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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041~080권

文鮮明先生말씀選集 77 - 12. 인류의 새로운 소망 (1975.04.30)

작성자대태양/김현수|작성시간21.10.20|조회수88 목록 댓글 0

인류의 새로운 소망

― 희망의 날 대향연 광주 집회 말씀 ―

1975.04.30 (수), 한국 전남 광주 실내체육관

 

이 저녁에 이와 같이 모여 주신 광주시민 여러분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더더우기 장내가 비좁아 가지고 참석하지 못하고 밖에 계시는 많은 광주시민 여러분 앞에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다해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노래와 춤과 재미있는 프로를 보시다가 이 딱딱한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리 신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이 며칠 기간에 난데없는 외국 젊은 남녀들이 들어와 가지고 고요한 광주 도시를 소요하게 하는 이런 광경을 바라보게 될 때, 도대체 이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해서 상당히 궁금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장본인 되는 문선명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나타났습니다. 그리 잘 생기지는 못했습니다마는 사랑 많은 광주시민 여러분, (박수) 나는 광주를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느냐? 여러분이 박수를 쳐 줘서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주라는 글자가 빛날 광(光) 자 고을 주(州) 자인데 빛나는 고을, 그러므로 이 광주에서 이름을 내게 된다면 전국으로 통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광주에서부터 놀랍게 출발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주라는 이름과 더불어 광주시민을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저녁 여러분과 더불어, 본인의 말씀을 사랑하는 여러분 앞에 잠깐 드려 보겠습니다. 이 저녁에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그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인류의 새로운 소망' 혹은 '인류의 새로운 희망'입니다. 이러한 제목하의 내용을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통한 새로운 장래의 모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혼란스럽습니다. 공포와 절망이 눈앞에 다가오는 현세를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새로운 희망, 혹은 새로운 소망을 찾을 수 없다면, 새로운 지도이념, 세계 만민이 구하는 중심사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새로운 장래와 새로운 희망의 세계는 현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세시대 이후로부터 불확실한 신본주의사상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인본주의 사조가 이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인본주의 사조가 몰락하는 그 바톤을 이어받아 유물주의라는, 다시 말하면 물본주의라는 이런 사상체제가 온 세계를 휩쓸었지만, 그것은 우리 앞에 희망을 갖다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절망과 공포를 가중시켰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인류는 그야말로 절망의 도가니 속에 휘몰아 들어가는 것을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주의 사상이 어찌하여 몰락하여 퇴폐의 일로에 머물게 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사람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갖은 노력을 다해 왔으며, 있는 머리, 있는 재간을 다 투입해 왔지만 이와 같은 결과의 세계를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에 봉착하고 보니, 이제는 오도가도 못할 절망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우리가 문제를 삼는다면 이제는 인간 외의 딴 무엇에 의존하는 길 외에는 인류세계의 새로운 장래를 모색할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은 타당한 것입니다.

만일에 이 결론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가 신이라는 존재가 아니냐, 이 신이라는 존재가 확실히 있느냐, 즉 하나님이 있느냐, 만일 하나님이 확실히 있다면 그 하나님이 보는 본래의 신관이 어떻게 돼 있으며, 그 하나님이 보는 인생관은 어떻게 돼 있으며, 하나님이 보는 이 물질세계, 유물사관이 어떠하겠느냐 하는 이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밝힐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결과에 봉착했다고 결론지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다 잘 알다시피 현재 지성인들은 말하기를 '사유가 먼저냐 존재가 먼저냐'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철학사상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유가 먼저냐, 존재가 먼저냐? 사유문제, 즉 생각문제, 그다음에는 존재문제, 정신이냐 물질이냐 하는 문제, 그다음에는 신이냐 피조물 이냐 하는 문제, 이것을 아직까지 근본적으로 해결을 보지 못하는 와중에서 당황하는 실상을 오늘날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신이 있느냐? 어떠한 그 무엇이 있어 가지고 신에 대해서 증거할 수 있는 입장에서, 오늘 이 광주시민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모여 가지고 '아, 틀림없이 있다' 할 수 있는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 광주야말로 세계에 새로운 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선봉이 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인체를 통한 하나님의 실재 증명

 

그러면 이제 여기에 오신 광주시민 여러분 앞에 어떻게 인상적인 그하나의 예를 들어 가지고, 여러분을 어떻게 해서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잊을 수 없는 그 예를 한번 찾아 보자' 하게 하는가 하는 생각을 여기 이 사람은 해 왔습니다. 어려운 예는 말고, 여기에 보면 뭐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쉽게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한 가지 여러분이 기억에 남기를 바라면서 한번 예를 들어 말해 보자구요.

우리 지체 중에 중요한 부분이라 하면 눈이 있습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그 사람 눈이 잘 생겼다'는 등…. 또,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자, 이 눈을 가만 바라보게 될 때, 눈에게 묻기를 '야 눈아' '왜 그래' '도대체 너 눈의 역사가 어떻게 되느냐, 너 눈이 어디서 왔어? 그러면,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 우리 엄마 아빠를 통해서 왔지' 틀림없이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또 그러면, 저의 엄마 아빠 눈은 어디서 나왔느냐' 묻게 되면, '그게 어디서 나오기는 어디에서 나와,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 올라가고 올라가서….' 그렇게 하면 종지조상의 눈에서 태어났는데, 그 눈 자체는 물질이라구요.

그 눈이 태어나게 될 때에 '아 내가 지구성에 태어나면 태양이 있느니라' 하고 눈 자체가 태양계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태어났겠어요? 간단한 문제예요. 그거 알았겠어요? 눈 자체로서는 알 수 없다 이거예요. 눈 자체가 공중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겠느냐 묻게 될 때, 눈 자체는 알 수가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 알았다고 봐요? 저 학생 웃는구만요. 씩하고 말이예요. 그 눈 자체가 지구도 나타나기 전에 공중에 태양이 있는지 그걸 알수있어요? 그건 알수 없다구요.

자, 또 그다음에 눈을 가만 생각해 볼 때, 태양이 있는 것도 몰랐겠지만, 복사열에 의해 가지고 물이 증발하게 되면 큰일나니까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물을 살포하는 장치를 해야 되겠다 해서 눈을 깜박깜박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눈 자체가 알았겠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눈 자체가 '아, 이 공기에……' 여러분 수증기 보여요? 안 보이지요. 아, 수증기가 증발됨으로 말미암아 눈 안에 이 수분이 말라지면 큰일난다는 것을 여러분 알지요? 한 30분 눈 깜빡거리지 않고 있어 보라구요. 눈이 어떻게 되나, 큰일나지요.

그 눈 자체가 태어날 때에 '공기 중에서 수증기는 증발한다' 하는 것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만일에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조금 돈 사람이예요.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구요. 그것도 좋다는 거예요. 몰랐다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또, 한걸음 더 나아 가서 보면 여러분 여기 눈에는 창살이 있어요. 스프링이 떡 있다구요. 이게 뭘하려고 생각났어요. 이게? 이놈의 눈 자체가 태어나게 될 때, 공기 가운데는, 공기가 유동함으로 말미암아 먼지가 일기 때문에‘내 눈아 너는 요렇게 눈샘이 나와라' 하고 요렇게 대치했어요? 그건 어느 누구한테 물어보더라도 몰랐다는 결론이 당연합니다. 당연한 결론이예요. 여기에 만약에 알았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머리가 조금…. 7부도 모자 라고 6부, 5부쯤 가겠지요. 난 이렇게 봐요.

그 가외에도 우리 인체를 살펴보면 신비의 왕궁이라구요. 다 멋지게 되어 있다구요. 그 중에도 이 눈이 태어나게 될 때, 태양이 있는 곳에 맞게끔 박자를 맞추고, 물이 증발되는 것을 방지하게끔 맞추었고, 그다음에는 공기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방지하게끔 맞추었다는 사실, 우주의 태양계를 관찰할 수 있었고, 공기세계의 증발현상을 알고 있으며, 공기가 유동하는 데 있어서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와 같이 생겨졌 다는 사실, 그걸 보면 자기는 모르지만 그 누군가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박물학적인 지식 기반 위에 눈이 그와 같이 존속할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그건 여러분의 눈 자체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누군가 생각한 하나의 주체가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결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생각하여 가지고 이러한 만반의 환경에 일치되는 결과가 되게끔 한 동기적 앎의 기반이 있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그러면 그 앎의 주체가 누구냐?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는 거예요. 뭐 바위든 돌이든…. 일본 말로는 가미(かみ)라고 하고 한국 말로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갓(God)이라고 하는 등 이름은 뭐 아무래도 좋다는 거라구요. 그런 어떤 박물학적인 주인공이 있었다고 하는 것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여기 광주에도 왜 눈병 의사들 많지요? 광주에도 많은데 전세계를 늘려 보게 된다면 수십 만의 아이 닥터(eye doctor)가 있는데 그 의사들이 눈에 대한 신비경을 완전히 파헤쳐 가지고 다 해명할 수있는 지식적 결과를 찾아냈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볼때 이 우주적 박물학적 견지에서 이 눈이 실존할 수 있게 한 근본 사유, 정신,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매일 아침 세수할 때 눈을 볼 적마다 생각하라구요. 이렇게 다 서서 다닐 줄 알았다구요. 땀 흘리면 안 되고….

또 여러분, 코가 까꾸로 돼 있으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넓어졌어요? 땀을 흘리면 큰일나거든요. 여기에 도랑을 척 쳐 가지고 쓱 땀이 흘러가게…. 전부 다 알고 이렇게 생겨난 사실을 볼 때, 이게 물질이 먼저 있어 가지고 이랬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 정신과 생각의 기원이 본래의 출발적 동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미루어서 여러분들이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있을 성싶다. 있다' 하는 결론을 가졌으면 해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에는 하나님이 있다. 이런 분이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님은 이 인간세계가 이렇게 되기를 바랄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보다 높고 거룩하시고 선하시고 사랑이시고 이상이신 분이기 때문에, 보다 차원 높은 참된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와 자유를 이 인간세계에 갖다 주고 싶어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이상·사랑·평화·행복은 대상인 인간을 통해서

 

그러면 우리 인간이 어떻게 돼야 그분이 요구하는 이상적 요건에 결부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람은 자고로 우리 인간 나름 대로 참되고 변하지 않는 사랑과 이상과 평화와 행복과 자유를 추구해 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두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가지고 소망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절망 가운데서 우리는 자기 자체를 탄하는 동시에 세계를 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절망상태를 직시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변할 수 있는 인간성을 초월한, 변하지 않는 하나의 주체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발견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지도이념과 새로운 중심사상으로 미래에 있어서 새로운 장래와 희망의 세계가 현현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이와 같이 참된 이상을 바라고, 참된 사랑을 바라고, 참된 평화와 행복을 바라고 있는데, 어느때에 이러한 이상세계, 사랑의 세계, 행복의 세계, 평화의 세계가 결정날 것이냐? 그것은 둘이 하나될 때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기준에 내려와서 맞춰 주어야 할 것이냐, 아니면 우리 인간이 하늘에 올라가서 맞춰야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주체가 누구이고 대상이 누구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체로서 요구하는 요건을 확실히 깨우쳐서 하나님편에서 요구하는 요점을 따라 가지고 일체화시킬 수 있는 인간 자체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 자체를 그 기준까지 재차 형성하는 놀음을 해야지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바라는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은 우리 인간과 더불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이 제시하는 내용을 따라가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이 하나님은 주체요 우리 인간은 대상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랑이니 참된 행복이니 참된 평화니 하는 그 말들 자체는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냐 하고 따져 묻게 될 때, 혼자 두고 하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이라 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를 공인하는 데 있어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평화라고 하면 혼자 평화할 수 있어요?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필요 합니다. 또, 이상 하면 혼자서 이상이 있을 수 있어요? 이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도 역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행복이면 행복도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돼요. 이러한 말들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의 문제를 제시한다면 하나님의 참된 사랑, 하나님의 이상, 하나님의 행복, 하나님의 평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그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하나님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서 '아, 사랑하자'고 해서 사랑해서 뭘해요? 하나님 혼자서 이상이 있으면 뭘해요? 하나님 혼자서 평화니 무슨 행복이 있으면 뭘해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나님도 역시 행복, 평화, 사랑,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주체 되는 하나님 앞에 대상적 존재가 누구냐…. 이 피조세계에는 아무리 돌아봐도 인간 외에는 하나님의 대상이 될 성싶은 존재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속세(俗世)에 살고 있는 타락한 내 자체라는 것이 가치 없는 존재인 줄 알았더랬는데….

오늘 저녁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이 한 가지 기억해 주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를 완성시키는 데 있어서는 나라는 인간 자체가 없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우리는 이와 같은 가치를 미처 몰랐습니다. 이와 같이 고귀하고도 이상적인 존엄한 가치, 하나님까지도 사랑에서 해방할 수 있고, 하나님까지도 이상에서 해방할 수 있고, 하나님까지도 행복과 평화에서 해방할 수 있는 이 존엄한 가치를 알아서 이제는 마음 깊이 머리를 숙이면서 스스로를 찬양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자기보다 대상이 낫기를 바라는 인간과 하나님

 

자, 그러면 내가 하나 물어 보자구요. 여러분들에게 하나 질문해 보자구요. 여기에 오신 손님들 가운데는 광주에서 유명한…. 분들이 많이 계실줄 알고 있어요. 또, 부부가 함께 많이 오셨을 줄 알고 있어요. 그분들과 나이 많이 잡수신 여러분들, 옛날 청춘시대에 자기의 상대를 구할 때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어요, 잘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어요? 저 아주머니 웃는구만요. 어때요? 내가 시집을 가고 혹은 장가를 가는데 내 상대 될 수 있는 사람은 나보다 못난 사람을 얻겠다 하는 사람은 때려 죽이라구요. 그런 사람은 없다구요. 죽일래야 그런 사람이 없다구요. 누구나 잘났든 못났든 병신 여하를 막론하고 전부가 자기 상대되는 존재는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낫기를 바라지요? 그렇지요? 더 나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 수 없다 이거예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도 나은 상대를 구한다 하는 본심적인 욕구를 부정할 수 없다 이거예요.

또, 여기에는 아들딸을 가진 부모들이 많이 참석했을 줄 알고 있어요. '자 내가 그래도 여기 대한민국에 있어서 이만하면 출세할 만큼하고, 어디에 가든 당당한 남자로서 이만하면 누구한테든지 자랑할 만한 나인 줄알고 있고 우리 집안에서 내가 대장이야, 우리 동네에서 내가 전체 앞에 대장이야' 하고 자랑할 수 있는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그 동네에서 자기보다 썩 훌륭한 사람이 나는 것은 싫어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랍니까, 못나기를 바랍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뭐 유치원 학생까지도지 그런 걸 다물어 보느냐'고 할 거예요. '그야 뭐 물어 볼게 뭐 있어?'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본성의 욕구인 것을 여러분은 다 공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이 세상을 가만 보게 되면…. 미남 미녀가 결혼해서 첫애기를 낳았는데, 그 갓난 애기의 얼굴을 척 보니까 어머니 아버지는 미인인데 이건 뭐 박색 할아버지가 이름은 없지만 무엇이라고 할까, 박색 그 얼굴 같이 생겼다 이거예요. 뭐 기와골에 올린 호박통처럼 생겼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그 애기를 쓱 바라보면서, '아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이 애기가 더 훌륭하게 생겼소' 하면 그 어머니 아버지가 '뭐 그래요? 내가 잘났지' 그래요? 그 어머니 아버지는 입이 헤벌어져 가지고 좋아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자기보다도 대상이 잘나기를 바라고, 자기의 아들딸이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본성의 욕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인간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됐느냐 이거예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부 다 이와 같은 공통적인 욕구를 갖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됐느냐 묻게 되면 '누굴 닮기는 뭐 누구를 닮아….' 할는지 모르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원인적인 존재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 결과적인 존재라는 것은 과정은 거쳐왔지만 원인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적 결과체가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즉, 그는 누구를 닮았느냐 할 때 결과가 그런 것은 그 원인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 논리적인 결론은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에 그건 누구를 닮아서 그렇다구요? 하나님이 원인이 라면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닮았기 때문에 내가 그렇다는 결론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질문을 여러분 앞에 하는 것보다 차원을 높여서 하나님 앞에 물어 보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하나님 앞에 '자, 하나님 당신은 당신의 대상이 당신보다 못나기를 바라오?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오, 나보다도 못나야지' 그렇게 대답할 수 없다는 거예요. 또, 하나님한테 묻기를 '당신 아들이 있으면 당신의 아들이 당신보다도 잘나기를 바랍니까, 못나기를 바랍니까? 그러면 '이 녀석아 물을게 뭐야, 내가 제일 우주의 중심인데 나보다 잘나서 되나? 그렇게 대답 안 하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대답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하나님도 걸작스러운 대답으로 '내가 그 대답을 한다면 너희들과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저희들이 대상이 좋은 것을 원하듯이 나도 대상이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요. 너희들의 아들 딸이 너희들보다 잘나기를 바라듯이 잘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그 가치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기독교인들, 혹은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주체로 모시고 그 대상의 입장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 아들딸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종교 생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 자체를 하나님의 대상이요. 아들의 입장에 두기를, 세우기를 고대한다면 이와 같은 논리적 결론에 의해서 인간이 하나님 자신보다도 낫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이렇게 고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고귀한 인생의 가치가 내 자신에게 숨어 있는 이 사실을 상실해 버린 그 슬픔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서 말한 것을 다 잊어버려도 좋지만 하나님보다도 높기를 바라는 이엄청난 무한한 가치의 실존체가 돼 주기를 바라는 것이, 이 우주의 근본 되는 창조주가 요구하는 최고의 희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 이 사실을 알아 가지고 이런 인간의 본연의 가치 해방운동을, 광주면 광주에서 방방곡곡을 거쳐 가지고 전라남도 전역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긍하여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이런 운동이 벌어질 때에, 여기에서 비로소 새로운 소망이, 여기에서 비로소 새로운 희망이 있을 성싶다 그 말이예요. (박수)

오늘날, 기성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신앙 전체를 우리는 비판해야 할때다. 지금까지의 신관, 인생관에 대한 모든 것을 재검토할 때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사조는 '거룩하신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해요? 하나님 혼자서 사랑하겠어요?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뭐예요? 하나님 혼자 하겠어요? 묻게 된다면 대답을 어떻게 할 거예요?(박수) 대상이 있어야지요.

그러한 사고방식을 초월해 가지고 이와 같은 본연의 존엄한 인생가치의 회복운동을 그 어느 지구성 한 곳에, 한 점에서라도 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기분이 나쁘겠소, 좋겠소?「좋을 것입니다」 그래요. 좋을 거예요. 나도 기분 좋으니까 여러분도 좋겠지요. 그러니 하나님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알았느냐? 여러분은 아내를 대해 가지고 뭐'그 여자, 그 여자' 하면서 무시해서는 안 돼요. 또, '그 남자 그거…' 아닙니다. 아니예요. 이러한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 이와 같이 엄청난 가치적 기원이, 우리 인간이 추구 하지 못한 본연의 기점에서부터 연결됐다는 거예요. 말이 좀 어려워서 미안합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이렇게 얘기 안 할 수가 없어요. 이러한 기원이 있는 것을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체와 대상 관계를 알았어요?

 

참된 사랑·이상·행복·평화의 기원

 

하나님이 주체와 대상 관계를 대등한 입장에 떡 세우고 보니 이게 문제가 생겼어요.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고, 사랑의 왕이고, 이상의 왕이고, 행복의 왕이고, 평화의 왕인데, 그 주체 되는 분이 천지의 원칙을 잘못 두게 되면 큰일나는 거예요. 그러면 도대체 이 사랑의 기원, 사랑이 귀한 건데 이 사랑의 기원을 어떤 자리에 두느냐, 이상의 출발점을 어디에 두느냐, 혹은 참된 행복과 참된 희망의 출발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를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은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잘 들으세요. 이거 생각할 문제라구요.

여러분이 한 가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창조라는 것은 무엇이냐? 힘의 투입이라는 거예요. 혹은 정신의 투입이다. 더 나아가 심신 투입이요. 자기의 전체를 투입하는 거기에 있어서 보다 가치적인 작품이 형성되는 것을 우리는 일상 예술가들을 통해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걸작품 하면 그 걸작품이, 정신도 투입하지 않고 적당히 해 가지고 걸작품이 나와요? 안 나옵니다. 정신이 똑바로 서야 돼요. 뭐 정신이 똑바로 섰는지 어떠는지 모르지…. 정신이 똑바로 서야 되고 그 똑바른 정신자세 앞에 올바른 양심을 세워 놓고, 그 양심과 더불어 몸이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여기에 모든 힘을 투입했느냐 하는 데서 자기 작품의 가치 여하가 결정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했다는 사실…. 오늘 성경 말씀에 말씀으로 지었다고 하는 것을 보고‘야 밥아 나타나라, 밥아' 하면 척 나타난 줄, 이렇게 도깨비 장난하듯 나타난 줄 알고 있다구요. 그렇게 나타난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힘의 투입으로, 자체 능력의 투입으로 말미암아 형성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완전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정력을 투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완전한 물건이 생기는 것을 생각하게될 때, 창조 자체가 투입에서부터 출발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 자체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주체이므로 그 주체 앞에 대상이 서는 데에 하나님 자체가 내가 대상을 위하는 자리에 서느냐 아니면 그것말고 '내가 주체니까 대상인 네가 나를 위해라' 하는, 주체가 대상을 위해서 가는 길하고 대상이 주체를 위해서 가는 길이 있을 때, 이 두 길 가운데 참된 사랑의 기원, 참된 이상, 참된 행복, 참된 평화의 기원을 어느 자리에 두느냐 하는 문제를 하나님이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너희들이 위하라' 하는 원칙을 세울 수 없습니다. 왜? 모르니까, 모르니까 가르쳐 줘야 돼요. 맨 처음에는 가르쳐 줘야 돼요. 하나님이 주체지만 그 대상을 대해 가지고. 자기가 위해 있겠다 하는 입장을 먼저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상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서 투입하는 데서만이 이상이 현현되는 것이요. 참된 사랑이 형성되는 것이요. 참된 행복, 참된 평화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잘 아는 바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 야야, 대상아 너는 나를 위하라' 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될 수 없어요. 전부가 그런 사상을 세웠다가는, 전부가 위하라는 입장에 서게 되면 전부 갈라지는 법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은 아까 말한 이 이상적 요건을 성립시킬 수 있는 기원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면 위하라는 원칙에 두었어요. 주체가 대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이 확실한 사실들을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이와 같은 우주 창조의 이상적 기원, 사랑적 기원을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는 데서만이 참된 사랑이 발견될 수 있다구요. 왜? 하나님이 원칙의 존재이기 때문이예요. 거기에서만 참된 이상을 발견할 수 있어요. 왜? 하나님은 위하는 분이기 때문이예요. 행복도 거기에서만이, 평화도 거기에서만이, 참된 자유도 거기에서만이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위해 존재하는 이 원칙이 아까 말한 참된 사랑과 참된 이상과 참된 평화와 참된 행복과 참된 자유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천지의 대도는 위해 존재하는 원칙으로부터

 

이 공식을 적용해 가지고 우리는 이제부터 생각해 보자구요. 참된 부모가 어떠한 부모냐? 참된 사랑을 지닌 부모가 어떠한 부모냐? 그 부모는 날 적부터, 존재하는 그때서부터 누구 때문에 존재하느냐 하면 아들딸 때문에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부모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를 아들딸을 위해서 태어났다' 하는 입장에서는 부모가 있다면 그런 부모가 참된 사랑의 부모가 아닐 수 없다 이거예요. 그 부모는 이상적 부모요. 그 부모는 행복의 주체가 되며, 혹은 평화의 중심이 되는 부모가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태어나기를 자식을 위해서 태어났고, 사는 것도 자식을 위해서 살며, 죽는 것도 자식을 위해서 죽는 부모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비로소 참된 사랑의 부모, 참된 이상의 부모, 참된 행복의 부모, 참된 평화의 부모가 찾아질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은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에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또, 이 공식의 원칙을 적용하여, 참된 남편과 참된 아내, 참된 사랑에 하나된 남편과 아내가 어떤 것이냐를 알아보면,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태어났고 남편을 위해 살고 남편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아내이고, 이런 아내를 가진 남편은 진정 행복한 남편이요.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남편이요. 참된 이상의 자리에 등장할 수 있는 남편이요. 참된 사랑을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남편임에 틀림없어요.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그러면 그 남편도 역시 이상적인 남편이 아닐 수없다는 거예요.

이와 같은 공식의 원칙을 두고 볼 때에, 그러면 오늘날 여기에 남자분들하고 여자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도대체 그 남자가 태어나기를 무엇을 위해 태어났느냐 하는 그 근본을 말해 보자구요. 오늘날 이 남자 되시는 분들 중에 집에 돈냥이나 있고, 혹은 뭐 세력이라도 가져 오늘 이 광주시에서 누구한테 지지 않는 기반을 떡 가졌다고 해서 '오, 내가 나 때문에 태어났으므로 나를 위해 사는데, 뭐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는지 모르지만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남자가 태어나기를 남자 때문에 태어났느냐? 아니예요.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니라,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여자들, 좋으면 박수를 하지요?(박수) 좋으신 모양이구만 헤 하고…. 여자 되는 분은 낙심하지 말라구요. 이건 뭐 키도 작고, 뭐 얼굴도 요렇고, 손을 봐도 조그맣고, 무엇을 봐도 작아요. 하나큰 것은 아랫도리 하나 크지요. 낙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무리 남자가 잘났더라도 여러분이 없으면 허사예요. 그렇지 않아요? 백 년 동안 혼자 살아 보면, 다 없어지지 별 것 있어요? 거기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고, 사랑이니 이상이니 평화니 있을 수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 오신 분들, 지금까지 내가 나 때문에 태어난 줄 알았지만,‘ 남자 되시는 분은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예요.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다구요? 여자, 키가 작고 꼬물꼬물하게 생겼지만 여자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똑똑히 알아야되겠다구요.

또, 여자 되는 분들은 누구 때문에 태어났느냐 하면…. 누구 때문에 태어났다구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니라구요. 남자 때문에 태어난 거예요. 본래 존재하기 위한 근원이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해 존재한다는 이 원칙을 두고 볼 때에, 인간은 상대를 위해 태어났으니 상대를 위해 살아야 되고, 상대를 위해 살다가 죽을 때도 상대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상대적 이상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보라구요. 남자들의 어깨는 미식 축구 챔피언처럼 생겼어요. 덩치가 이렇게 와싹 퍼지고 여자들은 그 반대로 여기 아래가 퍼졌지요. 말하자면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여기에 올 때, 남자 남자 둘이 이렇게 앉게 된다면 어깨가 다 가지고 밑은 주먹 같은 게 왔다갔다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남자 하나 떡 앉고 그다음에 여자 하나 떡 않으면 딱 들어맞지요? 그걸 보더라도 상대를 위하라는 원칙의 기준을 통하여 가지고 모든 이치가 화합하게 돼 있다는 것은 이 간단한 예로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어요. (박수)

어떤 것이 불행한 가정이냐? 자기만을 위하려는 남편을 맞은 여자는 불행한 여자입니다. 그렇지요? 자기만을 위하려는 여자를 맞은 남편은 행복한 남편이다. 그래요? 아니예요. 불행한 남편입니다. 천지의 대도(大道)는 이와 같이 위해 존재하는 원칙으로부터 존속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기를 그렇게 났고, 태어나기를 그렇게 났으니 살기를 그렇게 살고, 죽기를 그렇게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참된 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공식을 알았습니다. 이 공식을 적용해 가지고 볼 때, 이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참된 애국자가 누구냐? 권력을 쥐어 자기 마음대로 해서 잘사는 사람이 행복한 자냐? 아니다 이거예요. 아닙니다.

참된 행복자는 누구냐, 참된 애국자는 누구냐 할 때, 더더우기나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태어나기를 나라를 위해 태어났고, 살기를 나라를 위해 살고, 천번 만번 죽는 일이 있더라고 생명을 바치면서 나라를 위하겠다고 하며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면, 보다 비참하게 자기 전체를 투입하겠다는 그런 분이 있다면, 이는 보다 귀한 애국자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박수)

 

애국자, 성인은 모두 위해 산 분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은 과연 이 나라의 애국자가 아닐 수 없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더 한걸음 범위를 넓혀 이 공식을 적용해 가지고 찾아보게 될 때에…. 이 세계의 성인 중에 보다 위대한 성인이 누구냐 하는 것을 우리는 이 공식에 적용시켜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보다 인류를 위하고, 보다 인류를 위해 살고, 보다 인류를 위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를 위해서 태어났고, 역사를 위해 살고, 역사를 위해 죽은 사람, 그분들이 소위 위인이요. 성인들이어늘 그들 중에서 누가 중심 되는 위인이요 성인이냐? 보다 위하려고 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간 분이라는 것은 이 공식을 통한 타당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수)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기에 오신 분 가운데는 기독교 신자들도 많을 줄 알고 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반대하기 위해서 온 사람도 있지요? 그거 좋다는 거라구요. 한번 반대해도 좋아요. 지금 지루한데 한번 소리 한번 꽥 질러 보라구요. 내가 받아 줄께요. 그런 분도 왔을 줄 알아요. 그렇다고 뭐 또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구요. 기독교 신자들도 여기에 많이 왔을 줄 알고 있어요. 또, 그다음에 믿지 않는,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분도 여기 왔을 줄 알고 있어요. 내가 기독교를 믿고 기독교의 길을 간다고 해서 기독교의 중심이신 예수님의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식적 이치에 의해서 그 결론에 타당한 그런 입장에 선 분이 예수이기 때문에, 예수라는 분에 대한 애기를 잠깐 하려고 그래요.

예수는 어떤 분이냐 하면, 그는 구세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왔습니다. 오기를 자기를 위해서 오지 않았어요. 만민, 과거 현재 미래의 인류를 위해서 왔다구요. 살기를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았어요. 인류를 위해서 살았다구요. 자기를 위해 산 것이 아니라구요. 죽을 때 자기의 욕망을 위해 죽지 않았어요. 인류의 공적인 욕망, 천륜의 대도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죽음길을 자초한 분이었다구요. 그리하여 십자가 도상에서, 이슬같이 사라지는 최후의 운명의 절정에서 그에게 원수가 있다면 로마 병정이요. 유대교인 제사장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못을 박고 자기에게 채찍질한 원수까지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자리에서 복을 빌고 간 이 사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인간을 위해서 살다가 갔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야 말로 성인 중의 성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결론입니다. (박수)

 

신‧구약 성경은 '위해 존재하라'는 말에 완전히 결론된다

 

여러분, 성경 66권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두 마디 말로써 종결지어도 틀림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의 골자가 뭐냐?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앞서 거기에 논리적인 근거를 추구해야 할 것이 뭐냐? 위하는 사랑입니다. 이걸 몰랐다 이거에요. 위하는 사랑을 몰랐다구요. 뜻의 평화의 세계를 몰랐고, 위하는 평화의 세계를 몰랐다 이거예요. 위하는 행복의 세계를 몰랐고, 하나님이 위하는 이상세계를 오늘날 기독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거예요. (박수) 신·구약 66권은 위하여 존재하라는 말에 완전히 결론된다 이거예요. 완전히 맞아떨어진다 이거예요.

보라구요. 예수님의 그 골자사상을 보게 된다면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높아진다' 하는 것인데, 이러한 역설적 논리가 어디 있어요.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왜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느냐, 천리의 대도의 중심 동기가, 하나님이 세우신 이상적 기원이, 위해 존재하라는 이 원칙을 따라야만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을 아심으로 말미암아 이런 역설적 논리가 이 위하는 법도에 일치되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박수)

 

천국 가는 사람은 위하여 사는 사람이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영계의 사실을 잘 모르시겠지요? 영계의 사실을 잘 모를 거예요. '영계가 있나 없나…. 혹은 뭐 천국이니 무슨 극락이니 있나 없나? 없지, 그거 다 뭐 예수쟁이들 혹은 불교 믿는 사람들이나 믿는 거지' 예수쟁이라고 했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 마소,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하니까 했어요. 불교 믿는 사람이라 해서 좋아하지 마시고…. ' 도대체 뭐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죽어 봐야 알지' 하는데 죽어 보면 틀림없이 있습니다. 두 시간 이내에 실험하고 싶거든 한 번 죽어 봐요. 있나 없나? 있어요.

여러분들은 영계의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계가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지만, 여기에 선 이 본인은 하늘의 특정한 혜택을 받아 가지고 그 세계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세계의 어떠한 영통인이라도 내 손아귀에 오게 되면 굴복했다구요. 전문가라구요. 전문가가 됐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누비고 다니고, 한다 하는 사람 전부 다 턱걸이 치고 다 밀어내고 이만큼 왔다구요. 틀림없이 그런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특정한 혜택을 받아 가지고 저 세계를 탐색해 보니 도대체 천국 조직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는 것이 궁금한 문제였더라 이거예요. 그걸 헤치고, 뚫고 찾아보니 천국의 조직은 간단하더라 그거예요. (박수) 감사합니다. 천국의 조직은 위해서 존재하는 자만이 들어가 사는 곳이다 이거예요. 간단해요. (박수)

여러분이 천국갈 수 있는 사람이냐, 지옥갈 수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어디서 갈라지느냐? 자기를 들어서 위하라고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지옥갑니다. 그러나 자기를 치고 전체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간다 이거예요. 예수 잘 믿더라도 자기 주장하는 사람이 아무리 잘 믿어 봐요. 천국 못 가더라 이거예요. 그렇지만 예수를 안 믿는 양심적인 사람이라도 세계를 위하고 공의의 법도를 따라가겠다는 사람들은, 예수 잘 믿는 사람보다도 높은 영계에 간 사람을 내가 많이 만나 봤어요. (박수) 아, 세상에도 법도가 있는데, 하늘나라가 주먹구구식으로 마음대로 될 수 있겠어요? 없습니다.

오늘 여기에 오신 광주 시민 여러분, 이 저녁에 문이라는 사람을 만나 가지고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은 '저 천국가는 사람은 위하여 사는 사람이다'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우리 본향의 세계요. 인간은 나그네인 것입니다. 여러분, 행인의 노정이 저물어지면 석양길, 밤세계를 거쳐 자기의 황천길을 가야 할 이 나그네의 인생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 인간들이 본래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위해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전통을 받아 가지고 이 세계를 평화의 세계, 지상의 천국으로 형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위하는, 자기 자각으로부터 자기 위주한 발견노정을 탐색해 이 길을 찾아 나온 것이 타락이라는 거예요.

이 타락한 인간이 본향길을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늘나라의 법도에 일치될 수 있게끔 하나님은 훈련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훈련 장소가 소위 종교예요. 종교, 이것은 민족에 따라 달라요. 민족배경, 문화 배경 혹은 풍습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적합한 종교형태를 거쳐서, 하나의 대해를 향하는 강줄기처럼, 강 줄기가 하나의 대해를 향하여 따라 나감에 따라 점점 합해서 하나의 바다로 들어가는 형태와 마찬가지의 섭리를 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기독교 외에는 구원이 없다' 하는데, 내가 아는 세계는 그렇지 않아요. 영계에 가면 예수님하고 불교의 석가모니하고도 같이 있더라 이거예요. 공자를 만나 봐도 그렇고, 다 그렇더라 이거예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한 천국 본향길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장소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은 무슨 전통을 따라 훈련을 받아야 되느냐 하면 남을 위하라는 전통입니다. 자기를 위하라는 전통은 없어요.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봉사를 강요하고 온유겸손을 주장하는데, 왜 그러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 미처 몰랐습니다. 왜 그래야만 되느냐? 이 종교라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기호에 맞지 않아요. 타락한 인간인지라.

천상 본향세계의 법도가 그러하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을 그 법도에 일치시키기 위한, 보다 차원 높은 자리에 일치시키고자 하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거기에 알맞게끔 최고의 훈련을 하려니, 죽음 길까지도 자기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요. 남을 위해서 가라는 이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겸손하여 희생하고 봉사 하라 이거예요. 보다 넓은 무대를 위해 살 수 있는 여러분의 생활노정이 전개되는 날에는 이 광주 도성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선한 방향으로 향진할 것이고, 그것이 민족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될 때에는 민족이 선의 세계로, 이 민족이 영원한 선의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된다는 이 한 가지를 기억하고 돌아가 주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수)

이러한 결론을 떡 내리면, 오늘날 우리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뭐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뭐, 허깨비처럼 그냥 펑 하면 연기같이 다 사라져 버리고 없어지지, 뭐 그것이 인생인데' 이럴지 모르지만 천만에요. 만일에 그렇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오늘날 일생 동안 반대받으며이 놀음 안 해요. 여러분만 못해서 이 놀음 하는 줄 알아요? 세상이야 뭐라든 인생이 갈 도리의 길을 바삐바삐 가야 할 행각의 노정이 내가 가야 할 운명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반대하 겠으면 하고…. 새로운 손님이 지나가면 동네 개야 짓는 걸 뭐, 안 그래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시간, 일 초도 내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벙어리처럼 지금까지 나왔다구요.

 

하나님은 영원·절대·유일 하신 분이기에 인간도 그러기를 바란다

 

여러분, 오늘 저녁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분의 사랑의 아들,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아들이요. 대상적인 존재로서의 우리 인간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그 인간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기를 바라겠어요? 우리 속세에 사는 사람도 그렇잖아요. 여러분들? ' 아이구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대는 영원한 내 사랑이요' 이러지요? 시를 봐도, 문학 서적을 봐도,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우리 속세에 사는 인간도 사랑의 대상이, 이상적 혹은 행복의 대상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을 우리의 욕망으로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그 아들을 만난 후에 '야 나는 영원하지만 너는 잠깐 한 백 년쯤 살다가 죽어라, 없어져라?' 그러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주체 되는 하나님, 아버지 되는 하나님 앞에 아들딸이 돼야 할 인간은 아버지가 영원하시니 자식된 인간들도 영생하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인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야 되겠어요. (박수) 여러분 정말 좋아요? 오늘 여기서는 이렇게 박수 치고 이따 저녁에는 '그 뭐뭐뭐 말은 그럴싸한데 두고 봐야지' 제발 그러지 말라구요. 사람이 여기서는 박수 치고 돌아가서는 변하면 그건 안 되지요. 뭐 광주 사람들은 정직하신 줄 아니까 그러지 말라구요.

자, 이러한 것을 알았습니다. 대충 알았어요. 이 공식을 적용해서 보라구요. 여러분, 친구를 삼으려면 어떤 친구를 삼고 싶어요.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이지요? 그렇지요? 나라 같으면 우리 나라를 위하는 나라, 그렇지요? 그거 틀림없다구요. 위해 주는 걸 좋아하게 돼 있다구요. 우리가 좋아하니까, 하나님도 우리를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하나님을 위하는걸 좋아한다구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왜 위하라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자, 그러면 여러분들 중에 '그러면 그거 좋소, 그 위하는 법도는 좋은데 그러면 하나님은 도대체…' 우리 젊은 사람들이 가만 생각하니 기분 나쁘다구,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 지금까지 자기 뱃심을 치고 눈을 똑바로 뜨고 그저 손을 악착같이 쥐고 싸워도 언제 코 떼어 가고 눈 메어 갈지 모르는 세상에 위하라고? 이거 멍청이 같은 말 하지 말라고 세상은 지금 다르다구' 할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거예요.

자, 그러면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이 왜, 어째서 위하라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하는 것을 몇 가지 요건을 들어서 말해 보자구요. 자, 여러분들한테 내가 한번 질문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자기 전체의 생명을 투입해 가지고 나에게 백 퍼센트 신세를 지운 그런 은인이 있다 하게 될 때, 그 은혜를 갚는 데에 있어서 한 오십 퍼센트는 포켓에 집어 넣고 나머지 오십 퍼센트만 갚고 싶어요. 백 퍼센트 이상 갚고 싶어요? 어떤 거예요? 전자예요. 후자예요? 후자지요? 난 후자예요.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도 후자지요?「예」 그거 나 닮았구만요. 나도 여러분 닮고 여러분도 나 닮았어요. 틀림없이 후자다 이거예요.

생명을 다한 은덕을 입게 되면 거기에 보태 주고 싶은 우리 본성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희망의 세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참사람끼리 만나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박수) 자, 내가 B라는 사람을 사랑했는데, 생명을 다해서 은공을 입혔는데 이 B라는 사람이 은공을 백 퍼센트 이상으로 갚아 온다 할 때‘ 아이구 좋다 내가 더 받았으니 흐흐 장사했군' 그래요? 본심은 말하기를 ' 내가 더 받은 고마운 것은 빚이니 더 가해 줘라' 하고 명령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백 퍼센트 은공을 입혔던 데서 백 십 퍼센트 돌아온다면 백 십 퍼센트 이상 돌려주고, 또 더해서 돌아오고 하는 이런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은 위해서 존재하는 데서만이 성립된다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영원이란 개념이 설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여기에서 영원이란 개념이 생겨난 거예요. 여기서부터 영생, 이런 자리에서부터 영원….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라는 것은 영원해야 됩니다. 또한 그것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은 위해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박수)

그뿐만이 아니라, 영원이란 개념이 설정됨과 동시에 여기에서만이 발전이 있는 것이요. 번창이 있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그거 알았어요? 첫째는 영원이 여기에 설정되는 것이요. 번창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위하는 데서만이.

그다음에 둘째 번이 뭐냐? 여러분 그렇잖아요?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남한테 주관 받는다면 이거 밥을 못 먹고 배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지요. 응? 그렇지요? 여기 학생들이 있구만요. 너무 그러지 말라는 거라구요. 내 말 좀 들어 보라구요. 자, 이거 주관 받기는 진짜 싫은데 만일에 '주관 해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게 어디 있어, 이게? 하고 대항하고 싶은 거라구요. 조금 기다려요. 그건 또 싫지요? 싫지만 기다리라구요.

소위 요즘에 똑똑하다는 지성인들의 클럽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구요. '우, 내가 누구한테 져? 위신, 대학교수 위신, 총장 위신고' 야단이라구요. 그게 그런 게 아니라구요.

자, 지금까지는 남한테 지배받고 주관당하는 것은 모욕이요. 실패요 억울한 것으로 알았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를 진정히 위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여 그분 앞에 주관받을 수 있는 행복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한번도 생각을 못 했다는 거예요. (박수)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보자구요. 한 가정에 여덟 식구가 살고 있다고 예를 들어 보자구요. 그 여덟 식구 가운데에는 꼬마 동생, 나이 어린 동생이 그래도 한 20대 됐다고 말해 보자구요. 그런 동생이 있는데, 형님들도 많고 아버지 어머니도 다 있지만, 이 꼬마 동생되는 분이 그 집을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어머니 아버지 이상, 그 형님 누나 누구보다도 그 가정을 위하는 날에는 어떤 결과가 빚어지느냐 하면, 위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집안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점점 중심 자리를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구요.(박수) 덜 위하는 형님보다도, 덜 위하는 어머니보다도, 더 위하는 동생이 날이 가면 갈수록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나가 받들어 '우리 집을 인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동생밖에 없다' 하는, 중심적 존재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박수)

여기 이 광주 시장은 어떤 분이 돼야 되느냐 하면 말이예요. 누구보다도 광주시를 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저 누구보다도 밤이나 낮이나, 전체 이 광주시민을 위해서 어버이와 같이 움직이게 되면 시민들은 점점점점…. 그 사람이 시장이 되기 싫어해도 끌어다가 시장시킨다는 거예요. 그러지요? (박수) 그래요. 안 그래요?「그래요」

여러분 부모들이 자식들을 대해 가지고 갑돌이라든가 옥순이든가 '뭐 어떻고 어떻고, 야야 선한 일을 해라' '선한 일이 뭐예요. 엄마 아빠? 이렇게 물을 때 '뭐 모르긴 모르지만 남이 그저 배 고플때 밥먹여 주고 말이야, 넘어졌으면 그를 업어다 주고, 전부 다 위해라' 하는, 위해 주라는 말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렇지요? 그러면 선하게 된다 하고 막연하게 알았어요. 구체적으로는 몰랐다는 거라구요. 이 똑똑한 젊은 청년들‘야, 그거' 성경의 그 내용을 보게 될 때, 이게 역설적 논리인 줄 알았더니, 우주의 이상적 창조 기원이 위하는 법도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어쩌면 그것 백 퍼센트 딱 들어맞아요.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한번봐 보라구요. 그걸 생각할 때, 예수는 과연 인류의 구세주임이 여러분이 지혜가 있으면 있을수록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박수)

자, 이거 또 시간이 많이 가서 갈 시간이 돼 오는구만요. 이젠 그만 둘까요. 조금 더, 결론을 내릴까요?「더 해요」 그래, 그래, 그래 할께요.

자, 그러면 위해 사는 사람은 중심존재로 등장한다는 비결을 알았어요. 여러분이 학교를 위해서 살아 봐요. 표창장도 받고 전교의 대의원도 됩니다. 그렇지요? 우주원칙의 기원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원에 기준을 맞추지 않고는 존재의 가치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사과정에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현상적 결과가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위하는 자는 중심존재가 됩니다. 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왜냐? 하나님을 닳았기 때문이예요. (박수)

우주의 대중심 되는 하나님은 창세 이후 위하는 천도를 따라 존재하는 거예요. 요즘에는 뭐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다가 '그놈의 하나님 뭐 살았나 모르지, 무슨 말을 해도 그것 있는지 없는지, 그저…' 그래도 용서해 주고, 그래도 위해 주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위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으로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일이 오래면 오랠수록 우리도 중심존재로 등장하는 이 논리적인 원칙을 이제 여러분이 알았어요. 그러니 부디 그렇게 살아 보라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위해 사는 사람 앞에 주관을 받는 그 이상의 행복이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위해 사는 사람 앞에 주관받아 보라구요. 여러분,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일하게 되면, 아내는 그저 몸 둘 곳을 모르고 그저 ' 밥 가져와' 할 때, 그저 밥 가져오고 물 먹고 싶어할 것 같아 물 가져오라는 소리를 안 해도 물 가져다 주고, 그렇지요? 그렇다구요. 난 여자가 아니라 경험하지 못했지만 난 그렇다고 알고 있다구요. 자, 이렇게 위해 사는 사람 앞에 완전히 주관받을 수 있는 이 행복이 얼마나 놀랍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위해서 사는 우주의 중심존재이므로 그 앞에 가까이 가면 천년 만년 주관받더라도 더 주관받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모심의 도리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인간도 그러한 자리에서 주관받을 수 있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또 다음 세째 이유는, 왜 하나님이 위해서 살라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수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얘기해 보자구요. 오늘날 남자나 여자들, 지금까지 잘났다는 사람들이 소위 생각하기를 '사랑 하면 내 사랑, 이상 하게 되면 내 이상' 이렇게 생각해 왔어요. 그렇지만 그게 아니예요. 사랑은 혼자 얻어지는 법이 없어요. 이상은 혼자서 이룰 수 없어요. 상대적 관계에서 얻어지는 거예요. 사랑이 나로부터 찾아지는 게 아니예요. 이상이 나로부터 찾아지는 것이 아니예요. 생명보다도 귀한 그 사랑과 이상이 어디서 오느냐 하면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이 고귀한 것을 받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위할 수 있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는 도리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기를 바랍니다. (박수)

이제는 여러분들에게 많이 이해됐으리라 봅니다. '아 그렇구만…' 이눈이 생겨나기를 눈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예요. 상대를 위해서예요. 귀가 귀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예요. 전부가…. 코가 코 때문에 생겨나지 않았어요. 입이 입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예요. 상대 때문에 생겨났어요. 팔이 팔 때문에 생겨났어요? 남을 위해서예요. 전부 그렇게 돼 있다구요. 자, 이제 그만큼 했으면 아시리라 봅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넘어가자구요.

 

종교통일 방법과 하나님의 뜻

 

'자, 문 아무개라는 사람 말은 그럴 듯하오, 그렇지만 당신이 도대체 무엇인데 이 세계에 소란을 피우고 대한민국에 소란을 피워요? 하고, 기독교에서는 악착같이 '아이구 문 아무개 죽었으면 좋겠다'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도 내가 안 죽는다구요. 죽으라고 한 사람들이 죽으면 죽었지, 난 안 죽어요. 지금 뚱뚱하게 살쪘거든요. 그거 왜 안 죽느냐? 천륜의 도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천륜의 도리를 따라가는 사람을 쳤다가는 친 사람이 맞는 것입니다. '도대체 통일교회 창시자인 당신이 종교 통일, 기독교를 통일할 수 있어? 이런 말을 할 거예요.

통일교회라는 이름을 듣게 될 때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런 비판을 했을 거예요. '그 문 아무개라는 사람 머리가 조금 변변치 않은 팔불출이 아니야?' 하며 간단히 해석할지 모르지만 조금만 기다려 보라구요. 구교와 신교가, 로마 가톨릭하고 희랍정교하고 갈라진지 950년 되어 가지고 요즘에는 뭐 하나되어 보자 하는데 하나돼요? 신교만 해도 사백 여 교파가 되어 가지고 '내 교파가 아니면 하나님이 없다' 뭐 어떻고 하며 서로 싸우는 판국인데 하나돼요? 그래 가지고는 하나 안 된다구요.

어떻게 해 가지고 하나되느냐 하면 통일교회 문선생 말대로 하면 됩니다. 내가 나보고 문선생이라 하니 안 됐구만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다 문선생이라고 하니 한번 불러 보는 거예요. 문 아무개 말대로 하면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되느냐? 위해 사는 원칙을 적용하면 가능하다는 거예요. 내가 천주교도가 하나님을 위하는 이상 하나님을 위할 것이다 이거예요. '천주교가 주님을 위하는 이상 내가 위하고, 천주교 신부 수녀들이 교인을 위하는 이상 내가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될 것같아요?(박수) 사람은 더 사랑 받고 더 위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모가지를 끌어 매더라도, 모가지가 끊어져도 가려고 하는 것이예요. 이것이 우리 본성의 욕망이예요. 기성교회 목사보다도 내가 기성교회 교인을 사랑하게 될 때는 하나될 수 있다구요. 기성교회 교인이 기성교회 목사를 위하는 것보다도 통일교회 교인이 기성교회 목사를 더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간단히 통일된다고 보는 거예요.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박수)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이것 보라구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이 뭐예요?'장로교면 장로교, 감리교면 감리교를 천국 데려가는 것이지' 그렇게 대답하겠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문아무개의 말을 들으면 천국가지, 그게 하나님 뜻이지' 이렇게 말할 것 같지만 나는 그렇게 말 안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장로교보다도, 감리교보다도, 성결교보다도, 통일교회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고, 더 인류를 위하는 것을 원해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장로교를 천국에 데려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예요. 성결교를 천국에 데려가는 게 목적이 아니예요. 통일교회를 천국에 데려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예요. 그러면 무엇이냐? 인류를 천국에 데려가기 위한 것이 목적인 것을 오늘날 수많은 종파는 몰랐다 이거예요. 몰랐다 이거예요. (박수)

장로교를 희생시켜서라도 하나님은 인류를 구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예요. '성결교를 희생시켜서라도 인류를 구해 다오' 이게 하나님의 요구예요. '감리교를 희생시켜서라도 인류를 구해 다오' 그게 하나님 뜻이예요. '통일교회를 백 번, 천 번 희생시켜서라도, 핍박받더라도 인류를 구하면 어떤 종교보다도 나은 종교다' 이거예요. (박수)

오늘날 기존 종교의 테두리를, 이 담벼락을 헐어 버려야 할 때가 온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기성교회만을 천국에 데려가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을 내가 알았어요.

 

기독교는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다

 

여러분, 여기에 기독교 신자가 오셨거들랑 내가 한 가지 묻겠어요. 당신들이 존경하고, 생명을 다해 믿는다는 그 주님을 대해 묻기를 '주님, 당신의 소원이 우리 기독교, 장로교만을 위해서 내가 사는 것이요. 장로교를 버리더라도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요? 하고 묻는다면, 여기에 장로교 목사 되는 분들 왔을 거예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예요? 장로교를 위해서 사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예요? 그렇게도 살기는 살아야지요.

그러나 장로교를 밟고 넘어가더라도 인류를 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종교가 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주님을 대해 ' 당신이 기독교의 주님이 되고 싶소, 인류의 주님이 되고 싶소? 하고 묻는다면, 인류의 주님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인류의 주님이 되고 싶다는 거라구요. (박수)

차원을 높여 하나님 앞에 묻기를 '하나님 당신은 기독교만을 구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예요? 하면, 하나님은 ' 아니야, 내 뜻은 타락한 인생 전부를 내 품에 품는 것이다. 나는 어버이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 나의 이상적 상대를 사랑하고 싶어서 고대하는 주체의 마음을 갖고 있다. 세계만민을 구하는 것이 내 뜻이다' 라고 대답을 해야 할 입장인 것을 오늘 로마 가톨릭이나 전세계 기독교는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박수)

오늘날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30년 동안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 대한민국이 나를 핍박함으로 말미암아 복받을 수 있는 길이 있거든 나는 얼마든지 비참해져도 괜찮습니다. 기성교회는 나를 저주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서, 기성교회를 위하는 자리에서 기도하고 가겠습니다' 하면서 나왔습니다. 끝에 가 봅시다. 끝에 가면 누가 남을 것이냐? 반대하던 사람은 사라져 가고 반대 받던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기성 교인들이 많아요. 이것을 슬프게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이 믿어지지 않거든 여러분이 잘 아는 성경 말씀 한마디를 예를 들어 말해 보자구요. 유치원서부터 혹은 국민학교 때로부터 주일학교에 모여 가지고 잘 아는 그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를 준 것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을 사랑하사 준 거예요. 세상을, 기독교가 아니예요. 장로교만이 아니예요. 통일교만이 아니예요. 세상을 구하여야 할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을 모르고 이단 뭐 삼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박수)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 같은 불신스러운 이 세상을 원망하고,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저주하는 이 대한민국을 다시 찾고 싶지 않은 이러한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대한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뼈가 녹아 지고 살이 여윈들 민족의 얼을 밟고,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선한 그것을 현재에 이렇다고 밟아 치울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제 미래의 소망을 가져야 할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반대받는 대한민국이라도 이렇게 여러분, 세계에 있는 젊은이들을 몰아 가지고 이 나라를 최대한으로 위할 수 있는 한걸음을 걸어 보자 하는 것이 오늘 희망의 날 대향연인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기독교는 세계를 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물론 민주세계도 몽땅 사로잡아 가지고 하나님께로 끌고 들어갈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약화되어 목적은 커녕 현재의 위치, 입장마저도 상실해 버리고 방황하는 거기에 있어서 내일에 재림하실 주님을 암만 기다리면 뭘해요? 그 뜻을 따라갈 수 있어요? 훈련이 필요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위해 사는, 거기에서만이 천국이 될 수 있는 거라구요. 개인 개인끼리 세계인을 위해서 살 수 있는, 민족을 초월하고 동서양을 초월하고 흑백인종을 초월해서 서로 위할 수 있는 그 자리가 되면 개인이 세계를 이룬 천국이예요. 가정이 그러하거들랑 가정천국이 이루어질 것이예요. 민족이 그러하거들랑 민족천국이 이루어질 것이예요. 국가 세계가 그러하거들랑 이 지상에 있어서의 국가 천국, 세계 천국이 형성되는 것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거예요. (박수)

 

통일교회가 나아가고 있는 길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뭐라고 하지만 승공연합을 만든 것을 보고' 아 통일교회가 아이구 포교의 포교의 방편을 위해서…' 천만에요.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이 알지 못하더라도 이 길을 누가 닦아야 할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그 놀음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막강한 출혈의 지출을 해 나왔어요. 통일 교회를 희생시켜서 나라와 민족이 갈 수 있는 길, 오늘날 전세계 통일교회 교인들을 희생시켜서 세계 인류가 가야 할 길, 위해서 가 가지고 천국 판도를 한 치라도 더 넓히기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불철주야 쉬지 않고 일하는 무리가 이 지구성의 어느 한 모퉁이에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박수)

하늘이 바라는 그러한 한 개인과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을 편성하여 초민족적인 심정의 기반 위에 하나의 세계로 가는 하나님을 위하는 길을 모색해 보자하는 것이, 이것이 여기에 서서 말하는, 여러분에게 이단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별의별 소문과 추문을 들었던 장본인인 이 사나이의 사상인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 주면 고맙겠습니다. (박수)

여러분, 여러분은 월남사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북괴가 지금 남침을 노리고 있는 차제에 기독교가 기독교만으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와 하나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싸우게 될 때는 통일교회고 기독교고 없이 단결하여 싸워야 돼요. 기독교가 싸우게 되어 망하거들랑 우리라도 싸워서 이길 수있는 길에 동참, 참전시켜야 돼요. 이럴 수 있는 위기 절박한 이 시대에 있어서,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단결해 가지고 보다 차원 높은 통일의 국가를 위한 사상을 가지고 북침도…. 악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하늘 앞에 제물로 바쳐 드릴 수 있다는 사상으로 하나되는 날에는 이 나라의 민족은 비운의 민족이 안 됩니다. 인구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뒤지는 게 없는데 왜 북한한테 져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본에 대한 기지를 닦고, 미국에 대한 기지를 닦고, 전세계의 마수의 이 행각 행로를 가로막아서 하나님의 승리의 판도를 위해 전세계 기독교를 통합하여 승리의 깃발을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입장에서 수습하고, 기독교를 위할 수 있는 입장, 인류를 위할 수 있는 입장을 수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당도 힘으로 포섭해서 그들을 구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기독교의 사명이요.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명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어요. (박수)

 

위하여 존재하는 전진적 노정을 가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발전적 공식과정, 새로운 관의 설정이 필요할 때가 왔다 그거예요. 개인의 인생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개인이 그 인생관을 토대로 해서 국가관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세계관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우주관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차원 높은 하늘로부터 본연의 이상적 모든 여건을 형성할 수 있는 기원의 원칙인 위해 존재하는 전진적 노정에서만이 하나의 세계는 형성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남자는 아내를 위해서, 그 부부는 자식을 위해서, 그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때서야 비로서 우리를 위해서…. 이럴 수 있는 위하는 세계의 원칙을 따라가는 데에서 개인의 인생관이 해결되는 것이요. 또 국가관의 해결이요. 세계관의 해결이며, 하나님의 섭리관의 해결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기반이 전세계에 긍하여 공산세계까지도 여기에 전부 다 가히 하나될 수 있는 그 세계가 되거들랑, 그야말로 하나님이 모든 구도자를 보내고 구세주를 보내 세상을 구도하기 위한 목적이 성사되는, 지상천국의 완성이 되는 것을 여러분이 믿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박수)

보다 차원 높은 것을 위하여, 대한민국은 이제 대한민국 자체를 위한 그런 때에서부터 아시아를 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창설하느냐, 보다 차원 높은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창설하느냐를 찾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비록 모든 면에서 후퇴되어 있고 모든 면에서 저개발 지역의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구요. 앞으로 23세기 25세기 그때에 가 가지고 이런 위할 수 있는 도리를 알아서 만민이 이것만을 필요로 하는 이상적 기준이라고 들고 나올 수 있는 그런 것을 세계적으로 선포해서 기반만 닦는 날에는, 지금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지만, 2,3세기 이후에는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주체국이 된다는 이러한 원칙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박수)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도 마찬가지라구요. 자기 교파만을 위하면 교파로 말미암아 심판받는 거예요. 교파로 말미암아 망해요.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도리의 길을 가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모든 것에 대하여 소유의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아내의 것은 내 것이요. 내것은 아내의 것이요. 부모의 것은 자식의 것입니다. 가정의 것은 가정 것이 아니라구요. 가정의 것은 우리 가정의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종족의 것으로서 연결시킬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종족의 것은 민족의 것이요. 그 민족의 것이 대한민국의 울타리에서 영원히 결정적인 입장에 선 대한민국의 소유가 아니라구요. 세계에로 연결할 수 있는 소유가 되어야 돼요. 대한민국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때에서야 ' 하나님 것은 비로소 내 것이다' 이래야 인간의 그 두꺼비 같은 두터운 욕심이 채워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것은 내 것이라는 거예요. (박수)

그런 새로운 주체사상, 중심이 모호한 개인의 몰락을 방지하고, 사회의 몰락을 방지하고, 중심이 없는 국가를 방지하고, 중심이 없는 세계를 방지하고, 중심이 없는 하나님의 섭리관을 방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공식의 궤도는 '위해 존재하는 원칙'으로부터 이것은 출발과 더불어 종착점까지,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로부터 종착점까지 영원히 남아지는 진리요. 원칙인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시고, 오늘 참석한 이후에는 그러한 면에 보다 차원 높은 발전과 혁신이 있기를 바라면서 본인의 말씀을 끝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사회와 여러분의 광주에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안녕히 계시기를 바라면서, 나는 물러가겠습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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