 될 거예요, 마라톤 선수가 될 거예요? '나는 백 미터 선수가 될 거야. 아이고, 마라톤을 몇 시간 동안이나 거 지루해서 어떻게 해. 뭐 몇 초내에 해결해 가지고 상을 받아야지' 상에 미쳐 가지고 백 미터 선수 하겠다는 것은 미친 것들입니다. 열흘이 걸리더라도 마라톤 선수…. 이건 언제 끝날지 모른다구요.

여러분, 운동종목 가운데서 마라톤이 왜 왕좌를 차지합니까? 마라톤이 단기전이예요? 그게 단기전이예요? 장기전입니다. 기름이 빠지고 뼈가 녹고 절여질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가 거쳐가는 곳마다 전부 다 인연을 맺어서 이겼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통일교회는 종교에 있어서 마라톤 선수들로 등장한 패들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백 미터 단거리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천당가자. 믿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단거리 선수들입니다. '믿으면 천국간다. 예수 믿고 천국가자' 이거 얼마나 간단해요? '아. 예수님 피의 공로로….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믿기만 하면 천당간다' 그런 식이 참 훌륭한 식 같다구요. 나도 그런 식을 한번 연구해 보면 좋겠습니다. 거 얼마나 간단하고 멋져요? 또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하면 눈이 번쩍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도 지옥이 있는 것을 압니다. 지옥이 있는 것을 아는데 '지옥간다'는 위협을 절대 안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너 그렇게 하면 지옥 간다' 그런 말 들어 봤어요? 통일교회는 지옥이 없는 것같이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지옥이라는 관념이 없다구요. 기성교회는 천당, 지옥, 사탄, 예수님…. 설교하는 데 이것을 다 이용해 가지고 '이길 것은 내가 이겨야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아적인 신앙관입니다. 그 말로는 추풍 낙엽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는 종교에 있어서 무슨 선수? 마라톤 선수가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밑창에서부터 뛰는 것입니다. 뛸 적부터 소문이라구요, 뛸 적부터. 출발 당시부터 죽느니 죽이느니 소문 내놓고, 전부 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이 놀음 해 가지고 이제 어지간히 올라왔다구요.

여러분들, 지금 어떤 사람들을 보게 되면 '나야 통일교회 교인인가? 응원부대야, 응원부대' 하는데 따라다니면서 응원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이구, 힘들어 어떻게 하나? 승리할 때 목전에서 응원하지' 어떤 것 될래요? 따라다니면서 응원하는 부대가 될래요, 결승점에 가서 '아이구, 이겼다. 뭐 이겼구만' 하는 부대가 될래요? 따라다니는 응원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경기 기간이 지루하면 지루할수록 승리의 최후의 결승선을 돌파 하게 될 때, 결승선에서 응원한 사람은 모르지만 따라다니며 응원한 사람은 기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절할 수도 있다구요. 그런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록 자기 손에 상이 들어와 있지 않지만 그 상을 나라의 것으로 알고 기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을 탄 마라톤 선수는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를 못 남길는지 모르지만, 기절한 응원자는 틀림없이 자기 후대에 그 마라톤 선수의 기록을 낼 수 있는 후계자를 남길 것입니다. 어떤 것이 귀하냐? 상을 받고 끝난 선수를 자랑하는 것보다 역사를 빛낼 수 있는 보다 많은 선수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축구 경기장 같은 데 가 보면 축구 팬들은 말이지요. 괜히 앉아가지고 흥분하고 있습니다. 씩씩 거리면서…. 내 언젠가 축구장에 갔는데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이 축구 선수 모양으로 얼굴이 불그레해 가지고 손을 내저으며 흥분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 무던히 화낸다'라고 평을 하고는 '그러나 나보다 낫다'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실감을 한다는 것입니다. 실감을 한다구요. 여러분도 실감이 나야 됩니다. 여러분이 경기를 못 하면 구경이라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뛰지도 못하고 구경할 줄도 모르면 그것은 인간 이하입니다. 그건 차라리…. 예수님이 가롯 유다 보고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셨지만, 그것은 '차라리 보이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차라리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좋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내내 좋을 수 있는 것을 좋아해야 된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패입니다. 이 패가 커지면 무엇이 돼요? 패 다음엔 뭔가요? 아무개 패, 김씨네 패, 무슨 패가 있지요?

자, 이렇게 생각할 때 '나다' 하는데 무엇이 '나'냐? 한번 따져 보자는 것입니다. '너 밑천 갖고 있어?' '우리집이 있습니다' '이 녀석아, 그게 네 밑천이야? 이 녀석아, 죽을 때 갖고 가겠어, 달고 가겠어? 너는 빌려 쓰고 있지 않느냐? 그게 네 것이냐?' 우리는 전부 빌려 쓰고 있습니다. 밥을 먹는 데 있어서도 아이들은 '내 밥, 내 밥 줘, 내 밥' 하는데 그게 아이들 밥이예요? 따지고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벌어 온 밥입니다. 그것은 또 어머니 아버지 밥이예요? 그 밥의 본래 주인은 농부입니다. 농부가 주인이예요. 그러면 농부가 주인이예요? 그것은 아무 지방의 흙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흙이 주인이냐? 아닙니다. 흙보다 근본으로 파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디에 처해 있느냐? 내 밥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성립되는 것이냐? 여러분이 내 밥이라고 할 때, 그것은 내내 계속해 온 인연을 가진 밥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 밥' 뭐 연기 같은, 냄새나는 밥이 아니라 내내 계속해 온 밥입니다. 그게 내 밥이라구요. '내 것' 하면 내내 계속해 온 것이 내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말이 재미있지요?

'내가 어디냐? 내가' 하는 자리를 중심삼고 '좋기는 어디서부터 좋아? 이 녀석아!' 라고 따지게 되면 '좋기는 뭐, 나 좋으면 되지' '이 녀석아, 네가 어디서부터 너야? 그 좋다는 것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무엇 가지고 좋아하느냐 이것입니다. 지금 좋아하는 것이 하늘 천법으로 보면 벼락맞을 일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구요. 내내 좋을 수 있는 것을 좋아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벼락맞는 것입니다. 잘하다 한번 걸리면 전부 다 따오기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나'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보증을 받고 난 터전 위에 선 나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역사를 입증시킬 수 있는 데 있어서 그 나라 국민이면 국민으로서의 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씨족이면 씨족으로서의 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그 가정의 유래를 이어받는 자리에서, 가정을 대표한 자리에서 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이 젊은 사람들은 이런 관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 히피라는 무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히피. '뿌레기가 어디냐?' '뿌레기가 어디긴 어디야 내가 뿌레기지!' 하는 것입니다. 뿌레기도 없이 줄기가 생겨 나고, 줄기도 없이 가지가 생겨나고, 가지도 없이 잎이 생겨날 수 있어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현재의 세계적인 정세를 두고 볼 때, 난국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난국에 처해 있느냐? 그 자체가 어떠한 동기에서 나왔느냐? 어떠한 유래를 거쳐와서 선, 종합적이요 연속적인 관계성 이런 것을 다 망각해 버린 자리에서 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우스운 것입니다. 찾을 수 없습니다. 좋고 나쁜 것은 반드시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처지, 내가 처해 있는 곳, 내가 처해 있는 땅, 이것을 여러분이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역사적인 결실체다

 

여러분의 눈을 가만 보면,'네 눈은 누구의 눈 닮았어?' '내 눈은 우리 엄마의 눈 닮았어요' '그러면 네 엄마의 눈은 누구 닮았어!' '엄마의 아버지 눈을 닮았어요' '그 아버지의 눈은 누구 닮았어?' '그 아버지의 어머니 눈을 닮았습니다' 이렇게 왔다갔다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네 눈은 여자의 눈도 아니고 남자의 눈도 아니구나' 그렇잖아요? 누구의 눈 닮았어요? 여자의 눈도 아니고 남자의 눈도 아닌 눈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여자를 통해서 닮아 오고, 때로는 남자를 통해서 닮아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박혀 있는 눈은 '여자의 눈이다' 할 때, 그것이 여자만의 눈이예요? '여자의 눈은 고운 것만 깜빡깜박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남자의 눈으로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여자의 종합적인 눈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자의 눈의 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남자가 보는 눈으로도 봐 줘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러니까 남자라는 것은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체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좋다는 것보다도 전체가 좋아할 수 있도록 내가 뭘 해주어야지' 이래야 원리적입니다.

코도 그렇다구요. 누구의 코 닮았어요? 어머니 코를 닳은 것이 아닙니다. 남자코, 여자코 전부 닮아 가지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손도 그렇습니다. 몇천대 남자 여자 공동작전을 해 가지고 엉클어져 나온 것이 내 손입니다. 나에게는 남자 여자 전부 다 들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안 그래요? 머리카락 하나도 그렇습니다. 누구의 머리카락이냐? 내 머리카락이 아니예요. 그것은 전부 다 남자 여자 선조를 통해서 계승받은 유물이지, 자기 자체가 창조물이 아니지 않느냐 이겁니다. 박물관과 같은, 골동품을 저장한 곳과 같은 것이 내가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골동품 가운데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여러분이 저 루브르 박물관이나 런던 박물관과 같은 데 가 보면, 거기에는 별의별 것들이 다 있습니다. 어떤 것은 어린애들이 보고 도망갈 수 있는 것인데 간판을 붙여 가지고 '이것은 역사적인 유물이요' 해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도망만 가요? 보고 쓰러질 수 있는 물건을 갖다 놓고도 이것은 역사적인 유물이라고…. '꿈에라도 다시 만나지 않기를 제발 빕니다' 이럴 수 있는 것이 귀한 물건으로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 귀한 물건이 뭐냐? 문화세계에 있어서 공헌한 줄기입니다.

만일에 종교의 기원에 있어서 세계에서 제일 큰 바윗돌이 하나 있어서 이게 뭐 해 가지고…. 우리 인류의 조상이 그 큰 바위를 보고 종교를 시작했다면 그것은 종교의 발원지로서 역사에 남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 자체가 남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결부시켜서 둘이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 남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열매입니다. 이렇게 거쳐온 것이요,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렇게 내가 이어받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것은 또 가야 하는데 올바른 전통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게 될 때, 그것이 정의에 입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그러한 길을 따라서 찾아올 것이 아니예요? 이것은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죽어 봐야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처지,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를 위해 있는 종교가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위하다 망하게 되면 말이예요. 모두가 '아이구, 잘 망했다' 하고 통일교회 교인들이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하다 망했다 하게 되면 통일교회 교인만 눈물을 흘리겠어요? 뜻 있는 사람은, '아이쿠…' 하고 삼천만이면 삼천만이 눈물을 듬뿍듬뿍 흘릴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람은 죽어 봐야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 은덕이 얼마나 크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죽어 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잘살았는지 못살았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 자식 앞에 부모가 책임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죽어 봐야 압니다. 자식들이 곡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아. 부모의 은덕을 받은 아들딸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동네 사람들이나 친척이 와서 엉엉 울고 곡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영향력 있었는가를 알수 있고, 또 그 제자들이 와서 가슴이 시리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 같은 데 가 보라구요. 예수님 무덤에 가 보면 말이예요. 난데없는 오색 인종들이 와 가지고 무덤을 붙들고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야, 이래서 훌륭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역사는 지나가고 흔적은 없지만, 그 인연을 더듬는 가운데 뼛골이 울려 가지고 녹아날 수 있는 기름 땀을 흘리고 피어린 심각한 심정을 가지고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볼 때, 과연 위대한 인물이고 성자라 아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가 망하게 된다면 공산당이 '아이구. 좋아라' 할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민주세계는 눈물을 흘리겠어요? 공산당보다 나은 자리에서 쓰러졌으면 공산당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예수님이 천도를 앞에 놓고 자기를 잡아죽이는 그런 악당들보다도 나은 자리에서 죽었을 때 천도는 타락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가중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입체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그저 주일날이나 교회 가면 통일교회인이야! 그 부산스럽게 남들 사는 세상에 젊은 청춘도 다 잃어버리고…' 통일교회에서 날뛰어 봤자 국물도 없다구요. 선생님은 뭐 생기는 것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다구요.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습니다. 그 있는 것이 자기 눈앞에 깜박깜박하는, 나타나서 '아이구 좋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더불어 있을 수 있는 것을 바라고, 세계와 더불어 있을 수 있는 것을 바라게 될 때 그것이 남는 것입니다. 공적인 활동을 하지 않게 되면, 원수와 같이 이간시키고 살랑살랑 눈치를 봐 가지고….

 

대신자를 세워 놓고는 편안할 수 없다

 

여러분, 선생님이 요전에 제주도를 갔다 오는데, 비행기를 타기 위해 쭉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얌전한 중년 부인이 있었어요. 우리 식구 세 사람이 가서 선생님 대신 줄을 서서 있었는데 나중에 내가 그 줄에 가서 섰습니다. 아무리 대신 세웠더라도 자기가 안 하고는 마음이 떳떳하지 못한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옆으로 쓱 가서 붙었는데 그 부인이 '저 남자가 체구는 그만한데 새치기를 하려고 그러는구나' 이렇게 마음으로 생각을 한 모양이예요. 그런 생각이 마음에 와 닿아요. 조금만 더 지나면 입을 열거나 눈짓을 할 것이다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왜 그러냐고 할 수 있어요? 그러는 것이 당연하지요.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남은 맨 처음부터 와 서 있는데 떡 와서 앞 사람 옆에 가서 쓱 붙어 서니까, 그 부인은 앞 사람이 선생님과 관계된 사람인지 모를 거라구요. 그런데 세 사람이 쭉 빠지고 선생님이 혼자 서니까 그 다음에는…. 그걸 보면 그런 것은 통하는 모양이지요? 대신자가 한 사람보다도 두 사람, 세 사람씩이나 빠져 나가고 줄을 서니까 불평하던 것이 도리어…. 식구 들이 대신 가서 안 서 주면 내가 서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대신 이라는 것이, 대신 가지고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그때도 느껴 봤어요. 대신 가지고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알겠어요?

하나님도 타락한 인간들을 내세워 가지고 일을 시킬 때 재미가 있겠느냐? 아이쿠 얼마나 가슴이 섬뜩섬뜩하겠어요? 어린아이를 우물가에 데려다 놓고 놀게 하는 것과 똑같은 놀음을 시키는 것이 되는 거예요. 자, 보라구요, 철이 있나. 여러분이 맨 처음 들어와서 철이 있었어요? 칼을 사방에다 늘어 놓고 춤추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신나서 춤을 추다가 허리가 부러지고…. 맨 처음 통일교회는 그런 식이었던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이고, 너만…. 비밀이야. 이것은 나만 아는 것이다' 하며 쏙닥쏙닥해 가지고 그저 잡아먹으려 하고…. 별의별 놀음 다 해 가지고 생사람 잡아먹었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날총잡이, 산에 다니면서 깊이 잠들어 있는 산돼지를 깨우고 놀라게 하는 것은 날총잡이입니다. 포수는 원래 죽이더라도 놀라지 않게 살짝 죽이는 것입니다. 놀라서 얼이 다 빠지게 해 가지고 기진맥진하게 해서…. 이들은 날총잡이들입니다, 날총잡이.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시는 데 여러분들을 내세우게 될 때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여러분을 내세워 놓고 편안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가다가는 코가 깨지겠으니, 그러다가는 머리가 터져 죽겠으니 할수없이 '야 야, 한바퀴 돌아왔다' 그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 눈으로 볼 때 여러분들의 꼴이 얼마나 해괴망측하겠느냐 이겁니다. 또, 그 주제에 자기 부족함을 알고 얼굴을 못 들고 땅에 엎드려 엉덩이를 높여 가지고 '아이고 나 죽소!' 이러면 모르겠는데 '내가 잘나서 이렇게 되었지요, 아버지? 내 얼굴 예쁘지요? 이게 무슨 수작이예요? 여러분들이 하는 놀음 놀이를 하나님이 눈으로 한번 들여다본다고 생각해 봐요. 철딱서니가 있어요. 없어요?

저, 석온씨 노친네도 참 철딱서니가 없다구요. 주름살을 한 바가지나 달고 다니면서 뭐 쏙닥쏙닥하고 살랑살랑하면서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떤 때 보면 철딱서니가 없다구요. 그게 한두 번이 아닌 것을 알아야 돼요. 내 눈으로 봐도 그런데 하나님이 볼 때, '어이구, 내 딸 용하다 용해. 똥을 뭉겨도 용하다 용해. 또 싸라 또 싸라' 하시겠어요? 그 용하다는 것이 어떻게 용하다는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볼 때 그 동기 심통까지도 빤히 들여다보이는데, 여러분 같으면 뭐 남아졌을 것 같아요? 여러분 같으면 지금까지 남아날 것 같아요? 하나님이니까 참았지, 여러분들 같으면 씨알도 없을 것입니다. 안 그랬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래도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타락한 후손이니까 할수없지 않소!' 할 때 그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 누구. 아무개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남을 물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나는 세 부모의 사랑의 유물

 

형무소 생활을 해보면 영웅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전부 다 성인입니다. '당신 왜 들어왔소?' 하면 '왜 들어와, 내가 잘못했나? 나는 일시에 이렇게 해 가지고 3년 후에 대한민국 백성을 잘살게 하려고 했는데, 그위정자들이 내 작전계획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왔다'고…. (웃음) 이렇게 죄인이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승리했으면 영웅이 될텐데…' 합니다. 패하면 역적이요 승리하면 충신이라는 말도 있듯이 변명은 다 있습니다.

자,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이 몰랐다가는 큰일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르시지 않고 다 알고 있다구요. '요놈아!' 변명 할래야 변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입을 열게 되면 자기가 생각했던 것이 다 지워지리만큼 자기가 알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공판 정에 서서 아무리 부정을 하려고 하더라도 증거할 수 있는 자료가 눈을 감게 할 때는 입을 벌릴 수 있어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뜻을 위한다는 것이…. 손이 놀아나는 것을 가만히 하나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야, 이놈의 손아! 어디 가 어디, 어디 가? 이놈의 입아! 왜 놀아 왜? 이놈의 눈아! 어딜 봐 어딜 봐?' 전부 다 불합격품입니다. 합격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본래 불합격품인데, 불합격품을 대접해 달라는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나를 알아 달라고? 불합격품은 불합격품으로 알아줘야지, 알아주긴 뭘 알아 줘요? 그런다고 섧다고 생각하면 합격될 수 있는 물건은 영영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합격품은 불합격품으로 이마에 도장을 탁 찍어서 제쳐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쿠. 안 된다' 각성을 하고, 제 2 의 소모를 해 가지고, 다시 출발하여 소망을 가지고 죽은 무덤이라도 남겨야 합니다, 그러면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지옥에 가더라도 거꿀잡이로 다리를 고쳐 가지고 떨어지는 패가 안 되고, '하나님, 저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소망하는 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조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현재 우리들의 처지는 나만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요전에도 내가 수택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여러분 자신들의 주인은 누구냐 하면 여러분 자신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그 몸이면 몸의 주인이 누구냐? '누군 누구야? 내가 주인이지' 하는데 아닙니다. 그 주인은 누구냐? 만물이 주인입니다. 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전부 다 빼 가면 꺼풀밖에 안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인이 누구냐?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나왔으니, 어머니 아버지가 본전을 찾아가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마음의 주인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주인이 전부 다 발동하여 소유관념을 가지고 주장하게 되면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것이 내 것이예요? 눈이 자기 거예요? 손이 자기 거예요? 몸뚱이가 자기 거예요? 아닙니다. 그러니 이 땅이 제 1 부모고, 그 다음엔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제 2 부모고, 하나님이 제 3 부모입니다. 이 세 부모의 유물입니다. 유물. 사랑의 유물. 사랑했다는 증거물로서 등장한 패가 오늘의 '나'입니다.

사랑의 유물로 남아졌기 때문에 그가 얼굴에 붙이고 다닐 것은 사랑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가 입고 다니는 것도 사랑입니다. 땅에 대한 전체의 사랑을 자랑해야 되고, 부모에 대한 은덕의 사랑을 자랑해야 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자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유물이니 사랑의 박물관에 납품해야 할 진열품들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의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유물로서의 사랑의 인연을 공개시켜 가지고 환경에 그 빛을 발해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사랑받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겠다는 운동이 새로운 문화창조의 동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싸움하는 데 있어서 제일 말리기 어려운 싸움이 사랑받겠다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내건 싸움입니다. 사랑받겠다 하지 말고 사랑하겠다 하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은 싸우다 죽어도 하나님이 표창한다는 것입니다. 둘 다 죽어도 어느 하나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려고 싸우다 죽게 되면 말이예요.

부처끼리 서로 사랑하려고 싸움하게 된다면 말이예요. '아, 당신은 나를 너무 사랑하는데 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고 남편이 그러면, 아내가 '여보, 그 말이 무슨 말이예요? 내가 당신보다 더 사랑해야지 당신이 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싸우다 둘 다 죽었다 합시다. (웃음) 둘 다 죽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찾아와서 기념비를 세워 줄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심판관이기 때문에 그러는 날에는 기록이라도 남겨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같은 양반을 보라구요. 예수가 무슨 건덕지가 남아 있어요? 죽을 자리에 갈 때는 올바른 신발 하나 신고 가지 못했습니다. 옷 짜박지까지 전부 추첨해 가지고 나누어 갖는 형편이었습니다. 부패해 들어가는 말정(未政)의 시대였던 그때에 얼마나 궁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죽은 죄수의 옷을 서로 갖겠다고 추첨해서 나누어 갖는 그 신세들을 보면 얼마만큼 피폐한 역사적인 종말시대였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형편없이 몰락한 사나이가 예수입니다.

보라구요. 민족한테 추방을 받고, 교회한테 추방을 받고, 어디 가든지 몰리고 이러다가 명성을 남기고 죽었어요? 누구를 위해 죽었느냐? 예수는 사랑하려고 하다가 죽었습니다. 알겠어요? 누구 누구를 사랑하려다 죽었느냐? 세계를 사랑하려고 하다가 죽었습니다. 간판을 가졌다구요. 사랑받겠다고 하다가 죽은 패가 아닙니다. 사랑하겠다고 하다가 죽은 패 입니다. 사랑을 하려고 하는데 원수들이 사랑을 안 받겠다고…. 그런데도 복을 주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죽은 푯말 밑에 사랑의 꽃이 피었습니다.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을 하나님은 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념품으로.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생각할 때, 사랑받겠다고 하는 세상 가운데서 사랑하겠다는 운동을 제시한 것이 새로운 역사에 새로운 문화 창건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어디까지나 사랑받겠다고 하니 망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사랑받으려 하고, 무슨 감독(監督)이 되면 '아, 내 휘하에 있는 교인들은 나를 사랑해야 된다' 그런 녀석은 미친 녀석 입니다. 낮도깨비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사랑받겠다고 하는 녀석은 전부 건달입니다.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올바른 역사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는 자기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전체를 사랑하자. 왜? 내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러한 사명을 터전으로 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살고 그렇게 끝을 맺는 것이 본분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태어났고 사랑하려고 살고 사랑하려고 애쓰다가 죽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하고, 어떻게 하든지 사랑했다 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사랑을 하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느냐?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주는 것을 가지고'너 좋지?'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에 사랑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면서 '더 좋은 것을 줄께'하고, 주고 나서도 미안함을 느끼고 '야! 이것으로 참아다오'할 수 있는 그러한 세계에서만이 천국이 탄생되지, 사랑받겠다고 하는 데서는 천국이 탄생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영원히 사랑하려고 하는 전통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

 

현재 우리의 처지가 어떤가를 알아야 됩니다. 내가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은 통일교회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흠뻑 한번 사랑해 보자, 사랑하는 데는 먼저 만물을….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는, 사랑 못 받는 자리가 슬픈 자리입니다. 부모의 눈 밖에 나는 자리가 아니예요? 그것은 등외품의 자리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구석에서부터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 통일교회를 사랑해 봤어요?

자, 통일교회를 보면 청파동에 통일교회 본부가 있는데, 사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어저께도 이야기했다구요. 여러분들이 본부를 다 뜯어고치고 다 그랬는데, 선생님도 없는데 전부 뜯어고쳤다고 해서 내가 기분이 나빴습니다. 내가 순회하면서 당장에 전보를 쳐서 정지하라는 명령까지 했습니다. 왜 그러냐? 역사적인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유물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뜻을 아는 사람이면 그 자리를 역사적인 내용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알고 찾아올 것입니다. 아무리 잘 뜯어고쳐 봐야 서양의 먼 발치의 구색도 갖추지 못한 그런 형태를 가지고 자랑하려고 할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아무것도 없다 이겁니다.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빛나는 것이 아니예요? 거기에 전통이 있는 것이요, 거기에 빛이 있는 것이요, 거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요, 거기에 흐름이 있는 것이요, 인연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드러난 사실, 지금 현재에 보조를 맞추는 자리에 역사가 인연되는 것이 아니지 않아요? 전통을 존중시할 줄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구요.

왜냐? 선생님이 무슨 집을 좋게 만들려면 자기네들 손 아니라도 당장에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아직까지 사랑하는 데 있어서 끝을 보지 못한 자리에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해서 약속하고 맹세한 것을 끝을 보지 못한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예요? 이런 걸 생각할 때 순서가 엇바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당장에 좋다고 하는 그것만 좋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이냐, 어디를 통해서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거기에는 사랑의 때가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예요? 역사와 더불어 증거적인 환경의 여건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거기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 전도 나갔던 사람들이 전도 나가서 식기가 없어서 깨진 사기 그릇에다 밥을 담아 먹었다면, 그 그릇은 여러분의 일생에 둘도 없는 보물이 아니예요? 그런 걸 알아야 됩니다. 그걸 붙들고 나라를 염려했고 거기에다 밥을 먹으면서 하늘 앞에 통곡하며 기도했던 그 사실, 그 사상적인 전통이 보다 귀합니다. 예수가 십자가 형틀에 돌아가면서도 '아바 아버지여. 저들이 범하는 죄를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 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를 돌이킬 수 있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얼마나 사랑받으려고 했느냐? 그것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건 한때의 바램이지 영원히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영원히 사랑하려고 하는 그런 전통을 따라서 남아져 오는 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이 아니예요? 사랑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다 하고 나서 결과를 봐 가지고 좋으면 받고 나쁘면 안 받으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이 사랑을 다 못한 자리에서 후회하는 역사를 붙들고 나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난의 그 복귀의 역로를 더듬어 왔던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환경에 어울리지 않음을 백 퍼센트 느끼는 게 지옥

 

일생 동안의 자기 생애를 생각할 때, 내가 이렇게 나이는 많지만 교회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느냐? 교인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동료간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지요? 부끄러운 때는 그 환경에 어울리지 못하게 될 때입니다. 그런 수치감을 느껴 왔지요? 내 이야기 하나 하지요.

내가 스물 몇 살 때 일이예요. 우리 친구가 있었는데 목포에서 제일 갑부였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그 집에 찾아가게 되면, 다 알고 인사도 할수 있고 쉴 수도 있는 입장입니다. 그 친구가 어느 집 외동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왜정시대라 전부 다 국방색 옷을 입을 때입니다. 그때는 무슨 예복이니 뭐니 입고 예식을 하지 않을 때예요. 그래도 목포를 대표할 수 있는 도평의회, 그때로 말하면 도의원이지요. 그런 입장에서 도지사부터 한다는 패들이 전부 다 모이는…. 그때는 왜정 때이지만, 난시(亂時)지만, 전시(戰時)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국방색 옷을 입고는 결혼식을 하는 곳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응당히 그럴 줄 알고 갔다구요.

그때는 결혼식 하게 되면 사회풍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시책이 그렇기 때문에 그럴 줄 알고 떡 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라는 사람이 말이예요. 들러리로 서는 사람이 친구 세 사람이었다구요. 그 세사람 옷을 마련했는데, 그 옷을 보통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똑같이 마련을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보기에는 선생님이 몸집도 얼마 크지 않은 것같고 보통 사람 같지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으면 여기밖에 안 오고 여기밖에 안 와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가도 김일 선수 정도의 사이즈가 아니면 맞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레가 이렇구 상당히 그렇다구요 선생님이 다른 남자들처럼 어깨는 이렇게 쪽 빠졌지만 엉덩이가 큽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세밀히 보는지 모르지만 나만큼 모를 거예요.

이제 한두 시간 후에는 식이 벌어질 텐데, 거기에 가니까 도(道)에서 저명한 사람들이 전부 다 예복을 입고 격식을 갖추어 가지고 모여 들었습니다. 전쟁 때지만 옛날에 준비해 놓았던 옷들을 입고 다 나서는데, 내옷 입은 것을 보니 내가 봐도 이 옷이…. (웃음) 거울을 보니 이것 죽지도 못하고 도망도 못 가겠고…. 자 그 옷을 입어 놓으니 말이예요. 와이셔츠는 이렇게 되고 웃옷은 이렇게 짧아서 이것을 잡아당기려니 여기가 그렇지, 이래 가지고 이게 맞지 않지…. 그때의 창피함은 일생 동안 잊혀 지지 않습니다. (웃음) 지금도 생각하면 아주 실감납니다. 그걸 보면 선생님도 끔찍이나 체면을 생각하고 그런 환경에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에 대한 감정이 예민한 사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참 빠릅니다. 벌써 척 보면 저 사람은 틀렸다, 대번에 안다구요.

색깔을 고르는 데도 참 빠릅니다. 일본에 가서도 넥타이를 고르는데 누구는 본 것을 보고 또 보고 수없이 보면서 뒤적뒤적하는 거예요. 나는 쓱 보면…. 남은 하나 고르는 데도 한 시간이 걸렸다는데, 선생님은 한번 쓱 보고 단 몇초에 재깍 골라냅니다. 가만 보면 뚱뚱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자꾸 하고 다니다 보면 어울리게 됩니다. 맨 처음엔 별로 멋이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하고 다니다 보면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조로운 것은 고르지 않습니다. 입체적인 것,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 같은데 쓰다 보면 뭐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도 옷을 해 입을 때는 나한테 '부탁합니다' 합니다. 색깔을 잘 골라 주거든요. 그런 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오죽했겠어요? 그 환경에 어울리지 못했던 그때의 챙피라는 것은 일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야, 지옥이 따로 있나, 지옥이. 지옥이 다른 게 아니라구요. 그 환경에서 자기의 수치감을, 자기의 비준에 맞지 않는 것을, 그 어울리지 않은 것을 환경적으로 백 퍼센트 느끼는 것이 지옥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어울리지 않을 때 거북한 것 있지요? 꽁무니를 아무리 빼려고 해도 뺄 틈바구니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 느낄 때가 더러 있지요? 자기 변명하지 않고 설명도 않지만 부끄러워 가지고 따라갈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는 그런 느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자, 그런 것은 운이니까 그때는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계의 생활은 육신생활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영계, 무한한 세계에 가게 되면 시간은 영원입니다. 한번 보게 된다면 영원히 따라다녀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한번 했다 하게 되면 영원히 남아지기 때문에 영원히 따라다니게 됩니다.

그런 판국이 벌어지는 세계가 된다면, 한번 뒤집어지면 백방이 알고 살아갈텐데 그때의 자기 정체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그걸 수습할 수 있는 비법은 이 육신생활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이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바로잡는 것은 절대 나를 위해서 바로잡는 법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나를 위해서 바로 잡는 법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50년 동안 절대 고생 안했습니다,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내가 고생했는데 그걸 몰라준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그 입을 째야 됩니다. 입을 째 버려야 된다구요. 통일교회에서 누구보다도 선생님이 더 고생했습니다. 거 틀려요. 맞아요? 맞지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누구보다 고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등인데도 불구하고 등수도 못 되면서 나 알아 달라고? 그것은 강도입니다. 도둑놈 패라구요. 입을 다물고 후퇴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렇다구요. '하나님, 나 고생했으니 알아주시오' 하면 불효자입니다. 어떤 아들이 '내가 십년 동안 효성한 것에 대한 대가를 몰라주시오, 아버지?' 이렇게 한다면 불효자입니다. 그 누구를 위해 있었느냐?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거라구요. 자기 이익을 위한 유도방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리 고생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꿈에도 불평을 안 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고생하신 하늘의 부모가 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기가 고생했다고 얼굴 들고…. 어림도 없습니다. 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뭐 이러고저러고'변명해 가지고 쩨쩨하게 내가 통일교회 안 가는 것은 누구 때문에 안 간다고…. 그 죽은 유 협회장이 욕 많이 먹고 갔지요. '아이구. 그 유효원이 그게 어떻고…. 내가 뭐 통일교회 선생님이 싫어서 그러나? 지금도 나가 가지고 그럽니다.

엊그제 어떤 아주머니가 와 가지고, 통일교회에서 나가 가지고 자기 멋대로 시집을 갔다는 거예요. 그래 통일교회 생각이 떨어져 나갔으면 좋겠는데 이거 점점 굳어진다나요? 몽시에라도 안 보이면 좋겠는데, 꿈에 안 나타나면 좋겠는데 밤낮없이 나타나 가지고 못살게 만든다고…. 못살기야 왜 못살아요? 옳은 길 가라는데, 이것 안 보려고 해도 보이고, 생각 안 하려고 해도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한테 툴툴거리면서 이러고저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그러니까, 남편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관심을 갖더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주먹구구식으로 갈 수 없다

 

통일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여러분이 적당히 지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으면 여러분보다도 선생님이 먼저 갈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만큼 머리가 없는 것도 아니요,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보다 낫습니다.

우리 예진이에 대해서 얘기하면, '너 머리 나쁘니?' 하면 머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네가 공부하면 일등은 틀림없지?' 하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적이 일등 자리에서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 아니냐?' '그건 내가 안 하니까 그렇지. 이제라도 하면 돼' 합니다. 예진이가 5학년까지도 글을 지었습니다. 4학년 때부터 소설을 참 많이 읽었어요. 선생님 책장에 있는 것을 거의 다 읽었다구요. 아주 앉아 가지고 독파를 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너 졸업생이 될 텐데 나하고 약속하자. 너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 내가 한번 테스트할 테니까 실력 한번 발휘해 보아라' '예, 합시다' 찬성하더라구요. 하면 전부 다 백점입니다. 그래서 예진이가 공부 해서 5학년 때보다 6학년에 올라가서 그렇게 차이가 나니까 그 담임이 컨닝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런 말을 듣고 기분 나쁘고 분하다고 해요. 그래 분해라. 그 선생님이 남자 같으면 쫓아가서 배때기를 차 버리고, 모가지를 잡아도 놓지 않고 '이놈의 선생, 너 가르쳐 준 것이 컨닝밖에 없느냐?' 했을 텐데 여자라서…. 여자니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남자 같으면…. 그걸 보면 예진이가 머리가 있다구요.

우리 효진이도 '너 일등해야지?' 하면 '합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백점 받아 오는 것입니다. 4학년 올라갈 때 일등했습니다. 일등할 수 있는 머리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머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뭘 연구해 가지고 학박사 됐다 하면 박사 하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셋 이상 안 하면, 40대까지 앉아 가지고 내가 죽든가 살든가 판가리하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하느냐? 다 계산하고 저울질해 보니 그것이 포괄성이 없기 때문에, 다 집어 던지고 통일교회 문선생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 노릇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해먹으라고 해도 못 해먹습니다. 통일 교회 문선생이나 해먹게 되어 있지 다른 사람은 갖다가 안겨 줘도 하루도 못 해먹는다구요.

여러분이 이 길을 도망갈 수 있고 피해갈 수 있었으면 선생님이 갔지, 이러고 있겠어요?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사는 사람인 줄 알아요? 여러분이 피해 가서 이익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선생님이 벌써 피해 가서 낮잠 자고 쉴 것입니다. 갈 데가 없기 때문에 이 노름 하는 것입니다, 갈데가 없기 때문에. 알겠어요? 갔다가도 또 와야 됩니다. 안 올 수 없습니다. 머리를 들고 갔으면 그 다음엔 배밀이를 해 가지고 돌아와야 하고, 한 번 좋다고 웃고 갔으면 천 번 눈물을 흘리고 그저 '살려주십시오' 하며 돌아올 길이니까 할수없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할수없다고 해서 낙망적이 아닙니다. 희망적인데 그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할수없다는 말이 나올 뿐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 인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무리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 선생님이 같은 입장에서 뭘하면 누구에게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나. 세상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절대 질 자신이 없다구요. 질 자신이란 말이 이상한 말이지만 말이예요. (웃음) 절대 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한다고 결심하면 합니다. 머리가 열두 쪽이 나더라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이 나를 믿는 것입니다. 왜정 때 지하운동이나 학생사건 때도 '나를 믿어라!' 하면 전부 다 내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모가지가 동강이 나도 절대 안 부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문이 쏟아져도 '쳐라 이 자식아!' 하며 절대 안 붑니다. 강제에 못 이겨 가지고 굴복하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우리 아들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 잘 닮았다. 어쩌면 그렇게 옛날 나 어릴 때 모습이냐' 참 실감이 납니다. 놀기를 시작하더라도 저녁 때 내일 논다고 마음먹으면 책은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저 헛간에 집어 던져 버립니다. '너 집에 가' 하고는 공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노는 것입니다. 그렇게 놀 때는 새벽이 되어도 잠을 안 자는 거라구요. 마굿간에서 잠자는 소의 배때기를 들이차서 깜짝 놀라서 '엉' 하고 날뛰는 것을 보고 그런 흥분된 자극적인 환경을 보고 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효진이가 딱 나를 닮았습니다. 머리가 깨지면 깨지고 간다 하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구요.

그런 것을 보면 하나님이 참 계산을 잘하셨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잡아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 모진 핍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터 나가고 있지…. 그런 사람입니다. 뭐 남의 비위나 맞춰 가지고 한들한들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구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저렇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내가 먼저 갔습니다. 알겠어요? 먼저 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기 모인 것은 여러분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할수없이 몰려온 패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자신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인연이 있어서 왔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과 인연이 있다구요. 인연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

대해(大海)를 향해서 흐르는 물은 전부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만날 때가 됐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만나 가지고 천하의 대해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이 있어서, 통일교회에서 단결해 가지고 더 큰 분야의 대해를 향해서 흘러가기 위해 온 것이 아니예요. 그러니 대해로 흘러갈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갈 길입니다.

 

나에게는 천주가 연결되어 있다

 

여러분, 대부분의 사람들, 자기들이 뭘 해먹겠다고 하는 패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동창생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가 뭘 해먹겠다고 합니다. 다 해먹으라는 거예요. 다 해먹는 동안 나는 구경이나 하고 시정이나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갈 때, 죽을 때는 전부 다 나한테 상속해 주고 갈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배짱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자기 자신을 문선생이라고 말을 하다니 세상에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겠지만, 그것은 나를 중심삼은 가치적인 미스터 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대표로 선 미스터 문이기 때문에 나도 존경해야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존경할 수 있는 미스터 문이라는 그 기준을 내가 알기 때문에 그 기준 앞에 상대적인 역할을 해야 할 개인 미스터 문을 말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다릅니다.

공적인 것은 지금도 공적이요, 그 아무한테 머리를 숙이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공적입니다. 자식이 어렵게 될 때 부모의 탈을 벗고 머리를 숙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적인 그 자체로 볼 때 내가 문선생이라고 이야기해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추구하는 목적을 높임에 있어서, 사명을 촉구할 수 있는 자아를 강조하는데 있어서 자극은 될는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을 높이는 자리에 있어서 이런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선생님이 지금 청파동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떻게 세계와 맞먹어 들어가느냐? 이게 수수께끼입니다. 수수께끼라면 그런 수수께끼가 없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말하는 것이 역사와 더불어 들어맞더라 이겁니다. 그걸 여러분이 자각할 줄 알아야 돼요. 자기 아버지가 잘난 것을 자식이 모릅니다. 선생님이 잘난 것을 그 제자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딱 그 격이라구요. 아무리 금강산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가까이 가 보면 바위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길이라는 것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바라는 이상의 나라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그 이상의 나라는 통일교회가 바라는 세계를 위해 있는 것이요, 그 세계는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개방된 단 하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나'의 처지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처지를 알아야 됩니다. 처지라는 것은 내가 서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 서 있는 자리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가정이 연결되어 있고, 민족이 연결되어 있고, 국가가 연결되어 있고, 세계가 연결되어 있고, 하늘땅이 연결되어 있고, 천주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체적인 입장에 서려면 사랑을 해야

 

여러분, 세상 밑창인 저 깊은 곳이 되느냐, 아니면 꼭대기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깊은 곳은 내려가기 쉽지만 높은 곳은 올라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깊은 곳을 표준으로 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을 표준하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러한 입장에서의 처지를 지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흔히 폐단이 무엇이냐 하면, 이러한 인연을 통해서 거쳐온 자기 입장을 망각하는 데에서 타락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해와도 그래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거쳐온 처지를 망각하고, 인연의 자리를 망각할 때 타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를 들고 나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전체 산맥이라면 산맥을 통해서 그 움직임에 맞게끔 산이 이어 나가야 하는데, 자기 자유의 움직임을 중심삼은 주체적인 입장에 있으면 파탄이 벌어집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색한 것입니다. 어색한 것은 중심이 못 되는 것입니다. 어울리는 것일수록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어울리자, 민족 앞에 어울리자, 교계 앞에 어울리자는 거예요.

우리는 요즘에도 그렇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 현재 종교계에 있어서 선두에 달리고 다 이러니까, 오래된 종단이니 무슨 교파니 자랑하던 사람들이 끌려가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기분 나빠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움직임도 그 길을 가기 때문에 안 따라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고비 넘어 완전히 옳고 그른 것이 판결나게 될 때는 천하가 공인하기 때문에 여기에 반대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기 위해서 온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랑을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하늘을 대표한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 서려면 사랑을 해야 됩니다. 상대적 입장에 있으면 사랑을 받아야 되지만 주체적인 입장에 서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상이요, 우리의 처지가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라고 하는 것은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서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라 이겁니다. 통일교회 교인이거들랑 통일교회 교인을 사랑하라. 통일교회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 미쳐라. 그 나라는 단순히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미칠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미쳐라. 그러면 그 나라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미칠 것이 아니라 천주를 사랑하기 위해 미쳐라, 천주는 천주 자체를 사랑하기 위해 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미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미친다면 두루뭉수리 같은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표현을 두루뭉수리라고 했지만 그저 좋다는 것입니다. 그저 좋다는 거예요. 그저 좋다는 말 있지요? 그저 좋고 그저 좋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미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벌어져 가지고 서로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천국이요, 인간이 바라는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도달하게 되면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일 것이냐? 웃게 되면 천년 만년 웃을 것이 아니냐? 그렇다는 겁니다. 춤을 추게 되면 천년 만년, 손을 들어 한번 추기 시작하면 그 춤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상세계가 와야 합니다.

내가 현재 이런 환경에서 스톱할 것이냐? '환난과 핍박아 어서 와라! 나는 간다' 하려니 드럼통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단단해야 되겠습니다. 단단해 가지고 아무데나 붙들 수 있고, 반동적인 자각을 이룰 수 있는 것이어야 되겠습니다. 그럴수록 뭘해야 하느냐 하면, 역사적인 핍박이나 시련을 수련을 통해서 극복해야 합니다. 극복의 터전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도약하는 데 있어서 반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퇴폐시키고 나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보다 가중된 속도를 가해 줄 수 있는 도약의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때 멋집니다. '와라, 와! 부딪쳐 봐라…' 그래 가지고 개인적인 환경을 밟고 도약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쾌감을 느끼고 삽니다.

자. 이번에 승공연합이 반공연맹을 밟고 올라서자 해 가지고 지금 올라섰습니다. 기성교회를 밟고 올라서자! 나슬나슬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 재미에 살지, 그 재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지지리 욕을 먹고 못살고 말 일이지. 자, 올라서자! 아시아에서부터 아시아를 딛고 올라 서자, 구라파 천지를 딛고 올라서자, 지구성을 딛고 올라서자, 영계를 딛고 올라서자, 최후의 승리적인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가슴을 붙들고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향해서 득세하자, 이것이 통일 포탄의 갈 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지다, 기지입니다. 새 새끼가 날아갈 시기가 되면 집은 엉망이지요? 안 그래요? 청파동이야 어떻든 날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사랑하기에 미치자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보장을 받은 자리에서 여자를 사랑하라. 세계의 보장을 받은 자리에서 여자를 사랑하라 이겁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의 처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반성해 보라구요. 나는 사랑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교인도 사랑받기 위한 패가 아니라구요. 사랑하기 위한 패입니다. 알겠어요? 사랑하기 위한 패이니까. 세상 사람들은 사랑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환영한다. 안 한다? 어느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사랑받겠다는 패이고 우리는 사랑하려는 패이니 세상 사람들이 환영하기 마련입니다. 거기에서 우수한 사람은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가는 대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처지는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것

 

여러분의 손발이 통일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움직여 봤느냐? 손발이 내 밥을 먹기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 봤고 내 눈이 많이 움직여 봤지만, 통일교회 식구를 사랑하기에 얼마나 움직여 봤느냐? 통일교회를 위해서 내 땀을 얼마나 흘려 봤으며 내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게 될 때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랬느냐? 자기를 위해서 그랬다면 부끄러움이요. 세계를 사랑하려고 그랬다면 영광입니다. 천국의 한 탑을 쌓는데 한 조각 한 조각 올려 쌓은 터전이 그 피곤한 잠자리 가운데 쌓여져 올라가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자. 그래서 교회를 넘고 나라를 사랑하자. 우리가 그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열교(裂敎)가 있습니다, 일반 전통적인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예수 믿는 것 이외에는 전부 다 지옥간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열교의 책임자들이 지금 선생님을 만나자고 합니다. 수택리 언제 가느냐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만나자고 해도 내가 안 만나 주고 있습니다. 한다 하는 사람들이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 주고 있습니다. 왜 안 만나 주느냐? 먼저 기독교 책임자들을 만나고 나서 만나야 할 것이 선생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고 있다구요. 모르지 않습니다.

기독교 목사들 보면 나하고 원수입니다. 칼이 있으면 등골의 뼈가 우썩 부서지는 것보다도 더욱 폭삭 녹아질 수 있을 정도로 찔러 버릴 수 있는 원수들입니다. 용서 할 수 없는 원수들이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잡아죽이려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원수들이지만 2천년 역사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잃어버린 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 아버지를 대해서 효성의 도리를 지키겠다고 죽음의 대가를 치러 나온 기독교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딱 요셉과 마찬가지입니다. 열 한 형제가 요셉을 팔아먹고, 원수와 같이 취급해서 죽이려고 했던 입장에 섰습니다. 요셉에게는 그 열 한 형제는 형제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원수가 어려운 자리에서 찾아오게 될 때 당장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일생 일대의 분한 마음이 있었지만 부모를 사랑하는 요셉은 그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이 부모를 모시지 못하고, 부모 앞에 효도해야 할 입장에서 들려 날 수밖에 없었을 때, 부모를 위해서 울타리가 되었던 것이 그 형제들이 아니냐는 거예요. 형제들을 부모를 봐서 용서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딱 그 마음입니다. 그건 누구도 모를 거라구요. 그래서 그들을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에 열교(製敎) 사람들을 대해 주면 모든 것을 몽땅 빼앗겨 버립니다. 빼앗겨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2천년 역사는 어디로 가느냐 이겁니다. 서자가 종손이 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이 한계 때까지 선생님이 해야 할 책임을 아직까지 다 못했다 하는 것이 선생님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걸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고생을 좀더 하더라도, 통일교회가 좀더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그냥 그대로 전통을 살려주고, 빛날 수 있는 결과를 같이 맞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갈길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조금 편하게 된다고 '아이고, 나 그거 좋소' 하게 되면 그것은 장날의 장돌뱅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반짝했다가 보따리 싸 가지고 떠나는 장돌뱅이밖에 못 되는 겁니다. 자리잡은 장사꾼은 못 되는 것입니다. 자리잡은 장사꾼은 손해가 나더라도 그 단골손님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 판국을 거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장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통일교회는 사랑을 받기 위한 패들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사랑은 사람을 통해서 받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통해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한 것만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 것 이상, 자기가 사랑 하고 나면 다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열만큼 쓰면 열 둘의 순이 나왔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자기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지더라 이겁니다. 이 재미를 본 사람은 또 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마지막인 줄 알게 되면 신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그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지향하는 곳에 있어서 체면과 위신과 환경을 망각해서 하늘이 원하는 방향에 일치될 수 있을 때 아론의 지팡이가 역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가시는 길 앞에는 마찬가지의 공식이 적용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들도 그런 놀음을 하게 되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을 알고…. 우리의 처지는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난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종합적인 미래를 위해 투자하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신념에 입각한 사람은 역사를 정복하여 이기게 되면 나를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로부터 역사와 하늘의 승리는 완연히 빛을 발해서 승리적 터전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야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당신이 심중에 그리던 선의 역사가 저희 목전에 당도한 것을 바라볼 적마다 이 주인은 그 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더더욱 느끼지 않을 수 없나이다. 당신이 주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한계선을 초월하신 당신이 주인이 되어야만 영원히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입지적 조건이 성립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것은 그 누구의 책임이 아닌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주인이 되시옵소서.

 

제가 50여 평생을 지내 오면서, 헐벗은 자리에 섰고 몰리는 자리에 섰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당신은 슬프고 비통하고 비참하였지만,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다 하는 것을 제가 모를 때 당신은 이럴 수 있는 이상의 것이라고 하던 그것을 저는 잊지 않았사옵니다. 오늘 자신을 지니고 있는 통일교회 지도자로서의 가야 할 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시간도 달음질을 쳐야 되겠습니다. 이해도 또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활동 무대가 점점점 세계를 향하여 전개되는 때가 왔기 때문에 대한민국만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슬픈 것은 이 민족, 이 나라 백성과 더불어 하늘을 부여안고 사랑의 체휼적인 환경을 소개하지 못한 것이 한없이 한없이 슬프고 한없이 한없이 당신 앞에 면목없음을 느끼는 바입니다.

 

아버님, 세계를 향하는 새로운 시대를 앞에 놓고 저희들은 주저하는 졸장부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일의 희망과 더불어 벅찬 자기 가슴을 억제하면서 극복의 환경의 수련을 거쳐서 빛난 광명 앞에 하늘의 늠름한 용장의 모습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아들딸들로서 당신이 세우기를 고대한 그때와 그런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저를 보내시어서 할 수 있는 준비된 무리가 통일교단에 속한 당신의 자녀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는 데 있어서 당신이 얼마나 노심초사 역사적 심정을 다짐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침 저희들의 처지라는 것은 얼굴을 들 수 없는 처지 입니다. 선조들이 패자의 걸음걸이로 하늘 앞에 배반자의 역사를 남겼기에 저희들이 그 후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부끄러운 형체를 드러낼수 없는 죄책감을 느껴야 할 그의 후손된 자기 자신임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수고의 대가를, 탕감의 내용을 당신이 제시해 가지고 오늘날 남기신 역사적 인연을 따라온 보잘것없는 저희들이지만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시기 때문에, 저희들을 앞에 내세워 놓고 저희들이 한 발자국 가면 당신도 한 발자국 올라가시고, 저희들이 기뻐하면 당신도 기뻐하시고, 저희들이 싸우려고 하면 당신도 싸우려고 하시는 입장에 계시옵니다. 이 사실이 분하다면 분한 일이요, 원통하다면 원통한 일이지만 감사하다면 이 이상 감사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미물의 동물만도 못한 존재들이 눈물짓는 자리에 천만 승리의 권한을 갖추어 만국의 주권을 장중에 넣고 호령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주권자인 당신이 오시어서 저희들과 더불어 눈물지으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저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 앞에 엄숙히 부림을 받을 수 있고, 당신 앞에 충효의 인연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말만으로도 고마운 것이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천상 천하에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자랑이 아닐 수 없는 고귀하고도 놀라운 것을 소홀히 하였던 저희들은 과거지사를 다시 한 번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고요히 고요히 스며드는 당신의 은은한 현현을 마음으로 그리 면서, 내일의 약속과 더불어 계약을 다짐하면서 당신을 틀림없는 역사적 주인으로 저희들은 다시 한번 흠모하옵니다. 전통적 인연을 그렇게도 추구하고 있는 당신의 내정적인 심정 앞에 당신을 사랑하기에 미칠 듯이, 당신의 뜻만을 위하여 사는 그러한 아들딸들이 된다 할진대, 당신은 천만 죽음길이라도 타고 넘어가서 저희들을 보호하시고자 애쓰시는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한 아버지를 알고 그러한 아버지의 보호를 받는 아들의 가치를 아는 자리에 서는 통일교회 교인들의 긍지를 높이 평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과거에 왔다 갔던 선조들의 소원이요, 이 땅위의 사망의 장벽에 부딪쳐 있는 인류들이 바라는 소망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쉬지 말고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제단을 지키고, 하늘 앞에 분향을 하여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역사적인 심판날이 가까와 옴에 따라서 인류의 심판의 벌을 막기 위하여 남모르는 가운데 담판 기도하고, 당신의 마음을 내 스스로의 앎의 조건으로 세우기 위하여 노력할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1972년도에 통일교회 신도들이 죽더라도 넘겨야 할 전통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7월 들어 첫번째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7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역사적인 1972년 7월 2일, 이날이 기념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참석한 개개인의 심정 위에 저희가 처해 있는 처지가 어떻다는 것을 말하였사오니, 이 전통을 이어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엄숙하고 긴장하고 당황한 자리에 당신의 현현한 거동을 따라 순응적인 실체의 효의 아들딸이요, 충의 인연을 받은 자리에서 돌격전을 망각하는 불충스러운 무리로서 오늘 이날을 맞지 않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무것도 없는 벌거숭이 몸들, 아무것도 남길 수 없고 자랑할 무엇이 없는 무리들이지만, 당신의 전통을 이어받고 당신의 슬펐던 사연을 이어받은 그 믿음만은 당신의 마음과 더불어 있기를 바라오니, 그 마음이 저희의 소유 중의 소유요, 생명의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재산 중의 재산이요, 역사적 전통의 결실 중의 결실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기로서의 내일을 보장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일을 보장할 수 있는 창조자가 되어 아버지의 대역을 책임지고 사망의 세력을 가로막는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당당한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무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이 7월을 맞고, 8월을 맞고, 9월을 맞고, 10월을 맞고, 11월, 12월을 맞으면서 이해에 당신이 경륜하신 뜻을 중심삼고 나아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언제 봄이 오고 언제 여름이 왔는지 모르게 봄은 지나갔고 여름도 다 지나가고 있사옵니다. 이제 가을이 찾아오고 겨울이 찾아오는 것을 저희들이 사계절 순환의 법도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 저희의 운명이 바뀌는지 모릅니다. 쉬고 있는 시간에 역사적인 교차점이 지나갔는지 아브라함도 몰랐고, 노아도 그때를 몰랐습니다. 야곱도 몰랐습니다. 모세도 몰랐습니다. 요셉의 가정도 그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역사는 비운의 역사로서 심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끝날이 되면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는 때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처지에 있는 저희 자신을 밝혀 가지고 내일의 보증을 받을 수 있고 역사적인 실증 앞에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는 아들딸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오늘 산지사방,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달을 대표해서, 이제 금년의 후반기를 대표해서 첫번 맞는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이곳을 향하여 정성들이는 자녀들이 있거들랑 천만배 갚아 주시옵소서. 제가 빚을 지는 자리에 서지 않기를 권고하시던 아버지여, 그 뜻을 끝까지 지켜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행렬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소서. 그와 같이 당신은 저희들 앞에 빚을 지지 않는 것을 알았사오니. 전통적인 위업을 남기고 갈 줄 아는 통일의 무리, 저희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오늘 이 시간을 가진 것을 감사드리오니, 금후의 모든 것을 당신이 정하신 뜻대로 성사하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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